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석→ 할머니 형상→ 소녀상
원래 할머니들의 1000차 수요집회를 기념하기 위해 비석 디자인으로 시작한 형상은 일본 정부가 비석 설치를 반대하는 것에 격분해 할머니 형상으로 구상이 바뀌었고 고민을 거듭한 끝에 전쟁의 피해자로 처참한 상처를 받았던 당시 나이 대의 소녀상으로 정해졌다.
수요 집회에 열심히 참석하시는 김복동 할머니는 15세, 길원옥 할머니는 13세로 '위안부'로 끌려갔다. 어린 여자아이들을 강제로 공출해서 전쟁범죄를 저지른 일본 정부가 꼭 봐야 한다. 더 이상 역사적 사실을 가린 채 숨을 곳이 없음을 알려야했다.
수요 집회를 통해 일본 정부에 요구하는 일곱 가지는 전쟁범죄 인정, 진상규명, 공식사죄, 법적 배상, 전범자 처벌, 역사교과서 기록, 추모비와 사료관 건립이다.
소녀상은 장식품이 아니다!
공공 조형물이 세워질 때는 특별히 고려해야 할 사안 중 하나가 장소다. 장소가 가지는 역할이 크기 때문이다. 건축물의 부속물로 생각하던 시기에는 조형물이 단지 장식품에 불과했다. 장소성과 무관하게 설치되는 경우였다. 조형물은 자리를 잘 찾아야 한다. '평화의 소녀상'이 일본대사관 앞에 위치했기에 울림이 클 수 있었다.
김서경 김운성 부부는 위안부 할머니를 소녀의 모습으로 표현했다. 국가폭력의 희생자를 표현하기 위해 앳된 소녀 시절 당시의 모습을 끌어냈다. 과거와 현재의 시간거리를 좁혔다. 인물 형상조각의 전형적인 언어다. '평화의 소녀상'은 역사의식과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우리 시대의 시민들이 폭넓게 공감하는 예술적 소통을 만들어냈다. 특히 '소녀상'의 특징은 기존의 조각상 이순신, 세종대왕처럼 높은 좌대에 우뚝 서서 수직 상승의 권위를 발산하는 것과 다르게 문턱이 낮게 만들었다. 높이가 130센티미터다. 낮은 자세와 열린 태도를 지향한다. 시민들과 소통하며 공감대를 확산하는 힘을 발휘한다. 소년 옆의 빈 의자는 관객과의 적극적인 상호작용을 끌어낸다.
전국 곳곳에 소녀상이 설치되고 있다. '소녀상 현상'은 오작동하는 국가와 저항하는 사회의 대결이다. '평화의 소녀상'은 사회예술의 면모를 지니고 있다. 예술의 사회적 소통을 위하여 결과 만큼이나 과정을 중요시하는 사회예술의 면면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