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 오일장에서
김지윤
매일 비워졌다 또 밀물 차오르는 모래톱처럼
닷새마다 꼬박꼬박 열리는 오일장
가을감자 파는 좌판 할머니 앞에서
한 푼, 두 푼 버릇처럼 감자 값을 깎다
하영 주쿠다(많이 줄게요), 하며 감자 자루 내미는
부르튼 손 검은 흙 낀 손톱 보며
할머니 텃밭 감자 위로 하영 쏟아졌을
뙤약볕처럼 사뭇 낯 뜨거워져
바람이 차요, 남은 것 제가 다 사드리면 집에 가 쉬실래요?
응, 응, 경허믄 고맙수다게(그러면 고맙지요)
할머니 말씀에 그만 감자를 한 무더기나 사서
한 바퀴 돌다 집에 가는 길
아까 그 자리 그대로
한 무더기 감자를 또 그만큼 앞에 내놓고
여전히 같은 모습으로 앉아 있는 할머니
할머니의 좌판에 놓인 감자를 정녕
내가 모두 가져갈 수 있다고 믿다니!
늘 그만큼의 부피와 무게가
도돌이표처럼 돌아오는 게, 삶이라고
좌판에 앉은 할머니 나를 조용히 꾸짖는 듯하다
그날 저녁 소반 가득 찐 감자를 내놓고
자꾸 먹어도 허기지다
한 입씩 베어 문 듯 자꾸 비워지는 초승달처럼,
어둠이 살라먹은 자리 다시금 채워지는 만월滿月처럼
김지윤
2006년 《문학사상》 신인상 시 부문 수상
201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
시집 『수인반점 왕선생』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