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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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영상
요 5:30, 여러분이 신자임을 누가 증언합니까? 26-5-31
어떤 사람들은 아첨하는 말을 너무 잘해서 위 사람들의 사랑과 총애를 다 받습니다. 같은 동료로서 그런 사람들은 보면 정말 아니꼽고 치사하기 그지 없습니다. 남의 눈치나 보고 비위를 맞추는 이런 사람들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직장에서도 원리와 원칙을 고수하면서 맡은 일에 충직한 사람들은 너무나 고지식해서 도리어 위 사람들의 미움을 받기 쉽습니다. 사람을 바로 알아보는 사람들이라면 아첨하는 아첨꾼보다 충직한 직원을 더 신뢰할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존경과 명예를 중시하기 때문에 이런 충직한 사람보다는 아첨꾼을 더 기대고 신뢰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직장이 잘 될 리가 없는 것입니다.
직장에서도 일 잘하고 충직하며 바른 말을 하고 잘못된 것을 고쳐나가면서 불량률을 줄이려고 애쓰는 직원은 미움을 받아 결국 퇴사를 하고 다른 직장으로 가 버렸습니다. 그 때는 잘 몰랐는데, 이제는 그 일을 아첨꾼이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불량률이 많아지고 작업자들은 힘들다고, 아우성을 하지만 그것이 원래 그런 것이라면서 외면해 버리는 임원진을 볼 때면 안쓰럽고 한심하기까지 합니다. 잘못된 것을 바로 잡으려는 것을 불평불만으로 여기는 그런 사람들을 볼 때면 체념할 수 밖에 없는 자신이 더 싫어질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원칙주의자이십니다. 예수님의 원칙은 자기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신다는 원칙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신앙인들이 반드시 이런 예수님의 모습을 본 받아, 교회에서나 직장에서나 가정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 주기도문처럼 하늘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뤄진 것같이 이 땅에서도 이뤄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입니다.
첫째,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과 가르치신 일들은 모두 하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한 것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이시니까 예수님 자신이 하고 싶은 뜻과 계획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도록 예수님이 이 땅에 보내지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예수님은 자기 뜻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이 땅에 보내신 하늘 아버지의 뜻대로만 행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자기 뜻대로 무엇인가 하려 한다면 그 사람은 믿을 만한 사람이 될 수가 없습니다.
요 5:30,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뜻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뜻대로 하려 하므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심판하노니’(크리노), 판단하다, 비판하다, 판결내리다, 고정된 의견이나 목적에 관해 마음에서 결정되다. 검사하거나 자세히 조사하여 어떤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나 부정적으로나 비평적 견해를 형성한다. 그러므로 이 단어는 어떤 것을 결정하거나 판단하는 일과 관련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판단하거나 결정하는 일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에게는 자기의사결정권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보내신 이, 곧 하늘 아버지께 듣는 대로 결정하고, 그래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결정하셔서 행하신 일이나 말이 다 의롭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인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점은 자기 뜻대로 무엇인가를 결정하고 판단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인들은 그를 부르신 아버지의 뜻대로 결정하고 행해야만 그것이 의롭다, 곧 믿는 증거가 된다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느냐? 예수님은 자기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결정하고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인들도 모든 결정은 내가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결정하셔서 믿는 자라는 증거가 되어야만 합니다. 내 뜻대로 결정하는 사람은 믿는 자로 인정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대로 결정하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모든 죄인의 구주가 되셨습니다.
더 이상 직원들은 불량률 증가로 아첨꾼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둘째. 신자라는 것을 누가 증언합니까?
예수님은 스스로 자기 자신에 대해서 증언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신자들은 어떤 일을 할 때마다 그가 말하는 것이나 행하는 것이 그래서 바로 자신이 믿을만한 사람이라고 떠벌리면서 믿을만한 자로 신뢰를 쌓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믿어봐!’. 도대체 그 근거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심지어 세례자 요한과 같은 증언조차도 필요없다고 단언하십니다.
사람들은 누군가로부터 인정을 받으려고 추천서나 공인인증서라든지 인감증명서라든지 증명서를 요구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사람의 증언이 필요치 않으셨습니다.
요 5:31–34, 31 내가 만일 나를 위하여 증언하면 내 증언은 참되지 아니하되 32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이가 따로 있으니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그 증언이 참인 줄 아노라 33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을 보내매 요한이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였느니라 34 그러나 나는 사람에게서 증언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로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어느 날 대통령이 회사에 전화를 해서, 아 이 사람은 내가 추천하는 사람이니 회사의 이사로 받아주세요라고 한다면 물론 대통령에게 그런 인사권이 있으니까, 회사는 그 사람을 그냥 이사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또 회사에 입사를 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에 대한 추천서와 같은 자기소개서를 예쁘고 과장되게 포장해서 서류를 준비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기 자신에 대한 증언 따위, 또는 세례자 요한과 같은 당대의 거물의 증언조차도 필요치 않았습니다. 그런 것으로 믿을 만한 분으로 인정받기를 거부하셨습니다. 적어도 신자라면 누가 인정을 해야 해 줘야 합니까? 성도들입니까? 아니면 자기 자신입니까? 아니면 정말 당대의 거물과 같은 위대한 어떤 인물입니까?
사실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을 증거했습니다.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불과 성령으로 세례를 줄 것이다.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할 수가 없다’(요 1:15; 마 3:11). 요한은 예수님을 증거하는 최고의 증인이였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한 세례 요한의 증언으로 환호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의 증언조차도 필요치 않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34절의 요점입니다. ‘다만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로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구원은 사람들의 증언 따위가 필요치 않을 때 이뤄지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이 그런 삶을 사셨고, 그를 믿음으로 구원받게 된 신자들도 그렇습니다.
셋째, 신자를 증언하는 이가 따로 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여러분이 신자인 것을 증언합니까? 예수님은 누구에게 증언을 받았습니까? 예수님을 증언하시는 이가 따로 있다고 했는데, 바로 3가지입니다. 첫째는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주사 이루게 하신 역사입니다. 바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도록 사명을 받았습니다. 여러분과 저의 죗값을 지불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예수 십자가는 예수님이 구원을 받게 할 구주임을 증거합니다.
요 5:36, 내게는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있으니 아버지께서 내게 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 곧 내가 하는 그 역사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것이요. * 역사(에르곤), 행위, 행실, 일, 행동, 의무
둘째는 예수님을 보내신 하늘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증언하십니다. 예수님이 사명을 감당할 때마다 하늘 아버지께서 친히 증거하십니다.
요 5:37–38, 37 또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언하셨느니라 너희는 아무 때에도 그 음성을 듣지 못하였고 그 형상을 보지 못하였으며 38 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가 보내신 이를 믿지 아니함이라.
셋째는 하나님의 말씀이 예수님을 증언합니다. 곧 성경이 예수님이 구주임을 증언합니다. 그런데도 불행하게도 성경에서 영생을 얻게 됨을 알면서 그 성경을 연구하면서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연구하는 이들이 예수님을 증언하는 성경을 몰랐습니다.
요 5:39–40, 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여러분이 신자인 것을 누가 증언합니까? 역사(일), 하나님, 성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