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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증유(未曾有)
일찍이 있지 않았던 일이라는 뜻으로, 지금까지 한 번도 있어 본 적이 없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未 : 아닐 미(木/1)
曾 : 일찍이 증(曰/8)
有 : 있을 유(月/2)
(유의어)
광고(曠古)
전대미문(前代未聞)
파벽(破僻)
파천황(破天荒)
이 성어는 일찍이 있지 않았던 일이라는 뜻으로, 처음 벌어진 일이라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놀라운 사건이나 일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는 고사성어이다. 능엄경(楞嚴經) 등의 불교(佛敎) 경전(經典)에서 유래하였다.
미증유(未曾有)는 불경에서 유래하였는데 능엄경(楞嚴經)에‘부처의 설법을 듣기 위하여 모인 승려들이 미증유(未曾有)함을 얻었다(法筵淸衆 得未曾有)’라고 하였고, 중아함경(中阿含經)에는 수장자(手長者)가 지켜야 할 8가지 미증유(未曾有)의 법에 대한 설명이 있다.
불경(佛經)에는 미증유(未曾有)라는 말이 자주 보이는데, 부처의 공덕을 찬탄하거나 신비하고 불가사의한 일을 말할 때 사용된다. 이로부터 유래하여 이전에는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매우 놀라운 사건이나 일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어 미증유(未曾有)의 참사(慘死)라는 식으로 표현된다.
미상유(未嘗有)라고도 한다. 파천황(破天荒:천지가 아직 열리지 않은 혼돈의 상태인 천황을 깨고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이나 전대미문(前代未聞: 지금까지 들어본 적이 없음), 공전(空前: 비교할 만한 것이 그 이전에는 없었음), 광고(曠古: 전례가 없음) 등과 같은 뜻이다.
미증유(未曾有)는 아드부타(adbhuta)란 범어(梵語) 곧 산스크리트말을 한자로 번역한 것인데, 예전에 없던 일,일찍이 없던 일,썩 놀랍고 드문 일들을 가리킨다. 불경에서는 아부타달마(阿浮陀達磨·미증유법)라 하여 부처의 신통력을 일컫는다.
희유법(稀有法)이라고도 하는데, 글자에 견줘 뜻을 짐작기 어려우므로 현학적(衒學的)인 사람도 잘 쓰지 않는 말이다. 이 말은 요즘‘미증유의 사건,미증유의 경제위기,미증유의 유산,미증유의 논쟁,미증유의 인연’등등 처럼 주로 매김말로 쓰인다.
파천황(破天荒)은 인물이 나지 않는 풍토를 황무지에 견줘 이를 깨뜨린다는 뜻으로 쓰는 말이다. 다른 말로는는 파벽(破僻)이라고도 하며, ‘개천에서 용났다’ 정도로나 쓸 말을 흔히 천지개벽(天地開闢)으로 부풀려 쓸 정도로 문자(文字)속이 밝은 호사가(好事家)가 쓴 글에서도 적절한 쓰임이 드러난 보기를 찾기 어렵다.
공전의 히트, 공전의 성황, 공전의 신기록, 공전의 대박 등등 처럼 상품 선전 얘기나 스포츠 기사 따위에서 흔히 공전(空前)이란 말을 쓰는데, 그것이 헛도는 바퀴인지 예전에 없던 일인지 헷갈리게 한다. 오히려 말맛은 적으나 전대미문(前代未聞)· 전무후무(前無後無) 쪽이 그래도 그래도 쉬운 표현이겠다.
그런데도 억지스런 표현이 흔히 보이는 것은 일본식 관용 쓰임에다 단순한 영어(英語)를 어렵게 뒤쳐 써 버릇한 결과로 보인다. 꼭 쓰자면 예전에 없던,전례 없는,유례 없는,비길 데 없는, 보기 드문,기록을 깨는, 획기적인 등으로 튀지 않게 쓰는 편이 낫고, 이로써 겹치기 문자풀이 말투를 줄일 수 있겠다.
