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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정지
이 북 명
1
‘제― 기, 죽어나 벼렸으면…….’
폐결핵 환자 창수는, 변성(變成) 탱크의 프레셔 게이지(氣壓計)를 조절하느라고 얼굴을 찌푸리고 연방 기침을 하면서 타라프(쇠사닥다리)를 오르내린다.
두테가 일 촌이 넘는 강철판으로 꾸민 변성 탱크…… 직경이 열 자나 되고 높이가 이십 자 가량 되는 무거운 탱크는 이십 자나 되는 쇠기등 위에 올라앉았다. 이 탱크로부터 마치 나무가 뿌리를 사방에 펴듯이 색뼁끼로 장식한 파이프가 온 직장 안에 펴졌다. 이 탱크 안에서 암모니아, 유산, 탄산이 몇백 기압으로 화합하여 지독한 약품을 만들어 낸다. 이 약품을 인광석(燐鑛石)과 화합시키면 유인산비료(硫燐酸肥料)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기압이 항상 높아 있는 탱크이니만큼 항상 폭발이 될 위험성이 많다. 직공들은 이 탱크 곁으로 다니기를 싫어한다. 탱크는 직공들에게 마(魔)같이 보였다.
얼굴이 양촛빛같이 희고 광대뼈가 도드라지고 뼈만 남게 여윈 창수의 모양은 삼 년 동안의 직공생활에 너무도 엄청나게 달라졌다. 창수는 지늠 변성 직장의 모범직공으로 이 변성 탱크 조절의 책임을 맡고 있다. 그러나 고된 노동과 숨이 막히는 악취는 폐결핵이라는 선물을 창수에게 주었다. 구부러든 허리를 더 구부리면서 쉴새없이 기침을 한다.
창수는 아픈 몸, 늙은 부모, 처자의 굶주리는 모양을 볼 때마다 가슴속에서 세상에 대한 불평과 의혹이 머리를 쳐들었다.
“이 사람, 암모니아를 좀더 넣을까?”
창수가 타라프를 내려가려다가 응호에게 묻는다.
“둬두게. 내가 하지 않으리…… 올라와 쉬게…….”
응호는 창수의 괴로워하는 모양과 그의 집사정을 잘 안다. 같은 탱크 구미(組)에 있는 응호는 항상 창수의 일까지 함께 하여 주었다. 소같이 부지런하고 양같이 온순한 창수이지만 구비(해고)가 심한 이때라 병들어 말라 가는 창수를 회사가 그냥 두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아는 응호는 자기 사정도 사정이지만 창수의 사정이 한없이 딱하였다.
응호는 거미줄같이 엉킨 파이프, 세차게 도는 모터, 요란한 컴프레셔(壓縮機)…… 가스 탱크…… 이런 것이 모두 한없이 미웁고 자기들과는 하등 상관이 없는 적(敵)과 같이 보이었다. 그저 ×으라면 ×고 살라면 사는 직공들, 피땀을 홀리면서 굽석급석 기계 짬에서 온몸에 기름탭을 하고 고된 노동을 하는 동무들이 가엾기도 하고 너무나 무능력 하게도 보였다.
“이 사람, 나날이 이렇게 해고선풍이 불고야 되나…….”
게이지 곁에 올라와 앉은 창수가 기운 없는 소리로 응호에게 말을 건다.
“세 ×두 댈지 않았네. 이렇게 되고야 오래 간다는 수가 있나…….”
응호의 말에는 노기가 섞이었다.
“이제부터 팔백 명이나 추린다데…….”
창수가 기침 섞인 소리로 말을 한다.
“흥, 팔백 명! 부르기 헐하지.”
나 먹고 사람 좋은 성삼이가 기막힌 듯이 중얼댄다.
“인제 두고 보게. 아무 날이나 짝벼락이 안 날 것 같나?”
응호가 멀리 지봉을 쳐다보면서 힘있게 말한다.
지독한 냄새가 코, 눈, 입 할 것 없이 막 들이 쑤시는 바람에 직장 안에는 기침 소리와 들볶는 소리가 기계 소리와 함께 가득 찼다.
“출근 중지를 시킨다던가?”
창수는 숨이 차서 헐떡거리면서 말한다.
