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겨울은 기상관측 이래 가장 눈이 적게 내린 겨울이다
겨울의 끝자락인 2월에 월출산에 들어가 첫눈을 맞는 기쁨을 맛보았다
월출산은 서편제 가락처럼 늘어지는 남도의 풍경 속에 마왕의 성처럼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느닷없음과 풍경의 부조화가 월출산의 특징이다.
월출산은 근육질 남자처럼 위풍당당하다.
기(氣)가 넘쳐나서 불꽃처럼 치솟은 젊음의 산이요, 사랑의 산이다
11명의 회원이 성당 승합차와 등반대장의 승용차에 나눠 타고 월출산으로 향했다
월출산은 세번째이지만 오늘은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금릉경포대계곡에서 산행을 시작하였다
금릉경포대(金陵鏡布臺)계곡은 천황봉과 구정봉에서 시작한 계곡수가 남쪽으로 흘러내려오는 곳이다.
동해안 강릉의 경포대와 이름이 같지만, 가운데 한자가 개포(浦)가 아닌 펼포(布)를 써서 경포대(鏡布臺)다.
또한 이곳은 바다가 아니라 첩첩산중의 계곡이라는 점이 다르다.
잘 닦여진 등산로를 따라 한 시간 가량 걸어서 약수터에 당도하였다
약수는 약수답지 않아서 외면했지만 쉼터는 잘 조성되어 있어서 잠시 쉬어 갔다
'달 뜨는 산’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월출산은 그이름처럼 달이 뜨는 모습이 아름답다.
때문에 예부터 이 산에는 늘 ‘월(月)’자가 붙어다녔다.
백제·신라 때에는 월나산(月奈山), 고려시대에는 월생산(月生山), 조선시대부터 월출산(月出山)이라 불렀다.
무성하게 우거진 산죽 위로 올해 처음 보는 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다
다니엘이 대나무 잎을 보면 동치미를 담그시던 어머니 생각이 난다고 해서 모두가 공감하였다
고구마를 삶아서 시원한 동치미와 함께 먹던 그 시절이 아련하게 그리워졌다
천연 방부제 역할을 하는 대나무 잎을 넣으면 동치미 국물에 하얀 찌꺼기가 뜨는 걸 방지해 주었다
또한 국물 맛이 오래도록 변하지 않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경포대능선 삼거리에 올라서서 간식을 나눠 먹으며 올해 처음 보는 눈발을 바라보았다
월출산처럼 사람의 시선을 한눈에 사로잡는 산도 드물 것이다.
보통의 산들은 다른 산맥과 능선이 이어지지만 월출산은 주변에 아무런 산이 없어 마치 거대한 바위산을 뚝 떼어놓은 듯한 형상이다.
때문에 장중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고스란히 감상할 수 있는 보기 드문 명산이다
가파른 철계단을 올라서니 통천문(通天門)이 막아서며 고개를 숙이기를 강요한다
이곳을 지나가기 위해서는 허리를 굽히는 통과의례를 해야 한다
이 굴을 지나야 천황봉에 오를 수 있다.
통천문이란 이름은 월출산 최고봉인 천황봉을 지나 하늘로 통하는 높은 문이라는 데서 유래되었다
누구나 정복해야 할 산은 욕망의 화산이니
설화 빙화 상고대가 추우면 나도 춥고
겨울나목이 배고프고 목마르니 나 또한 고프고 마르고
생의 인감도장을 찍듯이 발자국을 새기며
산 아래의 내가 산꼭대기의 나를 찾아가는 길
입산의 내가 하산의 나를 만나 꺼이꺼이 악수하는 길
영혼의 희디흰 밥, 무욕의 겨울 산이 부른다..............................이원복 <상고대> 부분
드디어 월출산의 최고봉인 천황봉(809m)에 올라서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멀리서 보면 베일 것처럼 날카롭기만 한 천황봉마저도 정상에 오르면 딴판이다.
300여 명은 족히 앉을 만큼 넓은 반반한 바위가 갈려있어 안방처럼 넓기만 하다.
천황봉은 아래서 올려다보면 남성이요, 위에서 내려다 보면 여성이다
정상에는 월출산 소사지(小祀址)라는 제단이 있다.
통일신라 시대 이래 국가 차원의 천제(天祭)가 올려지던 곳이라는 표지다
상고대가 얼어붙은 소나무가 지극히 아름다워서 발길을 멈추었다
봄꿈에 젖어있는 겨울나무들은 떠나니는 물방울을 불러모아 이토록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손대면 사라져버리는 얼음꽃은 순간순간 변하는 인간의 마음인지도 모를 일이다
얼음 계곡을 가슴에 품고
불덩이 하나 뜨겁게 삼킨 산,
침묵하고 침묵하는 저 산자락이
잡목들 싸리나무 함께 기르는
저 넉넉한 모성의 산자락이
이렇게도 나무들 발가벗겨
혹독한 바람 앞에 몰아세우다니
그 뿌리를 얼음에 파묻다니
기어이 차고 올라가 하늘 한 자락
저토록 선명하게 자를 수 있다니.................................김완하 <겨울산> 부분
오랜만에 나온 마르도니오 부부가 월출산을 더욱 젊고 사랑스럽게 변모시켰다
조선시대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월출산을 ‘화승조천(火昇朝天)의 지세, 즉 아침 하늘에 불꽃처럼 기를 내뿜는 기상이라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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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근석 | | 남근바위 |
월출산은 기(氣)의 산이다.