미증유(未曾有)
미증유(未曾有)의 한자표기는 未曾有입니다. 각각 단어의 뜻을 한자어 그대로 해석하면 지금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까지는 없었던 일이라는 의미로 흔히 사용되고 있는 전대미문이라는 단어와 의미가 유사하지만 그에 비해 사용빈도는 훨씬 적기 때문에 사실 조금은 생소한 단어에 속하기도 합니다.
사실 전대미문이라는 단어와 미증유(未曾有)는 의미상으로 볼 때 이전에는 없었던 일이나 어떠한 것을 지칭한다는 점에서 상당 부분 비슷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 안에 내포된 의미는 조금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오늘은 바로 이 부분에 집중하여 미증유(未曾有)라는 단어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의미는 이전 시대에는 들어본 적이 없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전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혹은 존재하지 않았던 일이기 때문에 이에 대해 아는 사람이나 정보가 없다는 뜻으로 보통은 매우 충격적이거나 놀라운 사건이나 현상을 지칭하는 용어로 현재 많이 사용되고 있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미증유(未曾有)와 비교해 보자. 미증유(未曾有)라는 단어에 비해 훨씬 사용빈도가 높고 이미 우리에게도 익숙한 단어라는 점에서 조금 더 대중적인 단어로 볼 수 있습니다. 미증유(未曾有)는 단어의 의미를 곱씹자면 일찍이 존재하지 않았던 일이라는 의미로 그 대상의 존재자체가 없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겪어 보았거나 혹은 정보나 실례가 있었어도 이것이 유명하지 않아 들어본 적이 없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는 전대미문과는 다르게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미증유라는 단어가 사용되는 경우에는 최초라는 의미를 내포한다는 점에서 좀 더 다른 내용을 가지고 있는 단어로 볼 수 있습니다.
때문에 기존에도 존재했을 법한 일이지만 최근 들어 갑자기 주목을 받거나 혹은 매우 드문 일이지만 놀라운 일인 경우에는 전대미문이라는 표현이,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일이지만 최초로 발생한 일에 대해서는 미증유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좀 더 정확하며 둘 다 매우 주목을 받는 혹은 세간에 회자되거나 충격적인 사건을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미증유의 사전적 의미는 '일찍이 있지 않았던 일'이라는 뜻으로, 처음 벌어진 일이라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놀라운 사건이나 일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는 고사성어입니다. '능엄경' 등의 불교 경전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미증유는 다음의 말과도 같은 뜻입니다. 미상유(未嘗有)라고도 합니다. 천지가 아직 열리지 않은 혼돈의 상태인 천황을 깨고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는 파천황(破天荒), 지금까지 들어본 적이 없다는 뜻의 전대미문(前代未聞), 이전에는 비교할 만한 것이 없었다는 뜻의 공전(空前), 전례가 없다는 뜻의 광고(曠古), 이전 사람이 아직 밟지 않았다는 뜻으로, 앞서 해본 적이 없는 일을 처음으로 해내거나 아무도 가보지 않은 단계에 도달하는 등과 같은 행위를 가리키는 말의 전인미답(前人未踏) 입니다.
미증유는 불경에서 유래했습니다. '능엄경'에 "부처의 설법을 듣기 위하여 모인 승려들이 미증유함을 얻었다"라고 하였고, '중아함경'에는 수장자(手長者)가 지켜야 할 8가지 미증유의 법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불경에는 미증유라는 말이 자주 보이는데, 부처의 공덕을 찬탄하거나 신비하고 불가사의한 일을 말할 때 사용되고, 한번도 일어나지 않는 놀라운 일을 묘사할때 사용이 됩니다.