“출근 중진 게 아니라 출근 정지(出勤停止)를 시킨다네.”
성삼이가 설명하여 준다.
“둘러치나 메어치나 마찬가지지. 우리를 크게 생각이나 하는 듯이 정지를 당한 직공에게 돈푼이나 주어서 × × 리자는 수작이네…….”
“그저 죽어 벼려야지, 쫓겨나면 그 꼴을 어떻게…….”
창수는 말끝을 꼬지 못하고 머리를 숙인다.
“이 사람, 별소리 다 하네. 이 고생을 누구에게 주고…… 죽는 날이야 어느 × 이고 × 어뜯고 말지…….”
응호가 흥분이 되어 × ×을 흔든다. 이것이 흥분할 적마다 하는 응호의 버릇이다.
“별수없네, 그저 종사하는 날까지 종사해 먹다가 또 떠메고 가면 그만이 야.”
사람 좋은 성삼이도 기운이 치미는지 × × 을 불끈 쥐고 흔들어 본다.
“자네야 그렇겠지만…… 나야 어디로 가겠나…….”
순간 창수의 눈에는 눈물이 픽 돌았다.
그러나 성삼이나 응호는 자기네 생각만 하느라고 깨닫지 못하였다.
“이 사람, 그런 소리 말게. 병 있으면 그런 자탄도 나오는 게야…….”
응호가 위로하여 준다. 셋은 머리를 숙인 채 묵묵히 앉았다.
“바갓, 야랑카! 야랑카(멍청이들, 일해! 일해)!”
하고 감독의 쏴버리는 소리가 가까이 들렸다.
셋은 얼른 일어서서 각각 자기 부서에 붙었다.
“× 같은 ×. 밤낮 특툭 쏴버리기만 하고…….”
남을 욕할 줄 모르던 창수의 입에서는 요새부터 이런 욕설이 나왔다. 직공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감독 앞에서 그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한다.
“자네 요새 병이 어떻나?”
유산의 용식, 병칠, 석구가 뒷짐을 지고 우줄우줄 들어왔다.
“자네들 무얼 하러 왔나?”
창수는 묻는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이렇게 도로 묻는다.
“시찰을 왔지…….”
희극쟁이 별호를 가지고 있는 병칠이가 시침을 뚝 따고 대답한다. 그 바람에 모두가 웃어 댔다.
“그런 게 아니네. 감독 나으리가 내게 밀구루마를 변성으로 가져가라구 시키데…… 그런데 이애들이 따라왔지…….”
용식이가 병칠이와 석구를 손가락질하면서 말한다.
“꼬리를 보니 개꼬리라구, 감독 나으리가 너 같은 놈에게 그런 아부라(태만)만 피울 일을 시킬 리가 있나…… 나 같으면 또 모르지만…….”
병칠이가 직장 안을 돌아보면서 말을 던진다.
“그런데 유산은 몇 명이나 되나?”
흥분이 아직 사라지지 않은 응호가 모여 선 그들에게 말을 던진다.
“한 이십 명 된다데…….”
용식이가 싱거운 듯이 입을 다신다.
“그래 모두 어쩌는 모양인가?”
응호가 쥐었던 밸브 핸들을 놓고 가까이 온다.
“정지를 시키는 날은 한 × × × × 여 보겠다구 야단이네.”
병칠은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고 조심스럽게 사방을 돌아다본다.
“한 오백 명 구비를 시켰으면 그만이지…… 또? 그저 무두신인 줄 아는 게로군…….”
용식이가 부루퉁한 소리를 친다.
“우리 계(係)뿐 아니라데. 전공장이 지금 야단이라네…….”
석구가 말을 던진다.
“하여튼 두구 보세. 이번에야…….”
셋은 감독의 눈을 피하며 잔달음질을 쳐서 나가 버렸다.
2
기계문명의 위대한 행진곡을 울리는 H읍! 신흥도시 H읍, 읍에는 벌써 오백 명의 거리에 방황하는 까불린 직공들이 일자리를 구하여 헤매고 있지 않은가!
