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겨울 섬산-선시
간 부은 돌쇠 녀석 한 입에 깨문 거산(巨山)
눈 쌓인 붉은 노송 팔뚝 하나 공양하면
잠항(潛航) 턴 검푸른 대붕(大鵬) 적멸 차고 오르네
* 바다 한 가운데 떠 있는 외딴 겨울섬. 눈 무게를 견디지 못한 바위 위 늙은 솔의 가지 하나가 갑자기 ‘뚝’ 하고 부러지는 소리
* 대붕; 크기가 수 천리에 달하며 한 번에 구만리를 난다는 상상의 새, 곤어(鯤魚)가 화(化)하여 된다는 새 (장자 소요유). 여기서는 해탈 후의 대소요(大逍遙)를 암유(暗喩).
* 《山書》 제20호 2009년.
* 제9회 해양문학상 공모작(2015.4월)
2. 임포텐츠 바위
능선은 외설(猥褻)체위 물렁한 가지바위
조루(早漏)가 심하다며 무안 주는 색골천(色骨川)
저 샌님 주눅이 들어 음위증(陰痿症)에 걸렸군
* 가지는 남성의 심볼. 가지의 껍질에는 벌레가 덤비지 않고, 전립선 계통의 질병에 좋다고 함.
* 《山書》 제20호 2009년.
3. 산중 폐가(山中廢家)
이엉 위 백설 박꽃 달 요정이 숨바꼭질
닳아빠진 돗자리서 별똥 주워 연단(練丹)하면
떨어진 수세미꽃에서 황금박쥐 날아가
* 아무도 없는 산중폐가 지붕 위 박꽃의 유혹과, 허물어진 울타리에 떨어진 수세미꽃의 정적을 보라!
* 《山書》 제20호 2009년.
* 《山文學》 제5집(2023년) 정격 단시조 3수.
4. 상현야음(上弦夜陰)
꼬집힌 매미새끼 자지러진 어스름 숲
하얗게 센 할미솔 시끄럽다 짜증내면
팔짱낀 반달을 보고 앵돌아진 떡바위
* 사물은 보고 듣기 나름! 도심의 밤에 우는 쓰르라미조차도 이제 소음공해로 구제(驅除) 대상이 되 버린 메마른 정서와 지나친 이기주의? 그들이 울고 싶어서 우나? 불빛 때문에 낮으로 착각한 게지?
* 높은 버드나무엔 매미가 제격이고, 낮게 핀 꽃에는 나비가 아름다우며, 굽은 길에는 대나무가 알맞고, 얕은 여울에는 갈대가 어울린다. 高柳宜蟬(고류의선) 低花宜蝶(저화의접) 곡경의죽(曲徑宜竹) 천탄의로(淺灘宜蘆)-청 주석수(朱錫綬)의 유몽속영(幽夢續影)에서.
* 매미의 오덕(五德)
① 매미의 기다란 입이 갓끈과 같이 곧게 뻗은 형상이 글을 앎. [文]이 첫 번째 德이요
② 오로지 맑고 깨끗한 이슬만 마시고 평생을 살다 죽으니 그 맑음. [淸]이 두 번째 德이며
③ 사람의 곡식이나 채소를 손대지 않으니 그 염치. [廉]이 세 번째 德이고
④ 다른 곤충처럼 집을 짓지 않고 나무그늘에 그냥 사니 그 검소함. [儉]이 네 번째 德이요
⑤ 철에 맞추어 울고 늦은 가을 이면 때를 맞추어 죽을 정도니 그 믿음. [信]이 다섯 째 德이라
* 《山書》 제20호 2009년.
5. 청산을 보쌈
슬그머니 살 내보여 뭐 자랑한 말조개(馬蛤)
용의 씨 품은 산을 마대기로 보쌈해와
하룻밤 씨내리 한 뒤 수채에다 버리네
* 말조개; 민물조개 가운데 가장 큰 종류로, 길둥근 조가비는 얇은 편인데, 거친 윤맥(輪脈)이 있고, 녹갈색을 띠고 있음. 경북 영천의 되말좆 만한가? 이 시조 읽을 때 발음 조심! 지읒과 쌍시옷을!
* 《山書》 제20호 2009년.
