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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시편 / 시편 103편 1-14절
찬송 / 169장 · 강물 같이 흐르는 기쁨
성서 / 창세기 2장 4b-9절, 갈라디아서 5장 16-26절
말씀 / 성령의 바람
주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창세기 2장 7절)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입니다.(갈라디아서 5장 22절)
어느 깨달음 깊은 스승에게 제자가 물었습니다. “선생님, 가장 값진 것은 무엇입니까?” 그러자 스승은 물끄러미 바깥을 내다보며 말했습니다. “죽은 고양이지.” 아마 바깥 어디쯤 고양이 사체라도 있었나 봅니다. 그런데 하필 죽은 고양이라니, 그게 무슨 값이 있다는 것일까요? 스승의 말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제자가 다시 투덜대며 물었지요. “죽은 고양이가 무슨 값이 있습니까?” 그러자 스승이 대답했습니다. “값이 없는 것이 가장 값진 것이지!”
무슨 얘기일까요? 죽은 고양이가 가장 값지다는 것은 무슨 얘기며, 값이 없는 게 가장 값지다는 건 또 무슨 얘기겠습니까? 다시 생각해 보라는 말입니다. 지금 내가 값지다고 매달리는 그것이 정녕 값진 것인지, 지금 내가 값없다고 지나친 그것이 진짜 값없는 것인지, 다시 한번 물어보라는 말입니다. 내가 값없다고 내버린 그것이야말로 진짜 가장 값진 것은 아닌지, 다시 정색하고 그 본질을 잘 톺아보라, 그 말입니다.
사람은, 우리는 세상에 살면서 무엇을 값지다고 생각합니까? 보석 중의 보석이라는 다이아몬드, 그중에서도 캐럿 당 13억이 넘는다는 핑크 다이아몬드가 가장 값진 것일까요? 그게 정녕 그렇게 가치 있는 것일까요? 반면에 사람이, 우리가 아무 값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맘대로 공짜로 누리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바람과 비, 공기와 물이 있지요. 우리는 아무런 값을 내지 않고 맘껏 공기를 들이마시며 삽니다. 우리는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값없이 누립니다. 그런데 그게 진짜 값없는 것일까요? 아니지요. 그것이야말로 진짜 값진 것입니다. 우리는 평생 다이아몬드 없이도 불편 없이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나, 공기가 없다면, 숨을 쉴 수 없다면 한순간도 견딜 수 없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지켜야 할 가장 값진 것은 깨끗한 바람과 공기, 그리고 맑은 물입니다.
우리는 지금 성령강림 절기를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은 어떤 분일까요? 성서에서 말하는 성령이란 다름 아닌 바람이요, 공기입니다. 구약성서에서 성령은 ‘루아흐’이고 신약성서에서는 ‘프뉴마’지요. 둘 다 바람이라는 말입니다. 흔히 많은 사람이 ‘성령’ 하면 ‘불’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성령의 상징은 무엇보다 불이 아니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사도행전에서 성령은 불같이 내린 게 아닙니다. 정확하게는 ‘불처럼 갈라진 혀들’ 모양으로 내렸지요. 여기서 왜 혀들(복수)일까요? 혀는 언어 곧 말을 의미하지요. 그런데 ‘혀들’이라면 여러 가지 언어를 말합니다. 당시 예루살렘에는 세계 여러 지방에서 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도 있었지요. 그런데 갈릴리 출신의 제자들은 다른 나라의 말, 곧 ‘방언’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복음을 전해야 하는데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 성령이 ‘혀들’로 곧 여러 언어, 방언으로 내린 것입니다. 실제로 여러 지방에서 온 사람들은 방언을 자기들의 말로 알아들었습니다. 첫 방언은 소통하는 언어였습니다.
