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고지 전투 배경
당시 강원도 철원 서북방에 위치한 395 고지는 광활한 철원평야 일대와 서울로 통하는 국군의 주요보급로를 장악할 수 있는 군사지정학상 요지가 되어 중공군과 국군의 치열한 전투가 재개되었다. 당시 제9보병사단은 춘천 및 홍천 전투에서 북한군 전차 부대를 물리쳤던 김종오 소장의 지휘 하에 1952년 9월 중순부터 철의 삼각 지대를 이루는 강원도 철원에 투입되어 395 고지를 기점으로 우측 중강리까지 11km에 이르는 철원 평야를 방어하고 있었다. 이때 제9보병사단 정면으로 포진한 중공군 제38군 예하 113, 114 보병사단의 예비 부대로 제112보병사단이 후방에 대기 중이었다. 이를 간파한 김종오 소장은 1952년 9월 22일 좌측 전방의 395 고지에 임익순 대령의 제30보병연대, 우측 전방에는 김봉철 대령의 제29보병연대를 전개시키고 이주일 대령의 제28보병연대를 예비 부대로 하여 유사시 양 연대를 지원하도록 하였다. 또한 유사시를 대비해 전부일 대령의 제51보병연대를 대대 단위로 분산시켜 평야 일대에 위치한 취약한 주저항선 방어를 강화하였다.
10월 6일 저녁 중국인민지원군 대장 장융후이는 제38군단의 6개 연대의 지원부대병력 등 총병력 4만 4056명과 각종포 55문의 지원을 받으며, 일제히 봉래호의 제방을 폭파시켜 역곡천을 범람시킴으로써 국군을 기습 공격했다. 이로 인해 제3대대가 증원 병력을 투입하는 데 차질을 빚어 중공군을 395 고지로 맹렬히 돌격해 제30보병연대 1대대장 김영선 소령의 휘하 군대로 3차례나 전투를 치뤄 중공군을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10월 7일 중공군은 다시 제4차 공세를 감행해 2개 대대로 1대의 전초 기지를 포위해 지속적으로 보병 돌격과 지원 포격을 감행해 395 고지를 함락시키는데 성공했다. 이에 이주일 대령의 제28보병연대가 투입되어 2시간의 걸친 전투 끝에 395 고지를 탈환했다. 전선이 교착 상태에 빠지자 10월 8일 중공군 제38군 예비 연대를 투입해 제5차 공세를 가해 오전 8시 다시 395 고지 정상을 점령했으나 최창용 중령의 제28보병연대 제3대대가 반격하여 23시에 고지를 다시 탈환했다.
불과 3일 동안 5차례에 걸친 공방전으로 중공군 제38군 113, 114보병사단의 피해가 심각했으나 제28보병연대는 물론 제30보병연대도 재편성이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할 피해를 입어 김종오 소장은 제29보병연대의 투입을 검토한다. 10월 9일 다시 중공군이 제6차 공세를 펼쳐 제30보병연대는 전력이 바닥나 3시간 만에 고지 정상과 우측 능성을 내주고 후퇴하지만 김봉철 대령의 제29보병연대가 투입되어 역습을 감행해 고지를 다시 탈환했다. 그러자 중공군 제38군 사령부는 제112보병사단의 연대까지 동원해 10월 10일 대규모 인해 전술을 펼치고 제9보병사단의 잔병들도 참호로 뛰어들어 백병전을 펼쳤다. 이날 3차례의 함락과 탈환의 과정을 거쳐 마침내 중공군이 최종적으로 고지를 장악했으나 10월 11일 오전 이대철 소령의 제29보병연대 1대대가 김경진 소령의 2대대 병력을 증원받아 고지를 탈환시키는데 성공했으나 김경진 소령은 전투 과정에서 박격포탄을 맞아 전사했다. 이후에도 전투는 4일 동안 계속되어 10월 15일 새벽 제28보병연대는 기습을 감행해 395 고지를 완전히 장악하고 제29보병연대도 고지 북방의 전초 기지를 탈환해 중공군을 완전히 몰아내 이로써 전투는 종결되었다.
이 전투 승리의 요인은 우수한 정보활동과 보병과 포병의 적절한 협동, 전투부대의 적절한 임무교대 등으로 통한 충분한 휴식이 있었고 이후 제9보병사단은 베트남 전쟁에도 참전하였다. 민통선 안에 있는 곳 백마부대. 이곳에서도 북으로 향하여 사진 찍는 것은 금물이다. 철원의 넓은 평야는 김일성이 욕심을 부렸던 곳으로 철원평야만 탈환했더라면 북한 사람들도 먹고 사는데 큭 걱정이 없었을 것이다. 남에는 호남평야가 있다면 북에는 철원평야가 있다. 물이 좋고 토질이 좋아서 논농사도 잘되는 곳이니 얼마나 갖고 싶었으면 일성이가 원통하다는 말을 했을까.
월정리 역에서 떠나면 개마고원 다음으로 너른 평강고원에
펼쳐진 논밭에 푸르름을 바라보면서
치열하게 남북이 대치하여 공방전을 벌이던 백마고지에 도착하였다.
보병 5사단이 준비한 상
백마상 - 저 백마가 너미 솔찌게 맹그란..
날렵허지 못헐거 닮아.
전적비를 읽어보면서
이 곳에서 울 아버지께서도 치열하게 전투를 하셨다고
늘 말씀 하셨는데 이젠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없으니.
높게 솟아 있는 상징탑으로 올라가는 길 양쪽에는 `자작나무`가 심어 있는데 심은지 얼마 안 된것 같다. 자작나무는 불태울적 자작자작 탄다고 하여 명명된 것이고 마르지 않고도 불에 잘 타고 연기도 잘 나지 않는다.
지금도 총알 지나는 소리가 들리는 듯
오늘 일정중 마지막 코스다.
조금만 힘내시고
올라서서 먼곳을 바라보면 우리 아버지 세대의 전투를 그려볼 수 있겠나.
산이 변해버릴 만큼 포탄을 쏟아 부어서
하얗게 땅이 변해 그 모습이 백마 닮았다고
그래서 나무도 수피가 하얀색깔 나무를 심었다. ㅋㅋ
위령비에 아버지 이름이라도 있을까?
쳐다보고 있다.
애국자라며 태극기 앞에서서
추억 앨범을 남긴다.
미스코리아 두 분이
호구야! 근무했던 생각남시냐?
저 매달려 있는 종을 울려 평화를 알릴 날이 언제?
기다리시라고 우리가 울린다고
우리도 울릴 수 있다고
국장님께서 카운터 다운 하러 간다.
다정하게 걸어오다 사진 박젠 허난 관표는 옆으로 가버려서
그래서 불러 세웠죠.
보기가 좋은데 자꾸 도망 치려니.
첫댓글 관표친구는 사진 찍으려니 부끄러워서..ㅋㅋㅋ
그런것 같아서 불러서 말을 좀 했지요.
회장님 관표친구는 술은 가까운 친구 사진은 먼 친구 하는거 같네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