미증유(未曾有)
미증유(未曾有)라는 단어가 있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이 단어의 뜻을 “아직까지 한 번도 있어 본 적이 없음”이라고 적고 있다. 코로나19는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 사람에게 미증유의 사건들을 가져왔다. 가끔 재난 영화에 나올 법한 일이 현실에서 벌어진 것이다. 이 미증유의 코로나19 때문에 또 다른 미증유의 사건들이 나와 우리의 생활에 덩달아 일어나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마스크를 쓰고 생활하는 우리의 일상을 둘 수 있다. 이것은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동안 살면서 마스크를 쓰는 일은 먼지가 많은 곳을 청소할 때 외에는 거의 없었다. 가끔 독감이나 감기에 걸려도 그 답답함에 마스크를 쓰지 않고 그냥 생활했었다. 또 황사가 심한 날 마스크를 쓰고 돌아다니는 사람을 보면 유별난 사람들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나도 마스크를 쓰고 생활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마스크를 쓰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유별난 세상에서 마스크를 안 쓴 사람이 다른 사람들의 지탄받는 세상이 되었다.
또 하나는 경조사의 변화이다. 나는 올해와 작년 한 해 동안 처가 어른들의 생신이나 나의 어머니 생신 그리고 설, 추석 명절까지 하나도 제때 참석을 못 했다. 물론 전후로 하여 잠깐 다녀오거나 인사를 드리고는 했다. 하지만 무릇 경사나 조사는 여러 사람이 모여 웃고 떠들며 음식을 나누는 것이 기본이고, 경사는 같이 축하하고, 슬픈 일은 위로하는 것이 우리 민족의 문화인데 그것을 전혀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결혼식이나 장례식 참석 대신에 온라인으로 부조를 하는 것이 일상화되었다.
그리고 코로나19는 어쩔 수 없이 사람들에게 자동화 디지털 기기를 많이 사용하게 했다. 디지털 기기의 활용이나 사용은 이제 생활의 필수가 되었다. 이제 많은 공공기관이나 대중 시설에는 키오스크라 불리는 자동화기기들이 설치되어 있다. 이는 인건비의 문제뿐만 아니라 대면 활동에 부담으로 인해 비대면으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와 더불어 발생하는 문제도 있다. 젊은 사람들이나 디지털 기기에 익숙한 세대는 이러한 문화에 쉽게 적응을 한다. 하지만 디지털 기기나 자동화기기에 익숙하지 못한 세대나 지역은 자동화기기로 인한 편리함이나 이득을 취하지 못하고, 디지털 기기 또는 디지털 사회로부터 소외되는 양상으로 나타나곤 한다. 결국 이 문제는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고, 국가 및 여러 기관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보여주기식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음이 조금 아쉽다. “아직까지 한 번도 있어 본 적이 없음”이라는 미증유(未曾有)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느낌이 강하다. 이 단어가 문법적으로 부정적인 표현에만 써야 하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지금 코로나19로 닥친 미증유(未曾有) 사태는 대부분 부정적인 이미지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코로나19로 변화된 세상은 모두 부정적인 세상만은 아니다. 마스크를 쓴 일상이 코로나19 외에 많은 바이러스 전파를 차단한 것도 사실이고, 경조사의 참석 제한은 그동안 허례허식으로 이뤄졌던 많은 행사를 줄이는 효과도 가져왔고, 디지털 기기의 보급과 활용이라는 긍정적이 변화도 가지고 왔다. 그렇다면 이제 미증유(未曾有)라는 단어가 나타내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바꾸어 보려는 우리 마음의 변화도 필요한 시기가 되지 않았을까 나는 생각한다.
