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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효림과 나 사이엔 유리벽이 있다. 그녀는 윈도우
안에 디스플레이 된 인형이고 난 그 예쁜 인형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다.
초등학교 다닐 적 나는 인형을 모으는 취미가 있었다. 수집의 목적은
인형을 가지고 놀기 위해서 라기 보단 그냥 장식용이었다. 키 낮은 책장
위엔 내가 사다 모은 인형들로 가득했다. 관절이 접히는 옷 갈아입히는
인형에서부터 털이 부드러운 곰 인형, 엉덩이가 큰 돼지 인형, 심지어
7살 때 아빠가 사다 주셨다는 88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 인형까지. 그냥
인형이라면 뭐든 다 좋았다.
그래서 유일하게 목돈이 생기는 설날이 늘 기다려졌고 새 배 돈은
언제나 인형을 사는데 쓰였다. 만 원짜리 몇 장을 꼬깃하게 접어 쥐고
인형가게 앞으로 달려가 윈도우 안에 진열된 인형들을 바라보자면 가슴이
그렇게 설렐 수가 없었다. 그나마 그땐 설렘이라도 있었지. 지금은 어떤
감흥도 없다. 지금 내 눈 앞에 앉은 말하는 인형은 지나치게 예쁘긴 하지만
바라볼수록 우울해 질뿐이었다.
“왜 보자고 하셨죠?”
더 이상 기다리기가 지루했는지 그녀가 내게 물었다. 눈치가 없는 걸까.
모르는 척 하는 걸까. 그녀는 동그랗게 뜬 눈으로 정말 궁금해 죽겠단
표정을 지어보였다.
“시간도 늦었고 하니 서론은 생략하고 본론부터 말할게요. 시현 씨랑
무슨 관계예요?”
“음, 그쪽이 생각하시는 대로예요.”
그녀는 아리송한 답변을 던졌다. 듣고 보니 상당히 시건방지고 무례하기
짝이 없단 생각이 들었다. 오죽 못났으면 다른 여자한테 애인을 뺏겼을까
라고 속으로 날 비웃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의 두 뺨은
잘 달구어진 다리미처럼 열이 올라 있었다.
“둘이 사귄다는 말인가요?”
“그렇다고 볼 수 도 있겠죠.”
“뭐라고요? 지금 내가 누군지는 알고 하는 소리예요?!”
“그럼요, 시현 씨 애인이었잖아요.”
효림이란 여자는 당돌하기 그지없었다.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앉은 그녀의
얼굴에선 당황스러움이라곤 전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오히려 당혹스러운
것은 나였다. 본래 이런 대면에선 조강지처 격이었던 내가 큰 소리 치며
기가 살아야 하는 것인데 어째 우리 두 사람은 입장이 뒤바뀐 듯 했다.
게다가 ‘시현 씨 애인이죠.’가 아니라‘이었잖아요.’라니 이게 웬 과거형
이란 말인가. 기가 막혔다. 도대체 이 두 도둑고양이들이 나 몰래 무슨
작당이라도 꾸미고 있었던 것일까.
“만난 지는 얼마나 됐어요?”
“한 달 정도 됐어요.”
“누가 먼저 사귀자고 했죠?”
“제가요.”
“그쪽이 사귀자고 하니까 시현 씨가 그러자고 하던가요?”
“그런 셈이죠. 지금껏 만나고 있으니까요.”
대답을 들으면 들을수록 더욱 기가 찰 노릇이었다. 한 치의 흔들림 없이
또박또박 대답하는 그녀는 정말이지 뻔뻔스러워 보였다. 게다가 한 술 더
떠서 “궁금한 것 있으면 얼마든지 물어보세요.” 라고 말했다. 무릎 위에
놓인 두 손이 부르르 떨려왔다. 맘 같아선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테이블
위에 놓인 주스 잔을 들어 그녀의 면상에다 쏟아 붓고만 싶었다. 하지만
꾹 참았다.