6. 기죽은 할배바위
곳간만 축내면서 힘없다 꼬집히고
쌍심지 잔뜩 켜고 심통 부린 할매바위
쏟길 듯 요강을 들고 벌을 서는 남근석(男根石)
* 그 어려운 절대빈곤시절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불철주야 일했던 가장이 퇴직 후 놀면서, 나이 들어 겪는 설음이다. 심지어 이혼 요구를 당하지 않나? 남자여! 당당하라! 그 위세와 뚝심은 어디로 보내고, 어쩌다 빗자루로 쓸어도 쓸리지 않는, 비에 젖은 추한 낙엽신세가 되고 말았는가?
* 《山書》 제20호 2009년.
7. 가짜 돌부처가 되어
종기 난 달팽이관에 무식자(無食子)벌 알을 스니
관절을 부러트려 앉은뱅이 바위 됐네
악 쓰고 무에리수애 메아리만 들릴 뿐
* 무식자 벌; 페르시아지방에 나는, 참나무과 식물의 어린잎에 슬은 어리상수리흑벌의 알이 부화(孵化)할 때 생기는 혹 같은 물질. 몰식자(沒食子) 라고도 함.
* 무에리수애; 돌팔이장님이 점을 치라고 돌아다니며 외치는 소리. 멍청한 개는 혼자 짖게 내버려 둬!
* 《山書》 제20호 2009년.
8. 장마철 계류소리
새댁의 요강소리 바위들 정사(情事)소리
갈잎 때린 빗줄기소리 악머구리 웃음소리
장마철 계곡의 향연 사물놀이 뺨치네
* 갓 시집온 새댁이 새벽녘 요강에다 시원하게 오줌 누는 소리를 들어보시라! 시어머니는 그 소리로 며느리의 건강을 측정한다네!
* 악머구리; 잘 우는 개구리 즉 참개구리.
* 《山書》 제20호 2009년.
9. 청산 비빔밥 찌게
열무숲 돌보리밥 참기름에 무친 계곡
잘 띄운 담북장너덜 갓 삶아낸 우렁바위
단풍잎 묵은지 넣어 청산찌개 끓이다
* 우리말 바위이름 재미있는 게 많다. 산꾼의 재치?
* 담북장을 청국장과 동일시하나, 원래는 다르다. 담북장은 메주 자체를 가루로 빻아 만듬.
* 3년 이상 된 묵은지는 보약보다 낫다.
* 《山書》 제20호 2009년.
10. 기암괴석과 놀다
물개를 잡아먹고 인어를 강간하고
멀뚱댄 먹매기의 똥구멍을 걷어찰 때
싱거운 천하 돌장승 통막걸리 마시네
* 매기; 수퇘지와 암소가 흘레를 하여 낳았다는 짐승.
* 손으로 잘 잡을 수 없는 바위를 ‘멍텅구리’ 라 부른다.
* 《山書》 제20호 2009년.
11. 읍산(泣山)
몸집이 크다 하여 다 좋은 건 아닌데
내 마음 간사하여 큰 산만 찾다보니
작은 산 버림받았다며 소매잡고 통곡해
* 우리 모두가 이제는 큰 것만을 추구한다. 아파트 자동차 냉장고 TV 수상기 등. 사견이지만 중산층 이하의 아파트는 식구 수, 경제력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4인 가족 기준 국민주택 규모(전용 면적 25.757평)이면 충분하다고 보는데, 세인은 그렇게 생각지 않는가 보다? 사무실은 1인 기준 3평이 적당.
* 읍어(泣魚); 전국시대 위(魏)나라 용양군(龍陽君)이 대어(大魚)를 낚아 앞서 낚은 작은 고기를 버리려고 하다가 운 고사에서,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이 나타나면, 자기도 버림을 받을 것을 걱정함’을 비유하여 이름.
* 《山書》 제20호 2009년.
12. 참선하는 설산(雪山)
바람을 길쌈매어 가사(袈裟)를 걸쳐 입고
왕(王)자로 꿈틀대는 푸른 거인 복횡근(腹橫筋)
우주를 덮은 일산 아래 눈 감은 채 비사량(非思量)
* 일산; 한 개의 일산 아래 전 우주를 뒤엎어 숨기는 부처의 초인적인 힘.(반야 유마경의 지혜 104쪽)
* 비사량; 선종에서 생각에 억매이지 않고 잡념을 버리는 일.
