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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26, 2013. 2 Corinthians 6:1. Drawing on the Grace of God—now. 하나님의 은혜를 지금 길어 올리기
We then, as workers together with him, beseech you also that ye receive not the grace of God in vain.
그런즉 우리가 그분과 함께 일하는 일꾼으로서 너희에게도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고린도후서 6:1)
(2711) [당신이 어제까지 가지고 있던 주님의 은혜는 오늘을 위해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인내를 시험하는 어려움과 환란과 궁핍함과 절망 속에서, 당신은 하나님의 은혜를 길어올 수 있음을 믿으세요. 지금 당신은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지 못하고 있습니까? 이번만큼은 하나님의 은헤를 기대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The grace you had yesterday will not be sufficient for today. Grace is the overflowing favor of God, and you can always count on it being available to draw upon as needed. “ ... in much patience, in tribulations, in needs, in distresses”—that is where our patience is tested (6:4). Are you failing to rely on the grace of God there? Are you saying to yourself, “Oh well, I won’t count this time”?
(2712) [기도를 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문제가 아니라, 주님의 은혜를 지금 받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기도란 하나님의 은혜를 길어내는 행위입니다. 당신이 필요할 때 바로 기도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세요.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 것을 좀더 배워야 합니다.] It is not a question of praying and asking God to help you—it is taking the grace of God now. We tend to make prayer the preparation for our service, yet it is never that in the Bible. Prayer is the practice of drawing on the grace of God. Don’t say, “I will endure this until I can get away and pray.” Pray now—draw on the grace of God in your moment of need. Prayer is the most normal and useful things; it is not simply a reflex action of your devotion to God. We are very slow to learn to draw on God’s grace through prayer.
(2713) [징벌을 받을 때, 속박 속에 있을 때, 혼란 중에 있을 때, 고통 중에 있을 때,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총을 길어 내세요. 그러면 당신이나 주위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기적은 바로 당신이 됩니다. 어떠한 환경에 처하게 되더라도 기도해서 하나님의 은총을 받으세요. 당신이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은총을 받고 있는 증거는, 당신의 아주 처절한 부끄러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총 외의 그 어떤 것도 나타내지 않는 것입니다.] “... in stripes, in imprisonments, in tumults, in labors ..” (6:5)—in all these things, display in your life a drawing on the grace of God, which will show evidence to yourself and to others that you are a miracle of His. Draw on His grace now, not later. The primary word in the spiritual vocabulary is now. Let circumstances tak you where they will, but keep drawing on the grace of God in whatever condition you may find yourself. One of the greatest proofs that you are drawing on the grace of God is that you can be totally humiliated before others without displaying even the slightest trace of anything but His grace.
(2714) [어떤 미련을 남겨두지 말고 당신 전부를 쏟고 당신이 가진 최선의 것을 주고 당신 자신은 항상 가난하세요. 하나님께서 주시는 보물들을 가지고 외교적 겉치례나 염려하는 마음을 가지지 말고,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가 되세요.] “ ... having nothing ...” Never hold anything in reserve. Pour yourself out, giving the best that you have, and always be poor. Never be diplomatic and careful with the treasure God gives you. “ ... and yet possessing all things”—this is poverty triumphant (6:10).
(2715—오늘의 idiom)
◈ ㆍ검소 - frugality [검소하게 살다 - live simply, live frugally]
◈ ㆍ인색 - stringiness, cheapness, miserliness [인색하다 - be stingy]
사치하지 않고 꾸밈없이 수수하다는 것을 한 단어로 검소(儉素, frugality)라고 한다. 이것은 ‘넉넉하지 못하다’는 의미의 검(儉)과 ‘꾸밈이 없다’는 의미의 소(素)가 결합한 말이다. 검소한 생활을 하는 일반적인 방법은 낭비를 없애고, 사치하는 습관을 버리고, 충동적인 구매를 없애는 것이라고 한다.
[예문 1] He believes in a life of simplicity and frugality. 그는 간소하고 검소한 삶의 가치를 믿는다.
[예문 2] Frugality is a virtue which[that] everyone should practice. 검소는 모든 사람이 실천해야 하는 하나의 미덕이다.
[예문 3] The chairman, well-known for his frugality, shocked his employees by giving them a $ 1.000 Christmas bonus. 검소하기로 소문난 회장은 크리스마스 보너스로 1,000달러씩을 지급해 직원들을 놀라게 했다.
돈이나 재물을 아끼는 점에서 종종 구두쇠의 인색함과 혼동되는 때도 있는데, 검소한 생활은 존경받지만, 수전노 같은 인색한 생활은 존경 대신 욕을 먹는다는 큰 차이점이 있다. 검소한 생활을 원칙으로 초심으로 살아온 유명 인사들이 존경을 받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사례를 살펴보자.
고(故) 정주영 회장
고(故) 정주영 회장은 초대형 기업을 설립하고 이끌어 가면서도 몸소 검소한 생활을 실천한 대표적 인물이다. 구두가 닳는 것을 막기 위해 징을 박고, 세 켤레의 구두로 징을 갈아가며 30년을 넘게 신었다고 한다. 그의 양복은 춘추복 한 벌로, 겨울에는 한기를 막기 위해 내복을 입고 지냈다고 한다. 그의 양복은 세월의 때가 타는 것을 감추기 위해 감색이었다고 한다.
