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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족구100인클럽 원문보기 글쓴이: 송한용
한가해를 처음 만난 곳은 양구에서 벌어졌던 여성 족구대회 현장에서였다. 영상 등을 통해 이미 그녀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반가운 마음에 사인을 요청했다. 물론 그녀는 나를 전혀 몰랐다.
사실 족구하는 영상만 보았기 때문에 그녀에 대한 나의 선입견은 당차고 씩씩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옆에 있었던 정길해(안양 스마트 50대 부 공격수) 감독이 '사인이 그게 뭐냐'라며 놀리자 '그럼 감독님이 해보세요'하며 삼촌 조카와 같은 케미를 보여주었고 부끄러움도 많은 조금은 의외의(?) 모습이었다. 물론 코트에 들어가 경기에 임할 때는 그런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모든 스포츠에서 왼손잡이, 왼발잡이는 유리하다.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족구 역시 마찬가지, 특히 여성부는 한가해와 같은 왼발잡이 공격수가 흔하지 않은 데다가 안축 차기 공격이 강한 정통파 왼발잡이 공격수는 남자 선수들 중에서도 흔하지 않다. 그러다 보니 이렇다 할 스파링 파트너도 찾기 어려워 상대팀 입장에서 한가해는 상대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 공격수이다.
익산의 개구쟁이 소녀, 군대에서 족구를 만나다
1990년 전라북도 익산에서 태어난 한가해는 여느 여자아이와 같은 개구쟁이 소녀였다.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를 분출하기 위해 본인은 운동을 하기를 바랐으나 부모님은 툭하면 놀다가 다치고 들어오는 딸이 운동을 하면 더 많이 다칠 것을 우려해 반대했다.
"에너지 소모를 위해서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도 모르게 다른 곳으로 분출시켰던 것 같아요. 중학교 시절 결코 가깝지 않았던 등하굣길을 뛰어서 다녔고, 집에 돌아오면 혼자서 윗몸일으키기도 하면서 땀을 흘렸어요. 그러고 보니 운동을 하긴 했네요. (웃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운동이 너무 하고 싶어서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태권도 도장을 다녔어요. 보통은 초등학교 시절에 다니는 태권도장을 전 고등학교 졸업하고 다녔네요. (웃음) 초등학생들과 함께 운동을 하고 노란 띠를 땄는데 군 입대를 하게 되어 자연스럽게 태권도를 그만두었습니다."
본래 군인이 꿈이었는지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3, 4살 정도에 길을 가다가 교통경찰관이 있으면 한참 쳐다보고는 했었다고 엄마가 말해주기는 했어요. 아마도 제복 입은 모습이 신기해서 쳐다봤던 것 같기는 했었는데 막상 군인이 꿈은 아니었어요. 제 위로 오빠가 있고 주변에 남자 친구들이 있었는데 다들 군대를 간다며 송별회 몇 번 해주고 나니 이상하게 '나도 군대를 가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고 저의 넘치는 에너지를 마음껏 분출할 수 있겠다 싶어 부사관으로 지원을 했는데 운이 좋았는지 한 번에 합격해서 가게 되었네요."
군대와 족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입대한 부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실 여느 여자들처럼 족구에 별로 관심이 없었던 그녀는 부대에서 축구, 농구를 즐겼으나 남자들과의 거친 몸싸움 때문에 다치지 않고 할 수 있는 운동을 찾다가 선임들이 하는 족구를 보고 함께 시작하게 되었다.
족구팀에서 보통 여성 회원들에게 처음으로 맡기는 포지션은 세터다. 공격수의 강한 공격을 여성 회원들이 받아내기는 힘들다 보니 전위에 위치를 시키는데 처음부터 공격수를 할 수는 없어서 세터를 맡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한가해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왼발잡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경기 중간중간 공격을 했는데 나름 재미도 있었고, 곧잘 차다 보니 얼떨결에 공격수가 되어있었다.
"군에서부터 저의 자리는 앞 라인이었고 포지션은 공격수였습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왼발잡이이고 여자이다 보니 남자들의 공을 받는 수비보다는 덜 위험한 앞 라인에 있었는데 자연스럽게 공격수로 자리매김한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면 제 선택보다는 운명처럼 하늘이 정해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웃음)"
인천 마린에서 본격적인 선수 생활 시작 그리고 조이킥스포츠
군 시절 동안 계속해서 족구를 하던 중 전역을 약 6개월 정도 남겨놓았을 때, 선임으로부터 인천 부평구의 유경아 회장을 소개받았고, 인천 마린으로 들어와 정식으로 족구를 시작해 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나름 족구에 재미를 느끼고 있기는 했지만 전역 후에도 족구를 계속해서 할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여성 족구팀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성 족구인이 직접 함께 하자고 제안을 하니 흔쾌히 수락을 했다.
