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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인의 방 [蒜艾齋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수필집 [☆수필이 나를 쓴다☆]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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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이 나를 쓴다]
권예자 수필집 / 도서출판 소소리(2016.09.30) / 값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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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이 나를 쓴다
권예자
사람들은 나를 보고 시와 수필을 쓰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맞는 말 같기도 하고 틀리는 말 같기도 하다. 냉정히 말하자면 시는 내가 쓰는 것 같은데, 수필은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내 안에 스며있는 나의 사상과 이야기를 쓰는 것이 수필이고 보면 내가 쓰는 것이 맞는데, 이상하게 나중에 보면 수필이 나를 쓴 것 같다.
‘수필’그는 참 고집이 세고 욕심이 많다.
그는 내가 글을 쓰려고 하면 주제를 정했느냐고 묻는다. 이러이러한 주제로 쓸 것이라 하면, 흔해 빠진 주제라 신선하지 못하다. 너무 크거나 작다. 교훈적이고 매력이 없는 주제라고 시작도 못 하게 한다. 소재를 선택할 때도 마찬가지다. 쓰기 쉽고 편안한 것은 진부하다고 탓을 하고, 획기적인 것은 생소하여 독자가 모를 거라며 말린다. 그래서 그의 비위 맞추기가 상당히 힘이 든다.
겨우 글을 쓰기 시작하면, 구성은 어찌할 것이냐고 묻는다. 나는 미리 구성에 신경을 쓰기보다는 일단 생각을 써놓고 나서, 문단을 배열하면서 구성을 완성하는 것이 좋다. 그런데 그는 꼭 구성을 먼저 해야 글이 이리 갔다가 저리로 가지 않는다며 화를 낸다. 하지만 이 일은 내가 그의 뜻을 따르기도 하지만, 내 마음대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는 틀에 갇히는 것을 싫어하므로 일단은 실험적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마음대로 펼쳐 놓기 시작한다.
문장에 대해서도 그냥 넘기는 법이 없다. 간결체로 쓰면 삭막하다고, 만연체로 하면 답답하다고 강건체나 건조체는 여자답지 못하다고 한다. 우유체로 쓰면 착한 척해서, 화려체는 가벼우면서 예쁜 척해서 눈꼴이 사납단다. 어조가 강하다, 힘이 없다, 맹탕이다, 그의 맘에 들기 참 어렵다. 나는 속으로 ‘너 아는 것 많아서 먹고 싶은 것도 많겠다’고 눈을 흘기면서도 그의 말을 따르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글을 이어가기도 어려운데, 그는 시간적, 공간적 논리적 질서가 안 맞는다고 못을 탕탕 박고, 어떤 땐 시제가 오락가락한다며 거만하게 밑줄을 좍좍 긋는다.
특히 내 신변에 일어났던 일에 대한 내용을 쓸 때는 짜증이 날 만큼 예민하게 물고 늘어진다. ‘이건 아니다. 그땐 저렇게 했잖아, 왜 자꾸 치졸하게 숨겨? 그건 자기변명이야. 차 떼고 포 떼고 졸만 가지고 장기 둬? 정신 차려! 이건 수필이야.’한다. 어떤 때는 너무 속이 상해서 며칠씩 접어두기도 하지만, 결국은 그와 타협을 하고 질질 끌려가기 다반사다.
사물을 묘사하는 부분도 의견일치는 어렵다. 나는 본 대로 느낀 대로 표현을 하는데, 그는 직설적 설명보다는 암시적 비유적인 묘사를 해야 글의 품격이 높아지는 것이라며 탓을 한다. 내가 아니라고 우기면 주제넘게 기초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고 쓰기부터 시작해서 그 모양이란다. 제발 책을 많이 읽고 공부 좀 하라며 그러지 않아도 아픈 상처에 소금을 팍팍 뿌린다.
아무튼,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초고를 써놓으면 이번에는 제목이 글의 전체 내용과 맞지 않는다고 꼬집는다. 그뿐인가. 서두와 말미가 연결이 안 되는 것이 꼭 갓 쓰고 자전거 탄 것처럼 꼴불견이란다. 또 처음에 시작한 주제와는 글이 달라져서 배가 산으로 올라갔다고 호통을 치며 돌아서기도 한다.