원자바오 중국 前 총리
중국 권력 서열 3위인 원자바오 前 총리는 95년 한 채소 시장을 녹색 점퍼 차림으로 시찰한 일이 있었다. 그 후, 그가 민심도 살피고 경제 발전에 소외된 농민들을 위로하기 위해 농가를 방문한 일이 있었는데, 10여 년 전 그 시절에 입었던 바로 그 녹색 점퍼를 입은 것이다. 또한, 다른 농가를 시찰할 때 신은 낡은 운동화는 밑창을 수선하고 헤어진 곳을 기워가며 몇 년째 신은 것이다. 급속한 경제 발전으로 양극화가 극심해지고 있는 중국에서, 고위층 인사의 이 같은 검소함은 존경을 넘어 감동을 선사하였다.
도고 도시오 일본 경단련 前 회장
도고 도시오는 우리나라 전경련에 해당하는 일본 기업 단체의 회장을 3번이나 연임한 기업인이다. 경영의 귀재로 불리던 그는 부도 직전의 기업을 모두 흑자로 반전시킨 장본인으로, 경제 부흥을 원하던 일본인 사이에서 그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그야말로 2차 세계 대전 이후 일본 경제계 최고의 CEO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를 더욱 존경의 대상으로 만든 것은 그의 검소한 생활이었다. 그와 같은 부자 기업인이 소시민과 마찬가지로 33평 아파트에 살며, 마을버스와 지하철로 출퇴근하기는 그리 쉽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애플 창업자 고(故) 스티브 잡스
애플컴퓨터의 공동 창업자인 전설적인 고(故) 스티브 잡스는 세계 억만장자 6위에 오른 적이 있을 정도의 재산가다. 하지만 그는 억만장자가 된 이후에도 항상 티셔츠에 운동화를 신고 출퇴근했다. 시내 중심가에서 벗어난 한적한 교외에서 살며, 정원에서 직접 가꾼 유기농 채소 등으로 식사했다고 한다. 사치스런 행사에 참석하지 않으며, 자동차 모으기 등의 취미는 일절 하지 않았다.
◈ In the late 1980s, Klavan had sunk to a low point in his life. His mind dwelt on suicide. Then he heard Carter interviewed after a game. His team, the New York Mets, had won, and the aging catcher had helped by running hard at a critical point in the game.
1980년대 후반, 자기 인생의 바닥까지 떨어져 자살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클라반은 카터가 경기를 마치고 인터뷰하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날 노장 포수 카터가 경기 중 결정적인 순간에 열심히 달린 것이 도움이 되어 카터의 뉴욕 메츠팀이 그 경기에서 이겼습니다.
◈ Carter was asked how he could do that with his aching knees. Klavan heard him say something like this: “Sometimes you just have to play in pain.” That simple statement helped draw Klavan out of his depression. “I can do that!” he declared. Encouraged, he found hope—and later became a believer in Christ. 카터가 어떻게 아픈 무릎으로 그렇게 뛸 수 있었는지 질문을 받았을 때, 클라반이 들은 대답은 대충 “때로는 고통을 참고 그냥 뛰어야 합니다.”라는 말이었습니다. 이 단순한 말이 클라반을 우울증에서 건져내었습니다. 그는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어!”라고 선언하고, 용기를 얻어 희망을
찾게 되고, 후에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 The comforting truth behind Carter’s statement comes from Lamentations. We may face sorrow, pain, and hardship, but we don’t have to sink into self-pity. The same God who allows our suffering also showers us with His compassion (Lam. 3:32). With God’s love lifting us up, we can—if we have to—“play” in pain.
카터의 말을 뒷받침해주는 위로의 말씀이 예레미야애가에 나옵니다. 우리가 슬픔이나 고통,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자기연민에 빠져들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에게 고통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은 풍부한 자비로 우리에게 긍휼을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이시기도 하기 때문입니다(예레미야애가 3: 32). 우리가 만일 고통 속에서도 뛰어야 한다면, 우리를 일으켜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힘입어 우리는 “뛸” 수 있습니다.
◈ Along life’s pathway troubles come
That God will help us bear;
Then we can look beyond the pain
To those who need our care.
인생의 행로에 어려움이 닥쳐오나
하나님은 그것을 참을 수 있게 해주신다네
그래서 우리는 그 고통 너머에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볼 수 있다네
◈ God will either spare you from suffering
or give you the grace to bear it.
하나님은 우리를 고통으로부터 보호하시거나
그것을 참을 수 있는 은혜를 주신다.
◈ [우리가 예수님을 위해서 어떤 일을 하는 것을 사역이라고 우리는 부르지만, 주님은 우리가 주님에게 누구이냐 하는 것을 사역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란 어떤 특정한 교리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에게 헌신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아는 것—그 것이 헌신의 근원이 됩니다.] Jesus did not say to make converts to your way of thinking, but He said to look after His sheep, to see that they get nourished in the knowledge of Him. We consider what we do in the way of Christian work as service, yet Jesus Christ calls service to be what we are to Him, not what we do for Him. Discipleship is based solely on devotion to Jesus Christ, not on following after a particular belief or doctrine. “If anyone comes to Me and does not hate..., he cannot be My disciple” (Luke 14:26). In this verse, there is no argument and no pressure from Jesus to follow Him; He is simply saying, in effect, “If you want to be My disciple, you must be devoted solely to Me.” A person touched by the Spirit of God suddenly says, “Now I see who Jesus is!”--that is the source of devotion.