"마린에서 운동했었던 추억들은 지금도 새록새록 기억납니다. 감독님과 언니들이 너무 좋았고 족구에 대해 하나하나 배워가니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몰라요. 부대에서 당직을 서고 아침에 족구장으로 퇴근해서 족구를 시작하고 야족까지 마무리할 정도로 정말 푹 빠져 있었는데 저의 그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를 주변에서도 소화 시켜주셔서 당시 팀원 분들이 좀 힘들었을 거예요. (웃음) 여자 선수들이 부족했고 젊은 선수는 더더욱 없다 보니 팀원들의 연령대가 대부분 저보다 15살 이상 많으셨는데 언니들이 많이 이해해 주시고 때로는 철없는 저를 포용해 주시면서 저를 성장시켜 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주셔서 지금도 너무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전역 후 각종 대회에서 점차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며 22년 벌어진 전주한옥마을배에서 부평 진 족구단으로 출전해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했고, 이후 조이킥스포츠로부터 입단 제안을 받았다.
"사실 저는 실력이 뛰어나지도 않고, 인맥도 넓지 않아서 단지 '내가 좋아하는 족구만 할 수 있다면 어디든 좋다'라는 생각으로 운동하고 있었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유경아 회장님, 조용수 삼촌, 박묘수 삼촌 그리고 조성환 단장님께서 조이킥스포츠에 추천을 해주셔서 입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조이킥스포츠에 입단 후, 항상 정상권의 실력을 유지하기는 했지만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이도희, 문현희를 영입하며 명실상부한 여성부 최강으로 올라선 수성구 체육회(대구 단디)와 전혜진, 위성희의 울산 위민에 밀리며 2인자, 3인자에 머물고 있었다. 특히 대구 단디와의 맞대결에서는 단 한 번도 승리를 거두지 못하는 지독한 징크스에 시달리기도 했다. 여성부 족구에 관심이 많은 하이트맨은 '조이킥스포츠가 단디에게는 정말 역대급으로 매번 졌습니다. 정말 많은 라이벌 관계를 보았지만 이렇게 상대가 안 되는 경우는 처음이었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금년 양구에서 벌어진 여성 족구대회에서 조이킥스포츠는 예선 첫 경기에서 또 대구 단디에 패했고, 이후 예선, 8강, 4강까지 단 한 경기도 쉽지 않았던 가시밭길을 헤쳐가며 결승에 진출했다. 그리고 상대는 또 대구 단디였다. 그렇게 시작한 1세트, 조이킥스포츠는 대구 단디의 공격수 이도희의 공격에 제대로 된 저항도 하지 못한 채 4:15로 완패를 당했고, 현장에 있었던 이들 모두 이번 경기도 대구 단디가 무난하게 승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리고 맞이한 2세트, 한가해의 첫 공격 안축 밀어차기 공격이 이 경기에서 처음으로 상대 수비수 김혜미, 이해미가 발도 갖다 대지 못할 만큼 강하게 들어가며 선취점을 얻어냈다. 조이킥스포츠 입장에서는 경기 시작부터 어딘가 꽉 막혀 있었던 무언가가 뻥 뚫리는 느낌이었을 것이고 옆에서 보고 있었던 나조차도 속이 후련(?) 해지는 것 같은 느낌의 공격이었다. 이후 한가해는 '받을 테면 받아봐'라는 듯이 거침없이 안축 밀어차기 공격을 계속해서 시도했고, 차곡차곡 득점으로 연결했다. 이 공격들은 대구 단디의 수비라인을 적잖이 당황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강공과 함께 적재적소에 놓는 연타로 1세트와는 전혀 다른 양상의 경기가 진행되었고 결국 2세트를 가져가며 경기를 3세트까지 몰고 갔다. 3세트 역시 계속된 강공으로 득점을 만들어내며, 기어코 지긋지긋했던 대구 단디 징크스를 깨고 우승을 차지했다.
경기가 끝나고 한가해는 유니폼을 얼굴에 뒤집어쓰고 눈물을 흘렸고, 상대 선수들과 악수를 끝내고는 오빠 같은 이승호 감독에게 안기며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이날 아침까지만 해도 티격태격했었지만 평소 운동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던 삼촌 같은 정길해 감독에게 다가가큰절을 올리며 감사함을 표했다.
