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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달라 여자 마리아에게 나타나신 예수(마르코16장9-11절)
제자들의 사명 오북환장로님(1982. 1. 2)
성경 마르코 16장 9- 22절 공동번역
막달라 여자 마리아에게 나타나신 예수(마르코16장9-11절)
‘일요일 이른 아침, 예수께서는 부활 하신 뒤 막달라 여자 마리아에게 처음으로 나타나셨는데 그는 예수께서 일찍이 일 곱 마귀를 쫒아 내주신 여자였다. 마리아는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곳으로 찾아가 이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 계시다는 것과 그 여자에게 나타나셨다는 말을 듣고도 믿으려 하지 않았다.’
두 제자에게 나타나심(마르코16장12-13절)
‘그 뒤 제자들 가운데 두 사람이 시골로 가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습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셨다. 그 두 사람도 돌아와서 다른 제자들에게 이 소식을 전했으나 그 말도 믿지 않았다.’
제자들의 사명(16장14-18절)
‘그 뒤 열 한 제자가 음식을 먹고 있을 때 예수께서 나타나셔서 많이 완고하여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는 그들을 꾸짖으셨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모든 사람들에게 이 복음을 선포하여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받겠지만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기적이 따르게 될 것인데 내 이름으로 마귀도 쫒아내고 여러 가지 기이한 언어로 말도 하고 뱀을 쥐거나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도 입지 않을 것이며 또 병자에게 손을 던지면 병이 나을 것이다.’
예수의 승천 (16장19-22절)
‘주님이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을 다 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느님 오른편에 앉으셨다. 제자들은 사랑으로 나가 이 복음을 전하셨다. 그리고 주께서는 그들과 함께 일하셨으며 여러 가지 기적을 행하게 하심으로서 그들이 전하는 말씀이 참되다는 것을 증명해 주셨다.’
‘그 여자들은 베드로와 그의 동료들에게 들은 모든 것을 간추려 이야기해 주었다. 그 뒤 예수께서는 친히 제자들을 해가 뜨는 곳에서 해가 지는 곳까지 보내신 영원한 후원을 선포하는 거룩한 불멸의 말씀을 전하게 하셨다. 아멘.’
말씀드리기 전에 소감도 되고 고백도 되고 먼저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은 지난해가 지내갔고 새해 이틀이라고 합니다. 거년 생활의 보고라고 할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마는 성경공부를 한다고 10년인가 11년인가 잘 모르겠습니다만 처음 결산이 뭔 말을 했는지도 모르겠고 뭣을 배웠다 뭣을 말했다. 그것도 희미해요. 안 들리면 그냥 놔둡시다. 들을 말도 아니니까, 녹음도 안했으면 쓰겠는데. 거년에나 그 전에는 요런 모임을 가지며는 시간을 독차지했으면 좋겠다, 그랬어요. 말을 시작하려면 시작하다 마는 것 같은 느낌이고. 하고 싶은 말이 안 되어졌어요(다 못했어요). 그러니까 그런 식으로 늘 지금까지 약 10여년 나온 것 같아요. 항상 할 말을 못 했어요. 항상 한다고 하면 뭔 말을 할지도 몰라. 그런데 금년 초하루부터 처음에는 한 달을 앞두고 말은 할 말도 없고. 안했으면 쓰겠는데, 시간은 배정될 것이고, 어떻게 해야 할까? 아무 누가 뭐 괴롭히는 사람도 없고. 아주 호강에 호강이 지칠 정도로 살았어요. 그렇게 자유로운 시간을 허락했는데도, 또 한쪽으로는 불안하고 제일 불안했어요. 왜 그러냐? 헐만한데 뭔 말 하냐? 그래서 다른 때는 의례 것 겁먹었죠. 요전에 짐짓 꾀를 부리고 안 왔어요. 한 시간이라도 막 덜해야 겠다. 그런 뜻입니다. 꼭 한번만 했으면 쓰겠다. 또 앵겼으니, 한번 할 것은 하나 있는 거 그건 조금, 그 어떤 목사의 설교를 듣고 라디오에서 나오는 설교를 듣고, 감화가 조금 받아졌어요. 그것이나 좀 소개할 것뿐이죠, 제가 느낀 건 아니니까.
근데 그건 나중에 두고, 우선은 그럼 한 달 동안은 너무나 자유롭고, 너무나 편하고, 허면서도 마음에는 한 쪽에 근심이 있다. 그런데 그러면 인자 한 시간이 어딘지 얼마나 하던지 준비를 한다. 그래 한 달 동안 준비를 모두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할는지 뭣을 해야 하는지 몰라요. 그 시간 닥치는 대로 보는데, 거년에 공부했던 거 정리도 하고. 그래야 할 텐데 그거는 시간이 없고요. 우선 닥치는 대로, 보여 진 대로라는 것은 문제 하나예요. 뭐냐? 내사명이 뭐냐? 여기 제자들의 사명인데, 우리들 각각의 사명인데, 사명이라는 건 하느님의 심부름, 내게 하느님께서 무엇을 해라고 맡기시는 일. 그에 대해서 성경에는 다 못 봤습니다마는, 예를 들어 사복음에 다 나타났고 만요. 사 복음하고, 사도행전 1장 6절서 8절하고 나타났습니다. 제자들의 사명에 대해서 거기 마태복은 끝장, 누가복음은 끝장, 요한복음은 끝장이 아니고 20장이고, 근데 이자 21장에 가서 예수님이 직접 나타 나셔셔, 베드로에게 나타나셔서, 네가 나를 사랑했으니까, 그러면 인자 양을 치라. 역시 구체적으로 사명을 맡겼죠, 그때까지도 사명을 모르고 도로 어부노릇으로 갔잖아? 그전에 한 버릇도 그전 에 가졌던 직업, 할일이 없으니까 뚜렷이 무슨 너 인자 이거 해라. 그런 지시가 있기 전에는, 그전에 하는 일 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이전에도 그랬지만 특별히 거년에도, 저 할일은 아무것도 없어요. 살림을 뭐 간섭을, 할 것도 없고. 해도 안 되겠지만 할 것도 없고. 무엇을 하냐? 암 것도 없지만은 너는 말씀을 받았지 않느냐? 증거 살아있지 않냐? 이것만 있어야죠. 제가 말씀을 받았냐하면 또 그렇지도 안 해. 그러니까 이건 꼭 그 사명은 좋은 줄은 알지만은, 제일 직업 중에 귀한 직업인 줄은 알지만은, 그거 실력이 없다. 도저히 이거 갖고는 안 되겠다. 제자들도 3년 동안 예수님과 같이 생활한 제자들도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서 대화를 하고 성령을 받기 전에는, 자기 그 전 직업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사명에 관한 문제를 여하간 큰 노트, 요런 정리된 것도 안 가져 왔어. 나는 거기에 대해서도 다 써봤어요. 엇다 써봤냐? 성경에 있는 데는 대략 나타나신데 더 넣고, 여기는 사복음에 오 복음에 나타났어요. 그 외 편지 서에도 사명에 관한 말이 많이 있고. 전 성경이 그것 아니냐 말이야. 각자 각자에게 자기사명을 한 것이라 얘기야.