* 《山書》 제20호 2009년. 히말라야의 거대한 설산을 읊음.
13. 자책(自責)
-세월을 낭비한 죄
산으로 올라가면 갈림길에서 울고
내려오면 표주박과 엎어치기로 겨루고
세월을 꼬치안주 삼아 허공(虛空) 마신 주정꾼
* 곡기읍련(哭岐泣練);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기상천외의 역발상을 이끌어낸 의미심장한 성어다.
양자(楊子)가 갈림길에서 울고, 묵자(墨子)가 흰 실을 보고 울었다는 고사. ‘岐’는 기로(岐路), ‘련’(練)은 흰 실. 갈림길에서는 어디로도 갈 수 있고, 흰 실은 어떤 색으로도 물들 수 있다는 뜻으로, “근본은 같은데, 환경에 따라 갖가지 선악(善惡)으로 갈라짐을 탄식함”을 이르는 말이다. 楊子見岐路而哭之 爲其可以南可以北 墨子見練絲而泣之 爲其可以黃可以黑 (양자견기로이곡지 위기가이남가이북 묵자견련사이읍지 위기가이황가이묵). [출전]《회남자(淮南子) 설림훈(說林訓)》
* 하산하면 늘 술 때문에 문제다! 건강을 위해 한 등산이 오히려 독이 되고 말았으니? 쯧쯧!
* 《山書》 제20호 2009년.
14. 산을 복제(複製)함
가죽은 그렸으되 그 뼈는 그릴 수 없어
밧줄로 꽁꽁 묶어 마당까지 끌고 온 범
복제한 산(山)의 새끼를 탯줄까지 뽑아내
* 호랑이 가죽은 그려낼 수 있지만 그 뼈는 그릴 수 없듯이, 사람의 얼굴을 안다고 해서 그 마음까지 알 수 없음. 화호화피난호골(畵虎畵皮難虎骨)지인지면부지심(知人知面不知心)증광현문(增廣賢文) 55쪽.
* 황우석 박사가 연구했다는, 소위 복제한 배아줄기세포는 요술방망이가 아니므로, 이에 대한 지나친 환상은 금물. 덧붙여 제대혈(臍帶血-탯줄혈액)에는 줄기세포가 엄청 많다는데 보관해두면 나중에 질병치료에 도움이 된단다.
* “단 1%의 가능성만 있어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산악인 故 박영석)
* 《山書》 제20호 2009년.
15. 책갈피에 끼운 산
달빛을 이불삼고 호수를 요 깔고 잔
잠버릇 고약한 뫼 몸부림에 눌려죽은
요철판(凹凸板) 산 그림자를 보람으로 끼우매
* 금영무참(衾影無慚); 이불이나 자기 그림자에 대해서도 부끄러운 짓은 하지 아니한다, 는 뜻으로, ‘홀로 있을 때, 홀로 잠잘 때, 즉 남이 보지 아니하는 곳에서도 품위를 떨어트리지 아니함‘ 을 비유.
* 보람; 책갈피에 끼우는 네모진 종이(서표 또는 표장). 책갈피는 ‘책장과 책장의 사이’를 일컫는 말이니 혼동하지 않도록. 보람끈 갈피끈 가름끈과 구별된다.(재미나는 우리말 도사리 226쪽 장승욱 지음)
* 《山書》 제20호 2009년.
16. 허망한 하산 길-선시
밀물 때 넘친 물도 썰물 땐 쓰레기로
달도 차면 기우는데 이슬 맞은 꽃쯤이야
사정(射精)에 이른 극락도 내려서면 허무로
* 권력과 자리에서 물러날 때, 정사(情事)가 끝났을 때, 산에서 내려올 때가 가장 허망한 순간이다!
* 《山書》 제20호 2009년.
17. 여측이심(如厠二心)
-산이 얌체 산꾼에게 고함
천금을 줄 터이니 들머리만 보여 달라
천진스레 그 말 듣고 속곳까지 내렸드니
해웃돈 주지도 않고 줄행랑친 얌체꾼
* 여측이심; 뒷간에 갈 적 마음 다르고, 올 적 마음 다르다 는 뜻으로 ‘자기에게 긴 할 때에는 다급하게 굴다가 그 일이 끝나면 마음이 변함’을 비유.