축 처진 어깨, 웃음을 거둔 얼굴, 방향 없이 종일 거리로 헤매는 그들에게는 아무 일자리도 없다. 골목골목에 공장문 앞에 모여 선 실업자의 무리, 밥 달라고 우는 어린이, 굶주린 늙은이…… H읍은 실업의 거리가 되었다. 대공업도시 H읍의 속통은 이렇게 썩어들어 간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에게 일자리와 빵을 ×오,’ ‘우리들의 생명을 × × ×라’ 하고 ×울 힘도 없고 ×울 줄도 몰랐다. 까불리운 직공, 까불리려는 직공…… 모두가 공포 속에서 허덕이었다.
‘어떻게 할까?’
그들은 도무지 몰랐다.
이렇게 불불 떨고만 있는 직공들의 속통을 영리한 회사가 모를 리가 없다. 한 직공을 까부르고 그 자리를 다른 직공이 겸하여 하게 될 때에 회사는 그만큼 이익이라는 것을 모를 리가 없다. 이 찬스를 회사는 제일 유리하게 이용하였다. 불경 기라는 구실 아래에서…….
공포 속에 허덕이는 직공들이야 죽겠으면 죽고 살겠으면 살고, 회사의 상관할 바가 아니다. 회사는 드디어 육백 명에게 대하여 출근 정지를 선언하였다.
병 있는 직공, ×마디나 하는 직공, ×자나 보는 직공…… 이런 직공들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물론 창수, 응호, 용식, 병칠, 석구들도 그 속에 끼였다.
종업원 제군!
제군도 알다시피 방금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불경기는 우리× × × × 회사에까지 닥쳐왔습니다. 지금 회사는 제품을 소화시키지 못하여 매일 수만 원이란 손해를 보면서도 작업을 계속하는 중이오. 그래서 이번 간부회에서 가결하고, 오는 × × 일부터 약 오백 명 직공에게 일급의 육 할을 지급하고 경기가 회복될 때까지 출근을 정지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경기가 회복이 되면 복직은 당연한 일입니다. 제군은 회사의 관대한 처치에 감사하는 동시에 오해가 없도록 각자 주의하여 주시오.
소화 육년 십일월 ×일
간부회 백
N비료공장에는 암운이 떠돌았다.
“흥, 그 경기가 언제 회복이 되겠다구…….”
“경기 전에 자네 한 달에 이십사 원 받어 가지구 거이거이 살던 게 한 십오 원 받어 가지고 살겠나…….”
“그게 무슨 수작인지 아나. 한 달쯤 그렇게 육초질하다가 그만 툭 차버리자는 수작이야.”
“그렇지 않구. 뻔한 일인데…….”
직공들은 직장에서 쉬임참이나 집에 모여 앉아 술추렴을 할 적마다 이런 답답한 이야기를 주고받고 하였다.
3
출근 정지의 선고를 받은 후부터 창수의 병은 더하였다. 장차 오려는 자기의 앞길이 캄캄하였다. 병마…… 늙은 부모…… 어린 처자…… 죽음…… 이런 광경 이 창수의 머리를 지나치기 시작하였다.
“엑, 죽어버리면 그만이지…….”
창수는 이렇게 짜증을 내면서 밸브를 조절하느라고 타라프를 오르내린다.
“이 사람, 괜히 그러네, 산 사람 입에 거미줄 쓸겠나. 그저 병치료나 잘 하게.”
응호가 프레셔 게이지를 들여다보면서 말을 던진다. 그러고는 다시 성삼이를 부른다.
“이 사람, 이게 기압이 대단히 높네. 내려가 밸브를 좀 닫치게.”
“어디 고장이나 생기지 않었나?”
타라프를 내려가면서 성삼이가 근심스러운 얼굴을 짓는다.
“세이프티 밸브(安全辨)는 왜 안 다나. 게이지가 고장이 생기면 큰일나겠네.”
창수가 쪼그리고 앉은 채 말한다.
“상관있나, 며칠 더 종사해 먹겠다구…….”