그래도 나는 아직 구성에 대하여는 양보하지 않으므로 문단을 앞으로 넣었다. 뒤로 뺐다, 바꾸었다, 하면서 글 줄기가 잘 흐르도록 하려고 노력한다. 시간의 액자에 들어갔다 나오기도 하고, 순차적으로 또는 역순으로 사건을 끌고 가기도 한다. 새로운 시도로 꽃차 석 잔 마시는 시간과 그에 관한 수필 한 편을 읽는 시간을 맞추어도 보았다. 또 무생물이 수필을 쓰도록 인격을 부여해 보기도 한다.
내 딴에는 그에게 끌려가지 않고 내 뜻대로 새롭게 써보려고 이것저것 시도했어도, 나중에 보면 결국 수필, 그의 손바닥 안에서 놀았을 뿐이다. 이런 상태이고 보면 내가 수필을 쓰는 것이 아니고 수필이 제 방법대로 나를 쓴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내가 출간한 두 권의 수필집을 읽어봐도 그렇다. 그 안에는 내보이고 싶지 않은 이야기도 버젓이 나와 있고, 아무도 몰래 한밤중에 꾼 꿈 이야기까지 나와서 나를 민망하게 한다. 도대체 그것들이 다 내가 쓴 것일까? 만약 내가 썼다면 우리 둘의 기 싸움에 그가 승리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수필은 제 방법대로 제가 정한 틀 안에 나를 가두고 써내려 간다.
하지만 오늘은 좀 다를 것이다. 그가 잔소리할 틈을 주지 않고 그의 틀 밖에서 빠르고 날카롭게 내가 그를 쓰는 중이니까.
‘……’
그런데 왜 이렇게 조용하지? 그는 아마도 결정적인 순간에 턱 하니 발을 걸어 나를 넘어뜨리려고 자료를 수집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래, 아직 ‘퇴고’라는 한 단계가 남아있으니 끝난 싸움은 아니다. 퇴고와 퇴고의 사이사이에 그가 끼어들지 못하도록 오늘은 나도 철저히 준비해야겠다. 수필, 그가 나를 쓴다? 아니다, 내가 그를 쓴다 오늘만은.
이런 주도권 다툼 속에서도 나는 그의 곁을 떠나지 못한다.
수필, 그는 메마른 듯 촉촉하고 모난 듯 둥그렇다. 가벼운 듯 무겁다. 쇠처럼 강하다 싶으면 물처럼 부드럽고 얼음처럼 차갑다가도 봄볕처럼 따스하다. 말은 비록 짧으나 그 뜻은 깊어 늘 감동과 여운을 이끌어 낸다. 오만한 듯 겸손한 그의 매력은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수필, 그를 사랑한다.♥
격포리 사랑
권예자
사람들은 저를 바위라고 부릅니다.
제 외모는 바닷물의 침식으로 마치 수만 권의 책을 쌓아 올린 듯 다층을 이루고 있어요. 태어난 것은 중생대 백악기, 그러니까 약 칠천만 년 전부터 생성된 퇴적암이고, 화강암 또는 편마암이라 합니다.
사는 곳은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 채석강(採石江) 이에요. 채석강이라는 이름은 중국의 절경 채석강과 흡사하여 붙여진 이름이래요. 당나라 시인 이태백이 배를 타고 술을 마시며 시를 읊던 중, 강물에 비친 달을 잡으려다 빠져 죽었다는 곳이지요.
평소의 제 성격은 말이 없고 퍽 무뚝뚝한 편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싶군요. 그것도 사랑에 대하여 말입니다. 우습게 들리겠지만, 사랑이 꼭 사람들 사이에만 있는 것은 아니거든요.
바다, 그녀는 수다스러워요, 바람이 불면 바람이 좋아 몸을 흔들고, 비가 오면 빗방울이 예쁘다며 손을 내밀어요. 하늘에 구름이 흐르면 따라가고 싶다고, 별이 뜨면 별이 떠서, 달이 뜨면 달이 좋아 온종일 재잘거립니다. 저는 그런 그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답니다.