◈ [사람들은 교리적인 신앙에 빠져서 예수님에게 헌신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에게 헌신하지 않고 예수님이 하나님께 순종하시기에 시작하신 일—교리 자체에 헌신합니다. 예수님을 친구 정도로나 여기지 그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Today we have substituted doctrinal belief for personal belief, and that is why so many people are devoted to causes and so few are devoted to Jesus Christ. People do not really want to be devoted to Jesus, but only to the cause He started. Jesus Christ is deeply offensive to the educated minds of today, to those who only want Him to be their Friend, and who are unwilling to accept Him in any other way.
◈ [예수님은 하나님께 순종한 결과로 사람들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인류애 때문에 사람들에게 헌신하면 넘어지게 됩니다. 내가 주님을 개인적으로 또 열정적으로 섬기면 그 결과로 사람들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지 인류애 때문에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나를 헌 짚신짝처럼 여길지라도 주님을 사랑하기에 그 결과로 인류애를 가지게 됩니다.] Our Lord’s primary obedience was to the will of His Father, not to the needs of people—the saving of people was the natural outcome of His obedience to the Father. If I am devoted solely to the cause of humanity, I will soon be exhausted and come to the point where my love will waver and stumble. But if I love Jesus Christ personally and passionately, I can serve humanity, even though people may treat me like a “doormat.”
◈ [예수님 제자의 삶의 비밀은 예수님께 헌신하는 것이고, 그러한 제자의 모습은 중요하지 않은 미미한 존재로 보이게 됩니다. 그러나 그 삶은 땅에 떨어져 죽어 새 싹을 내고 수확을 내어 평원의 모습을 바꿉니다.] The secret of a disciple’s life is devotion to Jesus Christ, and the characteristic of that life is its seeming significance and its meekness. Yet it is like a grain of wheat that “falls into the ground and dies”--it will spring up and change the entire landscape (John 12:24).
(오늘의 idiom)
a penny worth of one’s advice = to give a person what he was thinking. “You awfully behave today. May I give you a penny worth of advice?”
zero in on (정확하게 조준되었다, ~에 모든 주의를 집중시키다)
Big guns were zeroed in on the Indian tribes.
(거대한 총들이 인디안 부족을 향해 정확하게 조준되었다.)
두번째 뜻으로 '~에 모든 주의를 집중시키다'가 있습니다. 그럼, 이렇게 쓰인 예를 볼까요?
Let's zero in on conversation today.
(오늘 회화에 집중해서 공부해 봅시다.)
every
1. every + 날/요일/달/년: ~마다
every day/week/month/year 매일/매주/매달/매년
every weekend 주말마다
every other day 이틀마다
2. every + 숫자 + 시간/거리/무게 명사: ~마다
every two months 2개월마다
every four years 4년마다
every five meters 5미터마다
every ten pounds 10파운드마다
주의!
every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거리/무게의 명사는 복수명사이다.
All of the fire equipment must be inspected every thirty days.
-> 모든 소방 기구는 30일마다 점검되어야 한다.
Their self-defense surprised me because their careless conclusion seemed indefensible. But then I thought of how common it is to make faulty judgments based on minimal information. One of the classic biblical examples is that of Job’s friends. They wrongly concluded that because a series of tragedies happened to him, Job had sinned.
잡지사가 신중하지 못하게 내렸던 결론은 변호할 여지도 없었기 때문에, 잡지사의 그러한 자기 방어적 태도는 참 놀라왔습니다. 그러나 나는 곧 이처럼 적은 양의 정보로 잘못 판단하는 일이 일상적으로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성경 속의 욥의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도 그러한 예입니다. 욥의 친구들은 욥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욥에게 연속적인 재앙이 일어났다고 잘못 판단했습니다.
In the end, God defended Job and offered a startling conclusion. He didn’t rebuke his friends for judging Job but for speaking falsely about Himself (Job 42:7). This is a humbling reminder that when we make careless judgments about others, we are sinning against God.
마지막에 하나님은 욥을 변호하셨고 놀라운 결론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욥의 친구들이 욥을 판단한 것에 관해서는 책망하지 않으셨지만, 그들이 하나님에 관하여 잘못 말한 것에 대해서는 노하셨습니다(욥기 42:7). 이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을 경솔하게 판단하는 것은 하나님께 죄를 범하는 것임을 겸손히 깨닫게 해줍니다.
Lord, please restrain my lips when I’m tempted to say what I shouldn’t say about people
made in Your image. Use my words to bless
and not harm. May I reflect Your heart.
주님, 주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은 사람들에게 절대로 말하지 말아야 할 것을 말하려는 마음이
생길 때, 우리 입술을 지켜주소서. 우리의 말이
저주가 되지 않게 하시고 축복이 되게 하소서.
주님의 마음을 나타내게 해주소서.
If you are a Christian, remember that people judge your Lord by you.