코트 위의 여전사
내가 만난 한가해는 조금은 여리고 착한 여동생과 같은 이미지였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모두 승부욕과 근성이 강한 선수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물론 나 역시 그녀의 경기를 보면서 코트 밖에서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에 조금 놀라기도 했다. '받을 테면 받아봐'라는 듯이 거침없이 때리는 강력한 안축 공격, 코트 안에서 보여주었던 강렬한 눈빛 그리고 군인 출신인 그녀의 모습에 왠지 모르게 '여전사'의 이미지가 그려진다. 물론 코트 밖에서는 여느 여자와 같이 부드러운 이미지이니 코트 위에서'만' 여전사이다.
단 한 번의 우승으로 한가해가 최고의 공격수가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후 벌어진 전국체전에서 조이킥스포츠는 8강에 머물렀고, 대구 대표로 출전한 대구 단디는 다시 한번 우승을 차지하며 정상에 올랐으며 부상에서 회복한 전혜진을 앞세운 울산 위민도 준우승을 차지하며 여전히 만만치 않은 전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깨지기 어려운 것이 바로 징크스인데 그 징크스라는 벽을 허물었기에 앞으로 조이킥스포츠와 한가해의 행보가 더욱 기대된다. 지금 당장은 대구 단디와 울산 위민이 조금 앞서있고 또 이들을 위협할 신흥 강호들이 언제든 등장할 수 있기에 앞으로 정상 등극이 더욱 힘들지도 모르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끊임없는 노력으로 더욱 성장할 것이다. 한가해의 족구 인생은 이제 시작이며 정상을 향한 도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한가해와 일문일답
Q. 간단한 본인 소개?
A. 조이킥스포츠 공격수 한가해입니다. 1990년 생이고 가족으로는 부모님, 오빠, 새언니, 예쁜 조카 그리고 반려견 개두식 군이 있습니다. 현재 인천항 보안공사에 재직 중입니다.
Q. 족구를 하면서 재미있었던 에피소드? 반대로 불화가 있었다면?
A. 너무 오래되어서 어느 대회인지 자세히 기억은 안 나는데 서울에서 열린 여성부 대회에 출전한 적이 있었어요. 원래 낯가림이 좀 심해서 경기 중에도 너무 어색했고, 긴장이 많이 되더라고요. 아무튼 어찌어찌해서 첫 득점을 해놓고 혼자 당황했던 기억이 있네요. '이 공이 왜 득점이 났지?', '내가 뭘 한 거지?'하면서 말이죠. (웃음) 공을 만지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경기장 안에서 에너지를 쏟아내면서 훈련했던 것들이 득점으로 연결되었던 순간들이 가장 행복했었고, 반대로 제가 역할을 다하지 못해서 지면 늘 미안했었어요. 불화는 족구도 결국은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니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사람과의 관계는 믿음으로 좌지우지된다고 생각하는 데 팀을 만들고 서로에게 신뢰가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해소된 것 같아요.
Q.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A. 22년 전주한옥마을배가 가장 기억에 남네요. 당시 '부평 진'이라는 팀으로 출전한 첫 대회였는데 팀 동료들과 관계가 워낙에 끈끈해서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고 저도 대회를 1년 정도 쉬다가 나간 대회다 보니 그동안 모아두었던 에너지를 한 방에 쏟아부었고 결과도 좋게 나와서 아직도 기억에 많이 남아요.
Q. 가장 아쉬웠던 경기는?
A. 어느 한 경기를 콕 집어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포지션이 공격수이다 보니 패배한 경기의 대부분이 제가 득점을 하지 못해 패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그런 경기가 끝나면 늘 아쉽고 죄책감이 들었어요. 이런 생각에 다시 훈련하고 되새기면서 성장해 나갔던 것 같아요.
Q. 라이벌이라고 생각하는 선수는?
A. 체전부 공격수 중에서는 전주 하나 강미자 언니, 대구 단디 이도희 언니, 울산 위민 전혜진 언니 등 뛰어난 공격수들이 많아요. 성적으로만 본다면 대구 단디의 도희 언니를 꼽아야 하겠지만 제가 라이벌이라고 생각하는 선수는 바로 '제 자신'입니다. 스스로를 라이벌이라고 말하는 것이 거만해 보일 수도 있지만 군 생활하면서 힘들 때마다 '나 자신만은 이기자'라는 마음가짐으로 이겨냈습니다. 족구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젠가 저도 선수 생활을 그만두는 날이 올 텐데 돌이켜 보았을 때 '적어도 나 자신만은 이겼다'라고 당당히 말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저에게 앞서 언급한 언니들은 함께 운동하는 동료, 동반자로 생각하지 경쟁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항상 지나봅니다. (웃음)