별들이 투명하게 반짝이는 어느 가을밤, 그녀가 말을 걸었어요, ‘무슨 생각을 하니? 대답하지 않았어요 무슨 생각을 하던 그녀가 상관할 바가 아닌 거지요, 건방지고 주제 넘는다고 속으로 혀를 찼지요. 다음 날 그녀가 또 물었어요. “온종일 무엇을 보고 있니?” 저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늘 저만 바라봐요. 썰물에는 발치에서 오물거리다가 밀물에는 가슴까지 올라와선 얼굴을 들이밀곤 하지요, 저는 모르는 척 외면합니다.
여름이 되면 종종 저를 떠날 요량으로 작별인사를 합니다.
“그래 알았어, 이제 나는 육지로 가서 길이 될 거야.”
그리고는 큰 소리로 울며 힘센 바람의 손을 움켜잡고, 저를 넘어 내달립니다. 대단한 기세지요. 까마득히 몸을 곧추세워서는 휙, 휙 자기 몸을 육지로 내던지기도 합니다. 거만한 저에게 실망해서 정말 길이 되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흙투성이가 되어 되돌아오곤 해요. 아마도 저를 두고 갈 수는 없었나 봅니다. 그럴 때 풀이 죽어 가만히 엎드려 있는 것을 보면 가여워서 등이라도 두드려주고 싶지만 꾹 참습니다. 이제껏 버텨온 게 어딘데 인제 와서 다정하면 바위 체면이 구겨질 것 같아서요.
어느 송년회서 바다와 섬을 사랑하는 이생진 시인이 “사랑은 짝사랑이 오래간다”고 하셨대요. 맞는 말 아닌가요? 어쩌면 그녀가 오래 저를 짝사랑해주길 은근히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 시인도 작은 섬들을 짝사랑해서 여든이 훌쩍 넘은 지금도 매년 섬을 찾아 떠나십니다. 요즘은 이어도를 가고 싶어 하시더군요. 거기 가서 그 섬에서 펄럭이는 태극기를 만져보고 싶다 하셔요. 다녀오면 「그리운 바다 성산포」같은 좋은 시를 또 쓰시겠지요.
암튼 선사시대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늘 이렇게 살아왔습니다. 그녀는 쉬지 않고 구애하고 저는 모르는 척 시치밀 떼면서 말이지요.
그런데…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제 몸의 일부를 “해식동굴(海蝕洞窟)”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생겼어요. 이상해서 살펴보니 이게 웬일인가요? 그녀가 어느새 제 가슴 안에까지 들어와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동그랗거나 십자형의 동굴이 되어 그녀를 품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말했어요. 바다가 쉼 없이 두드리고 밀어붙여서 바위를 깎아 먹고 있다고요.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저 스스로 몸의 일부를 조금씩 내어주면서 제 안에 그녀가 머물 곳을 마련한 것입니다. 영악한 이성이 도도한 자존심을 세우는 동안 순수한 몸은 그녀를 사랑으로 품어 안을 것이지요.
이렇게 우리는 해식동굴이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되어갑니다. 저는 이처럼 몸을 내어주다가 언젠가는 바다라는 이름의 그녀가 되고 말겠지요. 그리고 더 먼 훗날에는 그녀와 제가 힘을 합해서 퇴적암이라는 저를 닮은 새로운 바위를 만들어낼 것입니다.
요즘 와서 느낀 일이지만 그녀는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아침 햇살에 구슬처럼 반짝이는 모습도 곱고, 별빛 아래서 나직하게 시를 읊는 목소리에는 마른 가슴도 녹아내릴 것 같아요. 그뿐인가요 물고기들과 어울려 차르르, 차르르 춤을 출 때는 얼마나 경쾌하고 우아한지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환상적이지요.
그녀는 마음이 너그럽고 착해서 거절을 못 합니다. 무엇이든 부드럽고 깊게 또 포근하게 품어 안아줄 뿐입니다. 전에는 왜 그 고운 심성을 몰랐을까요?