당신이 그리스도인이라면 사람들이 당신을 보고 주님을 판단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You have not spoken of Me what is right. —Job 42:7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정당하지 못함이니라 —욥기 42:7
Just a few breaths away from eternity, he realized who Jesus was and wanted to be with Him in heaven. He recognized his sin and Jesus’ innocence, and said, “Lord, remember me when You come into Your kingdom” (Luke 23:42). Jesus replied, “Assuredly, . . . today you will be with Me in Paradise” (v.43). 그는 죽기 바로 전에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고,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있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자기 죄와 예수님의 죄 없으심을 인식하고는,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누가복음 23:42)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43절)고 응답하셨습니다.
God does not want anyone to perish (2 Peter 3:9). His offer of salvation is open to anyone, regardless of age, health, or stage in life. His offer is open to you. Don’t delay receiving Jesus as Savior (2 Cor. 6:2). Resolve this important, unfinished business, and you’ll look forward to eternity with Him.
하나님은 아무도 멸망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베드로후서 3:9).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은 나이나 건강이나 인생의 어느 단계에 있는지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당신에게도 열려 있습니다. 예수님을 하루 속히 구주로 영접하십시오(고린도후서 6:2). 끝내지 못한 이 중요한 일을 해결하면, 영원히 주님과 함께 지내게 될 것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Time after time, He has waited before,
And now He is waiting again
To see if you’re willing to open the door;
Oh, how He wants to come in!
주님은 이전부터 기다리고 또 기다리셨네
그리고 지금도 기다리시네
당신이 기꺼이 문을 열어드리기를.
오, 주님은 들어가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계시네
To be saved here means to be safe hereafter.
지금 구원을 받아야 내세에 안전할 수 있다.
[우리의 이기심이 사그라지면 진정한 관심이 눈을 뜹니다. 우리의 이기심이 다시 눈을 뜨면 주님이 바라시는 진정한 관심이 줄어들지만, 우리의 삶 속에서 예수님과 같이 살 수 없는 때는 없습니다.] Where our self-interest sleeps and the real interest is awakened. “There... remained with Him that day...” That is about all some of us ever do. We stay with Him short time, only to wake up to our own realities of life. Our self-interest rises up and our abiding with Him is past. Yet there is no circumstance of life in which we cannot abide in Jesus.
[베드로에게 새로운 이름을 주셨듯이 우리의 자만, 이기심, 자족을 없앤 곳에 예수님은 우리의 새 이름을 써 주십니다. 그러한 새로운 이름이 우리 인생의 어떤 시기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우리의 삶 속에서 드러나야 진정한 주님의 사도라 할 수 있습니다.] “You are Simon... You shall be called Cephas”(1:42). God writes our new name only on those places in our lives where He has erased our pride, self-sufficiency, and self-interest. Some of us have our new name written only in certain spots, like spiritual measles. And in those areas of our lives we look all right. When we are in our best spiritual mood, you would think we were the highest quality saints. But don’t dare look at us when we are not in that mood. A true disciple is one who has his new name written all over him—self-interest, pride, and self-sufficiency have been completely erased.
[자만은 우리 자신을 우리의 우상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당신이 왜 성도가 될 수 없습니까? 그것은 당신이 성도가 되기를 원하지 않거나 당신이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이 무능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Pride is the sin of making “self” our god. And some of us today do this, not like the Pharisse, but like the tax collector (see Luke 18:9-14). For you to say, “Oh, I’m no saint,” is acceptable by human standards of pride, but it is unconscious blasphemy against God. You defy God to make you a saint, as if to say, “I am too weak and hopeless and outside the reach of the atonement by the Cross of Christ..” Why aren’t you a saint? It is either that you do not want to be a saint, or that you do not believe that God can make you into one.
[당신은 예수님이 당신을 구원하셔서 천국으로 곧바로 데려가시기를 원하시죠? 예수님이 당신의 원하는 그것을 바로 해 주실 것입니다. 다른 조건을 달지 말고, 오직 예수님이 당신의 모든 것이 되도록 하세요, 그러면 어느 순간뿐만 아니라 영원토록 예수님과 천국의 삶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You say it would be all right if God saved you and took you straight to heaven. That is exactly what He will do! And not only do we make our home with Him, but Jesus said of His Father and of Himself,“ ... We will come to him and make Our home with him” (John 14:23). Put no conditions on your life—let Jesus be everything to you, and He will take you home with Him not only for a day, but for eternity.
◈ (오늘의 idiom) part of the furniture = someone has been at one job or in one place so long that he actually feels he has become part of the environment. “Colin has been waiting in the doctor’s waiting room so long that he’s beginning to feel that he’s now part of the furniture.”
◈ Paul described his deficiency as a “thorn in the flesh” that kept him humble (2 Cor. 12:7-9). Three times he asked the Lord to remove it, probably thinking that he could then serve God better. But the Lord assured him, “My grace is sufficient for you, for My strength is made perfect in weakness.” Paul replied, “Therefore most gladly I will rather boast in my infirmities, that the power of Christ may rest upon me.”
바울은 자신의 신체적 결함을 자기를 겸손하게 만드는 “육체의 가시”라고 표현했습니다(고린도후서 12:7-9). 그는 그것이 제거되면 하나님을 더 잘 섬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여, 세 번이나 주님께 그것을 제거해달라고 간구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바울에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라고 안심시켜 주셨습니다. 이에 바울은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 응답하였습니다.
◈ One of the ironies of faith is that God often chooses us to accomplish His most important tasks despite our imperfections, not because of our speaking ability, looks, or fitness for the task. Missionary Hudson Taylor said, “God was looking for someone weak enough to use, and he found [you and me]!” When we find our strength in Him, He can use us in ways we could never imagine (v.9).