Q. 롤 모델로 꼽는 선수는?
A. 송세호 선수입니다. 저와 같은 왼발잡이이기도 하시고 예전부터 저의 타법이 송세호 선수와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관심을 가졌습니다. 얼마 전 양구 대회에서 2인제 경기에 출전하셔서 경기하는 모습을 실제로는 처음 보았는데 수비며 공격이며 정말 잘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 롤 모델로 삼았고, 조금이라도 따라가 보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Q. 상대하기 가장 까다로웠던 수비수는?
A. 수비수 한 명을 콕 집어서 이야기할 수는 없고요. 제가 공격권을 가졌을 때 상대 수비는 4명이기 때문에 팀워크가 잘 맞는 팀이 가장 까다로웠습니다. 지금까지 상대해 본 팀 중에 이 팀워크가 가장 잘 맞았던 팀은 지금은 해체된 익산 선화입니다. 경기를 할수록 저의 공격 스타일을 모두 파악이라도 한 듯이 마치 한 몸인 것처럼 선수 네 명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서 마치 벽에다 공격하는 느낌이었습니다. 해체해서 아쉽지만 언젠가는 경기장에서 다시 만나서 붙고 싶습니다.
Q. 양구 대회에서 우승을 확정 짓고 눈물을 흘렸는데?
A. 전주한옥배에서 우승을 하고 1년 반 정도 성적이 계속 부진해서 마음고생이 많았습니다. 저의 부족함 때문에 좋은 팀과 동료들이 함께 하고 있음에도 성적이 나오지 않아 저에게 많이 실망하고, 연습하고를 반복했는데 그렇게 흘린 땀과 눈물들을 모두 보상받은 것 같아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우느라 잘 몰랐는데 나중에 영상을 보니 오히려 패배한 도희 언니가 저를 안아주며 위로해 주었고 감독님을 껴안았더라고요. (웃음) 아무튼 그날 이후로 주위에서 '울보'라고 놀려서 조금 창피하기도 하지만 우승만 한다면 이런 놀림이야 얼마든지 받아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웃음)
Q. 족구 이외의 또 다른 취미가 있다면?
A. 지금은 족구 말고는 다른 취미가 없습니다. 26살 정도에 복싱을 했는데 입문 3개월 만에 프로 테스트에 합격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나름 재능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웃음) 그런데 스파링 파트너가 여자분들이 없어서 항상 남자분들과 스파링을 했는데 맞는 게 너무 아팠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마침 족구를 알게 되어 그만두었습니다. 복싱에 재능은 있었을지 몰라도 맞는 것을 무서워하는 것을 보니 프로 선수로 대성은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웃음)
Q. 남자 친구는 있는지? 결혼은?
A. 남자 친구도 없고, 결혼하기엔 제가 여러모로 부족한 것 같아 아직은 생각이 없습니다. 이상형은 배우 김윤석 님입니다. 말수가 없고 낮은 목소리를 가진 분을 좋아합니다.
Q. 족구를 하면서 감사했던 분들?
A. 시작부터 지금까지 혼자 스스로 해온 적이 없고 옆에서 많이 도와주셨기 때문에 고마운 분들이 정말 많습니다. 전주 대회 결승전 우승을 결정짓는 마지막 득점 성공 후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두 팔 벌려 저를 향해 달려오셨던 '무한 가해 사랑' 유경아 회장님, 저를 공격수로 성장시키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할애해 주신 마린 김형이 감독님, 예의 바른 족구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금도 채찍질해 주시는 청산 최복진 감독님, 힘든 왼발잡이 공격수의 세터를 소화해 준 희숙 언니, 은순 언니, 춘희 언니, 경숙 언니 정말 감사합니다. 지금도 제 곁을 든든히 지켜주시는 조이킥스포츠 조성환 단장님을 비롯한 조이킥스포츠 식구들, 청산 삼촌들, 효성 클럽 배근수 회장님, 왈수 아저씨, 종복이 삼촌, 은옥 언니, 란울 언니, 8년의 세월 동안 함께해 준 보선 언니 그리고 내 세터 신옥희 언니, 저보다 더 어른 같은 무한 긍정 든든한 좌수비 심서희, 이승호 감독님까지 지금까지 지내온 시간보다 앞으로 함께할 날이 더 많은 우리 팀! 늘 고맙고 사랑합니다. 마지막으로 '찐족구이야기' 운영자 박유경 선배님 늘 고맙습니다. 감사한 분들 더 계시지만 혹시나 빼먹을까 두려워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Q. 풋넷세계대회에 출전했는데 소감은?