“송효림 씨 나이도 어린 것 같은데 정말 뻔뻔하네요.”
“그게 나이랑 무슨 상관인가요?”
“이것 봐요. 정말 말귀를 못 알아듣네. 시현 씨가 그쪽을 보고 잠시 맘이
흔들렸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아직 나랑 시현 씨는 교제를 하는 중이고,
그쪽이 끼어든 입장이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뻔뻔스럽게 나오면 안 되죠.”
“왜요? 저는 시현 오빠를 좋아하면 안 되나요? 골키퍼 있다고 골 안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댁이 시현 씨랑 결혼한 사이도 아닌데. 연애는
자유로운 거잖아요. 연애하다가 더 좋은 사람이 생기면 헤어질 수도 있는
거고. 그리고 요즘엔 결혼한 사람들도 애인은 따로 있다고 들었어요.”
그녀에게 보기 좋게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다. 아무리 연인들
사이에 양다리가 난무하고 유부녀, 유부남들이 애인을 만들어 즐기는 그런
시대라지만 나는 아직 그런 비 인륜적인 사람들 틈에 끼어 그들의 희생양이
되고픈 맘은 추호도 없었다.
“그래서 시현 씨랑 앞으로도 계속 만날 건가요?”
“물론요. 오빠도 절 좋아하니까요. 서로가 서로를 원하는데 당연하잖아요.”
“당연하긴 뭐가 당연해? 내가 시현 오빠를 너 따위한테 뺏길 것 같아?!”
화가 나서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다. 그런데 바로 그때 카페 안을
두리번거리던 시현과 눈이 딱 마주쳤다. 도대체 그는 이곳에 왜 나타난 것일까.
그리고 나와 효림이 이곳에 있다는 사실은 어떻게 알아낸 것일까. 설마
하며 앞에 앉은 효림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그녀는 나의 구린내 나는
표정을 확인하고선 자리에서 일어더니 “오빠.”하며 시현을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역시 그랬구나. 요 앙큼한 도둑고양이년의 연락을 받고 나온 거였어.
그리고 언제 봤다고 오빠야? 이런 뒤질 랜드.’
시현이 천천히 테이블로 다가왔다. 역시 그는 나와 눈을 마주치질 못하고
뭔가 안절부절 하는 눈치였다.
“제가 이쪽으로 오라고 전화했어요. 어차피 우리 세 사람 한번은 만나야
될 것 같아서요.”
효림은 여전히 과잉 친절한 멘트로 나의 신경을 긁어대고 있었다. 그렇지만
내 관심은 곧 시현에게로 쏠렸다. 그녀의 나불거림 보다는 그의 입에서 직접
전해 듣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혜령아…….”
시현은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선 채로 내 이름을 한 번 부르곤 난처한 듯
시선을 내리 깔았다. 뭔가 변명이라도 그럴싸하게 해 주었으면 하고 바랐다.
그런데 아무 말도 못하고 있다는 것은 눈앞의 밉살스런 인형과의 관계를
긍정한다는 소리였다. 원망스런 맘에 울컥하며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그런데 분위기 파악 못하는 친절한 효림 씨는 부스럭 거리며 가방 속에서
뭔가를 꺼내었다.
“참, 오빠. 어제 모텔 방에 이거 떨어져 있던데. 오빠 거 맞죠?”
모텔? 순간 난 내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동시에 나와 시현은 효림의 손에
들린 손수건으로 시선이 쏠렸다. 그녀의 손에 쥐어진 체크무늬 손수건.
그것은 내가 시현에게 처음으로 건네준 선물이었다. 손수건은 눈물을
뜻하니 애인에게 선물하는 것이 아니라며 보영이 급구 말렸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난 땀이 많은 시현에게 손수건이 제격이라며 그에게 덜컥
선물했었다.
우리의 추억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낡은 손수건 한 장이 모텔 방에서
발견되어졌다는 사실은 실로 충격이었다. 그것도 시현과 내가 아닌,
시현과 효림이 함께 묵었던 방에서.
