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제49호
- 공식명칭 : 예산 수덕사 대웅전 (禮山 修德寺 大雄殿)
- 지정일 : 1962.12.20
- 분류 :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불전
- 수량/면적 : 1동
- 시대 : 고려시대
- 소재지 : 충청남도 예산군 수덕사안길 79 (덕산면, 수덕사)
수덕사는 덕숭산에 자리잡고 있는 절로, 절에 남겨진 기록에는 백제 후기 숭제법사가 처음 짓고 고려 공민왕 때 나옹이 다시 고친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또 다른 기록에는 백제 법왕 1년(599)에 지명법사가 짓고 원효가 다시 고쳤다고도 전한다.
석가모니불상을 모셔 놓은 대웅전은 고려 충렬왕 34년(1308)에 지은 건물로, 지은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중의 하나이다. 앞면 3칸·옆면 4칸 크기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한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앞면 3칸에는 모두 3짝 빗살문을 달았고 뒷면에는 양쪽에 창을, 가운데에는 널문을 두었다.
대웅전은 백제 계통의 목조건축 양식을 이은 고려시대 건물로 특히 건물 옆면의 장식적인 요소가 매우 아름답다. 또한 건립연대가 분명하고 형태미가 뛰어나 한국 목조건축사에서 매우 중요한 문화재로 평가 받고 있다. [문화재청]
예산 수덕사(修德寺)
수덕사는 조계종 7교구 본사로 충청남도에는 공주 마곡사와 예산 수덕사가 본사로 되어 있으나 사실 한말(韓末)까지만해도 가야산 가야사보다 사세가 작았던 듯 하며 이후 경허(鏡虛)스님과 만공(滿空) 스님으로 이어지면서 근대 선찰(禪刹)의 명성을 얻게 되었으며 5대 총림중 하나인 덕숭총림이 있는 규모가 큰 절이다.
백제 말 창건되었다고 하나 정확한 사실의 기록은 전하지 않는데 수덕사에서는 백제 위덕왕때에 지명법사가 수도 사비성 북부에 수덕사를 창건하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고려시대의 기록은 전하지 않으며 조선시대 들어와 임진왜란때에 대부분의 가람이 소실되었으나 대웅전은 다행이 옛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수덕사의 여종(1966년, 송춘희)이라는 노래가 유행하여 수덕사가 비구니 절로 오해 받기도 하는데 환희대와 비구니 선원 견성암이 있기는 하지만 비구니 절은 아니며 일엽스님(김원주) 이야기가 전해져 그리 인식된 것으로 보인다.
대웅전(大雄殿) (국보 제49호)
정면 3칸, 측면 4칸의 건물이지만 정면 칸은 넓고 측면 칸은 좁아서 정사각형에 가까운 구조이며, 배흘림 기둥에 넓은 칸으로 지어 놓으니 안정된 느낌을 주는 겹처마 맞배지붕에 주심포계 건물이다.
<주심포 맞배지붕의 느낌이 깔끔한 수덕사 대웅전. 높직한 축대위에 정면 3칸마다 큼직하면서도 정갈 단아한 3분합 문짝이 아름다운 고려시대 목조 건물인데 배흘림 기둥이 받치고 있는 겹처마 기와지붕이 충분히 크고 넓어서 안정된 느낌이다. 앞마당 삼층석탑은 여래탑이라고도 부르는데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03호이다.>
<대웅전 안에 모셔진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이 모셔져 있는데 불상에서 나온 복장유물, 수미단과 함께 보물 제1381호이다. 수덕사 중흥조 만공선사가 남원 만행산 귀정사에서 옮겨왔다고 한다.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약사불, 왼쪽에 아미타불을 모셨다.>
수덕사 대웅전은 백제계 고려시대 목조건물로 봉정사 극락전, 부석사 무량수전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손꼽히는 곳인데 1937년 대웅전을 수리, 보수하던 중에 "至大元年戊甲四月十七日立柱"라는 묵서명(墨書銘)을 발견함으로써 건립연대가 1308년(충렬왕34)임이 밝혀졌다.
1937년부터 4년간 대웅전을 해체, 수리하는 공사에 참여했던 임천(林泉 : 1908~1965)이 단청과 벽화를 모사하던 중 모사중에 1528년(중종 23) 단청을 개채(改彩)했다는 기명을 발견하고, 모사하던 벽 내면에 있던 밑그림이 원래의 것임을 확인했으며, 벽화가 그려졌던 벽체를 분리하던 중에 "至大元年戊甲四月十七日立柱"라는 묵서명을 발견 한 것이다.
그러나 그대로 방치되었던 원래의 벽화는 6·25전쟁 때 파괴되었고 현재는 임천의 모사도 일부만이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하는데 이들 벽화는 건물 결구 사이의 작은 공간에 그려진 것으로 모두 40점이며, 주로 소불삼체, 주악비천, 나한도, 청·백 극락조, 수생화, 야생화 등을 그린 장엄용 벽화들이라고 하니 못내 아쉬운 일이다.
<대웅전 내부는 서까래와 기둥 등 목재 결구들이 그대로 드러난 구조인데 내부 실내장식 마감이 완벽한 건물보다 더 조촐하고 아름다운 느낌이다. 대들보에 희미하게나마 남겨진 그림은 금룡도(金龍圖)로 보이는데 사라진 벽화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대웅전 건물 외부 측면, 일제강점기때만해도 풍판(風板)이 달려 막힌 구조였다는데 지금은 탁 트인 모습이다. 5칸의 면 분할도 균형이 잡혀 보기 좋고 목재가 그대로 드러나 건물구조를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는데 기둥위에 가로로 걸쳐진 툇보와 대들보, 종보가 그대로 보이며 특히 지붕아래에서 그 무게를 받치는 소꼬리를 닮았다는 우미량(牛尾樑)은 곡선으로 파도치듯 이어져 매우 아름답다. 겹처마 지붕아래로는 11줄의 도리가 보여 11량(梁)의 큰 지붕임을 알 수 있고 모든 기둥은 둥근 배흘림 기둥인데 측면 5개의 기둥중 대들보를 받치는 가운데 가장 높은 기둥만 네모꼴 기둥이다. 노란색으로 칠해진 벽면에 다양한 벽화가 있었다는 것이다.>
수덕사는 남북한 통털어 몇 안되는 고려시대 목조건물을 온전하게 보유한 절집이다.
최근들어 대단한 중창불사로 대형 산문(山門)을 비롯해 크고 화려한 건물과 조형물들이 가득하지만 대웅전 하나에 미치지 못한다.
뿐만아니라 경허 - 만공으로 이어지는 근대 선승(禪僧)들의 계보는 전강 - 송담으로 지금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으며 만공스님하에서 출가했던 일엽(一葉) 스님과 나혜석 이야기는 한말(韓末) 신여성들의 시공을 넘나드는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을뿐 아니라 절문앞 덕수여관은 고암 이응로 화백의 이야기가 담겨진 곳이니 국보 제49호 대웅전을 품고 있는 수덕사는 이래저래 한번은 들려야 할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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