A. 규칙과 공이 달라서 족구와 비슷하지만 다른 스포츠였습니다. 두 달 동안 4번 밖에 발을 맞추지 못했고, 20시간의 비행 후 시차 적응이 되기도 전에 바로 다음날 아침부터 경기를 하느라 피곤하고 힘들었죠. 다른 나라에서 다른 나라 선수들과 경기를 한다고 하니 한편으로는 정말 설레었습니다. 경기장 안에 들어가 보니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관중들의 환호소리를 듣는데 그 마음을 어떻게 표현하지 못하겠습니다. 정말 새롭고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경기를 하는데 저보다 2,30센티는 큰 블로커가 발을 들고 막고 있어서 조금 위축되기는 했지만 선수들 모두 유니폼이 땀에 흠뻑 젖을 만큼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열악한 상황에 첫 출전에도 불구하고 1인제 7위, 2인제 5위, 3인제 4위라는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대표팀에서 타 국가 선수들에게 나눠주려고 준비해 간 족구공은 대회 첫날 동날 만큼 관심이 뜨거웠고 실제 조이킥스포츠 유니폼을 입고 뛰는 국가들도 있다 보니 종주국 선수라는 자부심과 족구 홍보단으로서의 역할을 잘 해낸 것 같아 굉장히 뿌듯했습니다. 교회를 다니지는 않지만 성경 속에 이런 구절이 있죠. '너의 시작은 미약하지만 그 끝은 창대하리라'라는 말처럼 우리 여자 족구도 세계로 쭉 뻗어나갈 수 있는 그날이 오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Q. 한가해에게 족구란?
A. 족구를 하면서 저에게 약속한 것이 있습니다. 전국 대회 우승 50회입니다. 터무니없고 무모한 도전이라는 것도 잘 알지만 저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 또 노력할 것입니다. 저에게 족구는 제가 뛰어넘어야 하는 바로 '저 자신'입니다.
한가해를 말하는 사람들
신옥희(조이킥스포츠): 가해는 단순하고 직설적인 성격이어서 겉과 속이 다르지 않아 정말 편안하고 좋아하는 동생입니다. 자존감도 강하고 승부욕이 얼마나 강한지 몰라요. 동료들에게는 따뜻하지만 자기 자신에게는 정말 차갑고 엄한 스타일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엄청나게 많은 노력을 하는 선수입니다. 이러한 덕목은 공격수들이 꼭 갖춰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가해는 그러한 것들을 갖춘 선수이기 때문에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선수입니다.
박수훈(여주시민): 한가해 선수는 처음 만났을 때 착한 동생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경기장에서의 모습과 경기 후 대화를 나누어보면 강한 여전사의 느낌이었습니다. 공격수로서 꼭 필요한 부분이 승부욕과 근성인데 확실히 그러한 것들을 잘 갖추고 있어서 앞으로 기대가 되는 선수입니다.
한륜경(수성구체육회): 체전부 공격수 중 유일한 왼발잡이 공격수이다 보니 수비 시스템을 반대로 해야 해서 상대하기가 많이 까다롭습니다. 공격수임에도 수비력이 좋고 수비 범위가 넓어 연타, 페인트도 잘 잡아주는 선수이고 무엇보다도 체력이 상당히 좋은 것 같습니다. 여성부에서는 안축 차기 파워가 좋은 공격수가 많지 않은데 안축 파워가 좋은 데다가 어떠한 세팅에도 흔들림 없이 처리해 주어 정말 기량이 좋은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상대할 때 보면 동료들이 실수를 해도 격려해 주고 팀을 이끌어가는 모습을 보니 리더십까지도 갖춘 것 같아 앞으로 좋은 경쟁 상대가 될 것 같습니다.
장한빈(일등가): 단기간에 엄청난 노력으로 우승이라는 업적을 이룬 선수가 아닌가 싶습니다. 특히 A 쪽으로 두 발 다 점프해서 틀어치는 모습은 어지간한 남자 선수 이상의 기량을 갖춘 것 같고 여성부에서 기술이 또 한 번 발전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취재에 응해 주시고 칼럼 쓰는 것을 허락해 주신 한가해 선수와 도움 주신 다른 선수들에게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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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족구100인클럽 원문보기 글쓴이: 송한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