창세기 1장을 열면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는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그때 땅은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두웠습니다. 그런데 그때 그 짙은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입니다. 하나님의 바람이지요. 하나님의 영은 혼돈과 공허와 어둠을 물리치고 하늘과 땅을 창조합니다. 하나님의 영은 창조의 영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지요. 아다마/흙으로 아담/사람을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완전한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시자, 하나님의 숨을 불어넣으시자 사람은 생명체가 되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사람은 하나님의 숨을 받아야 비로소 사람이다, 그 말이지요. 하나님의 영을 받은 사람이라야 참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보게 됩니다. 구약성서에서 ‘하나님의 영’은 인간만이 아니라 하늘과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지으신 창조의 영입니다. 하나님의 영/바람은 땅을 새롭게 하는 영이며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영입니다. 하나님의 바람이 불어오면 땅이 새롭게 되고 사람이 사람답게 됩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은 역사를 새롭게 하는 영입니다. 에스겔 예언자는 하나님의 영/바람이 일으키는 새로운 역사를 바라봅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에스겔은 바빌론 포로 시기의 예언자입니다. 나라가 망하고 백성은 바빌론으로 사로잡혀가서 노예로 살아야 했지요. 정말 혼돈하고 공허하고 깜깜한 역사 아닙니까? 그 바빌론은 마르둑이라는 신의 나라였지요. 그런데 공교롭게도 마르둑은 폭풍의 신이었습니다. 가공할 폭력으로 상대를 제압하고 파괴하는 태풍의 신입니다. 바빌론의 신화를 보면 마르둑은 그 태풍의 위력으로 세상을 창조합니다. 모든 것을 다 날려버리는 태풍 같은 바빌론의 폭력 앞에서, 포로로 사로잡혀 온 이스라엘 백성은 얼마나 낙담하고 절망했을까요?
에스겔의 골짜기는 그 역사의 암담한 절망을 보여줍니다. 골짜기에 뼈들이 널브러져 쌓여 있습니다. 모두 어그러지고 말라버린 뼈들입니다. 마치 마르둑의 허리케인에 휩쓸려 흩어져버린 폐허 같습니다. 이 뼈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마른 뼈들에 그 무슨 희망이 있겠습니까? 말 그대로 혼돈과 공허입니다. 그 바닥을 모르는 깊은 어둠,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짙은 암흑입니다. 그 마른 뼈들이 가득 찬 골짜기에서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사람아, 이 뼈들이 살아날 수 있겠느냐?” 이게 가능하기나 한 일이냐? 여기에 무슨 희망이 있다는 말이냐? 에스겔이 이렇게 대답했지요. “주 하나님, 주님께서는 아십니다.” 사람으로는, 나로서는 도저히 아무런 희망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생기를 불어넣어/바람을 불어넣어 너희가 다시 살아나게 하겠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자, 마른 뼈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이어지기 시작하였지요. 그 뼈들 위에 힘줄이 뻗치고, 살이 오르고, 살갗이 덮였습니다. 그러나 그들 속에 아직은 바람이, 영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외치라고 말씀하셨지요. “바람아, 사방에서 불어와 이 살해당한 사람들에게 불어서 그들이 다시 살아나게 하여라.” 에스겔이 말씀대로 외치자 바람이 불어왔지요. 하나님의 바람, 하나님의 영입니다. 하나님의 바람이 사방에서 불어와 그들 속으로 들어가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죽었던 그들이 다시 살아나서 제 발로 일어나서 섰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엄청나게 큰 군대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하나님의 영이요, 이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영, 하나님의 바람은 세상을 새롭게 하는 바람이며,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바람이며, 역사를 역사답게 다시 일으키는 바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이 땅 한반도에 하나님의 바람이 불어오도록 은총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엊그제 JTBC에서 수원에 있다는 어느 병원에서 벌어진 한 사건을 보도했습니다. 성형외과 병원인데, 그 병원에서 벌어진 일로 174명이 검거되고 5명이 구속되었다는 것입니다. 보험사기 사건이었지요. 이 병원은 조폭을 동원해서 가짜 환자를 모집했습니다. 주로 다한증 실손보험에 든 사람들을 모았습니다. 이들에게 허위진단서를 떼어 수술한 것처럼 만들어서 보험금을 청구한 것입니다. 가짜인 게 발각되지 않도록 환자들에게 수술한 것처럼 흉터를 만들기도 했답니다. 수술할 때 쓰는 프로포폴은 빼돌려서 팔아먹거나, 의료진들이 자기 팔에 주사하기도 했지요. 이렇게 해서 드러난 것만 200여 회에 12억을 벌어들였습니다. 그 돈을 환자에게 20%, 브로커에게 10-20%, 병원에서 50%로 나누어 가졌습니다.
참 이거 이 사람들, 이 멀쩡한 사람들이 왜 이렇게 사는 걸까요? 이 사람들, 그 전문의를 따기 위해서 얼마나 오랜 세월 얼마나 많은 공부를 해야 했습니까? 요즘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그야말로 온 집안이 다 달라붙어야 한다지요? 의사가 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아픈 사람들을, 고통당하는 환자들을 돌보며 사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 공부를 하고 이런 짓을 하고 삽니다. 어떻게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요?
