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자
김 난 석
언제부터인지 여성들의 이름 끝 자에 자(子)를 많이 써왔다. 일본문화의 잔재라 한다. 子란 아이란 뜻(꼬) 정도라는데 우린 이와 달리 아(兒)를 많이 써왔다. 정아, 영아, 순아 등, 이것도 아이란 뜻 정도이다.
그 흔한 이름 영자라 하면 우선 나는 1970년대 초에 개봉된 임호선 감독의 영화 <영자의 전성시대>가 떠오른다. 순박한 시골처녀 영자가 무작정 상경해 결국 창녀로 전락하지만 자신을 이해해주는 청년 창수와의 사랑을 통해 삶의 의지를 펴나간다는 멜로물이다. 당시 우리사회의 밑바닥을 훑는 고발성도 있지만 주인공의 과감한 나체연기에 의해 호기심도 많이 끌었던 기억이다.
영자라면 나는 두 번째로 허영자 시인이 떠오른다. 우리나라 서정시의 산맥을 굳건히 이끌어오고 있는 여류시인인데, 내가 이끌고 있는 문학모임에서 자주 초대해 문학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또 영자라 하면 나의 여사친 영자를 떠올린다. 그네는 교직에 있다가, 회사 경영자로 있다가, 이젠 은퇴하고 소프라노 아마추어 가수활동을 하고 있는데, 나는 그네를 자영이라 부른다. 어쩐지 영자라 부르면 영자의 전성시대가 오버랩 되는 것 같아서이다. 그네의 전성시대는 남편과 함께 사업을 하던 때라 하는데, 소위 일본 바이어(Buyer)들도 요정에서 많이 대접했다 한다.
또 영자가 있다. 나의 시골 동갑내기다. 항렬로 말하면 나보다 위인데 성장도 다 하지 않은 어린 시절에 동네 어느 머슴과 짝을 지어주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무작정 가출해 상경하고 말았다. 수년 동안 남의 집 식모살이를 하다가 그게 싫증났던지 낙향하자 그 머슴과 결혼하게 되었다. 나보고는 늘 조카님 조카님 그런다. 이젠 남편과 사별하고 자녀들도 모두 객지로 나가 혼자 지내고 있는 모습을 보면 어쩐지 마음이 짠하기만 하다. 그네의 전성시대는 언제일까...
영자가 또 있다. 나의 막내숙모님이다. 그의 부친이 시골 훈장이었는데, 세상이 어지러운지라 딸을 밖으로 내돌리면 안 된다 하여 초등학교 졸업 뒤에 중학에도 진학시키지 않고 집에서만 데리고 있었다. 성년 뒤에 나의 막내삼촌과 결혼해 나와는 숙모조카 사이가 되었는데, 동창생들로부터 놀림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그럴수록 우린 동창회에서 팔짱도 끼면서 숙모님 조카님 하며 다정한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그 숙모님이 시골집에 혼자 지내다가 얼마 전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갔다. 그 아들이 자주 전화를 해오던 터라 이상함을 감지하고 119 구급대에 연락해서 그나마 큰 변은 모면할 수 있었다. 지금은 충남대병원에서 재활치료 중인데, 어제 치료비를 조금 보내드렸더니 전화가 왔다. 본인은 이제 퇴원하고 싶은데 의사가 허락하지 않아 답답하다는 것이다. 그만하면 괜찮다 싶기도 한데, 그게 나에게 보내온 신호 같기도 하니 여기저기 전화 연락망을 구축해놔야겠다.
그렇다면 나의 전성시대는 언제일까?
몇 해 전 써본 시가 생각나 아래에 적어본다.
순아(順兒)!