믿음생활에 있어서 기이한 일 중의 한 가지는, 하나님은 우리의 말재주나 외모, 혹은 일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완벽치 못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로 그분의 가장 중요한 과제를 이루기 위해 종종 우리를 선택하신다는 것입니다.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이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연약한 사람을 찾고 계시며, 그래서 [당신과 나 같은 사람을] 찾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우리의 능력을 발견할 때, 하나님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우리를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9절).
◈ Lord, I have many weaknesses. Please show Your strength through me by using me in whatever way You please. May others see
You at work in me and praise Your name. Amen.
주님, 저는 단점이 많습니다. 마음대로 저를 사용하셔서 저를 통해서 주님의 능력을 보여주시옵소서. 제 안에서 역사하시는 주님을 다른 사람들이 보고 그들이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게 하소서. 아멘.
◈ God’s strength is best seen in our weakness.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가 약할 때에 가장 잘 보인다.
◈ [나의 확신은 나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 위에 서 있습니다. 나는 염려에 사로잡혀 있지 않습니다. 나는 어린아이처럼 용기에 가득 차 있습니다] My assurance is to be built upon God’s assurance to me. God says, “I will never leave you,” so that then I “may boldly say, ‘The Lord is my helper; I will not fear.’” (13:5-6). In other words, I will not be obsessed with apprehension. This does not mean that I will not be tempted to fear, but I will remember God’s words of assurance. I will be full of courage, like a child who strives to reach the standard his father has set for him.
◈ [사람들은 성령의 깊은 숨을 들이 마시는 것을 잊고 주님의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염려 때문에 무너집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확신에 귀 기울이십시오.] The faith of many people begins to falter when apprehensions enter their thinking, and they forget the meaning of God’s assurance—they forget to take a deep spiritual breath. The only way to remove the fear from our lives is to listen to God’s assurance to us.
◈ [당신은 두려워하는 감정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주님은 나의 도움이시다’”라고 말하세요. 당신은 당신이 말하기 전에 먼저 주님의 말씀을 먼저 듣기를 배우십니까 아니면 당신이 이미 말한 것에 하나님의 말씀을 맞추려고 노력하고 계십니까? 당신 앞에 어떤 어려움이나 악마가 있더라도 두려워하지 마세요, 주님께서 당신과 함께 하고 계십니다.] What are you fearing? Whatever it may be, you are not a coward about it—you are determined to face it, yet you still have a feeling of fear. When it seems that there is nothing and no one to help you, say to yourself, “But ‘The Lord is my helper’ this very moment, even in my present circumstance.” Are you learning to listen to God before you speak, or are you saying things and then trying to make God’s Word fit what you have said? Take hold of the Father’ assurance, and then say with strong courage, “I will not fear.” It does not matter what evil or wrong may be in our ways, because “He Himself has said, ‘I will never leave you...’”
◈ [우리가 얼마나 나약한가를 생각하면 우리 앞에 있는 어려움은 거인처럼 우리자신은 메뚜기처럼 그리고 하나님은 계시지 않는 것처럼 생각됩니다. 그러나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주님이 먼저 부르신 노래에 맞추어서 당신은 노래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주님은 나의 도움이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또는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까?] Human frailty is another thing that gets between God’s words of assurance and our own words and thoughts. When we realize how feeble we are in facing difficulties, the difficulties become like giants, we become like grasshoppers, and God seems to be nonexistent. But remember God’s assurance to us—“I will never ...forsake you.” Have we learned to sing after hearing God’s keynote? Are we continually filled with enough courage to say, “The Lord is my helper,” or are we yielding to fear?
(오늘의 idiom)
◈ all of a piece with = consistent with his nature or character “The way you keep bumping int0 things is all of a piece with your clumsiness!”
◈ ㆍmetoo, me-too - [형] 남을 따라 하는
ㆍmetooism, me-tooism - 남을 따르는 행위, 유사품, 모방주의
ㆍmetooer, me-tooer – 따라쟁이
영어회화를 할 때 “Me, too!(나도요!)”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상대방과 마찬가지로 같다’는 의미의 표현이다.
[예문 1] A: Oh, what a day! I’m starving! (아, 너무 힘든 하루였어요. 배가 무척 고프네요.)B: Yeah, me too! (저도 그래요.)
[예문 2] Me too. I need a few days of just doing nothing. 나도 그래요. 아무것도 안 하면서 며칠 지냈으면 좋겠어요.
[예문 3] Me, too. I don’t think he cared whether we understood it or not. 나도 그래요. 그는 우리가 이해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것 같더라고요.
이 표현에서 유래된 단어가 metoo다. 상대방의 생각이나 행동 방식 등을 똑같이 사용할 때 사용하는 형용사다. 예를 들어, 다른 경쟁사 제품과 거의 비슷한 제품 규격의 대동소이한 PC라고 표현하려면, ‘metoo personal computers’라고 할 수 있다.
metoo라는 단어에서 다시 파생된 단어가 metooism이다. 남과 같은 방식으로 만들거나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주의나 사상이라는 말이다. 예를 들어, 레깅스는 여성들의 유행 패션으로 인기를 끌었는데, 레깅스 패션을 하지 않으면 유행에 뒤처져 보이므로 너도나도 레깅스 패션을 선호한 것도 metooism이 되는 것이다. 또 다른 예로, 한 기업에서 돈벌이 되는 새로운 사업을 개척하면 너나 할 것 없이 그 사업을 벤치마킹하고 이를 답습해 같은 사업을 벌이는 행위도 metooism이라 할 수 있다. 최근 업계의 화두인 블루 오션(blue ocean)을 찾기보다는 이미 여러 업체가 경쟁 상태에 있는 레드 오션(red ocean)에 함께 빠지는 현상 같은 것이다.