▶️ 未(아직 미)는 ❶상형문자로 나무끝의 가느다란 작은 가지의 모양을 본뜬 글자로 나중에 분명하지 않다, 희미한 모양, 아직 ~하지 않다란 뜻에 쓰인다. 음(音) 빌어 십이지(十二支)의 여덟째 글자로 쓴다. ❷지사문자로 未자는 ‘아니다’나 ‘아직~하지 못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未자의 갑골문을 보면 木(나무 목)자의 윗부분에 획이 하나 그어져 있었다. 이것은 나뭇잎이 ‘무성하다’라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未자의 본래 의미는 ‘(나뭇잎이)무성하다’였다. 그러나 지금은 본래의 의미는 사라지고 ‘아직’이나 ‘없다’의 뜻으로 가차(假借)되어 쓰이고 있다. 未자는 ‘끝부분’을 뜻하는 末(끝 말)자와 매우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다만 末자는 끝부분의 획이 긴 반면 未자는 짧게 되어 있으니 이러한 차이점으로 구분해야 한다. 그래서 未(미)는 (1)십이지(十二支)의 하나. 그 여덟째임. 양을 상징함 (2)미방(未方) (3)미시(未時) (4)어떤 명사(名詞) 앞에 쓰이어 아직 다 이루어지지 않음을 나타냄 등의 뜻으로 ①아니다, 못하다 ②아직 ~하지 못하다 ③아니냐? 못하느냐? ④여덟째 지지(地支) ⑤미래(未來), 장차(將次)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아닐 부(不), 아닐 부(否), 아닐 불(弗), 아닐 비(非),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옳을 시(是)이다. 용례로는 그 동안이 그리 오래지 아니함을 미구(未久), 아직 오지 않은 때를 미래(未來), 아직 다 갖추지 못함을 미비(未備), 편안하지 아니함을 미편(未便), 아직 끝마감을 하지 못함을 미감(未勘), 아직 미치지 못함을 미급(未及), 아직 도착하지 아니함을 미도(未到), 끝을 다 맺지 못함을 미완(未完), 아직 작정하지 못함을 미정(未定), 아직 결혼하지 아니함을 미혼(未婚), 돈이나 물건을 아직 다 거두어들이지 못함을 미수(未收), 아직 결정되거나 해결되지 아니함을 미결(未決), 열매가 채 익지 못함을 미숙(未熟), 정한 수효나 정도에 차지 못함을 미만(未滿), 아직 정하여지지 아니함을 미연(未然), 아직 넉넉하지 못함을 미흡(未洽), 아직 모름을 미지(未知), 아직 다하지 못함을 미진(未盡), 아직 내지 못함을 미납(未納), 그 동안이 오래되지 않고 가까움을 미구불원(未久不遠), 아직도 속된 습관을 버리지 못하였다는 미능면속(未能免俗), 모든 일에 밝아도 오직 한 부분만은 서투름을 미달일간(未達一間), 아직 듣지 못한 일을 미문지사(未聞之事), 그렇지 않은 바가 아님을 미상불연(未嘗不然), 아직 그렇게 되기 전을 미연지전(未然之前), 옳지 않다 할 것이 없음을 미위불가(未爲不可), 지금까지 아직 한 번도 있어 본 적이 없음을 미증유(未曾有), 누가 옳은지 모름을 미지숙시(未知孰是), 겨우 목숨만 붙어 있는 송장이라는 미랭시(未冷尸), 남편과 함께 죽어야 할 것을 아직 죽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란 뜻으로 과부가 스스로를 겸손하며 일컫는 말 미망인(未亡人) 등에 쓰인다.