‘곤솔라따 사랑’이란 책자에서 보니까 처음부터 끝까지가 그 사명이라, 특별히 사명이라는 말이 나온 데만 봐도 굉장해요. 그 저거 뭐고 또 자서전에서 소화 데례샤 자서전에서 좀 빼보고 소화 데례사를 소개한 ‘작은 자여 내게로 오라’고 하는 책자에서도 조금 있고 또 여러 가지 책들이 많이 있어서 적어는 봤으나 그걸 다 어떻게 소개를 하겠습니까? 또 소개할 수도 없고 시간도 없지만은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거, 여기서 제자들의 사명은 뭐 들 것이냐? 여기 21절 공동번역에는 먼저 성경에는 20절밖에 없는데 여기는 22절까지 있거든요. ‘그 여자들은 베드로와 그의 동료들에게 가서 그들이 들은 모든 것을 간추려’ 간추려서 말씀을 해라. 제가 저보고, 지금 10여 년 동안 네가 다른 사람에게 증거 한 것 말씀을 간추려서 말해봐라. 그럼 그럴라면 조금 그게 되죠. 되지만은 나는 그렇게 되어있지를 안 해요. 하기는 해도 돼도. 그런데 될 수 있으면 간추려 보겠습니다만 간추려 이야기하게 주겠다. 그러면 내용이 뭣이냐? 아주 간단해요. 그 뒤 예수께서는 친히 제자들을 해가 뜨는 곳 동쪽 동양 서양 해가지는 곳 서쪽 아닙니까? 서양, 동서양 길게 얘기하면은요, 온 세계, 온 천하에 보내시어 무엇을 전하라했냐? 영원한 구원을 선포하라. 영원한 구원은 어디 있냐? 거룩한 부름의 말씀에 있다. 이걸 전하라. 이것을 성소(聖召)라고 하지요. 부름을 받았다. 거룩한 부름을 받았다. 영원한 구원을 선포하는데 그 내용은 더 붙일 내용은 뭐냐? 거룩한 불멸의 말씀을 전하게 하셨다. 증거를 전하게 하셨는데 당신이 친히 오셔서 협력을 했다. 기적을 행해시가지고.
19절서부터 보면 ‘주님이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을 다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느님 오른편에 앉으셨다.’ 근데 앉으셨다가 내려 온데는 없습니다. 그러놓고 하느님 오른편에 앉아계셨는데, 언제 오셨다는 말은 없는데 ‘제자들은 사방으로 나아가 이 복음을 선포하였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일하셨다.’ 함께 함께, 사명은 예수님이 함께 하시는데 있다 네요. 자기 스스로, 그러니까 요. 시간이 하느님이 허락한 시간이요. 하느님의 역사에서 이루어졌다면 우리에게 말하셨다. 자기시간이 앵기는 데, 안한다고 할 수도 없고 하느님의 말씀인데, 하느님 명령이라 하면은 안 할 수도 없고, 명령이 아닌데 할 수도 없고, 안 한다 한다도 역시 확실한 하느님의 명령이라는 하느님의 계시라는 확신이 없기 때문에 그러지 않냐? 사양을 한다거나 또 자진해서 하고 싶다거나 그것도, 주께서 그들과 함께 일하셨으며 함께, 말하자면 함께 하셨다 그 말은 우리에 힘이 되고 좋은 말씀이지만은 실상은 단독으로 됐습니다. 단독으로 그 어디 있냐? 그러니 함께도 있고 단독도 있다고 할 수도 있고 그래요. 진짜 구체적으로 들어가서는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서는 단독, 단독 분담입니다 분담.
로마서 15장
바울로의 사도직14절
‘형제여러분 나는 여러분이 더할 나위 없이 마음이 너그럽고 지식이 풍부하여 서로 충고할 만한 능력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이쯤 됐으면 다시 이들에게 권면할 필요도 없을 것 같지 않습니까? 믿음의 소유도 됐고 지식도 충분하고 서로 권면할 수 있는 실력이 충분히 있으니까 거기다가 뭐 다른 권면이 없어도 되겠는데, 근데 15절을 보면 다만 내가 이 편지에 가끔 지나칠 정도로 강조해서 말한 것은 하느님께서 내게 은총으로 주신 사명 은총으로 주신 사명을 다 알기 위해서 여러분의 기억을 새롭게 하려는 것입니다. 기억을 새롭게, 이미 들은 말씀이었더라도 새롭게, 기억하고 있는 말씀이라도 새롭게, 새롭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명은 내가 이방인들을 위한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으로서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제의 직무를 맡아 성령으로 거룩하게 된 이방인들을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아주실 제물이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사도의 사명, 영원한 구원과 거룩한 불멸의 말씀을 증거 해서 성령으로 거룩해 되게 해서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아주실 제물이 되게 하는 것,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 예수와 한 몸이 되어 우리 사명이 어디까지이냐? 예수와 한 몸이 되는데 까지만 있다. 되어 하느님을 위하여 일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하느님을 위해서 일한다. 그것이 사명이야. 성령으로 거룩하게 되어서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아주실 제물로 만드는 것이 사도들의 사명이다. 그럼 우리들의 사명도 그래야 되지 않겠습니까? 자신이 먼저 거룩한 성령으로 되어서 하느님께 바쳐지는 제물이 되어야 한다.
17절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 예수와 한 몸이 되어 하느님을 위하여 일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18절 '일반인들을 하느님께 복종시키신 분은' 이것이 인자 단독. 바울사도 단독이 뭐냐? 정신, 마음을 끌어서 하느님께 복종시킨 분은 예수님이 단독 그럼 그렇게 하시는데 협력이 무엇이냐? 협력, 몸이 되어 드린다. 예수의 몸이 되어드린다. 지금 예수님은 몸으로 계시지 않으니까 몸으로는 벌써 승천하셨고 성령으로 오셔서 역사하시니까 인자 우리 몸을 빌려서 쓰신 활동하신다. 믿는 자의 몸을 빌려서 예수님이 활동하실 텐데 너는 내 몸 되어 다오. 너는 내게 바쳐라. 거룩한 제물이 돼서 성령으로 거룩히 돼서 내가 쓸 수 있는 제물이 되라. 그리해야 사명을 한다.
