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 배우는 것들
불과 몇 십 년 전만해도 사람들에게 취미를 물으면 여행이나 독서, 그리고 영화감상을 들었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도, 영화를 잘 보지 않는 사람도 그렇게 말했던 것은 그것이 그 당시만 하더라도 고상한 것이었기 때문이고, 여행은 그 당시만 해도 누구나 훌쩍 떠날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취미의 범위가 넓어지기도 했지만 여행이나 독서 영화감상을 취미라고 말하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왜냐하면 여행을 비롯한 그 세 가지가 다 생활의 일부분이 되었기 때문이다.
세계 문학사상 가장 위대한 문학작품으로 꼽히고 있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장편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삼형제 중 둘째인 이반이 동생인 알료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알료샤, 나는 유럽을 여행하고자 한다. 유럽이 묘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나는 가장 귀중한 묘지라고 생각한다. 거기에 누운 사자死者들은 귀중한 존재이며, 그 위에 선 비석은 과거의 생명의 불꽃을, 임무에 대한 그들의 격렬한 신념을 말해주고 있다. .....나는 영혼을 감정 속에 담그고자 한다. 봄에는 나뭇잎을 사랑하고, 푸른 하늘을 찬미한다. 그것뿐이다. 지능이나 윤리가 아니다. 내부에서, 뱃속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이다.“
그 말을 받아 알료샤는 “인간은 누구나 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도 생명을 사랑해야 할 줄로 나는 믿습니다.” 라고 말했다.
“생명의 뜻과는 아랑 곳 없이 생명을 사랑한단 말인가?” 이반의 물음에 “그렇지요. 논리를 무시하지 않으면 안 되지요. 그럼으로써 비로소 생명의 뜻을 알게 되지요.”
인생, 그 한평생이 여행이다. 그침이 없이 펼쳐지는 그 여행을 통해 사람들은 대지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나뭇잎 하나, 풀 한 포기, 하늘을 흐르는 구름과 푸른 하늘, 그리고 눈. 비를 비롯한 모든 사물들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그런 연유로 괴테의 <파우스트>에서도 다음과 같은 구절이 실려 있다.
“여행을 많이 하시는 분은 마음이 넓으셔서, 참고 이해해 주시는 일에 익숙하니까요.“
그런데, 그것이 쉽지 않다. 여행을 하면서 마음이 넓어지는 사람이 있는 반면 자꾸 스스로를 향해서만 닫힌 문으로 들어가 나올 줄 모르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여행을 통해 무엇을 느끼며 배울 것인가?
‘나는 대지를 떠도는 여행자, 나그네, 그대 역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혼자서, 내가 잠시 살았던 이 땅에 지친 몸을 누이리라.’
그래서 아우렐리우스도 다음과 같이 말했을 것이다.
“나는 쓰러져 죽을 때까지 자연의 길을 여행하겠다. 그리하여 내가 매일 들이마시던 대기 속으로 나의 마지막 호흡을 반환할 것이며, 나의 아버지가 씨를 얻고 어머니가 피를 얻고 유모가 우유를 얻었던 대지에 깊이 묻히리라. 그 오랜 세월 동안 나에게 매일같이 육류와 음료를 제공해주고 그렇게 무자비하게 남용되면서도 여전히 내가 그 표면을 짓밟기를 허용하던 그 대지에 묻히겠다.”
경인년 이월 열여드레
불과 몇 십 년 전만해도 사람들에게 취미를 물으면 여행이나 독서, 그리고 영화감상을 들었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도, 영화를 잘 보지 않는 사람도 그렇게 말했던 것은 그것이 그 당시만 하더라도 고상한 것이었기 때문이고, 여행은 그 당시만 해도 누구나 훌쩍 떠날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취미의 범위가 넓어지기도 했지만 여행이나 독서 영화감상을 취미라고 말하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왜냐하면 여행을 비롯한 그 세 가지가 다 생활의 일부분이 되었기 때문이다.
세계 문학사상 가장 위대한 문학작품으로 꼽히고 있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장편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삼형제 중 둘째인 이반이 동생인 알료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알료샤, 나는 유럽을 여행하고자 한다. 유럽이 묘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나는 가장 귀중한 묘지라고 생각한다. 거기에 누운 사자死者들은 귀중한 존재이며, 그 위에 선 비석은 과거의 생명의 불꽃을, 임무에 대한 그들의 격렬한 신념을 말해주고 있다. .....나는 영혼을 감정 속에 담그고자 한다. 봄에는 나뭇잎을 사랑하고, 푸른 하늘을 찬미한다. 그것뿐이다. 지능이나 윤리가 아니다. 내부에서, 뱃속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이다.“
그 말을 받아 알료샤는 “인간은 누구나 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도 생명을 사랑해야 할 줄로 나는 믿습니다.” 라고 말했다.
“생명의 뜻과는 아랑 곳 없이 생명을 사랑한단 말인가?” 이반의 물음에 “그렇지요. 논리를 무시하지 않으면 안 되지요. 그럼으로써 비로소 생명의 뜻을 알게 되지요.”
인생, 그 한평생이 여행이다. 그침이 없이 펼쳐지는 그 여행을 통해 사람들은 대지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나뭇잎 하나, 풀 한 포기, 하늘을 흐르는 구름과 푸른 하늘, 그리고 눈. 비를 비롯한 모든 사물들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그런 연유로 괴테의 <파우스트>에서도 다음과 같은 구절이 실려 있다.
“여행을 많이 하시는 분은 마음이 넓으셔서, 참고 이해해 주시는 일에 익숙하니까요.“
그런데, 그것이 쉽지 않다. 여행을 하면서 마음이 넓어지는 사람이 있는 반면 자꾸 스스로를 향해서만 닫힌 문으로 들어가 나올 줄 모르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여행을 통해 무엇을 느끼며 배울 것인가?
‘나는 대지를 떠도는 여행자, 나그네, 그대 역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혼자서, 내가 잠시 살았던 이 땅에 지친 몸을 누이리라.’
그래서 아우렐리우스도 다음과 같이 말했을 것이다.
“나는 쓰러져 죽을 때까지 자연의 길을 여행하겠다. 그리하여 내가 매일 들이마시던 대기 속으로 나의 마지막 호흡을 반환할 것이며, 나의 아버지가 씨를 얻고 어머니가 피를 얻고 유모가 우유를 얻었던 대지에 깊이 묻히리라. 그 오랜 세월 동안 나에게 매일같이 육류와 음료를 제공해주고 그렇게 무자비하게 남용되면서도 여전히 내가 그 표면을 짓밟기를 허용하던 그 대지에 묻히겠다.”
경인년 이월 열여드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