이야기를 더 들어볼 것도 없었다. 어젯밤 그의 휴대폰이 꺼져 있던 시각.
그와 효림은 모텔에서 은밀하게 사랑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었다. 더 이상
무슨 증거가 필요하고,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더 이상 그곳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두 사람. 그러고 보니 잘 어울리네. 잘 해 봐.”
급히 출입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혜령아!”하고 나를 부르는 시현의
다급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온다. 그러나 곧 한 귀로 흘려버리고 카페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차가운 밤공기를 뚫고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
나간다. 화가 났을 때 나는 무척이나 걸음이 빨라진다. 그렇지만 언제나
시현은 날 따라잡았었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느새 뒤쫓아 나온
그가 활시위라도 당기듯 나의 팔을 힘차게 잡아당겼다.
“잠깐만 기다려.”
“왜? 할 말이 더 남았어?”
“오해야.”
“오해? 뭐가 오해란 거야?”
“모텔 방.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야. 아무 일도 없었어. 난 그냥
술에 취한 효림 씨를 모텔 방에 데려다 준 것 뿐이야. 그게 다야.”
“차라리 그냥 손만 잡고 잤다고 하는 게 어때?”
그의 터무니없는 변명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손을 뿌리치고서 다시 걸음을
걸으려 하자 그는 한 번 더 내 팔을 잡아당겼다.
“너 진짜 내 말 못 믿어?”
“응, 못 믿겠어. 나한테는 할아버지께서 집에 오셔서 일찍 들어가 봐야 한
다고 거짓말 둘러대고 저 도둑고양이 같은 계집애 만났잖아. 그런 오빠를
어떻게 믿으란 말이야?!”
“거짓말 한 건 미안해. 그렇지만 효림 씨랑 나는 정말 아무 사이도 아니야.”
“그럼 아무 사이도 아니라면서 나한테 숨긴 이유가 뭐야?”
“그건 효림 씨가 자꾸 나한테 이것저것 부탁을 해서. 얘기 했잖아.
부장님이 이번 신상품 홍보 기획안을 효림 씨랑 같이 준비하라고 하셔서
같이 하고 있다고.”
“그런데 기획안 하고 모텔하곤 무슨 상관이야? 왜 저 여우같은 계집애가
오빠보고 모텔에도 함께 가 달라고 부탁했어? 그럼 결혼하자고 부탁하면
결혼도 하겠네?”
“야, 정 혜령! 너 말을 그렇게 밖에 못해? 내가 아니라잖아. 왜 내 말을
못 믿어?”
“그래, 못 믿어. 더 이상은 못 믿겠어. ……그러니까 우리 그만 끝내.”
시현과 난 말없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시현의 두 눈엔 원망스러운
빛이 역력했다. 놀라움에 벌어졌던 입술이 다시 다물어질 때쯤 그의 눈빛은
단호함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래, 좋아. 헤어져. 서로를 못 믿는데 사랑은 무슨 사랑이냐. 나도
너 툭하면 헤어지잔 소리 하는 거 이젠 듣기에 정말 질린다. 잘 가라.”
그는 나를 세워둔 채 횅하니 뒤돌아섰다. 헤어지자는 말은 분명 내가 먼저
내뱉었는데 어째 내 가슴이 더 찢어지는 걸까. 믿기지 않았다. 정말로
그의 입에서 헤어지자란 말이 나올 줄은. 난 그저 응석처럼 받아주길
바랬는데 이번엔 정말 아닌가 보다. 어느덧 송효림이란 낯선 여자가
나의 빈자릴 채워줄 수 있을 만큼 두 사람 정말 사랑하게 된 걸까.
멀어져 가는 그의 뒷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가 한걸음씩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내 머릿속에선 그와 내가 함께 했던 5년의 기억들이 조금씩
재로 변해가는 것 같다. 기억을 잃어버린 다는 것이 이런 느낌일까.