▶️ 曾(일찍이 증)은 ❶상형문자로 曽(증)의 본자(本字)이다. 물을 담은 밑바닥 부분(部分)과 구멍이 뚫린 깔개와 김이 오르는 모양의 글자로 이루어지며 시루를 본떴고 빌어 겹치다, 또는 일찍이의 뜻으로 쓰인다. ❷상형문자로 曾자는 ‘일찍’이나 ‘이미’, ‘이전에’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曾자는 曰(가로 왈)자가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말씀’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다. 曾자는 구멍이 있는 조리 도구의 일종을 그린 것이기 때문이다. 曾자는 지금으로 따지면 떡이나 쌀 따위를 찔 데 쓰는 시루를 그린 것이다. 그래서 갑골문에서의 曾자는 찌다’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후에 曾자가 ‘일찍’이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면서 지금은 여기에 瓦(기와 와)자를 더한 甑(시루 증)자가 ‘시루’라는 뜻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曾(증)은 ①일찍 ②이미 ③이전에 ④거듭 ⑤이에 ⑥겹치다 ⑦더하다(=增) ⑧늘다 ⑨늘어나다 ⑩포개다 ⑪성(姓)의 하나,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증손자로 아들의 손자 또는 손자의 아들을 증손(曾孫), 지난날의 유람 또는 옛날 찾아간 일이 있음을 증유(曾遊), 거듭 깊이 생각함을 증사(曾思), 일찍이나 지난 때를 증왕(曾往), 일찍이 경험함을 증험(曾驗), 이미 세상을 떠난 증조부를 증조고(曾祖考), 이미 세상을 떠난 증조모를 증조비(曾祖妣), 매우 일찍을 조증(早曾), 고조와 증조라는 뜻으로 가까운 조상을 이르는 말을 고증(高曾), 손자와 증손을 손증(孫曾), 적손의 정실에서 난 아들을 적증손(嫡曾孫), 지금까지 아직 한 번도 있어 본 적이 없다는 말을 미증유(未曾有), 증삼이 사람을 죽였다는 뜻으로 거짓말도 되풀이 해 들으면 믿어버리게 된다는 말을 증삼살인(曾參殺人) 등에 쓰인다.
▶️ 有(있을 유)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달월(月; 초승달)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𠂇(우; 又의 변형)로 이루어졌다. ❷회의문자로 有자는 ‘있다’, ‘존재하다’, ‘가지고 있다’, ‘소유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有자는 又(또 우)자와 月(육달 월)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여기에 쓰인 月자는 肉(고기 육)자가 변형된 것이다. 有자의 금문을 보면 마치 손으로 고기를 쥐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내가 고기(肉)를 소유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有자는 값비싼 고기를 손에 쥔 모습으로 그려져 ‘소유하다’, ‘존재하다’라는 뜻을 표현한 글자이다. 그래서 有(유)는 (1)있는 것. 존재하는 것 (2)자기의 것으로 하는 것. 소유 (3)또의 뜻 (4)미(迷)로서의 존재. 십이 인연(十二因緣)의 하나 (5)존재(存在) (6)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있다 ②존재하다 ③가지다, 소지하다 ④독차지하다 ⑤많다, 넉넉하다 ⑥친하게 지내다 ⑦알다 ⑧소유(所有) ⑨자재(資財), 소유물(所有物) ⑩경역(境域: 경계 안의 지역) ⑪어조사 ⑫혹, 또 ⑬어떤 ⑭12인연(因緣)의 하나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있을 재(在), 있을 존(存)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망할 망(亡), 폐할 폐(廢), 꺼질 멸(滅), 패할 패(敗), 죽을 사(死), 죽일 살(殺), 없을 무(無), 빌 공(空), 빌 허(虛)이다. 용례로는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음을 유명(有名), 효력이나 효과가 있음을 유효(有效), 이익이 있음이나 이로움을 유리(有利), 소용이 됨이나 이용할 데가 있음을 유용(有用), 해가 있음을 유해(有害), 이롭거나 이익이 있음을 유익(有益), 세력이 있음을 유력(有力), 죄가 있음을 유죄(有罪), 재능이 있음을 유능(有能), 느끼는 바가 있음을 유감(有感), 관계가 있음을 유관(有關), 있음과 없음을 유무(有無), 여럿 중에 특히 두드러짐을 유표(有表), 간직하고 있음을 보유(保有), 가지고 있음을 소유(所有), 본디부터 있음을 고유(固有), 공동으로 소유함을 공유(共有), 준비가 있으면 근심이 없다라는 유비무환(有備無患), 지금까지 아직 한 번도 있어 본 적이 없음을 미증유(未曾有), 계란에도 뼈가 있다는 계란유골(鷄卵有骨), 웃음 속에 칼이 들어 있다는 소중유검(笑中有劍), 입은 있으나 말이 없다는 유구무언(有口無言)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