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다 올려도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상암 경기장에 대해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 국내 축구팬들이
그 이면의 모습도 알아야 될것 같아서 올려봅니다.
끝나지 않은 '상암 월드컵'의 비극 2002-07-03 10:24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080193
1997년 3월 6일. 지금으로부터 4년 전 정부는 현재 주경기장이 세워진 상암동 일대를 택지개발 구역으로 지정 고시했다. 98년 10월 월드컵 주경기장 입지가 결정되고 착수공사가 시작됐다.
99년 4월 18일. 빨래를 널면 몇 시간도 안돼 까맣게 변할 정도로 환경이 안 좋다는 상암동 주민들의 살기 위한 투쟁이 시작됐다. 철거민 대책위원회(이하 철대위)를 결성, 개발지구 내 세입자들에게 가수용시설(임시거처)과 임대주택 보장을 요구하며 상암 주민들은 정부와의 싸움에 들어갔다.
철대위는 서울시청과의 대화를 원했지만 시청은 딱 잘라 "안된다"는 통보뿐이었다. '가수용시설 부지가 없고, 화재의 위험이 많아 지어줄 수 없다'는 이유이다. 전철연에서 제공한 정보에 따르면 99년 3차례 그리고 2000년에는 철거용역 500여명과 전투경찰 1000여명이 투입돼 마지막으로 싹쓸이 철거됐다.
(중략)
그리고 그들의 손에 쥐어진 건 단돈 몇 십만원의 이주대책비. 이동수씨는 그 돈을 거부하고 작년 12월 31일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시청 앞 1인 시위에 들어갔다. 그리고 시청 앞 돌바닥의 냉기를 피하려고 침낭에 비닐을 씌워 잠자기를 계속했다.
4월 26일 밤. 그의 비닐과 침낭을 난도질한 시청 직원의 행위에 항의하던 이씨는 15명의 동료들과 함께 남대문 경찰서에 연행됐다. 나머지 동료들은 모두 풀려났지만 그는 '특수공무집행 방해 및 폭력'등의 혐의로 서울 구치소에 수감됐다.
"대~한민국" 함성에 묻힌 한 철거민의 삶 2006년 6월 12일 (월) 13:43
http://news.media.daum.net/society/affair/200606/12/ohmynews/v13010834.html
상암동 철거민 출신인 김상민(가명·36)씨. 김씨는 지난 99년 자신이 살던 곳이 월드컵구장 건설을 위해 철거된 이후 7년 여를 떠돌다 최근 여수에 정착했다. 7년 가까이 벌여 온 철거투쟁을 최근에서야 접고 새 삶을 찾기 위해서였다.
(중략)
물론 김씨도 월드컵이 기다려진다. 하지만 우리나라 경기는 보지 않을 작정이다. 2002년 월드컵 때는 교도소에서 신문을 통해 월드컵 소식을 접했다. 시청 앞 광장에 모이는 수많은 인파들을 보면서 더 가슴이 아팠다. 3년 넘게 그곳에서 침낭에 의지해 1인 시위를 벌였지만 그에게 관심을 보인 이들은 많지 않았다.
김씨는 7년에 가까운 철거투쟁 기간 동안 4번이나 감옥을 드나들었다. 교도소에서 보낸 시간만도 4년이 넘는다. 그리고 월드컵이 끝나고 나서도 한참 뒤인 지난해 5월 마지막으로 교도소를 나왔다.
"2002년 월드컵이 끝나고 난 뒤 2번째 출소를 했을 때였죠. 다시 시청앞 광장에서 1인 시위를 이어 갔어요. 당시 이명박씨가 막 서울시장에 당선된 직후였을 거예요. 어쩜 그리 시청앞 행사가 많던 지. 일주일이 멀다하고 무대 꾸미고 이명박 시장이 나와서 연설하고. 그토록 시장과의 면담을 요구했지만 한 번도 들어주지 않은 그네들이었죠. 한쪽 구석에 처박혀 그 모습을 보면서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 됐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죠."
(중략)
김씨는 지난해 말 이후 상암동 철거투쟁을 사실상 접었다. 그리고 올해 3월 김씨는 서울시청을 다시 찾았다. 지난 2002년 초 시가 김씨에게 제시한 보상안을 지금이라도 수용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당시 시는 김씨에게 5년 만기 임대아파트를 보상안으로 제시했었다. 그러나 시는 "다 지난 일"이라는 답변만을 김씨에게 내놓았다. 월드컵도 끝나고 더 이상 김씨가 거추장스럽지 않은 마당에 김씨의 요구를 들어줄 리 만무했던 것.
김씨는 결국 그 길로 서울 생활을 접고 지방으로 내려갔다. 20대 후반부터 30대 중반까지의 시간을 고스란히 철거투쟁에 바치고, 남은 건 맨몸뚱이 하나였다.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지금 김씨에게는 '먹고 사는' 게 가장 중요한 문제로 남았다. 그러다보니 여수까지 내려왔다. 여수에는 공단도 많으니 무언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겠나 싶어서 였다.
첫댓글 철거민들의 애환은 상암구장뿐만이 아니죠... 도시에서 뭐 대대적으로 세운다, 개발한다고 하면 반드시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생존을 건 문제인데 곳곳에서 철거민들이 외면당하고 있습니다.
홀리데이에서 주인공이 겪었던것 같은 일이 최근에도 일어났었다니....... 참 비극적이네요
아름다운줄만 알았던 상암에 이런 아픈 사연도 있었네요.
그런곳이 뭐 한 두곳도 아니고..
국익이 우선되는 나라 ........우리의 현주소... 걱정된다 명박이는 얼마나 까부수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