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레길 지킴이들
황 장 진
실레길 들머리엔 꺽다리 버드나무가 가지를 휘휘 내저으며 반긴다. 이 나무들은 아스피린의 원료가 된다. 이순신 장군께서 젊어서 시험을 볼 때, 말에서 떨어져 다리를 다치자 이 나무껍질을 벗겨서 동여매고 달려서 무사히 합격했다. 고려 태조 왕건께서도 총각시절 전라도 나주 어느 마을을 말을 타고 지날 때, 목이 마르던 차에 샘터를 보자 물을 청했더니, 어느 처녀가 바가지의 물위에 버들잎을 띄워주었다. 물을 급히 마시면 체할 수 있기 때문에 후후 불면서 먹도록 한 것이다. 이처녀의 기지에 반해 나중에 왕비를 삼게 되었다. 이왕비가 나중에는 신혜왕후가 되었다. 히포크라테스는 어릴 때 버들피리를 불며 놀았다고 한다. 초상이 나면 바깥 상주들은 마디가 있는 대나무 지팡이를 짚지만, 안 상주들은 부드러운 버드나무 지팡이를 짚는다. 비록 나약한 것처럼 휘늘어져 있지만 쓰임새는 이리도 많기도 하다.
오디를 따 먹으면, 뽕 뽕 뽕 방귀가 잘 나오는 뽕나무가 배를 내민다. 우리나라가 개발도상국시절, 누에 먹이로 양잠소득의 효자노릇을 톡톡히 했다.
꽃모양이 사람 얼굴을 닮은 쑥도 나도 그 시절 한 몫 했다고 고개가 빳빳하다. 봄이 오면 어른들은 거짓말쟁이가 된다. 쑥이 싹만 조금 내밀어도 외친다.
“쑤욱 나왔다!”
쑥은 단군신화에서도 나왔으니 우리 겨레와 오래도록 살아왔다. 그 종류가 30가지가 넘는단다. 옷에 달라붙기 잘하는 도깨비바늘과 환선동굴은 부러운 눈치다.
쑥부쟁이·구절초·개미 취·산국·감국, 이들 다섯 가지는 들국화다. 가을은 국화들 세상이라 노랑 하양 빨강 갖가지 꽃을 피워서 자태를 뽐낸다. 미국쑥부쟁이는 미군이 춘천 캠프페이지 화단에 심은 것이 날아가 중도를 거쳐 온 사방에 퍼졌다.
고양이가 배 아플 때 먹는다는 괭이풀이 노랗다. 열매가 쥐방울 같다 해서 쥐방울, 사향제비나비의 먹잇감이다.
지구촌식물 중 최고참, 은행이 으스댄다. 위용을 자랑하는 메타스퀘어도 같은 또래인가 보다. 은행은 잎이 넓적한 데도 침엽수다. 내가 심으면 손자를 떠받든다고 해서 공손수다. 심어서 20년이면 풍성한 열매를 주기 때문이다. 잎에 곤충이 범접을 못하고, 약제의 원로로 쓰인다. 은행은 옛 날엔 시집가는 딸한테 먹였다. 먼 길 가마타고 가자면 오래 참아야 하는 게 있기 때문이다.
조롱박이 귀엽다. 저녁에나 피는 박꽃에는 벌 나비가 못 날아든다. 벌처럼 작은 새 수정곤충 박각시가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옛 날 어머니들은 박꽃이 필 때 저녁준비를 했다고 한다.
가볍고 단단한 명아주는 지팡이 재료로 쓰였다.
감나무, 콩 심은 데는 콩이 달리지만, 감을 심은 데는 고엽이 달린다. 대를 잇자면 접을 붙여야만 된다.
대추나무는 꽃수에 따라 열매가 맺힌다. 제사상에 꼭 올리는 3과일, 대추 감 밤 가운데 상좌를 차지하는 대추는 씨가 단 하나이므로 1인자, 즉 왕이 되라는 뜻이 담겨 있다. 감 씨는 6개니 6조 판서가 생기라고 올린다. 밤송이는 떨어지면 통째로 땅속에 오래 있다 싹이 튼다. 후손들 먹거리가 되기 위해서다. 그래서 결혼식 폐백 드릴 때 새 색시 치마폭에 밤을 듬뿍 던져 주며 덕담을 한다. 밤송이에는 밤이 3개씩 들어있다. 영의정 좌우의정 3정성을 뜻한다.