오늘은 저녁 썰물에 온몸을 발그레 물들이며 살금살금 발치 끝으로 밀려 나가는 그녀에게 “가지 마, 내 곁에 있어”하고 외쳤습니다. 그녀는 웃었어요. “나 거기 있잖아, 네 안에….” 나도 따라 웃었지요.
그러고 보면 사랑은 노 시인의 말처럼 짝사랑이 긴 것도 아니고, 조건 따지고 자존심을 내세우며 주거나 받는 것은 더욱 아닌 모양입니다. 사랑은 그냥 함께하는 거예요. 밉든 곱든 멀리 있어도 가까이 있어도, 그에게 내가 필요할 때 거침없이 다가가 손을 잡아 주는 것이 아닐까요? 그녀가 저에게 해왔던 것처럼 오래도록 변함없이 말입니다.
바람이 부네요. 그녀가 춤추기 시작합니다. 나를 보며 환하게 웃으면서.♥
하얀 스커트의 여인
권예자
목척교 위에서 그녀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세모시 생활한복의 단아한 맵시를 훔쳐보며 마주 걷던 나도 멈춰 서지 않을 수 없었다.
“저, 혹시 예전에 청주서 근무하지 않으셨어요? 성함이 권…”
나는 얼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 이혼위자료로 받을 집 관계로 상담했었는데, 저를 기억하실는지?”
생각이 났다. 어찌 그녀를 잊겠는가. 청주서 근무하던 2년간 내가 만난 사람 중 가장 아름답게 기억되는 그녀를.
토요일 아침이었다. 그녀는 눈부시게 하얀 주름치마를 입고 웨이브 없는 생머리를 머리 위로 올린 상큼한 모습으로 우리 상담실로 들어왔다. 나는 기본 자료를 가지고 상담을 끝내고 나서 마침 밀린 손님도 없기에 웃으며 말을 걸었다.
“남편께서 부인을 많이 사랑하시나 보군요. 재산도 나눠주고.”
“아니요, 사랑은 근처도 안 갔어요. 결혼생활 십 년에 헤어지며 주는 건데요 뭐”
“아니, 그럼 이혼위자료로 주는 거예요? 그러면 계산이 틀리는데요. 위자료로 주는 것이면 부인은 증여세는 해당이 안 되지만, 남편 되시는 분은 양도소득세를 내야 합니다.”
그녀는 예쁜 미간을 가볍게 찡그리면서 근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세금이 많이 나가나요? 얼마나 되는데요?”
“계산해 보니 구백오십만 원 정도가 나가는군요”
“어머, 그러면 안 되는데….”
“왜 그러세요? 싫어서 헤어지는 마당에 세금이라도 왕창 나가면 속이 시원할 터인데 걱정은 무슨?”
“그래도 그이가 지금 경제적으로 상당히 어려운 처지예요.”
“그렇게 걱정하시는 걸 보니 남편께 정이 많이 남아 있나 보군요. 그런 마음이라면 헤어지지 마셔야죠. 아이들도 있을 텐데 나중에 후회하게 되어요.”
“사실 아이들이 제일 걱정이예요. 아직 어린애들인데, 하지만 우리는 기본 성격이 너무 안 맞거든요. 매일 다투기만 하고.”
“매일 다투신다면 항상 상대에게 관심이 있다는 거잖아요. 관심이 없으면 싸울 일도 없을 거예요. TV를 보면 평생 한 번도 안 싸우고 살았다는 부부들 있던데, 저는 그 말 안 믿어요. 정말 그런 부부가 있다면 그건 한쪽이 상대를 완전히 포기한 상태거나, 둘 중 하나가 하녀나 하인으로 사는 경우 아닐까요? 그건 부부라고 할 수가 없지요. 주인과 종의 관계지. 제가 잘 몰라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사람 사는 거 다 거기서 거기지 특별한 경우는 드물다고 생각해요. 저 자신도 제 맘에 들었다 안 들었다 하는데, 남편이야 본인 자신은 아니잖아요. 혹시 남편께 못된 습관이 있거나 딴살림을 차려서 헤어지자면 모를까.”
