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들보다 원수가 더 많다는 건가? 2023.09.04
이재명, 김남국, 조국, 그리고 그 주변 여러 인물.
이 사람들 때문에 근 60년 전 중학교 한문 시간에 배운 맹자 ‘사단칠정(四端七情)’ 중 '사단'의 두 번째, ‘羞惡之心義之端’이 요즘 들어 더욱 뇌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허리 구부정하고 몹시 여위었으며 백발에 뿔테안경을 낀 늙은 한문 선생님은 이 일곱 글자를 “수오지심은 의지단이오”라고 읽게 하고 “자기 잘못을 부끄러워하며 남의 악함을 미워할 줄 아는 게 정의로움의 시작”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이 사람들 때문에 성경 속 또 다른 가르침도 다시 찾아보게 됐습니다. 신약 로마서에 나오는 “원수의 머리에 숯불을 올려라”라는 말씀이지요. 진짜로 활활 타오르는 숯불을 올려 원수를 머리부터 태워 죽이라는 게 아니라, 원수가 자기가 한 일을 평생 부끄럽게 여기도록 머리가 언제나 부끄러움에 홧홧 타오르도록 하라는 가르침입니다. 복수를 하려거든 오히려 은혜를 베풀라는 겁니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물을 줘라. 그리함으로 네가 그 숯불을 그 머리 위에 쌓아 놓으리라!”(로마서 12장 20절)
이런 숯불이 머리 위에 있어도 뜨겁지 않은 사람은 머리의 재질이 보통 사람과 달라서인가! (출처:네트153선교회 블로그)
이 사람들 때문에 맹자의 수오지심이 다시 생각난 것은 이 사람들이 자신의 부끄러움은 전혀 돌아보지 아니하고 ‘남의 악행’만 가리키며 큰 소리 질러 자신들의 부끄러움을 가리려 하기 때문입니다. 과연 그것이 악행인가를 딴 사람들처럼 상식과 법으로 따지지 않고 무조건 “나 죽겠소” 시끄럽게 울어댑니다. 이 사람들은 대장 까마귀가 울면 순식간에 온 무리가 까악깍 대는 앞산의 시커먼 까마귀 떼 같습니다.
이 사람들 때문에 “원수의 머리에 숯불을 올려라”라는 성경 가르침을 다시 찾아본 것은 앞으로 이 사람들 머리에 숯불을 올리는 사람이 대체 있기나 할까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이 사람들이 스스로 잘못을 알고 부끄러워하기를 기도했을 분들도 이제는 지쳐서 그 기도를 멈췄을 거라는 말입니다.
이 사람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꾸짖고 밝혀서 벌주려는 사람들, 이미 양 갈래가 되어 주저앉고 있는 이 나라를 지금보다는 반듯하고 정의롭고 공정한 모습으로 바로 세우려는 사람들(이들에겐 흠이 없다는 말은 절대 아닙니다)을 오히려 사악하다거나 잔악하다고 욕하면서 받아 마땅할 비난과 벌을 모면하려 합니다.
이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이라면 하나만 저질러도 벌건 숯 가득 든 다리미가 머리 위에 있는 듯 쉴 새 없이 땀 흘리며 부끄러워했을 일을 수없이 저지르면서도 처음엔 아예 그런 짓 전혀 하지 않은 듯 부인하다가 사실로 드러나면 그게 왜 내 탓이냐며 잡아뗍니다. 나만 그랬냐, 그게 그렇게 죄가 되냐는 말로 발뺌하기, 죽으면 나만 죽냐 다 죽자며 떼쓰기, 자기 잘못 밝히려는 사람들 다리 가랑이 붙잡기 같은 짓을 하루 24시간, 주 7일, 일 년 365일 잠시도 쉬지 않고 계속합니다.
이 사람들의 그런 짓이 너무나 많아 입에 올리면 자기 입이 더러워지고 아플 것 같아 말할 때나 글 쓸 때 일일이 나열하지 않으려는 사람도 많습니다. 나도 그렇습니다. 이제는 그 패악질이 끝나겠거니 했더니 또 다른 사특한 짓을 찾아냅니다. 오늘은 또 무슨 일을 저지를지 두려우면서도 궁금합니다. 무슨 말로 그 짓을 옳고 바른 것인 양 꾸며댈지도 궁금합니다.
이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움은 언제나 내 몫”이라는 젊은이들의 유행어는 더욱 적실합니다. 정작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들이 부끄러워하지 않으니 내가 부끄럽다는 거지요. 내 원수가 그들보다 많지는 않을 텐데 왜 부끄러움은 내가 더 느끼냐는 거지요.
※중학 3년 동안 참 재미없는 선생님이 재미없게 가르친 한문 중 유독 '수오지심(羞惡之心)'만, 그것도 '수치지심(羞恥之心)'으로 틀린 채,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내가 부끄러운 짓을 많이 했기 때문일 겁니다. 어떻든,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맹자 선생의 ‘사단칠정’ 중 ‘사단’을 중학교 때 배운 대로 읽고 복습하겠습니다. (수오지심은 위에서 말씀드렸으니 설명 생략.)
惻隱之心仁之端(측은지심은 인지단이오)=남을 불쌍히 여김은 어진 마음의 시작이다.
羞惡之心義之端(수오지심은 의지단이오)
辭讓之心禮之端(사양지심은 예지단이오)=겸손하여 남에게 양보하는 마음은 예의의 시작이다.
是非之心智之端(시비지심은 지지단이오)=잘잘못, 시비를 분별하는 마음은 지혜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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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정숭호
1978년 한국일보 입사, 사회부 경제부 기자와 여러 부서의 부장, 부국장을 지냈다. 코스카저널 논설주간, 뉴시스 논설고문, 신문윤리위원회 전문위원 등 역임. 매주 목요일 이투데이에 '금주의 키워드' 집필 중. 저서: '목사가 미웠다'(2003년), '트루먼, 진실한 대통령 진정한 리더십'(201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