씨가 여물면 열매가 소리가 난다고 해서 소리쟁이, 여름과 가을철에 초록색과 흰색 꽃술이 피는 바랭이, 대궁을 꺾으면 애기 똥처럼 노란진이 나오고, 꽃도 노란 애기 똥 풀이 살랑댄다.
습지나 물가에 사는 갈색 나는 대나무인 갈대, 이와 비슷한 억새, 잎이 참 억새다. 갈대와 비슷한 달도 있다. 갈대뿌리는 밑으로 뻗지만, 달은 옆으로 뻗으면서 뿌리가 중간 중간 달린다.
붉은 열매가 엄마 젖꼭지 같고 맛도 단 산딸기가 오뚝하다. 넉 장으로 된 꽃잎이 +자로 되어있어 십자나무 혹은 예수나무라고도 한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이 박혔을 때 십자가의 재료로 썼다고도 한다.
3잎은 행복, 4잎은 행운이란 꽃말을 가진 토끼풀이 싱싱하다.
가장 많은 보호수, 정자나무로 으뜸인 느티나무, 그 밑은 예부터 어린이들의 놀이터요 어른들의 쉼터로 사랑을 받아왔다.
꽃모양이 붉은 밥풀 같고, 생명력이 강하기에 아파트 조경수로 사랑을 받고 있는 박태기도 어울려 있다.
동백꽃으로 유명한 생강나무도 산 밑까지 내려 와 반긴다. 생강냄새가 나서 생강나무라 하고, 옛 날엔 잎으로 김치를 담그기도 했다.
익기 전엔 남자의 심벌, 익으면 여성의 그것 같은 바나나와 비슷한 으름이 손짓한다. 꽃이 피는 쇠뜨기는 약이 된단다. 밭에서 온갖 천덕꾸러기로 천대받던 쇠뜨기도 한 때는 보신제라면서 인기를 누렸다. 나물인 5색 잎, 파란 줄기, 쇠별꽃도 쇠자가 붙어 동족일까?
어딜 가나 무섭게 번져가는 칡, 보라색 꽃은 숙취해소에 최고란다. 뿌리는 갈근이라 하여 녹말이 많다. 넝쿨 속껍질은 청올치라 해서 노를 만들거나 베를 짰다.
졸참나무가 내려다보고 있다. 잎과 열매는 작아도, 키가 25m까지 크고 열매 맛이 좋다. 사위가 지게질 할 때 편하라고 장모의 사랑이 듬뿍 담긴 사위질빵, 시어머니가 장에 갈 때 많이 이고 가시라고 만들어주던 할미 멜빵, 줄기에 가시가 많이 난 며느리 밑씻개 등, 나무 와 풀에도 선조들의 생활상이 많이 담겨 있다.
강원도 회양에서 많이 자랐다고 해서 회양목, 매우 단단하기에 도장이나 호패를 만드는데 썼다. 조정에서 다른 용도에는 사용하지 못하게도 했단다. 석회암지대에서 많이 자란다. 광대싸리, 개암나무와 쌈 싸 먹는 청가시도 어울려 있다.
붉나무 열매를 따 문지르면 허옇게 가루가 생기는데, 맛을 보면 짠맛이 난다. 이 열매를 염부자라해서 소금이 귀할 때는 이를 대신 썼다고 한다. 잎으로는 두부를 만들기도 한다. 붉나무를 꼭 빼닮은 옻나무도 눈에 띈다.
오동나무도 실레마을 골짜기를 지키고 있다. 봉황은 오동나무가 아니면 집을 짓지 않고, 100년 만에 꽃 한 번 피고 죽는 대나무가 아니면 쓰지 않았다나. 쭉쭉 뻗은 잣나무 떼들, 벼슬한 소나무 무리들이 나그네를 손짓한다.
세속에 찌든 참 바보, 어이 아니 발길 멈추고 향긋한 향에 깊은 숨을 쉬지 않으리오. 이리도 울창한 수풀 속에 털썩 주저앉아 가는 세월 낚지 않으리오.
이 고장에 태를 묻은 김유정 소설가도 이들 초목조상들과 어울리면서 ‘산골나그네’ ‘소낙비’ ‘노다지’같은 주옥같은 작품들을 낳았으리라. ^*^
첫댓글 수필작가 이신지, 식물학자 이신지? 재미있는 해설에 감복입니다. 잘 읽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