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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25 (한국전쟁)가 발발한지
60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3년간의 전쟁동안
인구 6명당 1명 꼴로 죽거나 불구가 되었습니다.
(민간인은 남한에서 2,490,968명, 북한에서 1,500,000명.
군인은 한국군이 621,479명, 유엔군이 154,881명.
공산군은 북한군 801,000명을 포함해서 2,035,000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당시 남한의 인구가 20,190,000명
북한의 인구가 9,750,000명이었습니다.)
죽고 다친사람은 물론이거니와
재산의 피해까지 따지자면 대한민국 국민 누구도
피해를 입지 않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6.25가 발발하기 1년 전,
이승만 대통령은 남한내의 좌익세력이
유사시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과거, 남한내에서
좌익활동을 한 적이 있는 사람들을 모아서
'국민보도연맹'이라는 반공단체를 만들게 합니다.
그리고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기 위해
가입하는 사람에게 식량을 배급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까지 식량을 받기 위해서
가입한 경우도 많았다고 전해집니다.
전쟁 발발 직전,
보도연맹 회원수는 전국적으로 무려 30만명에 달했고
전쟁이 일어나자 남한 정부는
국가차원에서 조직적으로 보도연맹원들을 학살하기 시작합니다.
보도연맹원들을 남겨두고 후퇴를 하면
그들이 곧 남한의 적이 될 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한 장면입니다.
보도연맹에 가입한 민간인들이 학살당하고 있습니다.
"
코발트는 합금으로 자석강, 고속도강 등의 특수강을 만들 때,
또는 촉매,유약등을 만들때 사용되는 광물로서
도자기나 유리 등에 푸른색을 내는 화합물로서 알려져 있었으며
같은 무게의 금보다 비싼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1톤당 가격이 47950달러에 달하는 비싼 광물입니다.
"
6.25가 발발한 1950년 6월 말에서 9월 초까지
아주 가까운 곳에서 벌어진 실제 사건입니다.
일본인들이 코발트를 채굴하기 위해
경북 경산시 평산동에 개발했던 폐광에서
대규모의 학살이 일어났습니다.
대구․경북지역의 보도연맹원과 대구 형무소 재소자 등이
경북 경산시 평산동 폐코발트광산의 지하갱도와 인근 대원골에서
국군에 의해 집단 학살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유족들에 따르면,
대구 형무소 재소자들은 포승줄로 묶인 채 군용트럭에 실려와
수직갱도 입구에 나란히 세워진 뒤 총살 또는 산 채로 매장되었으며
지역 국민보도연맹원들은 예비검속 조치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경찰서로 가거나 집에서 경찰들에게 끌려가
일정 장소에 구금된 후 폐 코발트 광산으로 끌려가
학살당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당시 희생규모는 대구형무소 재소자 2,574명 대부분과
경산, 청도, 영천 등의 국민보도연맹원등 3,500명 정도가
다른 형무소로 이감되는 과정에서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니 한번 현장에 찾아가보기로 합니다.
대구가 지척인 경북 경산시 평산동 591-2번지.
사건현장 주변의 항공사진입니다.
얼마 전 이 일대에 인터불고 경산 컨트리클럽이 생겼습니다.
(사진 하단에 보이는 주차장 인터불고 경산cc입니다)
대구 한의대학교를 찾은 후 입구 쪽으로 쭉 올라갑니다.
길을 따라 계속 들어가면
우측에 멀리 보이는 산위에 건물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목적지입니다.
중앙에 보이는 노란 건물에 붙어있는 붉은 벽돌 건물.
학살 현장의 입구입니다.
현장 바로 위에는 새로 생긴 골프장 건물이 보입니다.
파티마 요양병원으로 가는 길을 따라
계속 올라갑니다.
파티마 요양병원입니다.
얼마 전까지 폐업한 안경공장이었다고 합니다.
한때 인터넷에서 '경산 안경공장'으로 유명한
흉가 체험 장소였지만,
(지금도 인터넷에서는 다양한 괴담들이 떠돌고 있습니다)
지금은 깨끗한 '파티마요양병원'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요양병원 주차장 위에서 내려다 본 풍경입니다.
산이 거의 없고 탁 트인 평지입니다.
파티마 요양병원 주차장을 지나면
코발트 광산 학살현장 입구가 보입니다.
지금은 폐광된 일제시대에 만든 코발트 광산의 수평 갱도 입구.
학살의 현장 입니다.
현장 훼손을 막기위해 저렇게 철문을 달아놓았습니다.
초가 버려져 있는 것을 보니 누군가 다녀간 것 같습니다.
입구에 있는 안내 표지판입니다.
술병과 쓰레기가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것을 보면
현재 전혀 관리가 되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파티마 요양병원 건물입니다.
냉장고가 버려져 있네요.
수평갱도 입구 바로 옆에 컨테이너 박스가 하나 놓여있습니다.
굳게 잠겨있었지만
유리창을 통해 내부를 볼 수 있었습니다.
무심코 안을 들여다 보니
이 곳에서 발굴한 유골을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컨테이너 안에는 유골들이 가득합니다.
유골을 부위별로 구분해 놓은 것 같습니다.
이제, 산 중턱의 수직갱도로 올라가 봅니다.
수직갱도로 올라가는 중간에 있는 어느 건물입니다.
여기도 역시 쓰레기가 가득합니다.
수직갱도로 올라가는 산길입니다.
이런 산길을 130미터 정도 올라가야 합니다.
폐광산의 수직갱도 입구의 유골 발굴현장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집단 매장지 수직 갱도 입구입니다.
여기서 민간인들을 학살하여 수직갱도 밑으로 던져
매장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유해가 매장되었던 구덩이 내부에서 본 모습입니다.
수직갱도 주변과 인근 대원골 골짜기에서도많은 수의 유골이 나왔다고 합니다.
갱도 바로 위쪽, 골프장에는 차들이 끊임없이 오가고 있었습니다.
골프장이 생기면서 수습되지 못한 다수의 유골들이 유실되었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아래는 인터넷에서 찾은 발굴 당시의 사진들 입니다.
(사진의 정확한 출처는 모릅니다.)
누군가가 촬영한 발굴 전 갱도 내부의 모습입니다.
발굴을 위해 수직갱도를 열어놓은 모습입니다.
골프장을 만들때 나온 유골들과 함께나온 유품입니다.
민간인들을 학살 할 때 사용한 소총의 탄피와 유해에 박혀있었던 탄환들도 함께 발견되었습니다.
단추와 뼛조각, 이빨, 옷가지들도 보입니다.
갱도 내부에서 발굴한 유골들입니다.
갱도 내에서만 180여명 분의 유골이 나왔고, 이 일대에서만 3500정도가
학살되어 묻혀있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합니다.
전국적으로는 200,000명이상의 민간인이 국민보도연맹과 관련되어
학살당했을 것이라고 추정되고 있습니다.
어느 사진작가가 찍은
경산 코발트 광산 학살 현장의 사진입니다.
불과 60년 전에 주변에서 일어났던 일입니다.
홀로코스트는 멀리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