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2022년은 인류 역사에서 코로나19로 인한 세계적 재난, 즉 팬데믹의 시기로 기록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 역사적 위기의 시대를 함께 경험하고 견뎌내고 있는 동행인들입니다. 그리고 이런 위기의 때에, 시편 133편을 노래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 얼마나 아름답고 즐거운가! 형제자매가 어울려서 함께 사는 모습!”
(시 133:1)
세계화의 모순으로 지역적, 국가적, 계층적 양극화는 나날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이제 개천에서 용이 나오는 것은 어려운 사회, 즉 사회계층 변동이 어려운 “세습 중산층 사회”가 되었습니다. 또한, 디지털 전환이 동반하는 확증편향으로 인해 사회적 갈등은 더욱 깊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시편 133편을 노래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과연 우리는, ‘양극화와 갈등의 심화’로 ‘공정’보다는 ‘각자도생’이 현실이 된 사회 안에서, 공동체적 평화를 함께 노래할 수 있겠습니까?
과연 오늘 우리는, 평화의 공동체를 향한 꿈과 희망을 아직도 가질 수 있겠습니까?
과연 오늘 우리는 그리고 우리가 모인 교회는, ‘각자도생’ 문화의 교회 버전인 종교적 부족주의를 넘어서, ‘마음을 넓게’ 하여(고후 6:13) 세상을 품고 섬기는 곳이 될 수 있겠습니까?
자기중심적 ‘부족주의’를 넘어서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초대교회에게도 그러했고, 믿음의 조상들에게도 이것은 쉽지 않은 과제였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아브라함과 롯도, 에서와 야곱도 한 장소에서 함께 어울려 살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이것이 물질의 부족함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 이야기는 조금 달랐습니다. 그들이 함께하지 못했을 때는 가난했을 때가 아니라 재산이 증가하는 때였던 것입니다.
그 얼마나 아름답고 즐거운가! 형제자매가 어울려서 함께 사는 모습!
물질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자칫 이렇게 즐겁게 어울리며 함께 살기 어려운 것은 물질의 부족 때문이라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삶은 물질의 많음으로만 해결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물론 물질도 도움이 되겠지만 그보다 앞서는 우선순위를 기억해야 합니다.
아론의 수염을 타고 흘러서 그 옷깃까지 흘러 내리는 보배로운 기름, 즉 성령의 은혜와 향기! 시온산을 생명의 근원으로 풍성하게 하는 물과 같은 자원을 가능하게 하는 헤르몬의 이슬! (시133:2-3) 오직 주님만이 주실 수 있는 하나님 나라를 위한 성령의 역사와 자원! 성령의 역사와 그로부터 허락되는 영적 자원을 바라며 간구하고, 주님께 공급받는 우리가 되어야 평화로운 공동체를 향한 우리의 꿈과 희망은 실현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의 보혈로 허락하신 화평과 평화의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오늘도 성령의 역사가 우리의 ‘일상’과 ‘관계’에 그득 넘치기를 간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