‘이방인들을 하느님께 복종시킨 분은 그리스도이시고 나는 다만 그분의 일꾼노릇을 했을 따름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아주 강하게 주장하고 싶은 그 바울사도 일꾼은 한 몸이 되어 몸만 빌려 드리는 것. 몸을 다 바쳤어. 마음과 모든 정신을 다 쏟아서 다 바쳐버리고, 전부 바치고 그래서 몸이 되어 드린 것뿐이고. 그의 사명을 하는 것이고. 예수님은 바친 그 몸과 그 마음을 붙들어서 그 안에서, 그 몸을 통해서 그 마음을 하느님께 복종시킨다. 각자, 각자 마음을 하느님께 복종시킨다. 19절 나는 그 분에게서 기적과 놀라운 일을 할 수 있는 힘, 이 힘을 받아야 한다. 곧 성령의 힘을 받아 예루살렘에서 일리리쿰에 이르기까지 두루 다니면서 말과 행동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남김없이 전파했습니다. 말과 행동으로, 보통은 말만이 될 수 있고 행동은 없고, 행동은 무엇이냐? 예수님의 한 몸이 되어 드리는 것, 자기행동이 있으면 안 되는 거, 그러면 여기 사명을 하려면 첫째, 사명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있어야 이루어져야 되지 않겠습니까? 자격!
다른 복음서에도 다 사명이라는 말이 있지만은 여기 마가복음 16장에만이 더 자세히 사명을 할 수 있는 자격에 대해서 자세히 말해놨습니다. 첫째 자격이 뭐냐? 믿음이 있어야 되요. 믿음!
막달라 여자 마리아에게 나타나신 예수. 9절
일요일 이른 아침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뒤 특별히 누구한테 먼저 나타났냐? 막달라 여자 마리아, 대개 처음으로 나타나셨는데 그 여자는 죄인대표 아닙니까? 제일 죄 많은 사람을 들먹일라면 제일 죄 많은 사람, 복음은 뭐냐면, 제일 죄 많은 사람이 복음이거든요. 제일 죄 많은 사람을 발견한 사람이 복음이에요. 그 사람과 예수님과의 관계가 있어. 거년 일 년 우리 정신적인 수확이 뭐냐? 각자 수확이 뭐냐? 다 있겠지. 있지만은 얼만큼 죄를 많이 발견하게 됐느냐? 그것이 풍부한 농사 아니겠습니까? 그만큼 예수와 가까워진다.
어제 이 선생님의 기도 소개를 들으셨죠? 여러분도 알고 계시죠. 뭣이 제일 행복이냐? 자기가 죄인 됨을 아는 것이 제일 행복이다. 왜 그러냐? 예수님이 그만큼 가까이 오셨다는 증거다. 그러니까 죄를 많이 발견한 사람과 예수가 가까워져, 저는 죄가 모르는 사람과 예수하고는 상관이 없다 말이다. 복음이 아니에요, 그건 한 도덕설에 불과하지 복음은 아니란 말이에요. 복음은 뭐이냐? 제일 죄 많은 사람에게 해당 되는 게 복음이야. 그 사람에게 예수예요. 구주이신 예수는 죄인을 보러오셨으니까.
마리아는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었다. 왜 이렇게 됩니까? 아 제자들이 남자들 똑똑한 남자들 제자들인가? 또 3년 동안 따라다녀서 예수님과 진짜 기적도 보고 갖가지 기적을 보고 하느님의 능력을 키우고 목격한 사람들 아닙니까? 근데 이 때 와서 왜 슬퍼하고 있느냐? 자기가 할 일이 없어요. 3년 동안 예수 따라 댕기며 일도 허망해버렸어. 기대도 어그러져 버렸어. 기대가 허무러져 버렸어요.
우리 신앙경로도 다 여기 한 번 있어야, 이거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없어서는 안 될 일 아닙니까? 다 나, 신도 분은 누구든지 간에 제자들이 이랬다면 우리경로 우리의 신앙경로도 이거 있어야 됩니다. 완전히 허물을 발견한다. 슬퍼하며 울고 있는 곳으로 찾아 갔어요. 제일 죄 많은 여인이, 아니 남자들 제자들 순례자들 당신들 왜 그렇게 슬퍼하고 있어? 아 예수님은 살아나셨습니다. 왜 그러고 있습니까? 그러니 누가 먼저 복음을 전했냐 하면은 제일 죄 많은 여자가 가서 전했어. 제자들이 나서지 않았어? 그렁께 여기도 여자들 수가 많잖아요? 어디든지 여자들 수가 많잖아요? 여자들이 복음을 전해요. 그 중에도 죄 많은 여자, 자기가 죄에서 해방을 받은 만큼 기쁘고 기쁜 소식을 전할 수밖에 없죠. 저는 어떤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이 있다면 그랬는가? 흔히 제게 그런 사명을 허락할 것인가? 어떤 사람이 전하면 근다보면 제 체험대로 느끼기밖에 못하거든요.
세상 모든 것을 기대하고 살아보다가 다 허무로 돌아가서 절망에 빠진 사람을 만나거든 네 체험대로 가서 증거 해 줘라. 너도 그런 절망에 빠져봤지 않냐? 아마 그것이 죄 사함이 아닌가 모르겠어요. 그렁게 엉뚱하게 그렇지 않은 사람하고 얘기를 하니까 안 되거든요. 어제 그런 말 들었잖아요? 오후시간에. 신앙상담과 대화를 하려면 그런 상대가 있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이런데 그런데 마음은 안 통해. 할 말은 많지만은 안 되어요. 왜 그러냐? 안 돼.