가슴이 아파서 숨을 쉬기가 힘들다. 뺨 위로 눈물 한 자락이 소낙비처럼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소파 위에 올라앉은 난 쿠션을 가슴에 품고 탁자위에 놓인 잡지책 표지를
뚫어져라 처다 보고 있었다. 그 표지에는 패션 리더라 일컬어지는 김민희가
깡마른 몸에 착 달라붙는 니트 티를 입고서 수줍은 척 웃고 있었다.
“저 봐라, 저 봐. 눈에 힘 좀 풀어. 너 얘한테 뭔 감정 있냐?”
손가락으로 김 민희 사진을 가리키는 보영. 물론 그런 뜻이 아니란 걸
그녀도 잘 알고 있다. 내가 생판 모르는 여자 연예인에게 무슨 감정이
있겠는가.
주말이면 언제나 시현과 함께 지내는 것이 당연한 습관처럼 몸에 배어
있었다. 그런데 5년 동안 한결같던 그 습관이 사라지자 속옷을 안 입은
것처럼 몸 속 어딘가가 허전하다. 사랑이 떠났다는 슬픔보다 홀로 남겨졌다는
서글픔이 더욱 큰 고통처럼 느껴졌다. 둘이 아닌 하나. 혼자서 뭔가를
해야 한다는 것이 낯설고 두렵다.
“우리 날씨도 좋은데 영화나 보러가자.”
내 곁으로 다가와 소파에 털썩 주저앉은 보영은 어떻게든 내 기분을 업 시켜
주고 싶은 모양이었다. 휴일 낮 처량하게 쿠션이나 끼고 멍하니 앉아있는
꼬락서니는 내가 생각해도 안쓰럽긴 했다.
“규범 씨는 오늘 안 만나?”
“응, 오늘은 내가 너랑 놀아주려고 특별히 데이트도 거절했어. 그러니까
빨랑 준비해.”
보영의 손에 이끌려 나온 휴일의 한 낮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노란색,
분홍색. 사람들이 차려입은 봄 옷 빛깔이 푸르른 나무들과 잘 어우러졌다.
그랬다. 나랑 시현이 헤어졌다고 세상이 끝장나는 건 아니었다. 세상은
보란 듯 내게 말했다. 내겐 열병과 같은 아픔이지만 이 드넓은 세상에선
남녀가 사랑하다 헤어지는 일 따윈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그 보다 더
아름답고 소중한 일들이 많다고.
‘그래, 잊자. 뒤돌아보지 말자. 세상에 반은 남자야. 시현 씨 보다
더 멋진 남자가 세상에 널렸어. 그렇지만…… 시현 오빠 만큼 날 사랑해
주었던 남자가 또다시 나타날까.’
헤어지길 잘했다 싶었다가도 그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이 솟구칠 땐
몸서리치도록 후회스러웠다. 땅이 꺼져라 한 숨을 내어 쉬곤 고갤
떨어뜨렸다. 그 때 보영이 횡단보도 앞 신호등에 초록 불을 가리키며
내 팔을 잡아끌었다.
“얼른 와. 너 자꾸 넋 놓고 있을래? 정신 좀 차려.”
“내가 뭘. 난 괜찮아.”
“퍽도 괜찮다. 어제는 자전거에 치여서 들어오더니. 어이구. 그렇게 못
잊겠으면 다시 시현 씨에게 가서 매달리던가.”
“매달리긴 뭘 매달려. 이미 끝났는데.”
“저 놈의 몹쓸 자존심 하곤.”
혀를 끌끌 차던 보영은 내 팔을 더욱 세게 잡아 당겼다.
“아야, 아파.”
나의 비명소리에도 아랑곳없이 보영은 내 팔을 단단히 감아쥐고 정류소에
정차된 버스를 향해 돌진했다. 그 후로도 계속 보영은 마치 내게 엄마처럼
굴었다. 아니, 내가 어린애처럼 군건가?