“아뇨 그런 건 아닌데 우린 한 번 의견이 어긋나면 둘 다 서로에게 지독한 상처를 입힐 만큼 심하게 말다툼을 해요. 처음에는 그때만 지나면 괜찮았는데 요즘은 그것이 안 잊히고 서로 얼굴만 보아도 짜증이 나고 그래요. 제가 신경이 약해져서 병원까지 들락거리는데 이대로 가다가는 정신이상이 될 것 같아 무서워요.”
“아이고, 별걱정을 다하십니다. 정신이상은 아무나 되나요. 부인께서 생활을 한번 바꾸어 보면 어떨까요? 가벼운 직장생활을 해봐도 좋고, 봉사활동 같은 것도 괜찮지요. 그럴만한 형편이 안 되면 속이 상할 때마다 어디 호젓한 곳에 가서 큰소리로 하소연하거나, 좋아하는 노래를 몇 번이고 불러보셔요. 우습게 들리겠지만 해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져요. 이건 제가 D서에 근무할 때 친구와 했던 방법인데요. 그 관서 지하에는 큰 서고가 있었어요. 거기선 아무리 큰소리로 노래하거나 떠들어도 밖에서는 안 들리죠. 속상할 때 한바탕 속에 있는 것을 토해내고 나면, 밉던 사람도 미운 줄 모르겠고, 언제 그랬냐 싶게 일도 잘되더군요. 한번 시험해보세요. 요즘은 노래방이 있어서 훨씬 쉽겠네요. 어머, 제가 너무 많은 말을 했나 봐요. 참 주책없죠?”
“아니에요, 아주 재미있는 방법이군요. 저는 노래는 잘 못하지만.”
나는 삼십 대 후반의 그녀가 동생 같은 생각이 들고 가여워서 한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그녀의 하소연을 다 들어주었다. 한참 후 다른 손님 두세 명이 동시에 들어서자 그녀는 눈물이 글썽해서 그만 가겠다고 일어섰다.
“오늘 참 감사했어요, 안녕히 계세요.”
“네, 편히 가시고 마음이 바뀌면 전화하세요. 특히 자녀는 그 아이들이 낳아 달라고 부탁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딱하잖아요.”
그녀와의 상담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로부터 한 달이 채 안 된 어느 날 그녀가 전화했다. 둘이 조금 더 견디어 보기로 했다면서, 돌아가 생각해보니 자신도 잘못한 것이 많더란다. 나는 축하의 말을 건네고, 훗날 또 이혼하게 되거든 서류 가지고 오면 잘 계산해 주겠다고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우리는 근처 찻집에 들러 따끈한 차 한 잔에 옛이야기를 곁들여 아주 천천히 마셨다. 십오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그녀는 차분한 품위까지 더해 그 정갈함이 깊어져 있었다. 흰옷을 좋아하는 것도 여전한 듯했다.
아이들은 공부를 잘해 둘 다 수도권 대학에 다녔고, 남편의 사업도 성황이라고 한다. 부부사이도 원만하단다. 자신이 가장 어려웠을 때 뜻밖의 장소에서 위로를 받은 것이 감사해 나중에 찾아갔었는데 대전으로 전근한 후였다며 반가워했다. 우리는 몇 번이나 손을 잡고 서로의 행운을 빌며 헤어졌다.
세상을 살면서 많은 인연을 맺는다. 짤지만 따뜻한 인연이 있는가 하면 길고 지겨운 인연을 만나기도 한다. 작은 것에서도 감사하는 인연이 있지만, 오랫동안 큰 것을 주었어도 형편이 달라지면 안면을 바꾸는 인연도 있다. 오늘 이 여인과의 인연은 짧지만 청량한 인연이다. 그녀의 하얀 스커트 같은.♥
돌아온 신발
권예자
아침 일찍 초인종이 울린다. 택배다. 받아보니 당진에서 온 농산물이다. 적당한 크기로 잘생긴 늙은 호박 한 개, 예쁘장한 고구마 약간, 들기름 한 병, 고슬고슬한 땅콩이 상자 안에 담겨 있다. 놀라서 전화했다. 바뀐 신발은 잘 받았는데 이게 웬 것이냐고, 그녀가 말했다.