또 그것이 통하면 뭣하냐? 사람하고는 안통해도 된다. 예수님하고만 통하면 된다. 예수님하고 통한 사람끼리 통할 수 있는 것이지. 사람끼리만 통하는 것 갖고는 통하지 않습니다. 부분적이 극소 부분적인,
그러나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시게 된 것과 그 여자에게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도 믿으려 하지 않았다. 믿음이라는 건 선물 아닙니까? 선물, 하느님의 주신 은사지, 사람에게는 없는 거거든요. 본디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요, 믿음은. 믿어 보려는 욕심은 있다하더라도 그건 믿음은 아니거든요. 믿음은 선물이에요. 은혜요. 그렇게 3년 동안 죽을 고생을 다하고 모든 걸 다 바치고 그러면 예수를 친히 따라 댕김서 갖가지 기적과 그 예언자적 능력을 다 체험해 목격했으나 자신은 그런 체험이 있기 전까지는 슬퍼할 밖에야. 허망해. 자신이 아직 부활의 체험을 안했어요. 자신이 아직 죽지를 안했어요. 옛사람 그대로임. 암만 예수를 따라 댕겼어도 예수의 친히 하신 말씀을 듣고도 같이 살았어도 옛 사람이에요. 우리 새해를 맞는다고 새 사람 되나요? 날짜는 똑같은 거. 다 알게 지내가 버린 것, 새해에 새 마음을 갖자, 새 마음이 어디가 있어요? 다 이 옛 마음이야. 그게 안 믿어진다. 믿으려하지 않으니 친히 보고, 보고 와서 그 사실을 증명해도 그렇게 안 믿어진다. 재 조금 정신이 돌았다. 역시 그 죄인 본받아 돌아왔구나. 그러고 의심을 합니다. 믿지를 안 해요 제일 하느님 앞에 죄라면 뭐냐? 다른 건 다 그만두고 어떤 목사도 그렇게 소개를 합디다. 믿지 않는 게 죄다. 믿지 않은 거 하늘의 섭리를 믿지 안 해, 또 사람도 서로 믿어주질 안 해, 사람은 믿을 필요가 없고 믿어서도 안 되지만 그 사람에게 나타난 하느님의 역사는 믿어야 하지 않냐? 하느님을 믿는 거예요. 그 사람 그 사람 개인 안에 하느님의 섭리가 있다. 하느님의 역사가 있다. 그걸 믿으라는 것이지. 그 사람 거 딱 그 사람을 믿으라는 게 아냐. 12~13절
요것은 누가복음에 24장에 더 세밀하게 나타나죠.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두 사람이 시골에 가고 있을 때 예수께서 다른 모습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셨다. 그 전에 뵈었던 예수가 아니니까 다른 모습, 모습이 달라져버렸으니까, 알 턱이 있어야지. 부활하신 예수니까 몰라요. 그 엠마오란 말은 그 전에 어떤 신학교수께서 여기 와서 말씀하셨는데 여러 가지 한 댓 가지되는가? 그런데 한 가지는 뭐이냐 하면은 내동맹이 쳤다 그래요. 다 내 동족이 버려버렸는데 또 가 할일이 없으니까 고향이겠죠? 자기고향 갈 데가 있어야죠. 저도 아무 갈 데가 없어요. 뭐 인사로 도리로 오란 데는 있어. 그러나 가서 내가 뭣하냐? 아무 힘 못준다. 대신 무거운 짐만 지어준다. 큰 갈 데도 없고 있을 데도 없는데 그럼 어디가 있냐? 할 수 없이 있는 자리에 있지. 어디 다른데 없어. 이번 시간 마치면 얼른 있던 자리로 가야된다. 그것 밖에 없으니까.
두 사람도 돌아와서 예수께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셨다. 그 두 사람도 돌아와서 여기 간단하게 썼죠. 거기는 조금 질게 써졌는데 두 사람도 돌아와서 다른 제자들에게 그 소식을 전했다. 역시 또 다른 사람들도 아직 곧 예수 보지 못한 사람들, 부활하신 예수를 못 만난 사람들한테 증거 했겠죠. 또 서로 봤다는 사람들이 모두 증거를 모았죠. 이 소식을 전했으나 그들은 그 말도 믿지 않았다. 이 사람들 좀 돌았구나. 안 믿어져, 그러니까 믿는 것은 은혜여, 그러니 안 믿어진다. 믿어야한다 해서 믿을 인간이 아니라 은혜니까 믿고 싶어 하는 마음은 있겠죠? 있지만은 믿어진 건 아니야. 뭣을 믿느냐? 하느님의 지금 각자 영을 알아서 역사하신다. 계시다 못 믿어.
또 14절은 두 번, 또 여기 11절 13절 14절 한 네 번 있다. 믿지 않았다. 그 뒤 열한제자가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나타나셨다. 그럼 요 말은 뭐하려고 썼는가?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나타나셨다. 음식이 마친 뒤에 나타나시지. 왜 하필 밥상 받고 있을 때에 나타나셨냐? 그 말은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그 말은 뭐 하려고 거기다 썼냐? 음식을 먹고 있을 때 밥상 받고 있을 때 나타나신다. 밥상 끝나기 전에 나타난다. 뭔 말이에요? 무슨 말이겠습니까? 의식주에 고민하고 있을 때, 의식주 문제를 가지고 확실히 해결을 못했을 때, 좀 해결해보고 싶은 간절한 욕망이 있을 때, 언제나 이걸 초월 하냐? 의식주문제를 초월하느냐? 왜 여기서 매여가지고 종살이 하고 있냐? 그것을 절실히 느꼈을 때 거기에 닿지 않은 사람은 그것을 고민할 거 없죠? 뭐 서로 의지하고 사니까.
여기 단체생활하기 전 개인 사생활 할 때는 항상 의식주문제가 사로잡혀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살았어요. 뭐 기술이 있다하더라도 그때는 끼니가 걱정이다. 내일 먹을 것이 없어, 똑 떨어져, 하여튼 할 수 없죠. 뭐 하느님께 맡길 수밖에. 그때는, 그럴 때 인자 참 기적같이 어떻게 딱 먹을 게 생기게 될 때는 감사를 느끼게 된다. 이제 하느님이 하느님께 있구나. 의식주 문제는 매일 풍부한 생활을 하고 있을 때는 그걸 못 느끼지 않습니까?
요새도 제 생각으로는 아 이쪽저쪽 사람들 접촉 안하고 가만히 자신의 신앙만 기르고 어디가 혼자 있으면 쓰겠다. 그러는데 의식주를 어떻게 하느냐? 그것이 안 되니까 못 하겠다. 긍게 인자 암것 안 해도 다해주고 해주니까 아무 그건 걱정할 것은 없죠. 없지만은 그 대신 마음이 걱정이다. 일상이 왜 이러냐? 일상이, 너무나 호강에 빠져 이리돼서 되겠냐? 이것이 어떻게 일이냐? 이래서가지고 되겠냐? 또 그렇다 해서 무엇을 한다 해도 안 되고. 할 수도 없고. 할 수도 없는 몸이지만. 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또 일이냐? 다 그건 허무한 건 아니냐? 아무 할라 그래야 하고 싶어도 할 일도 없고. 해도 될 것 아니고. 다 그 일은 다른 사람에게 다 맡기고 네 할 일은 뭐이냐?