일부에서는 metooism을 대세를 추종해 남을 따라 하는 집단주의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남을 따라 하다 보니 개성도 없어지고, 조건 없이 휘말리다 보면 자의식도 사라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metoo나 metooism에는 ‘따라쟁이’라는 부정적인 의미가 포함되어 있으며, 남을 따라 하는 사람을 조롱하듯 metooer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 The psalmist wrote: “Keep back Your servant also from presumptuous sins” (Ps. 19:13). Have you felt tempted to do something “just this once” even though you knew it was wrong? Glancing at obscene images from Internet, “borrowing” money from an account at work, or stretching the truth may each seem like an isolated activity but can lead to terrible consequences. With God’s help, turn from sin and find His way of escape (1 Cor. 10:13).
시편기자는 “주의 종으로 고범죄를 짓지 말게”(시편 19:13) 해달라고 했습니다. 당신은 어떤 일이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번 한번만” 그것을 하고 싶은 유혹을 받은 적은 없습니까? 인터넷 외설물을 잠깐 보거나, 공금을 몰래 쓰고 메우는 것, 그리고 사실을 왜곡하는 것들은 각각 별개의 행위 같지만 그것들은 끔찍한 결과들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죄에서 떠나 하나님의 피할 길을 찾으십시오(고린도전서 10:13).
◈ Prone to wander—Lord, I feel it;
Prone to leave the God I love;
Here’s my heart, O take and seal it,
Seal it for Thy courts above.
주여, 내 마음이 방황하기 쉬우며
사랑하는 하나님을 떠날 수도 있다는 것을 압니다
내 마음이 여기 있으니 받아서 지켜주소서
주님 나라에 이를 때까지 지켜주소서
◈ Temptations will knock at your door;
don’t ask them to stay for dinner!
유혹이 당신의 문을 두드릴 때, 청해 들이지 말라!
◈ Keep back Your servant also from presumptuous sins. —Psalm 19:13 .
주의 종으로 고범죄를 짓지 말게 하사
—시편 19:13
◈ We need to learn from the disciples who fled to Jesus as their only hope. He may not bail us out immediately, but remembering that He is in our boat makes a difference! Thankfully, He is always with us in the storms of life, saying things like “Peace, be still!” (v.39). So, look for Him in your storm and let Him fill you with the peace that comes from knowing He is near.
우리는 그들에게 유일한 소망이었던 예수님께로 피했던 제자들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주님이 당장 우리를 벗어나게 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시다는 것을 기억하면 큰 효과가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주님은 삶의 폭풍 속에서 “잠잠하라, 고요하라”(39절) 같은 말씀을 하시면서 우리와 늘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폭풍의 삶 속에서 주님을 찾고, 주님이 당신의 마음을 주님이 가까이 계시다는 것을 앎으로써 오는 평안으로 가득 채우시게 하십시오.
◈ Lord, teach us to run to You in the midst of
trouble. Forgive us for trying to bail ourselves
out, and lead us to the peace of trusting Your
wisdom and ultimate deliverance. Thank You
that You will help us!
주님, 곤경 중에 당신께로 달려가도록 가르쳐
주소서. 우리 스스로 벗어나려 애쓰는 것을
용서하시고, 주님의 지혜로 결국 구원해주실
것을 믿음으로써 평안을 갖게 하소서.
주님께서 도와주실 것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 Make Jesus your first option when
the storms of life threaten you.
삶을 위협하는 인생의 폭풍이 찾아올 때
제일 먼저 주님을 찾으라.
◈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어떤 마법의 주문처럼 예수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본성에 동일화된 마음으로 기도한다는 것이다. 그 날은 우리가 죽어 천국에 간 후가 아니라 바로 오늘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으로 우리가 주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 절대적이고 완전하게 될 수 있습니다.] “In that day you will ask in My name..,” that is, in My nature. Not-“You will use My name as some magic word,”but—“You will be so intimate with Me that you will be one with Me.” “That day” is not a day in the next life, but a day meant for here and now. “...for the Father Himself loves you...”--the Father’s love is evidence that our union with Jesus is complete and absolute.
◈ [주님의 말씀은 우리가 어려움이나 불확실한 것을 경험하지 않게 되는 것을 확증해 주는 것이 아니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Our Lord does not mean that our lives will be free from external difficulties and uncertainties, but that just as He knew the Father’s heart and mind, we too can be lifted by Him into heavenly places through the baptism of the Holy Spirit, so that He can reveal the teaching of God to us.