출근 정지 선고를 받은 후부터 전공장 직공의 공기는 달라졌다. 감독의 눈만 없으면 해머로 기계를 깨어지라고 떵떵 두드렸다. 변소나 벽에 낙서가 쓰이기 시작하였다. 직장 아랫목에서 우여ㅡ 하고 떠들어댄낸다. 감독이 눈이 뚱그래서 달려간다. 그러면 윗목에서 우여ㅡ 하고 떠들어 낸다. 이러고는 침통한 웃음이 직공들 사이에서 터졌다. 이것이 그들의 최후의 발악이었다.
잊으랴! 소화 육년 십일월 × 일 오후 세시 십오분…… H읍 삼만 시민을 거리로 뛰어나오게 하고 간담을 서늘케 하던 그 폭음!
“이게 어디서 큰일났군.”
“또 회사야.”
“회사는 어디야.”
“변성 탱크가 폭발이 되었다네.”
두테가 한 치나 되는 강철판으로 만든 변성 탱크가 보기에도 끔찍하게 산산이 부서졌다.
“또 누가 죽었군!”
“아쁠싸!”
스패너를 쥔 직공, 구루마를 밀고 가던 직공, 기계에 기름 주던 직공, 기계를 소제하던 직공, 목도하던 노동자…… H공장 삼천 명 직공이 이런 소리를 지르면서 십 분도 못 되어 변성계로 모였다. 독한 냄새가 전 공장에 펴졌다. 그러나, 그 냄새는 직공들의 목전의 광경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사람은 어찌 됐나.”
“일굽이 간 종적이 없다네.”
이 말을 들었을 때 직공들은 기도나 올리듯이 머리를 숙였다. 무거운 침묵이 계속되었다.
쪼각쪼각 깨어 흩어진 철판, 산산이 부서진 유리창, 구부러진 쇠기둥, 곤냐쿠(곤약)가 된 갓쇼(쇠연목), 자취조차 없어진 슬레이트(지붕), 넘어진 기계, 후러든 파이프…… 그것은 마치 대포의 세례를 받은 무쇠성냥 같았다.
“앗, 저것이 누구의 샤쓰야.”
갓쇼륜 쳐다보턴 직공이 소리를 질렀다.
막 구부러든 갓쇼에 찢어진 외투, 공장복 저고리, 샤쓰가 읍인을 잃어버리고 찬바람에 펄럭 이고 있다.
“저 외투는 창수 해다.”
“샤쓰는 응호 해군.”
창수, 응호, 성삼…… 이들은 하늘로 날아올라 갔는지 한 덩이의 살점, 한 개의 뼈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 사이에서는 킥킥 느끼며 우는 소리가 떠올랐다.
공장장, 사원, 감독 × ×들이 뛰어왔다. 그들은 어찌할지 모르고 몹시 덤비었다. 운전중의 기계를 내버려두는 것은 보초(步哨)가 전지에서 졸고 있는 것같이 위험한 일이다. 육천 개의 눈살이 그들을 쏠 때 그들은 당황하였다. 꾹 버티고 섰던 직공들의 힘이 무거운 압력이 되어 사방으로 들이미는 것 같았다. 감독이 넋나간 사람 모양으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한다.
“흥, 별것들이 아니군…….”
어느 직공이 빈정댄다.
“여기 사람을 × × × × × × × ×.”
이렇게 소리를 지르는 직공도 있다. 그러다가는 갓쇼에 걸린 의복을 쳐다보고는 기름 묻은 소매로 눈물을 씻는다.
“죽은 동무의 가족을 살려 주어라.”
이 소리가 어느 직공의 입에서 떠오르자 직공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그렇다!’ 하고 고함을 친다. 그들의 시선은 보기 무섭게도 날카로웠다.
“우리는 출근 정지에 × ×하자.”
이 소리를 듣자 모여 선 직공은 일제히 × × × × 허공에 뛰어들면서 ×성을 질렀다.
“× 다.”
“× 렇다.”
어찌할 줄을 모르고 우두커니 서 있는 공장장, 사원 × ×들과 갓쇼에 결린 주인을 잃은 찢어진 의복을 번갈아 보면서 삼천 명의 직공은 꾹 버티고 언제까지 서 있다.
북국의 찬바람이 대지를 호령하면서 지나간다. 그때마다 갓쇼에 걸린 찢어진 의복의 펄럭이는 소리가 그들의 마음을 쓰라리게 하였다.
(《문학건설》, 193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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