도무지 믿으려 해도 안 돼. 이건 예수님이 그걸 모르시는 것 아니에요. 그건 아시면서도 이 성경말씀은 후대사람을 위해 해놓은 것이니까. 우리들 보는 사람의 성경이니까 내겐 말이 각자 내게 여러분에게 여러분은 그게 들리니까, 그 때 제자들 하고는 상관없다. 도무지 믿으려하지를 안 해요. 죽을 각오를 하고 다 바치지를 못해요. 저번에 라디오에서 목사님 그런 설교가 나옵디다.
로마서 7장에 가서는, 그 말을 듣고 내가 세어봤어요. 세보니까 이 ‘나’ ‘나’란 말이 한 30여차 있어요. 제8장에 가서는 인자 그 ‘나’라는 게 없어요. 그러고 성령 안에 나. 성령 안에 서로를 빛내. 로마서 7장에도 몇 군데는 옛사람 죽고 새 나가 있고. 4절 6절에는 죽고 새 나가있죠. 옛 나, 옛 나에서는 안 된다. 그렁게 제자들도 아직 그때까지 의식주문제를 해결 못한 상태니까 옛 나란 말이야. 옛 나는 죽고 새 나라야 해. 성령께 사로잡힌 새 나라야 해. 완전 거듭난 새나가 아니란 말이야.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난 것을 분명히, 분명히 본 사람들의 말도 믿지 않았던 것이다'. 분명히 봤는데 목격하고 친히 하신말씀을 듣고 살아나신 분의 말씀을 듣고 너는 네 형제들한테 전하라’ 그래서 그 사명을 받아갖고 전했는데도 안 믿어요. 믿으려하지 안 해요. 분명히 본 사람들의 말도 믿지 않았다. 믿지 안했다 믿지 안했다 하는 네 번 있어. 네 번, 제자들이 그랬다면 모든 것을 바치고 예수님과 3년 동안 갖은 고생을 다 겪어가면서 그렇게 따르는 사람들이 그렇게 의심을 하고 안 믿었다면 우리들은 어쩌겠습니까? 비교를 해봅시다. 우린 아직 다 바치지도 안했고 이거 따라 댕기지도 안했고 전적으로 예수만 따라댕긴 사람들인데 말입니다. 다 살림도 다 치워버리고 바쳐버리고 내던져버리고 그물망 배낭 싹 던져버리고 예수님 친히 전도 여행하시는데 3년간 다 댕겼다 말이요. 그런 사람인데도 또 예수님 친히 십자가 지시기전에 제자들에게 몇 번이고 그 말씀을 하셨거든요. 내가 제사장들한테 붙잡혀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죽어가지고 사흘 만에 부활한다. 많은 고난을 겪은 뒤에 죽고 부활한다. 그걸 증거 했건만 깜빡 잊어버렸어요. 잊어버려요. 그 말조차도, 그러니 대개 우릴 보면 우리가, 우리는 믿는 건가? 그러니 잘 믿는다. 그러겠죠? 그런 상태에 있는데도 인제 15절은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모든 사람에게 이 복음을 선포하여라. 이럴 사람들인데 그렇게 믿음이 없어 쓰겠느냐? 꾸짖었어. 믿음 없는 걸 꾸짖었어. 그러나 그건 예수님의 그 꾸짖은 것과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이 꾸짖은 마음과는 틀리죠. 예수님은 그 실력 그대로를 다 아시면서 꾸지람하신 것이고. 사람들이 하는 건 그것이 아니거든요. 너희들은 그럴 수밖에 없다. 사람은 그런 것이다. 그런걸 보여주는 것뿐이지. 왜 너희들 그러냐? 그게 아니란 말입니다. 그런 꾸지람은 저한테 하는 말입니다. 각각 성경 본 사람한테 하는 말이지. 제자들은, 너희들 그러나 사람은 그런 것이다. 내가 이 말 증거 하지 않았냐? 했지만은 너희들 지금 믿지 못하지 않냐? 이렇다 사람은 옛사람은 그런 것이다. 믿어진다는 것이 은총이고 성령의 역사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믿으니까 아니다. 무슨 신학공부해서 믿어지는 것도 아니다. 사람의 말 증거 해 가지고 믿은 거 아니다. 친히 성령께서 믿게 하셔야 믿는다. 그제 이 선생님의 증거말씀이 아브라함 신앙은 믿게 하셔서 믿는다는 신앙이라고 한다.
보통은 막가16장 15절 이 말씀만은 너희는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온 천하에 댕기면서) 복음 전해야 한다. 지난해 일 년 동안 우리 믿는 사람으로서 얼마나 전도를 해서 몇 명 몇 사람 영혼을 인도 했냐? 그것이 큰 일이 라고 생각 했었어? 그러나 자기 영혼 자기가 예수를 따랐냐? 자기가 예수를 함께 했냐? 또 예수님이 자기를 쓰셨냐? 진짜 예수님과 한 몸이 되었어. 인자, 그것이 문제지 숫자만 누구를 예수를 믿게 했다. 그것이 뭣이냐? 진(眞) 아(我)는 자기하나야. 그러니까 예수님 한 분이 이 땅에 오셔서 승리를 하셨지 않습니까? 그 예수와 하나 되는 거예요. 승리했으면 예수 안에서 승리가 있지. 예수밖에는 없습니다.