◈ [예수님께서 순전하고 흠 없는 모습으로 하나님에 서신 것처럼 우리도 성령님으로 인하여 그러한 성결한 관계에 이르게 되고, 주님이 하나님과 하나인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과 하나가 될 수 있게 된다.] “...whatever you ask the Father in My name...”(16:23). “That day” is a day of peace and an untroubled relationship between God and His saint. Just as Jesus stood unblemished and pure in the presence of His Father, we too by the mighty power and effectiveness of the baptism of the Holy Spirit can be lifted into that relationship--“...that they may be one just as We are one...”(John 17:22).
◈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시고 하늘에 오르사 성령을 보내 주셔서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하나님에게 기도할 수 있는 자리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He will give you” (John 16:23). Jesus said that because of His name God will recognize and respond to our prayers. What a great challenge and invitation—to pray in His name! Through the resurrection and ascension power of Jesus, and through the Holy Spirit He has sent, we can be lifted into such a relationship. Once in that wonderful position, having been placed there by Jesus Christ, we can pray to God in Jesus’ name—in His nature. This is a gift granted to us through the Holy Spirit, and Jesus said, “...whatever you ask the Father in My name He will give you.” The sovereign character of Jesus Christ is tested and proved by His own statements.
(오늘의 idiom)
◈ opposite number = the person occupying the same position as someone in a different group, organization or country
◈ ㆍthe Big Apple - 뉴욕시
ㆍapple and oranges - 서로 완전히 다른 두 대상
ㆍHow do you like them apples! - (놀라거나 실망하며) 그랬구나!
ㆍHow do you like them apples? - (앞에 말한 자랑거리를 들먹이며) 어떻게 생각해?
사과같이 둥글고 예쁜 마음. 사과는 맛과 영양뿐 아니라 그 생김새도 사람들에게 호감을 준다. 영어에서도 apple과 관련된 여러 표현이 있다. 먼저, 미국 현대 도시를 상징하는 뉴욕시(New York City)의 별명이 ‘the Big Apple’이다. 이것은 1970년대부터 각종 미디어를 통해 사용된 말이다.
[예문 1] By government edict, every last one of the Big Apple’s restaurants shall be "trans fat-free." 정부의 지시에 따라, 뉴욕시의 마지막 한 레스토랑까지도 트랜스 지방을 전혀 사용하지 않을 전망이다.
[예문 2] The best way to see New York is to see the people who know the Big Apple best. 뉴욕을 관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 도시를 잘 아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입니다.
‘apple and oranges’란 표현도 있다. 두 사람 또는 두 개의 대상이 매우 다른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A와 B 회사가 있는데 겉보기에는 대기업으로 평판도 좋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사원 복지 혜택이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를 때, “They’re apples and oranges.”라고 사용할 수 있다.
[예문 1] You can’t compare inner city schools and schools in the suburbs - they’re apples and oranges. 시내 학교와 교외 학교를 비교하는 건 무리입니다. 그들은 매우 다르거든요.
[예문 2] I can’t tell which one is better because they are apples and oranges. 그 두 개가 서로 비교할 수 없는 대상이라 어떤 것이 더 좋은지 말할 수가 없다.
“How do you like them apples?”이라는 표현도 있다. 얼핏 보기에도 문법적으로 맞지 않는 문장같이 보이지만, 이 표현은 2가지 의미의 관용구로 자주 사용된다. 할리우드 영화를 보다 보면 간혹 나오는 표현인데, 문맥이나 상황으로는 의미를 파악하기가 어려운 표현이다.
먼저, 이 표현은 상대방에게 약간 잘난척하는 표현으로 주로 의문형으로 사용한다. 우리 식으로 “봤지?”, “나 어때?”, “이거 어떻게 생각해?(What do you think of that?)”라는 의미로 묻는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예문] You know that girl we were talking to last night - with the long blond hair? Well, I got her number. How do you like them apples? 어젯밤에 우리랑 얘기하던 여자 알지, 긴 금발 머리? 내가 전화번호를 땄다는 거 아니냐. (나 멋지지 않냐는 식의) 어떻게 생각해?
두 번째 의미는 주로 의문형이 아닌 감탄형으로 “How do you like them apples!”로 사용하며, 어떤 사건이 발생해서 놀라거나 실망스럽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예문] Really? Linda has moved to the Big Apple? Well, how do you like them apples! 정말이니? 린다가 뉴욕시로 이사 가 버렸다구? 음, 그랬구나!
◈ I wonder if the disciples were so consumed with thinking about food that they couldn’t see past their picnic. They didn’t understand the significance of what was going on at the well. The most important thing to Jesus was “to do the will of Him who sent Me, and to finish His work” (v.34). He was focused on the spiritual needs of this woman who desperately needed what only He could give.
나는 제자들이 음식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음식 이상의 것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은 우물가에서 일어나는 일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 가장 중요한 일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34절)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주님만이 주실 수 있는, 이 여자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영적인 필요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 It’s easy to become preoccupied with needs of the moment. But Jesus invites us to get beyond our own interests—our own little “lunch”—to open our eyes to the souls who are searching for answers to their deepest needs. 우리는 짧은 순간 동안만 필요한 것에 마음을 빼앗기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 자신의 관심, 우리 자신의 조그만 “점심”을 뛰어넘어, 우리의 눈을 열어 자신들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의 해답을 찾고 있는 사람들의 영혼을 바라보라고 우리에게 권유하고 계십니다.
◈ So, join Jesus at the well, and let Him use you to tell others about the spiritual food only He can give.