청춘남녀의 뜨거운 사랑으로 에너지가 넘쳐 생명력이 충만하기 때문이다.
적나라한 모습을 보여주는 남근의 모양을 보고 왜 이런 이름이 붙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구정봉 아래에는 여성의 국부를 닮은 음수굴이 있어 음양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죽어서야
다시 사는 법을
여기 와서 배웁니다.
모든 것을 잃었지만
모든 것을 갖고 있다고
모든 이와 헤어졌지만
모든 이를 다 새롭게 만난다고
하얗게 눈이 쌓인 겨울 산길에서
산새가 되어 불러보는
당신의 이름..............................................이해인 수녀 <겨울산에서> 부분
우리는 바람재에서 천황봉을 머리에 이고 앉아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오늘이 바로 정월대보름이라 오곡밥에 고사리나물, 취나물, 시래기나물 등이 풍성하였다
누구는 월출산을 아름다운 ‘나신’으로 비유한다.
바위산인 월출산은 그 아름다움을 다른 육산처럼 숨기지 않고 다 벗어 보여준다는 것.
단 그 아름다움의 감동은 산을 높이 오를수록 커지기 때문에 한 발 두 발 올라야 그 감흥을 차지할 수 있다.
식사 후, 구정봉에 올라갔다 하산하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모두 함께 하산하기로 결정하였다
월출산은 이름에서부터 달이다.
달은 여성을 상징하면서 음의 극점이다.
그런데 월출산은 단단한 바위산이다. 여기에 월출산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양기의 암석이 불꽃처럼 부드럽게 여성적으로 빚어짐으로써 음양이 날카롭게 대립하면서도 동시에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남성적이면서도 여성적이고, 여성적이면서도 남성적인 오묘한 기운을 내뿜고 있는 산이 월출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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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보전의 정면 | | 극락보전의 측면 |
돌아오는 길에 근처에 있는 무위사(無爲寺)에 들렀다
극락보전(보물 제13호)은 수덕사(修德寺) 대웅전과 가구의 방식이나 공포의 짜임이 비슷하다.
조선 후기 건축에 비해 단순·간결한 구성을 보이며 빛바랜 단청의 색조도 장중하다.
극락보전은 정면보다는 측면에서 보아야 기막힌 면의 분할을 감상할 수 있다
극락전 옆을 돌아서 숲으로 들어서니 아름드리 동백나무 군락이 있었다
이곳의 동백은 3월이 되어야 개화하는데 성질 급한 놈들은 벌써 벌어져 있었다
심지어는 이미 땅에 떨어져서 눈을 부릅뜨고 있는 꽃송이도 있었다
'가장 눈부신 꽃은.. 가장 눈부신 소멸의 다른 이름이라'는 싯귀가 떠올랐다
떨어져 누운 꽃은
나무의 꽃을 보고
나무의 꽃은
떨어져 누운 꽃을 본다
그대는 내가 되어라
나는 그대가 되리................................김초혜 <동백꽃 그리움> 전문
무위사 극락전에는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보물 제1312호)과 아미타여래삼존벽화(국보 제313호)가 있다
특히 불화는 1476년 3월이라는 조성 시기를 알 수 있어 불화 연구에 귀중한 기준작이다
나는 무위(無爲)란 단어를 떠올리면 영혼이 가벼워지고 자유로워지는 느낌이 들어 참 좋다
무위(無爲)란 탐냄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가라앉았을 때 나타나는 경지이다.
번뇌에 물든 중생들이 떨치고 건너가야 할 이상향이다
무위란 만질 수도 잡을 수도 없다.
무위를 잡으려는 시도는 물속에 비친 달을 잡으려는 어리석음에 비유할 수 있다.
무위란 그러한 시도들마저 완전히 내려놓았을 때 비로소 드러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무위란 의지적인 결과물이 아니다.
이것은 오로지 비우고 버리는 것을 통해서만 드러난다........................................<법보신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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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매화 | | 목련 |
어느새 봄이 우리 가까이에 와 있음을 느낀다
무위사 앞마당의 홍매화는 이미 피었지만 휘몰아친 강추위에 시들어버렸다
열여섯살 소녀의 초경빛처럼 붉은 홍매화는 수줍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서른두살의 농익은 여인의 젖멍울처럼 부플어오른 목련 꽃송이도 머지않아 하얀 속살을 보여주리라
이 땅의 봄은 마치 사랑굿처럼 은밀하고 신비스럽게 준비되고 있음을 느꼈다
전주로 돌아와서 <고향마루>에서 정겨운 하산주를 마셨다
우리는 아리따운 주인 아줌마의 진솔한 미소와 정성스런 손맛에 빠져들었다
주고받는 술잔을 통해 사랑을 다지고 우정을 돈독히 하는 정월대보름 저녁이 되었다
카페 게시글
山行을 다녀와서
월출산에서 첫눈(?)을 맞는 기쁨을 맛보다
나마스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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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9 15:5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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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추억의 월출산
역시 또 다른 추억을 남겨 주었네요
봄이 오는 길목에서 정말 멋진 추억 만들고 왔네요..
다시 찾고 싶은 산,,, 입니다~
내려오기에 정신없었던 산행에 세세한 산행기와 멋진 장면들
커피 한잔와 함께 음미해 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