* 해웃돈; 기생이나 창녀들과 상관하고 주는 대가. 해웃값, 화대, 화채(花債).
* 《山書》 제20호 2009년.
18. 화두난(話頭難)-선시
노을 진 사랑채서 벽산(碧山)과 선문답(禪問答) 중
짹짹댄 세작(細雀) 덕에 복상사(腹上死) 면한 천운(天運)
안경 낀 숫버마재비 뜨건 녹차 드노매
* 자신을 잊어버려라! 그래야 화두가 나온다! 벽산이 푸른 산일까? 차(茶)일까? 산을 사랑채로 끌어들였나? 아니면 사랑채를 산으로 가져갔는가? 산이 사마귀일까? 화자가 사마귀일까? 버마재비는 교미 시 암컷이 수컷을 잡아먹는 단다? 목숨 건 방사! 무서워라! 아니다! 목숨을 내놔야 득선(得禪)한다!
* 인간을 제외한 모든 동물은 암컷이 성행위를 주도한다.
* 어느 찻집의 재미있는 선화(禪畵)를 보고 읊었다.
* 세작; 곡우와 하지 사이에 딴 찻잎, 또는 어린 참새.
* 조선 김백령(金伯齡)의 시 정사(靜思-고요히 생각); 매욕이가주근산(每欲移家住近山) 차신어세불상관(此身於世不相關) 수영초각무장벽(須營草閣無墻壁) 진취천봉입와간(盡取千峰入臥間) 산 가까이 집 옮겨 살고파/ 이 몸 세속과는 상관없는데/ 초가 한 칸 짓고 담장도 없이/ 천개의 봉우릴 방안으로 끌어들인다.
* 《山書》 제20호 2009년.
19. 장자(莊子)의 산-선시
-물아일체(物我一體)
저물녁 산을 메고 내려선 오솔길
아려온 어깨죽지 곤(鯤) 비늘이 돋더니만
홀연히 범나비 되어 북창(北窓)으로 날아가
* 곤; 화(化)하면 대붕(大鵬)이 된다는, 북녘에 살며 크기가 수천리가 되는 고기-장자 내편 소요유. 곤이 새가 되지 않고 곧바로 나비로 변한 게 장주(莊周) 때문일까?
* 산이 호접몽(胡蝶夢)을 꾸었나? 등산객이 호접몽을 꾸었나?
* 북창; 선비가 사는 방. 북창삼우(北窓三友)란 거문고(琴) 술(酒) 시(詩) -백거이의 시에서.
* 《山書》 제20호 2009년.
* 《山文學》 제5집(2023년) 정격 단시조 3수.
20. 죽은 등반가의 변(辯)-선시
-한티재의 사마귀
수컷을 잡아먹고 탱크에 덤빈 당랑(螳螂)
색(色)이면 사족 못 쓰 사간(死姦)까지 범한 도착(倒錯)
목숨과 맞바꿔버린 청산과의 그 성희(性戱)
* 당랑거철(螳螂拒轍); 제(齊)의 장공(莊公)이 수렵하러 나가는데, 버마재비가 앞발을 들어 그의 탄 수레를 가로막아 대항하였다는 고사에서, ‘제 힘을 헤아리지 아니하고 하지도 못할 일을 하려고 덤벼드는 무모한 짓’을 이름. 螳螂怒臂當車轍.(당랑노벽당거철).
* 2004. 10. 13 故 안경호 선생과 남강기맥 제4구간 종주시 한티재에서 막 등산을 개시하려는데, 도로 위에 통통히 알밴 버마재비 암컷이 차에 치여 죽어 있었다. 측은하다 싶어 잠시 지켜보고 있는 중, 옆에 두어 마리 수컷이 우왕좌왕 하다가, 그 중 한 놈이 내 가죽등산화 앞에 멈추더니 앞발을 치켜들고 덤벼들려는 태세다. 하도 어이없어 “그래! 너 잘났다! 내가 져주지!” 하면서 뒷걸음질 하는 찰나, 어치가 순간적으로 그 놈을 낚아채 가는데, 부리에서 빠져나오려고 단말마의 날개짓을 하면서 사라지는 묘한 장면을 목격했다. 그대라면 무엇이 떠오르겠는가?
* 《山書》 제20호 200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