영화가 끝나고 인파속에 떠밀려 밖으로 나왔다. 보영과 난 영화관 안에서
사들고 나온 아이스크림콘을 손에 들고 있다. 혀를 날름거리며 아이처럼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보영에 반해 난 한 입 베어 물었다가 어금니가
시려서 인상만 찌푸리고 있다.
“영화가 좀 생각보다 별로였지? 역시 한국영화를 볼걸 그랬어. 요즘
헐리웃 영화들은 돈만 퍼부어서 그래픽만 짱짱하고 스토리가 없어.”
토요일 오후라 그런지 극장 앞엔 대부분이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이다.
아니, 유독 다정한 연인들의 모습만 눈에 뜨인다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하겠다.
예전엔 대수롭지 않게 보아오던 장면들이었는데 이젠 그들이 너무 부럽고
샘이 났다.
“우리 저쪽 벤치에 가서 좀 앉자.”
보영은 또다시 내 팔을 잡아 당겼다. 그러고 보니 오늘 나의 몸은 보영에
의해 조종당하는 느낌이다. 조종사가 조금 거친 면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믿을 만하긴 하다.
극장 앞에 꾸며진 작은 광장엔 이미 여러 쌍의 연인들이 자릴 차지하고
있었다. 보영과 난 그들 사이를 헤집고 들어가 엉덩이를 붙였다. 여전히
아이스크림을 날름거리고 있는 보영은 줄지 않는 내 아이스크림을 바라보며
말했다.
“안 먹어?”
“응, 이가 시려서 못 먹겠어. 그냥 버려야겠다.”
들고 있어봤자 녹아서 손등으로 흘러내릴 뿐이었다. 난 두리번거리며
휴지통을 찾았다. 마침 구석진 곳에 놓인 휴지통을 발견하고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런데 무심코 눈을 들어 바라본 곳엔 송효림이 서있었다.
긴 생머리를 찰랑거리며 주위 남자들의 시선을 즐기기라도 하는 냥
야릇한 미소를 머금은 채 서있는 여우같은 계집애. 그러나 내 눈은
송효림 따위에겐 관심이 없었다.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를 시현을 찾기
위해 내 눈동자는 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그를 발견한 순간,
호흡이 멈춰졌다.
어딘가에서 나타난 시현이 송효림의 곁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잠시 후
효림은 시현을 발견하곤 달려가 그의 목에 팔을 두르고 입술에 가벼운
입맞춤을 했다. 순간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현기증이 느껴졌다.
아무 사이도 아니라더니. 그들은 다른 연인들과 별 반 다를 게 없어 보였다.
“쟤야? 시현 씨 뺏은 여우?”
눈치 빠른 보영은 어느새 나와 시선을 한 곳에 맞추고 있었다. 다시 두
눈을 부릅뜨고 정신을 가다듬은 후 보영의 손을 잡고 다짜고짜 그들의
곁으로 걸어갔다. 이미 난 이성을 상실한 상태였다.
“앗, 차가워.”
우연히 부딪힌 척 송효림의 등짝에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을 짓이겼다.
효림은 깜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내 얼굴을 확인한 그녀는 종잇장
구기듯 얼굴을 확 구기더니 분노에 찬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어떡해, 죄송해요. 어머, 효림 씨네? 두 사람 데이트 나왔구나. 이런 데서
또 만나다니 우리 인연도 참 질겨요. 그죠?”
시치미를 뚝 떼고 효림과 시현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대사를 또박또박
내뱉었다. 적어도 나의 연기는 방금 전에 보았던 헐리웃 영화 속의 어설픈
여주인공보단 월등히 나았단 생각이 들었다. 곁에선 보영은 나의 어이없는
행각에 그저 입을 벌린 채 멀뚱히 지켜볼 뿐이었다.
시현은 효림을 옆으로 비켜 세우더니 내 앞으로 한 발짝 다가왔다. 날 보는
두 눈이 잔뜩 화가 난 눈초리였다.
“정혜령. 일부러 그랬지?”
“이, 일부러 그러다니. 난 그냥 걷다가 부딪힌 것뿐이야.”
