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IPCC)는 기후변화로 인해 2100년까지 해수면이 40~64cm 이상 상승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IPCC의 예측대로 해수면이 45cm만 상승해도 평균 고도가 1m에 불과한 몰디브는 육지 면적의 약 77%가 바다에 잠기게 됩니다.
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키리바시도 마찬가지입니다. 키리바시는 해수면이 91cm 상승하게 되면 국토의 3분의 2가 바다 속으로 사라집니다. 과학자들은 2100년까지 약 2억 5,000만 명이 해수면 상승으로 삶의 터전을 위협받게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해수면 상승에 따른 직접적인 영향뿐만 아니라 기상 이변으로 인해 2050년에 기후 난민이 12억 명에 달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중동, 북아프리카, 중남미 등지에서 작물 재배가 불가능해진 땅을 버리고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이동하고 있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기후 난민 캠프는 지중해 지역뿐만 아니라 아시아 일부 지역까지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이들 난민 캠프는 고국으로 돌아갈 수도, 다른 곳으로 자유롭게 이주할 수도 없는 사람들에게는 안식처와도 같은 곳입니다. 여러 가지 제약에도 불구하고 난민 캠프의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비공식적인 방법을 통해 자신들의 거주 공간을 활기찬 공동체로 탈바꿈시키고 있습니다.
요르단의 자타리 난민 캠프에는 12개 구역에 걸쳐 8만 3,000여 명의 난민이 생활하고 있는데 도시로서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요건들을 대부분 구비하고 있습니다. 이 캠프에는 32개의 학교, 58개의 커뮤니티 센터, 8개의 보건시설, 그리고 3,000개의 상점이 있습니다. 캠프 전체에 전기가 들어오고 트럭으로 물이 공급되고 있으니 도시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공공 인프라도 갖추고 있는 셈입니다.
자타리 난민 캠프는 여타의 수용소와 마찬가지로 평평한 격자 구조로 만들어졌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쇼핑, 교류, 놀이 등에 필요한 공간을 갖추면서 형태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주민들은 작은 정원을 가꾸고 만남을 위한 광장을 만드는 등 자신들이 살아가는 공간을 풍요롭게 변화시켰습니다. 심지어 자타리 캠프의 난민들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거리를 ‘샹젤리제’로 재명명하고 공공 광장으로 탈바꿈시키기도 했습니다.
유엔 인권이사회의 내부 보고서에 따르면 난민들이 수용소에서 보내는 평균 기간은 17년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자신이 살던 곳으로 되돌아갈 수도 없고 수용국의 국민이 될 수도 없다는 점에서 일종의 무국적자에 해당합니다. 문제는 홍수, 가뭄, 폭염, 산불, 태풍 등으로 인해 황폐해진 땅에서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의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난민 캠프를 수용소라기 보다는 그곳에서 평생을 보내야 하는 사람들을 위한 임시 도시로 간주하고 이들에게 공동체 건설에 필요한 실질적인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만약 지구의 많은 지역이 인간의 기존 생활방식에 적합하지 않게 변하면서 수억, 심지어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자신이 살던 땅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이들을 특정한 지리적 영역에 강제로 묶어두는 것이 가능할까요? 지구 온난화에 따라 아열대와 중저위도 지역의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이동을 시작한다면 자연생태계를 임의로 구획한 국가라는 경계가 무슨 의미를 갖게 될까요?
약 1만 1,000년 전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고 새로운 온대기후가 나타남으로써 수렵 채집의 유목 생활방식이 농경과 목축 중심의 정주 생활방식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산업화와 더불어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정주 생활방식은 인류의 보편적 삶의 양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기나긴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볼 때 호모 사피엔스는 본질적으로 유목민이며 간간이 정주 기간을 가졌을 뿐입니다.
제러미 리프킨 역시 그의 최근 저서 ‘플래닛 아쿠아’에서 인류가 유목 생활방식으로의 전환을 이미 시작했고 앞으로 그러한 추세가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습니다. 자연재해와 내전 등으로 인해 확산하고 있는 임시 도시가 우리의 미래 삶을 보여주는 수정구슬이 될지는 좀 더 시간을 갖고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산업연구원 명예연구위원, (사)지역산업입지연구원 원장 홍진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