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붕 뚫린 교회
몸이 아파 움직일 수 없는 친구를 메고 예수께 나온 사람들, 접근이 불가능하자 지붕을 뚫었던 용기와 간절함은 언제나 감동이다.
그러나 내가 있는 자리 위 천장이 뚫리고 들것이 내려 오고, 예배가 방해 받는다면? 내가 다음 차례 치유를 기다리던 환자였는데 새치기 당했다면?
복음서에서 '집'은 종종 교회를 상징하는 것으로 읽힌다. 복음서를 산출하고 읽었던 처음 공동체들은 대체로 집에서 모였고, 예수님이 함께 하시던 '그 집'과 자신들이 예배하고 있는 '이 집'의 연속성을 강하게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의 교회에 예배하는 가운데 지붕이 뚫리고 들것이 내려 온다면?
교회에 질서가 있고 순서가 있는데, 급한 사람이라고 새치기하여 중앙에 나온다면?
교회의 예산을 초과하는 어떤 도움의 절박한 필요가 제기된다면, 오늘의 교회는 어떻게 반응할까?
가버나움 그 집 안에 있던 사람들이 특별히 성숙하거나 열린 사람들이었다는 근거는 없다. 다만 그 곳에 예수님이 계셨고, 예수님이 상황을 이끌고 계셨고, 하나님께서 그 자리에서 일하고 계신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이 반응하시는 대로, 청중들의 마음도 함께 움직여 갔을 것이다.
가버나움의 그 집은 지붕이 뚫렸기에 자기 만의 공간이 아닌 열린 공간이 될 수 있었다. 오늘의 교회도 종종 지붕이 뚫리고 벽이 허물어지는, 달갑지 않은 외부의 침입자를 만나는 경험을 한다. 코로나도 그 중 하나가 아닐까?
그런 달갑지 않은 일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일하시고, 우리는 하나님을 더욱 알아가고, 그렇게 사람의 기획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져 가는 것이다.
열린 자세는 누군가의 태생적 자질이라기 보다는 그리스도가 임재하는 공동체에 주어지는 선물이다. 주님이 용납하시면 우리도 용납한다. 어떤 낯선 사람도, 어떤 황당한 상황도!
그 때 그렇게 지붕이 뚫리지 않았으면, 맛 보지 못했을 은혜가 있다.
하나님은 오늘의 교회에도 그런 은혜를 주기 원하신다.
- 사진은 현대의 가버나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