“거짓말 하지 마. 근데 말은 왜 더듬어? 이런 식으로 효림 씨 괴롭히면
네 속이 후련해? 앞으론 이런 유치한 짓 하지 마. 너만 더 초라해 보여.”
말을 마친 시현은 더 이상 볼일이 없는지 효림의 손을 잡고서 뒤돌아섰다.
나의 시선은 그들의 맞잡은 손에 고정되었다. 5년 동안 한 결 같이 나를
잡아주던 그의 손이 지금은 효림의 손을 잡고 있었다. 억울하고 분해서
미칠 것만 같다. 그렇지만 난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던진 폭탄이
쿵하고 요란한 굉음을 내며 내 속에서 터져버렸기 때문에. 내 몸은 순식간에
폐허로 변해 버렸다.
‘초라해 보여? 내가? 날 이렇게 만든 게 누군데!’
내 눈 속엔 원망스러움과 분노로 이글거렸다. 두 사람이 점차 시야에서
사라지자 눈치를 보며 섰던 보영은 다가와 내 손을 꼭 잡아 주었다.
좀 전에 저질렀던 나의 유치한 상황 극이 창피하게 느껴져 그녀의 얼굴을
보기가 민망했다. 시현의 말대로 나는 지금 충분히 초라한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절대 이대로 물러설 순 없다. 폐허 속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심장이
적군에 대한 복수심으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심장은 때가
되길 기다릴 것이다. 그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을 날이 오기만을.
“저 두 사람 반드시 불행하게 만들고 말거야.”
보영과 맞잡은 손에 더욱 힘이 쥐어졌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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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남겨주셨던 퍼플미야님, 영구아룽님, 식신걸님, 안영^^*님,
하니혀니님, 짱구액션가면님. 너무 감사해요.^^
그리고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도 감사해요.^^
덕분에 제가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 아시죠?
앞으로도 많은 힘 실어주세요.
빨리 못 와서 죄송해요. 요즘 부담을 느껴서 그런지 글쓰기가 빨리 안 되네요.
그래도 다음 편 부터 펼쳐질 혜령의 대변신을 기대해주세요. 감사합니다.^^
규비야 올림.
삭제된 댓글 입니다.
열매소설방에 자주 오세요. 얼큰하고 구수하고 짜릿한 로맨스가 가득하답니다.~^^ 말하고 보니 열매방 홍보대사 같군요.ㅎㅎ 재밌게 봐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앞으로도 자주 뵈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감사해요.^^ 혜령이가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많이 변할 겁니다.ㅎㅎ 지켜봐 주세요.^^
아빨리담편나왓으묜조켓어여!!!
저두 담편 빨리 올리고 싶어요. 근데 이 못난 작가를 부디 용서해 주세요. 오늘도 글은 안 올리고 답글만 달고 갑니다. 요즘 제가 나름 슬럼프라서ㅠㅠ
님아 기다렸어요... 혜령이가 맘이 아프겠어요... ㅠㅠ 담푠이 넘 기다려지는데요~~~ 빨라 오세요~~~
자꾸 기다리게 해 드려서 정말 죄송하네요. 지금 4편을 열심히 쓰고 있답니다. 그러니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제가 사실 요즘 조금 힘이 들어서요.ㅠㅠ 그래도 기다리시는 분들 계실까봐 잠수는 안 할려고요. 그러니 조금만 너그러이 용서해주삼~~^^;
저는 오래된 연인이 아픈게 너무 싫어요.. ㅠㅠ 혜령이 승리하길.. 시현이 돌아오길 빌어요 정말.. 규비야님 부담 가지시기 마세요^^ 규비야님이 하고 싶으셔서 쓰시는 소설을 부담감은 안으시고 불편한 마음으로 쓰시는건 마음이 아픕니당ㅠㅠ 응원할게요!^^
담편 빨리 안 올라온다고 화 내지 마세요. 사실 말씀드렸다시피 나름 슬럼프라서 말이죠.ㅠㅠ 그래도 님 덕분에 제가 많이 힘내고 있다는 것 아시죠?^^ 완결까지 꼭 힘낼게요.^^
난 시현이도 짜증나요....바람피다니
맞아요. 저도 바람피는 남자 싫어요.^^ 그래도 시현인 남주인데 쬐금 용서해 주세요.혜령이가 변하듯 시현도 변하길 바라며..댓글 너무 감사해요. 끝까지 지켜봐주셔요.^^
헉헉....ㅠ..ㅠ..혜령이억장이무너지겟슴..
