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즈가 문제였다
나는 청담역 지하도를 사랑한다. 종종 나의 헬스장이 되어 주며 날씨의 조건을
뛰어넘게 하는 곳이다. 풀잎 한 장 자랄 수 없는 도시의 사막이라 무심히 걸으며
명상하기 좋은 곳이다.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서너번 왕복하며 걷다가 보면 젊은 날의
나를 새롭게 이해하기도 하고 힘든 생각을 풀어 없애기도 한다.
먼 곳의 천정을 바라보며 허리를 곧게 펴고 걷는데
집중하기에 딱 좋은 곳이다. 사람이 적어서 인기척을 느끼며 걷는 것도 무방하다.
종종 성당 미사 전후에 교우들과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사교장도 겸한다.
날씨가 좋을 때는 운동하러 굳이 지하도를 찾을 이유가 없다.
하늘의 구름도 보아야 하고 잘 익어가는 대봉감을 보면서
우주가 그 곳에 들어가 있지 않느냐고 물으며 걸어야 하니
걷는데 속도가 나지 않는다. 꽃이 피거나 단풍이 드는 철에도 산만해진다.
수영을 끊은 지 오래 되어서 수영장도 노굿이고
사람들이 좁은 공간에 모여 있는 헬스장도 나는 답답하다.
하지만 아무리 무심해도 자주 이용하다가 보면 그 장소에 대한 감각이
섬세해지게 마련이다. 묘하게도 나는 스치고 지나가는 모든 것을 스캔
받듯이 기억한다. 내가 조금 더 관심있게 보고 지나가는 것도 저절로 생긴다.
그래서 가게마다 진열을 잘 해야 지나가는 고객 확보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해에도 그 곳에서 임자를 만나지 못한 겨울 상품 중 흡족한 옷을
저렴하게 구입하여 옷의 주인이 된 적이 있다. 그 옷을 입고 외출을
할 때면 그 가게 주인에게 웃어주고 지나간다. 아주 흡족하여 재미를
보았기에 올해도 혹시나 그런 것이 걸리지 않을까 싶어서 종종 스치면서
훑어보았다. 겨울 내내 아주 쓸 만한 물건이 주인을 못 만나고
유리창 안에서 나를 부르는 거다, 동종까라의 감응이라 해두자.
29살의 내가 쇼인도 안에서 보인다.
같은 물건도 자주 보면 정이 든다. 나로 보이는 캐시미어니트코트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 어느 싯점부터 나는 퇴행로를 걷고 있다.
색상이나 디자인이 좋다. 그렇지. 나도 뽀얀 피부에 44킬로그램의 가냘픈 여자였지.
캐시미어 80프로에 울이 20프로니 따뜻함이 보장된다. 나도 그랬어. 양희은이
데뷔무대도 만들어 주고 직업청소년아이들 야학도 가르쳤어.
소매 부위에 매력 포인트로 밍크 장식도 되어있다. 나도 그 시절에 월급이 짱짱한
회사에서 수석디자이너였다구.
이래 가며 걸을 때는 겅중겅중 내가 느껴지지도 않게 걷는다.
"도대체 이 코트는 왜 인연을 만나지 못한거야 정말 ."
어느새 외면하기에는 이상스러운 연민이 생겨버렸다.
올 들어 가장 춥다는 날, 나는 눈만 내놓고 얼굴을 온통 다 가린 니트
모자를 쓰고 걸었다. 그 가게 주인과 눈이 마주쳤으나 그녀는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나는 살짝 모자를 들추며 인사를 했다. 오가며 두어번이나 눈을 마주치고
지나치다가 그 여인을 생각했다. 하루 종일 음습하고 추운데 사는 사람이
없으니 얼마나 힘들까. 올해 마지막으로 운동을 하는 날이 될 것 같으니
그녀에게 케익이라도 한 상자 사들고 들어갈까 생각하다가 사 주는
고객이 되어주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다 싶어서 문을 닫을 시간 즈음
가게로 들어갔다.
추워서 손님이 없으니 뭐든 고르면 싸게 준다고 고르라고 했다.
이런 날은 사람들이 안 샀는데 그녀가 못 판 것이 되고 만다.
그녀는 입금할 돈이 없어서 애가 탄다.
"혹시 이 가게에서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고 남아있는 물건은 없나요?"
내가 가게로 들어간 것은 물건이 마땅치 않으면 소품이라도
하나 사주고 나올 셈이었다. 이 말 저 말을 하다가 연민을
두었던 캐시미어니트코트에 대해 물었다.
“아니 성분도 좋고 디자인도 괜찮은데 왜 이 코트는 주인을 못만났을까요.”
“이상해요. 55사이즈 되는 분들만 입어보고 크다고 아쉬워 해요.”
사이즈......... 그랬네. 내가 골드미스로 남았던 것도 나의 문제가 아니라
부모가 요구하는 사이즈가 너무나 컸던 거였네. 하지만 나는 조촐하게
내게 맞는 사이즈를 골라 입었다고 생각하며 결혼을 하였으나, 신랑된 사람의
꿈이 아버지가 바라는 사이즈라 하는 수 없이 신랑의 사이즈를 먼저 키우고
내 몸을 옷에 맞추었다. 나의 젊은 날을 ‘사이즈’란 단어로 흔쾌히
이해해주면서 한 해의 가장 추운 날 그 코트의 주인이 되었다.
내 남편의 아내가 된 것처럼.
모든 인연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다. 만나는 바로 그 때 융합할 수 있는
기운끼리 서로 부르고 다가가서 만나지는 것이다. 만난 그 때가 적기인 것이다.
때로는 그 적기를 아니라고 부정하다가 돌아돌아 어느 날 인연짓는다.
이미 인연지을 씨앗이 마음에 떨어졌으나 마음이 순을 틔워 구체적인
선택으로 드러날 때까지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싹이 트도록 굳은 사고와
정서를 무르게 하는데 자기투사로 인한 연민이나 인간애가 작용하기도 한다.
‘아 인연의 오묘함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