“제가 구두를 바꾸어 신고 온 것도 미안한데 헌 구두를 잘 닦아서 예쁘게 포장해 보내준 것이 고마워 농사지은 것 조금 보냈어요”한다. 덧붙여 자기는 다음날 아침에야 신발이 바뀐 것을 알았지만 찾을 엄두도 못 내고 새로 사야겠다고 생각하던 중이란다. 서울에서 살다 당진으로 귀농한 지 삼 년, 가족 먹을 밭농사만 조금 짓는데 아직도 서툴고 손이 모자라서 풀과 농작물이 더불어 자랐지만, 그런대로 먹을 만한 것이라고 한다. 손수 길러 짰다는 들기름은 참기름인지 들기름인지 구별이 안 될 만큼 고소한 냄새를 풍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CD라도 한 장 넣어 보낼 걸 ‘성경 묵상 일력’하나 달랑 넣은 것이 마음에 걸린다.
잃었다 찾은 내 신발 ○○230㎜.
이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짠하다. 내가 발이 자주 아픈 것을 안 가까운 친구가 편한 신발을 수소문한 끝에 멀리 있는 친지에게 부탁해서 구해 선물한 신발이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 이만한 것을 사려면 친구는 다른 쪽에서 많이 절약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이 단화를 신을 때면 마음이 따스해지면서도 살짝 아파서 아름다움이 있는 곳에만 신고 다녔다. 따뜻한 그 마음을 오래 기억하며 기도해주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그것을 잃어버린 것이 열흘 전이다.
영성 교육을 마치고 퇴소하던 토요일 저녁, 축하차 오신 신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느라 내가 짐을 챙겨 나오는 시간이 좀 늦었다. 그런데 입소할 때 넣어둔 59번 신발장엔 내 신발이 없었다. 할 수 없이 다른 분들이 다 떠난 후에 남는 것을 신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보다 더 필요한 분께 갔을 것이라고 여기면서도 선물한 친구에게 어찌나 미안한지 마음이 쓰렸다.
더구나 바쁜 중에 남의 신발을 신고 가신 그분도 아침이 되어 자기 것보다 크고 모양도 조금 다른 신발을 보고 당황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신발을 찾자고 작정하니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다행히 68명 수강생 명단이 적힌 수첩이 내게 있었다. 먼저 신발이 바뀌신 분은 연락을 달라며 상표와 치수를 적어 문자를 보냈다. 함께 오신 분들께도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3박 4일을 같은 공간에 있었으면서도 일정이 빡빡하여 한 팀이 되었던, 열 명의 얼굴도 제대로 생각나지 않는 수강생들이 곧장 따뜻한 문자들을 보내오고 전화도 왔다. 작아서 어떻게 신고 갔느냐는 위로와 빨리 찾도록 기도를 해준다고도 하였다. 참 신기했다. 신발 한 켤레 잃어버리고 대전시는 물론 충청남북도에서 위로와 사랑의 기도를 받다니 슬그머니 민망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엿새가 지나도 바뀌었다는 연락은 오지 않았다.
친구에게 전화했다. 네가 사준 귀한 신발을 잃었는데 잘 간수 못해서 미안하다고. 그런데 친구가 웃으며 말했다. 좋은 곳에서 잃었으니 너보다 발이 더 아픈 분께 갔을 거라며 오히려 위로해 주었다. 그때 퍼뜩 손전화 중에는 40자가 넘으면 칼라문잟 넘어가서 글씨가 작아 볼 수 없는 전화기가 있다는 생각이 났다. 그 분은 어쩌면 아직 문자를 못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여겨진 것이다. 회신이 없는 분들을 점검해서 전화하기 시작했다.