얼마 전에 들은 얘기인데, ‘하인리히 법칙’이라는 게 있답니다. 한 사회에서 어떤 충격적인 큰 사건이 터지려면, 그 이전에 그보다는 좀 약한 유사한 사건이 27번 터진답니다. 그런데 또 그 이전에 그런 비슷한 작은 사건들이 200번 터진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그게 그냥 우연히 일어나는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 이전에 이미 그런 일이 터질 만큼 사회가, 사람들이 그렇게 준비되어 있다는 말이지요. 용암이 터질 듯 터질 듯 예후를 보이다가 어느 순간에 폭발하듯이, 대사건은 그런 식으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정말 정신 차려야 할 것은, 우리 사회가, 우리나라가 이미 엄청난 사건이 터질 임계점에 이르러 있다는 것입니다. 아니지요. 참으로 해괴한 사기 권력의 등장으로 인해 우리나라는 이미 혼돈하과 공허와 깜깜한 어둠에 뒤덮여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 기괴한 권력의 밑바닥에는 기괴한 집단들이 있고, 참 이상한 사람들이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 정말 기괴한 종교가 있지 않습니까? 정말 우리 사회에야말로 저 맘몬의 악령을 몰아낼 성령의 바람이 절실합니다. 성령을 따르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바람, 하나님의 영을 받은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성령을 받은 사람들의 징표는 무엇이겠습니까? 한때 우리나라의 보수적인 교계에서는 성령을 받으면 반드시 ‘방언’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친구 목사 중 한 분은 한신에 오기 전에 보수적인 신학교에 다녔었는데, 그때 신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방언’을 해야 했답니다. 방언이 성령의 보증수표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방언을 하려고 엄청 연습하고 노력해서 마침내 합격했습니다. 그렇게 방언을 해야 성령을 받은 걸까요? 성령을 강하게 받으면 갑자기 작두도 탈 수 있고, 신비한 황홀경에 빠지는 걸까요? 아니지요. 아닙니다.
사실 성령을 받으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성령의 보증수표는 무엇일까 하는 것은 이미 초대 교회 때부터 문제였습니다. 특히 바울은 소아시아와 그리스로 복음을 전하면서 이런 문제와 씨름해야 했습니다. 특히 그 지역의 종교들은 신비 체험과 황홀경을 중시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황홀경에 들어가서 신과 합일하는 쾌락을 느끼기 위해서 마약을 쓰기도 하고, 심지어는 성행위를 실현하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이비 종교에서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지요.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간곡하게 경계한 것도 그 문제였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성령의 징표를 무엇이라고 보았을까요? 오늘 우리가 읽은 갈라디아서 본문은 바로 그 문제를 말합니다. 바울은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살아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성령은 그 사람의 삶으로, 생활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육체의 탐욕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을 따라 사는 삶, 그것이 중요합니다. 바울은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 맺는 아홉 가지 열매를 소개합니다. 사랑, 기쁨, 화평, 인내, 친절, 선함, 신실, 온유, 절제, 이것이 성령의 열매입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 성령을 따르는 사람은 이렇게 사는 사람입니다.
이 성령의 열매들은 어떤 것입니까? 이 열매들은 그 어떤 특별한 종교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람이 마땅히 그렇게 살아야 할 삶의 길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을 받으면 무슨 알라딘의 램프요정처럼 부려서 금은보화 일확천금을 얻는 게 아닙니다. 성령을 받으면 무슨 두통 치통 생리통도 사라지고 지긋지긋한 발톱무좀도 낫고 머리카락도 나고 쌍꺼풀도 생기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성령을 부려먹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성령을 따르는 그 길이 비록 십자가의 길일지라도, 기뻐하고 감사하며 그 길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의 시대는 어떤 시대입니까? 참 혼돈하고 공허하고 캄캄한 시대입니다. 하나님의 바람이 절실한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하나님의 바람을 불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참 거짓되고 사악한 맘몬의 악령을 몰아내고 다시 생명과 평화의 길을 찾을 수 있도록 생명의 바람을 불어주시기를 바랍니다. 메마른 우리의 몸과 마음에도 다시 하나님의 숨을 불어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우리를 가득 채워 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떤 사람이 이 왜곡되고 혼돈된 세상을 바로잡을 수 있겠습니까? 누가 이토록 공허하고 헛헛한 삶을 다시 생기로 채울 수 있겠습니까?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비록 작을지라도 사랑, 기쁨, 화평, 인내, 친절 선함, 신실, 온유, 절제,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함께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의 바람을 불어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