긍게 그 분을 믿을 것이에요. 그 분의 역사를 믿고 그 분과 하나가 되는 거예요. 따로는 없어요. 포도나무 가지가 몸에서 떨어져 갖고는 열매가 맺을 수가 없어요. 붙게 해야지 여기만 생각한다. 15절 말씀은 너희는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16절 이하로는 자격이야. 자격, 믿고 믿어야 된다. 제자들은 네 번이나 단호히, 그 친히 살아가신걸 보고 친히 듣고 그 증거를 봤는데도 그 말도 못 믿었는데 그렁게 인자 믿고 믿어라. 먼저 믿어라. 믿어야 한다. 그 믿는다. 그 말은 옛사람은 장사지냈다 말이거든. 나는 율법의 손에 죽었다. 그 말이에요. 그래서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살았다. 갈라디아 2장19절 20절 아닙니까? 믿음이 뭐냐 하면 그가 잣대예요. 그 절에다 갖다 대 봐야 돼요. 옛사람 살아있으면 아직 믿음 아니에요. 이 제자들만 못해요. 제자들도 어디 믿었어요? 옛사람인데 안 믿어요. 완고해요. 옛사람이 죽었어야 믿어요. 또 죽었더라도 그리스도가 살아서 역사해야 믿음이요.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가 완전히 자유롭게 주장하는 의심이 되면 그래 믿는 사람이 눈치 보는 게 없다는 말은 예수 안에 눈치 보는 게 없다. 능력 주신 자 안에서는 눈치 보는 게 없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전능하시다. 그 말 아녀? 내안에서 역사 하신 게 전능하시지. 내가 전능이 아니에요. 나는 없어. 죽었어. 근데 아직 있거든. 그러니 믿음이 없어. 옛사람 내가 그대로 있는 만큼 믿음이 없어. 이제 나머지 제목은 네 가지지만, 결국은 하나. 번민 고통은 어디 있냐? 내가 있는데 있다. 나, 나야 나. 안 한다 도 나. 한 다도 나. 괴롭다 도 나, 그저 기쁨덩어리만 되어도 아 범사의 만족과 기쁨과 평화, 그것만 나가 없지. 그 외엔 다 나가 있다. 아이 고 괴롭다 하면 나여. 내가 있은 게 괴로워. 지난해 마지막달 한 달 동안 제일 자유로운 시간이고 허락된 시간인데도 제일 육으로 편안한 시간인데도 제일 괴로워한다. 왜이냐? 내가 있은 만큼, 나입니다. 나, 모든 문제는 내게 있어, 믿음은 없어, 믿음은 뭐이냐? 내가 없으니까 옛사람이 죽었고. 그리스도만이 역사하신 것이 믿음이니까 그런 믿음은 평화와 기쁨이고. 예수님의 것이니까 예수님의 몸이니까, 예수님이 쓰시고. 거기만 자기사명을 할 수 있는 것이지. 내가 있는 동안에는 근심 걱정을 못 떠난다. 믿고 세례, 세례는 옛사람은 죽었다는 거지. 물에 퐁당 빠지면 죽었어. 건져 낸 것은 부활했다. 세례는 십자가와 부활, 죽음과 다시 살았다는 것.
미리 조금만 말씀드리면 언제 한 시간 한 번 말한다면 그건 말뿐인데 그것만 한 번 해봤으면 쓰겠다. 그건 뭐냐면 저번에 성탄 조금 전후에 여러 목사님들이 많이 거기에 대해 말씀을 해요. 다 조금씩 들어 봤어요. 들어봤는데 동방박사 세 사람인데 그거는 네 사람이 나왔습니다. 네 사람 중에 세 사람 외의 한 사람은 파사에서 온 알타발이라는 사람인데, 그 사람은 그 어떤 전설에 나왔다고 하면서 소개를 받았어요. 그 사람은 예물은 다 보배, 진주, 몰약 그런 거 다 준비했어요. 세 박사는 먼저 앞에 와서 같이 넷이 약조해서 오기로 했는데 먼저 앞에 와서 그대로 성공을 하고 갔고, 다 바치고 예물을, 이 사람만은 못 바쳤어 예물은 다 엄한 데다 써져버렸어. 다른데 써져버렸어. 그 얘기입니다.
왜 다른데 써져버렸냐? 그 예수를 찾느라고, 만나려고, 33년을 날 때부터 십자가 질 때까지 찾았어. 그런 게 한 사십에서 찾기 시작해 가지고 73세 까지 찾았다고. 그래서 제가 특별히 그 말씀에 좀 감동되는 것이 무엇이냐? 제 육체 나이가 73이거든요. 저는 40세 아니라 25~6세 때부터 찾았지만은 아직도 예수 못 만났다. 아무도 예수인데 예수를 안 보인다. 말입니다. 지금 믿어도 바로 믿는 사람은 모두가 예수로 다 보이는 사람. 다 모든 사람 안에 다 예수 계시다. 그리 믿는 것인데, 저는 증거는 해도 다 예수로 안 보인다 말이야. 그러니 환자들 장애자들 모두 예수인데 예수로 안 보인다 말입니다. 알타발이라는 사람은 그런 어려운 지경을 만난사람에게 자기 보배를 다 써버렸어요. 다 주고 난 뒤에 예수님 십자가 질 무렵에 그날 사 언자 마지막 하나 남았는데 고것마저 줄라고 하다가 그것마저 어떤 사람에게 팔려간 사람에게 해방시켜 줘버렸어요. 다 줘버렸어요. 그러니 이자 예수를 못 만나 예수님께 못 바쳤단 말이야. 그 때 예수님이 사형당하면 그 때 인자 그걸 예물을 내놓고 그걸 인자 모면해요. 사형을 모면, 그럴 것인데 그거를 그냥 써버렸단 말이에요. 그러고는 갑자기 기왓장이 날아와서 기절을 해버렸어요. 죽었어요. 완전히 자기가 의식을 잃어버릴 정도로 있었는데 거의 죽었어요. 그러는데 자기가 스스로 하는 소리가 언제 당신이 주렸으며 나그네가 되었으며 옥에 갇혔으며 헐벗으셨습니까? 저는 그런 일이 없습니다. 혼자 중얼댑니다. 그래 또 들리는 소리가 ‘네가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하는 것이 곧 내게 했다.’ 진짜 예수를 섬기는 사람이요. 진짜 예수를 만났어요.
세 박사에게는 우리가 별로 배울 것이 없어요. 그건 전설이지만은 사실이 있건 없건 그 사람에게는 우리 신앙경로로 다 그래야 쓰겠다. 이 제자들도 그렇잖아?
. 길이 없다. 딱 막혀버렸어요. 그 때 예수님이 나타나, 그 때 그 사람이 나타나서 그 때 인자 다 바쳐버렸어. 자기 마음을, 인자 평화지 평화, 그들은 그것이 끝이지, 그들은 끝입니다만 평화 얻어버렸으면 돼요. 인자 평화가운데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이건 자기, 자기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 쓸데 썼어요. 진짜 예수님을 갖다드릴라고 한 것이지만은 그 예수는 안 받아도 다른 사람에게 쓴 것이 내게 있다. 썼다. 근데 자기 것을 다 내놓아야 한다.