닉넴이 너무 재미있어서 처음 뵜을때 무척 웃었어요. 그리고 기억속에 콕 박혀버렸죠. 그러니 담편도 꼭 읽어주세요. 이왕이면 댓글도...^^ 연재가 늦어져서 정말 죄송해요. 쫌만 더 기다려주세요.^^
시현이 뭬친놈... 확... 쥐어패버릴까부다 망할놈..
시현인 욕 좀 많이 먹어야 되요. 그렇지만 혜령이 약간 오해한 부분도 있답니다. 시간이 흐르면 시현도 조금 억울했다는 것을 아시게 될거에요.^^ 그러니 끝까지 함께 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다음편기다릴께요
오래 기다리게 해 드려서 죄송해요. 역시나 오늘도 이 허접 작가는 소설을 못 들고 왔네요. 지금 열심히 쓰고 있는 중이니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감사합니다.^^
너무재밌어요...다음편기다릴께요
재밌게 읽어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사실 남겨주신 댓글 하나하나가 저를 슬럼프에서 빠져나올수 있도록 큰 힘을 주고 있답니다. 너무 고맙고요, 또 감사해요.^^
혜령이가 꼭 복수에 성공하길 바래요! 효림이 정말 만만한 상대가 아니네요! 바람 펴놓고 저렇게 뻔뻔할 수가..
혜령이의 복수가 시현과 효림에게 잘 먹힐 수 있도록 응원 부탁드립니다. 바람 피우는 남자는 벌받고 정신 좀 차려야 되요. 그죠? 님께는 늘 감사히 생각하고 있어요.^^
나쁜시현이 -_-
혜령이가 과연 시현에게 어떻게 복수할지 앞으로도 쭈욱~지켜봐 주셔요. 연재가 조금 늦지만 그래도 부디 너그러운 맘으로 이해해주시길.. 감사합니다.^^
시현이 너무해 효림이하고 아무사이아니라면서,,, 으으,,복수극 기대중!! 담편도 기대할께요~
매번 감사해요.^^ 다음 편 드디어 지금 들고 왔습니다.^^ 올려놓고 기다릴게요.헤헤.
잘 보고 가요~
감사해요. 댓글은 나의 힘! ^^
아 너무 재밌어요 ㅠ_ㅠ!^^ 저는 바람이 아니라 왠지 반전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반전은 없나보네요~?ㅠㅠ무릎꿇고 혜령이한테 다시 사귀자고 하거나 미안하다고 할때까지 이 소설 봐야겠네요!!!!!
감사합니다.꾸벅. 완결까지 꼭 함께 해 주세요.^^
아.............. 송씨아줌마-ㅅ- 밉다 ㅠ_- 혜령아줌마 홧팅!!!
ㅠㅠ짱이에여!!굳 굳
와 .. 너무 재밌어요 !! 성실연재 하면 대박나겠는데요 ㅋㅋ
시현이 뭐임??? 너무 하네~~ 원망스런 눈빛으로 보며 자기 못 믿냐고 나불 거리더니... 참내..... 웃긴녀석일세...규비야님.. 소설 재밌네요... 으흐흐흐........ 이 새벽에 잠 안자고 소설 일고... ;;;; 앞으로 재밌는 소설 기대기대~~해요!
초라.. 그렇게 초라해 보였을까 시연눈에,,, 속상함만 가득안고 퇴근해야하나요???
나쁜새끼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