그러므로 우물가의 예수님께 합류하여, 주님이 당신을 사용하여 그분만이 주실 수 있는 영의 양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게 하십시오.
◈ Dear Lord, may my eyes be fixed not just on
the things I am interested in, but lift my eyes
to see the needy souls around me. Give me
passion for the lost and the joy of seeing
others satisfied in You.
사랑하는 주님, 내 눈이 좋아하는 것에만 머물지
않게 하시고 눈을 들어 내 주위의 갈급한 영혼들을
보게 하소서. 잃어버린 영혼들을 향한 열정을 갖게
하시고 사람들이 주님 안에서 만족하는 것을 보는
기쁨을 주소서
◈ He has made from one blood every nation of men to dwell on all the face of the earth. —Acts 17:26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 사도행전 17:26
◈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가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당신은 이러한 예수님의 기도 내용을 이루기 위해 주님을 돕고 있습니까?] If you are going through a time of isolation, seemingly all alone, read John 17. It will explain exactly why you are where you are—because Jesus has prayed that you “may be one” with the Father as He is. Are you helping God to answer that prayer, or do you have some other goal for your life? Since you became a disciple, you cannot be as independent as you used to be.
◈ [우리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될 때 속이 좁고 냉소적인 것을 멈추게 됩니다. 예수님은 그가 하나님과 하나이듯이 우리도 하나님과 하나 되게 하시기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When we understand God’s purpose, we will not become small-minded and cynical. Jesus prayed nothing less for us than absolute oneness with Himself, just as He was one with the Father. Some of us are far from this oneness; yet God will not leave us alone until we are one with Him—because Jesus prayed,“..that they all may be one...”
* (아래 내용은 다음에서 인용함) http://bethelpress.org/dailybread.php
I will speak in the anguish of my spirit; I will complain in the bitterness of my soul. —Job 7:11 내 마음의 아픔을 인하여 말하며 내 영혼의 괴로움을 인하여 원망하리로다 —욥기 7:11
In May 2011, a young woman took cover in a bathtub during a tornado that devastated her city of Joplin, Missouri. Her husband covered her body with his and took the blows from flying debris. He died, and she survived because of his heroism. She naturally wrestles with the question, “Why?” But a year after the tornado, she said that she finds comfort because even on her worst day ever, she was loved. 2011년 5월, 토네이도가 미주리 주의 조플린 시를 황폐화시킬 때 한 젊은 여인이 욕조 안에 피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남편이 자신의 몸으로 그녀를 덮어 보호하고 있다가 날아오는 파편에 맞아 죽고 말았고, 그녀는 남편의 영웅적인 행위로 살아남았습니다. 그녀는 자연히 “왜?”라는 질문으로 고민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폭풍이 지난 일 년 후, 그녀는 그녀의 사상 최악의 날에도 사랑받았기에 위안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When I think about “worst days ever,” I think of Job right away. A man who loved God, he lost his animals, his servants, and his 10 children in one day! (Job 1:13-19). Job mourned deeply, and he also asked the “Why?” questions. He cried out, “Have I sinned? What have I done to You . . . ? Why have You set me as Your target?” (7:20). 나는 “사상 최악의 날”을 생각할 때면 곧 욥을 떠올립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던 어떤 남자가 하루 동안에 자기 소유의 가축, 종, 그리고 열 명의 자식들을 모두 잃어버립니다! (욥기 1:13-19). 욥은 깊이 슬퍼하며, 마찬가 지로 “왜?”라고 질문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울부짖습니다. “사람을 감찰하시는 이여 내가 범죄하였던들 주께 무슨 해가 되오리이까 어찌하여 나를 당신의 과녁으로 삼으셔서 내게 무거운 짐이 되게 하셨나이까”(7:20).
Job’s friends accused him of sinning and thought he deserved his difficulties, but God said of his friends: “You have not spoken of Me what is right, as My servant Job has” (42:7). God did not give him the reasons for his suffering, but He listened to Job and did not fault him for his questions. God assured him of His control over everything, and Job trusted Him (42:1-6). 욥의 친구들은 그가 죄를 지었다고 비난하면서 그가 어려움을 겪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친구들에게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정당하지 못함이니라”(42:7)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욥이 받는 고통의 이유는 설명하지 않으셨지만, 욥의 말을 들으셨고 그의 질문을 질책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이 만유의 주재이심을 그에게 확인시키셨고, 욥은 하나님을 신뢰하였습니다(42:1-6).
The Lord may not give us the reasons for our trials. But, thankfully, even on our worst day ever, we can know for sure we are loved by Him (Rom. 8:35-39). 주님께서 우리에게 시련의 이유를 알려주시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우리의 사상 최악의 날에도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사랑받는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로마서 8:35-39).
We’re grateful, Father, that You know our hearts with our pain and joy. Thank You that You never leave us nor forsake us, as Your Word tells us. Please hold us close during our trials.
하나님아버지, 하나님께서 고통과 기쁨으로 차있는 우리의 마음을 아시니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며 버리지 않으시니 또한 감사합니다. 우리가 시련 중에 있을 때도 우리를 꼭 붙잡아주소서.
God’s love does not keep us from trials, but sees us through them. 하나님의 사랑은 시련을 피하게 하지 않고 시련을 통해 극복하게 한다.
Be who God meant you to be and you will set the world on fire.” (St. Catherine of Sien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