옛 거 사람의 세례는 그 때 세례여. 완전히 자기 죽었어. 옛사람은 죽었어. 옛사람은 죽었다. 세례를 받은 사람은 구원을 받겠지만 믿지 않은 사람은 세례 못 받아요. 세례 없어. 옛사람 그대로 살아 있어. 믿지 않은 사람 자기가 살아있는 사람은 단죄 받을 것이다. 그거는 죄다는 것 인제 죄밖에 없다. 자기를 정죄할 것이다. 죄인걸 알아야 한다. 믿는 사람에게는 기적이 따르게 될 터인데 내 이름으로 마귀를 쫒아내고 마귀 마귀가 어디가 있어요? 마귀 봤습니까? 여러분 마귀 봤었어요? 마귀가 얼마나 많다고 그죠? 요한일서 5장19절에 보면 마귀는 얼마나 많다고 했어요?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이고 온 세상은 악마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믿는다는 우리는 악마의 지배를 안 받았죠? 악마의 지배 받았어요? 악마 못 봤죠? 악마는 온 세상입니다. 온 세상에 꽉 차있는 것이 악마인데 한 번도 못 봤거든. 얼마나 많으냐면 온 세상에 꽉 차 있는 게 악마여. 전 세계 인류가 악마의 지배를 받고 있다. 근데 몰라, 내가 지금 악마의 지배를 받고 있으면서도 몰라. 그 모르는 것이 악마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이다. 성령의 역사는 뭐이냐? 네가 악마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은 것, 죄는 성령만이 가르쳐 주는 것이에요. 성령이 아니면 죄 모른다. 죄 부터 아는 거예요. 그 사람에게 복음이지,
성령 아니라도 죄는 알아요. 지금 죄를 여러분이 발표하면 지금 여기 말도 못하고 한 사람도 대해줄 사람 없어요. 그지만 바치지를 못해요. 예, 저는 죄인입니다. 죽을 죄인입니다. 그러지를 못해요. 죄는 드러나 있응게 물고 변명 할래야 할 수 없어. 죄 없다고 할 순 없어. 있으면 인자 지금이라도 내놓을 텐데. 있어도 안 내놔논다. 안내놔, 기어이 자기고집이 있다. 죄를 안 받아요.
그러면 믿는 사람에겐 기적인데 여기서는 여기서 말하는 것은 다섯 가지입니다. 다섯 가지. 마귀, 마귀, 마귀는 자기예요. 자기 자신. 베드로 어느 때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어느 때 베드로 말고 사탄이 따로 있었습니까? 베드로가 사탄이 따라서 같이 섰었어요? 그럼 무엇이 사탄입니까? 죽지마십시오. 그럼 우리지금 뭐이냐? 육의 본능, 본능은 죽기 싫은 거야. 고생이 싫은 거야. 십자가 싫어. 우리가 죄 잘못했다고 하면 싫어. 죄를 지적하면 싫어. 자기가 자기 죄는 죄인 괴수라고 말을 해도, 다른 사람이 나보고 죄인이라 하면 싫어. 잘못했다고 하는 것도 싫고 그것이 악마이지. 그래서 성인 성녀들은 뭣이냐? 제일 죄를 가르쳐주면 좋아해요. 멸시 천대가 그렇게 영광으로 알아. 그렇게 안 다릅니까? 그것이 성인이라는 증거여. 반대 아니겠어요?
죄인의 증거는 칭찬과 존경을 받으면 좋은데 저는, 근데 성인의 증거는 뭐이냐? 멸시 천대를 좋아한다. 죄인을 알아주는 게 좋다. 또 스스로도 제일 죄인인걸 알고 다른 사람이 그렇게 알아주는 게 좋다. 그러니 칭찬하고 그런 걸 싫어한다. 그러니까 주께서는 육의 본능, 감정적인 욕구, 세속적인 욕망 이것이 모두 악마의 지배란 말입니다. 악마의 지배 마귀의 지배 완전히 자기, 자기를 부정했다 저는 죄인이다. 완전히 자기를 부정한 거예요. 자기 외에 마귀가 없어요. 원수도 자기뿐이야. 나라는 게 있는 것이 내가 원수요. 네 집안 식구가 원수요. 식구 먹을 식(食), 입 구(口)자가 식구 아니요? 모두 의식주에 매여 있다. 의식주 자체가 원수가 아니요? 나라는 거여. 나, 내 문제, 내 육체, 내 집, 내 식구, 그리고 나를 위한 나를 중심하는 주위관계.
여러 가지 기적인데 마태복음 7장의 기적은 결국 그것도 불법이여. 야, 기적을 행했으나 나는 불법을 행한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나는 너희를 모르겠다. 그러겠다. 예언 했었죠. 그럼 고런 기적은 자기 욕심을 그대로 두고 하는 기적 아니겠습니까? 1장16절, 여기 기적은 정신적인 기적 마음의 어떤 변화 마음의 변화라도 나쁘게 변화도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이것은 예수의 심정으로 변화, 예수의 마음으로 변화, 말하자면 예수의 몸이 되는 변화, 새사람의 변화, 영적사람, 그 이런 기적입니다.
여러 가지 언어로 말하고 이건 인자 새 방언 새 언어 진리를 깨달았다고 볼 수 있죠, 진리를. 말씀을 이해했다고, 또 뱀을 쥐어도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도 받지 않는다. 그 셋 째 번에는 뱀, 뱀도 자기 감정적인 정욕 아닙니까? 정욕, 자기 정욕을 억제할 수 있다. 마음대로 자유로 지배할 수 있다. 그것이 기적이라고 합니다. 또 독을 마신다는 네 번째인데 독은 뭣이냐? 음식의 독도 있죠? 독약도 있고 여러 가지 독 한 것도 있지만은 정신적인 독 더 무서운 거예요. 이것은 육체 독은 육체적으로 육체의 육은 죽어도 육만 죽지만은 정신적인 독은 영혼도 망치는 거라 영혼을 망친다. 정신적인 독이 더 무섭습니다. 사상적인 독, 사상, 그릇된 사상, 예수의 정신이 아닌 것. 그런 것은 얼마나 영혼을 망치는 일이니까 무섭습니다. 그러나 여기 말은 독을 마셔도 어떤 사상을 접하나 무슨 말을 들으나 예수를 바로 믿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흔들리지 않는다. 동요를 받지 않는다. 누가 이 말하면 이러고 저 말하면 또 저러고 그대로 끌려가거나 이러거나 저리하지 않는다. 별 말을 들어나 다 분별이 착착 선다.