들길 산길 거슬러 그 옛날로 돌아가면 안 될까
간밤에 배인 눈물자국 아침 햇살로 지워내며
수줍게 고개 드는 두견화 꽃길 따라
물레방아 휘돌던
억새 울도 지나고
서낭당 고개 너머
상여집도 지나
그 먼 옛날로 돌아가면 안 될까
삼신(三神) 메 떠놓고
정화수 올리던 곳
가다가가다가
속곳 걸칠 것도 없이
흙바닥에 질펀히 앉아
입술만 달막이던
그 먼 옛날로
순아
그 먼 먼 옛날로 돌아가면 안 될까
모롱이 돌아 돌아 산길 숲 속에 사라지고
물길도 구름 속에 머흐는 그 먼 먼 옛날로
아, 순이는 풀잎이 되거라
알 수 없는 태상노군(太上老君) 주문을 외듯
밤바람에 속살대는 풀잎이 되면
이슥토록 별을 담아 안겨주고 싶구나.
(졸시집 '바라다보매 다 꽃이어라' 중에서)
첫댓글 영자라는 이름이 가장 많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허영자 시인의 시는 좋아하는 사람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 그대의 별이 되어", " 무지개를 사랑한 걸 " 등등 주옥같은 시를 쓰신 시인이지요.
순아 그 면 옛날로 돌아가면 안될까
고향 산천의 향취가 진하게 배어있는 석촌님의 시 또한 절창입니다.
아마 子字 들어간 회원님들도 이 글을 보고 계실 겁니다.;
맞아요.
숙명여대 국문과 출신의 대모이기도 한데
선배 남성시인들이 볼때에
휘발유 같은 여성이라고도 하데요.
감성이 깊어서 화르르탄다는거죠.
삭제된 댓글 입니다.
그래서 표정이 밝군요.
사람은 이름 부르는 대로 간다고도 하데요.
장영자 라면 저는 시스루가 떠오르기도 하는데
남편에 대한 밤의 연기 중에 제일은 그것이라고 보지요.
여성들은 아름다운 이름을 원하기도 하지요.
자야,순아, 숙아, 참 많기도 한 돌림字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옛날에는 딸의 존재감을 낮추려 지어준
부모님의 사랑 방법입니다.
너무 사랑스럽게 키우면, 남의 가문 며느리가 되어서
살아가야 할 딸의 입지를 잘 생각하는
옛날 부모님들의 사랑 방법입니다.
자야,순아, 심지어는 끝자, 말자, 말순,
더 이상 딸을 동생으로 두지 말기를 원하는
옛날 남존여비의 이름짓기 이기도 하지요.
그런 흔한 이름이어도 잘 사는 사람 잘 살고
힘든 삶을 살아도, 아름답게 사는 사람도 많습니다.
예로 여성의 덕목으로
진 선 미 정 숙 현 을 들기도 했지요.
그래서 진희 선아 미숙 정임 숙자 현숙으로 짓기도 했는데
제 아내도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네요.
다양한 영자의 글과 함께 순아의 글 잘 읽었습니다.
순아의 시처럼. 우리는 그 시대로 돌아가고픈 마음을 간직하고 되새기며 살면 좋겠습니다
동심의 세계가 우리들의 영원한 고향이지요.
영자 이름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흔하디 흔한 이름이었지요.
제 초등학교에도 '영자" 가 있습니다.
엄청 목소리 크고 호탕하고 욕도 잘 하지요.
인정도 많습니다.
'순아" 시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저를 생각하며 시를 써 줄 누군가가 있을까
생각 해 보았습니다.
아녜스님과 인연이 깊어진다면
누군가가 그리워 하는 시나 글을 쓰지 않겠어요?
그런 날도 오리라고 봅니다.
영자~~ 꽃부리 영 자를 쓰지 않던가요?
英子ㅎㅎ ~
그러고 보니 새삼 주변에 영자가 아주 많군요!
큰누님 친구 영자~ 그 동네서 제일 잘살던 논이
가장 많던 집,
윗동네 영자 누님 -- 제 중학교 3학년때 하숙집을
알선해준,
우리 동창 영자 - 일산에 살며 교회에 아주 열심인,
집사람 친구 영자 -- 수원에 살며 눈이 아주 큰,
또 다른 영자 -- 역시 수원에 의사 처방을 많이 받아
그저 꽃놀이 패처럼 약국을 운영하는,
에고 더이상은 생각이 안 나네요!!
즐거운 회상의 시간이었습니다 . ㅎㅎ
그정도만 해도 회상하기엔 충분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