세 번째 전화에서 그녀를 만났다. 자기도 일요일 아침에 보니 다른 신발이어서 난처해하는 중이라며 미안함과 반가움을 동시에 표현했다. 그녀의 신발장 번호는 30번,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 바쁘기는 한데 현관은 어두우니, 그 번호에 있는 검정 신발을 신고 갔단다.
그러고 보니 내 신발장의 원래 번호는 30번이었다. 수강생이 많아서 넓은 신발장을 둘이 쓰라고 노란색으로 다시 번호를 붙여 놓아서 그 칸이 59,60번이 된 것이다. 나흘 만에 그곳에 들른 그녀가 노랗게 양쪽으로 붙은 새 번호 대신 가운데에 적힌 검은색 숫자를 읽은 것은 어쩌면 당연하지도 몰랐다. 우리는 적지 않은 나이니까.
수첩에 담긴 그녀의 사진을 들여다본다. 투박한 음성과는 달리 선이 가는 작은 얼굴이 참 연약해 보인다. 이렇게 나는 신발 한 켤레를 잃었다가 찾으며 가냘프고 정 많은 당진의 그녀와 새로운 인연 하나를 맺었다. 더불어 자신이 공들여 선물한 신발을 잃어버린 나를 오히려 위로해준 친구의 긍정적인 품성도 다시 느끼게 되었다.
무언가를 잃어버리면 새로운 것을 얻게 된다던 어른들 말씀이 생각난다. 그런데 나는 잃어버린 것도 찾았고 새로운 인연도 맺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내일은 친구를 불러내어 분위기 좋은 찻집에서 따끈한 커피 한 잔 나눠야겠다. 돌아온 신발을 자랑스레 신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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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내면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는 뜨고 집니다.
누구도 못하는 일을 하면서도
차분하고 조용합니다.
시간은 소리 없이 다가와
일정한 속도로 흘러갑니다.
아무도 그에게서 벗어나지 못하지만
제 힘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생명을 이끌어가는 공기도
정신의 지지대인 사랑도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 것에 대해 쓰고 싶었지만
능력이 미치지 못해
삶의 언저리에서 마주쳤던
저장하고 싶은 순간들을 담았습니다.
언젠가는 닿고 싶은 그곳에
다가갈 수 있기를 바라면서.
2016년 가을
봄비, 권예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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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책을 내면서
1. 수필이 나를 쓴다
•수필이 나를 쓴다
•경회루에 걸린 그림 한 폭
•미켈란젤로의 서명
•행복해요
•클림트를 입은 여인
•매미, 여름을 울다
•고양이 똥
•겨울 수목원에서
•다세대주택
•옥이는 오지 않았다
•빈첸시오의 집
2. 격포리의 사랑
•격포리의 사랑
•깔레의 시민
•구피의 신
•논개, 그리고 수필
•금강산에서 반야를 만나다
•쇼핑, 그리고 VIP
•강릉심해두부
•밤에 쓴 선글라스
•빛과 그림자
•더미라는 이름의 스턴트맨
•그때 그 사람들
3. 유자향기에 젖다
•유자향기에 젖다
•맑고 고운 빛
•콩순이
•남편의 여자 친구
•왕버드로가 요양병원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
•나무꾼과 선녀
•하얀 스커트의 여인
•피천득「수필」에 딴지 걸기
•수표일 밤 10시 무렵
•부부싸움의 기술
4. 녹슬지 않은 밀어들
•편지, 그 녹슬지 않는 밀어들
•오죽이 울다
•Ctrl+Alt 그리고 방향키
•간절한 마음
•천사들의 말
•수필카페의 토끼
•어성전의 3박 4일
•아는 것이 병이다
•돌아온 신발
•뜻밖의 선물
•엄마, 오늘 못 들어가서 미안해
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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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4의 글 ◆
수필이 나를 쓴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시와 수필을 쓰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맞는 말 같기도 하고 틀리는 말 같기도 하다. 냉정히 말하자면 시는 내가 쓰는 것 같은데, 수필은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내 안에 스며있는 나의 사상과 이야기를 쓰는 것이 수필이고 보면 내가 쓰는 것이 맞는데, 이상하게 나중에 보면 수필이 나를 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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