악마의 역사인지 성령의 역사인지 분별이 선다. 진짜 복음인지 가짜인지 다 분별이 선다. 그것 아니겠습니까? 또 병자, 우리 병자 육체의 병 아마 여기도 조금도 병 없는 사람 별로 없을 거예요. 그에 다 육체 병 마음의 병은 더구서나 어떤 분이 그럽디다. 어떤 목사님이 인간은 뭣이 인간이냐? 흠이 있는 것이 인간이다. 완전한 사람은 예수 한 분뿐이다. 조용기 목사님 그 말 많이 나와요. 완전한 사람은 예수 하나 뿐이다. 그 말 맞습니다. 예수뿐이다. 다 흠 없는 사람은 없다. 흠을 아는 것이 사람은 완전한 것이다.
죄인 중에도 자기가 제일 죄인인지 아는 것이 인자 진짜다. 사람은 그것이 사실이다. 그랬으면 쓰겠다, 죄 없다는 사람은 하느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든다. 그게 죄 없는 사람은 없다.
그러면 자기가 영적으로 병이 있다는 걸 의식한 사람에게 인제는 그 병에서 해방을 받는다. 그면 손을 얹는다. 그 말이 있으니까 이건 순수한 인격적인 교제입니다. 교제, 엇 저녁에도 증거의 말씀을 들었죠? 이현필 선생의 한 분의 인격의 감화로 이곳이 모아졌다. 깨어있는 사람 중의 한 분의 인격이, 감화력이 이 단체가 구성되었다. 뭐 온 천하 안다녀도, 또 이 표면 그것뿐만 아니라 자기 하나 완성하는 것이 온 세계영혼에게 영향을 미친것입니다. 복음이 전달된다.
그러면 제가 깨달은 건 아닙니다만 들은 대로 하면은 개인 개인 자기 인격하나 완성이 전체 완성이랍니다. 세계완성입니다. 그 자기하나 완성되는 속에서 예수님이 완성시키십니다. 예수님이 거기서 일하십니다. 이유는 한 사람 한 사람 자기하나 먼저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쓰실 수 있는 인물이 되어야한다. 그게 자기사명, 예수님이 쓰실 수 있는 아마 되도 안했는데 나 써주시오. 생각은 좋지만은, 고마운 일이지만, 그런 사람도 끼였지만, 그리도 안돼. 요나같이 심부름 안하고 도망가다가 도로 잡혀서 다시 쓰이잖아? ‘다시 쓸 사람은 다시 쓴다.’ 그 말이나 같지 않습니까? 그래도 하느님이 쓰신, 쓰셔야 되는 긍게 쓰실 수 있는 인물이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요 다섯 가지 기적이 누구에게나 이루어져야한다. 그럼 뭐 드러나게 무슨 이름 이게 아닙니다. 자기 정신 상태야. 변화, 먼저 믿음, 그 다음에 자기를 완전히 부정, 완전히 자기부정, 자기 없어요. 순전히 예수의 몸 그 다음에는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또 여기 한 가지 더 디모데 후서 2장 11절 ‘우리가 그 분과 함께 죽었으니 그 분과 함께 살 것이요’ 일단 한 번 그 분과 함께 죽음을 통과해야 한다. 그 분과 함께 살 것이요 ‘우리가 끝까지 참고 견디면 그 분과 함께 다스리게 될 것이다’ 참고 견디면 끝까지 함께 해야 혀. 그 분과 함께 다스리게 될 것이다. 우리가 끝까지 참고 견디면 그 분과 함께 다스리게 될 것이다. 우리가 그 분을 모른다고 하면 그 분도 우리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그럼 모른다는 말은 부인한다. 말이여. 부인한다는 말은 그 분과 함께 죽지 않으면, 그럼 부인해요 안 죽었으니까 옛사람은 자기가 있으니까 항상 예수 안 믿고 자기가 해. 자기가 왕 노릇해. 부인한 것이야. 안 믿는 것은 예수를 부인한 것이여. 예수를 부인한 것인데 안 죽었다는 말이야. 옛사람 그대로다. 안 죽었다. 예수와 함께 죽어야 예수와 함께 살고. 그렇죠?
19절 ‘그러나 하느님께서 놓아주신 기초는 든든해서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주님께서 당신에게 속한 사람들을 아신다.’라는 말씀과 또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성령에 역사에서 말입니다. 입으로만 주여, 주여 아니고요 ‘사람은 다 불의에서 떠나 가거라.’라는 말씀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 불의에서 해방 받은 의식주 문제를 초월했어요. ‘그런 사람은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그릇만 아니라 나무그릇과 질그릇도 있어서 어떤 것은 귀하게 쓰이고 또 어떤 것은 천하게 쓰인다. 그러므로 모든 악을 버리고 자기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사람을 누구든지 귀하게 쓰이는 그릇이 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주인에게 쓸모 있는 그릇으로 바쳐져서 모든 좋은 일에 쓰입니다. 그대는 청춘의 욕정을 피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을 찾는 사람들과 함께 정의와 믿음과 사랑과 평화를 힘써 구하시오. 어리석고 유치한 논쟁을 피하시오. 그대도 알다시피 그것은 싸움을 일으킬 뿐입니다. 주님의 종은 다투어서는 안 됩니다. 도리어 모든 사람을 온유하게 대하고 잘 가르치고 참을성이 있어야 합니다. 또 반대자들을 부드러운 마음으로 사로잡아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셔서 진리를 깨닫게 해 주실 것입니다.’
어디까지나 겸손해야 하며 부드러워야 되요. 반대자라도 그럼 인자 진리를 깨닫게 되는 거야. 이것이 너희는 이제부터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될 테니까 두려워하지 마라라. 그 말씀의 강조가 여기 있습니다. 어떻게 사람을 낚느냐? 진리를 깨닫게 아주 겸손 반대자들에게도 겸손하게 대해서 어디 까지나 회개를 해서 진리를 깨닫게 하는 거여. 이것이 전도요. 인격적인 교제 진리가 깨닫는, 그래서 그 영혼이 하느님께도 부름을 받아 자꾸 가까워져 예수와 하나 되게.
사명은 무엇이냐? 한 영혼을 예수님의 하느님께 복종 시키는 건데 나는 그 몸이 되어서 그 영혼을 인도 한다 그럴라면 자신도 먼저 진리를 깨달아야 하고 또 다른 사람의 진리를 깨닫도록 자기가 겸손해야 한다. 그래야 될 것입니다.
‘그리고 악마에게 사로 잡혀 악마의 종노릇을 하던 그들이 제 정신으로 돌아가 악마의 올가미에서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사명입니다.’ 병든 자에게 손을 얹으면 낫는다.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