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타워 종교를 포함하여 모든 기독교파들은 기도 자체를 예배(숭배)로 공언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정확히 말한다면 예배의 형식이지 예배 자체는 아니다. 그것은 곡식으로 말하자면 알맹이를 보호하는 껍질이요, 음식으로 말하자면 그릇인 것이다. 기도, 찬송, 설교와 같은 것은 모두 예배의 형식들이다. 내용은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그래서 그것을 산 제물이라 하는 것이다. 만일 기도 그 자체가 숭배라면, 기도만으로도 가납되어야 하고, 인간의 측면에서는 구원에 이르러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따라서 기도나 찬송 또는 모임 등은 그 자체로서 숭배나 예배가 아니라, 예배를 드리는 형식이나 절차에 해당되는 것이다. 곡식이나 과일이 익는 과정을 보면, 먼저 껍질이 모양을 만들고, 점차로 그 껍질 안에 내용물이 차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껍질 없이는 내용물이 차는 것이 불가능하며, 또 껍질만 있는 쭉정이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이다. 또 비유에서 처럼 밀과 같은 유익한 곡식이 있는가 하면 가라지 같은 아무 쓸 데 없는 식물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이 알차고 하느님께 가납될 만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진실한 기도와 더불어 그 기도의 응답에 합당한 노력과 삶의 방식이 더욱 중요한 것이다. 곡식이 햇빛, 물, 바람과 같은 자연의 요소에 의해서 익어 가듯이 우리의 기도 역시 자연의 질서와 법칙 그리고 인간의 관계들에 의해서 이루어지므로 우리는 그러한 질서에 맞는 노력을 병행할 때만 기도는 이루어질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박해 받는 것을 하느님께서 초월적 방식으로 면제해 주지 않듯이, 우리 기도 역시 초월적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하느님은 우리의 세계에서 초월해 계시는 분이 아니라, 내재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이 세계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생각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상적인 사회, 곧 하느님의 왕국이 임하기를 바란다면 그 왕국이 임하는 것은 아마겟돈과 같은 초월적 방식을 기대해서는 안 되며, 지극히 평범하게 보이는 농부의 방식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기도해서 단박에 로또 복권이 당첨되기를 기대하지 말고, 그리스도인의 작은 공동체를 천국과 같은 사회로 먼저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영원히 하나님의 나라는 임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어느 교파가 조금 더 나으냐 하는 50보, 100보의 차이를 보일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