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재" 정상은 암벽을 깎아 만든 길로, 정읍과 장성을 연결한다. 이곳엔 장성부사 홍병위가 ‘갈재, 고개를 넓히고 고개를 낮추어 길을 만들어 영원히 잊지 않고 기리자’는 영세불망비가 자리하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전라도 장성현에 따르면 ‘갈재는 위령(葦嶺) 노령(蘆嶺)이라고도 하며, 현 북쪽 30리에 있으니, 요해(要害)의 땅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한자 위(葦)와 노(蘆), 두 글자는 "갈재"를 가리키는 바, 이들이 많아서 불리워 진 것 같다. 입암산과 방장산의 협곡을 잇는 갈재 는 삼남대로가 지나는 길목이다. 도적들이 많아 나그네들이 한데 모여 가거나, 또는 극락원(極樂院), 연화원(蓮花院), 미륵원(彌勒院) 등 원(院)에서 쉬면서 안전하게 길을 건넜다.
"전북도민의노래"
]1962년 10월 27일 제정 김해강 작사 김동진작곡
1절 ‘노(蘆)령 에 피는 햇살 강산은 열려 금만경 넓은벌에 굽이는 물결 복되라 기름진 땅 정든 내 고장 억만년 살아나갈 정든 내 고장.
'후렴, 깃발을 울려라 힘을 빛내라 밝아오는 내 나라 우리 대전북’
2절 인정도 아름다운 마한 옛터에 한 송이 무궁화로 피어난 겨레 차림도 새로워라 피는 새 살림 새 희망 새 광명에 피는 새 살림.
3절 삼백만 도민들아 모두 나서라 빛나는 민주문화 이 땅에 심어 힘있게 보람있게 복되게 살려 대한을 대한으로 복되게 살려.
‘전북 도민의 노래'를 알고 있는가.
노래는 모두 3절로 구성, 각 절마다 ‘깃발을 울려라 힘을 빛내라 밝아오는 내 나라 우리 대전북’이란 후렴으로 구성돼 있다. 이는 15대 김인 지사때인 1962년 10월 27일 제정됐으며, 김해강이 작사를, 김동진이 작곡을 했다. 이를 통해 전북 도민의 결집 및 응집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범도민 운동으로 확산하자는 메시지다. 당시엔 전북도청과 시군 지자체 공무원들이 오전 6시 기상과 함께 운동장 등에 모여 도민의 노래에 맞춰 아침 체조를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필자는 가사를 제대로 외우지 못해 학교나 관공서에서 스피커를 통해 이 노래가 나오면 따라서 흥얼거리는 정도였다. 다만 3절 첫 소절이 “삼백만 도민들아 모두 나서라”로 시작하는 것만 기억하고 있다. 김해강선생은 인구가 계속 늘어날 것으로 추정하고 후손들을 위해 넉넉하게 “3백만 도민들아”라고 표현했을 터이다.
1983년 22대로 부임한 심재홍지사가 어느 날 기자들과 술자리를 같이한 자리에서 ‘전북 도민의 노래’를 3절까지 힘차게 부르는게 아닌가. 경기도 출신인데다 부임한지 얼마되지 않은 지사가 도민의 노래를 모두 불러 놀랬다고 한다. 이후 1981년 10월 25일 조례로 제정, 오늘날 도민의 날이 됐다. 다시 노령에 뜨거운 햇살에 피는 날이 올까. 노랫말처럼 억만년 살아 나갈 정든 내 고장에 깃발을 올려야 하리라. 갈재의 꽃무릇이 오늘따라 더없이 붉디붉다./이종근(문화교육부 부국장)
친일 인사가 곡을 만들었다는 논란이 불거진 '도민의 노래'가 '전북 아리랑'으로 재탄생했습니다.
‘전북 아리랑’ 가사.
전라북도는 오늘(1월30일) 도청 대공연장에서 열린 '소통의 날' 행사에서 민요 아리랑의 전통적인 선율로 구성한 도민의 노래, '전북 아리랑'을 처음으로 선보이는 제작 보고회를 열었습니다. 임동창 풍류 피아니스트가 작곡하고 방수미 명창이 부른 '도민의 노래'는 도 단위 행사와 기념식 등에 두루 활용될 예정입니다.
1. 산과 들에 꽃이 피고, 사람꽃 피어나고 황금 들녘 너머 새바람 불어오네 후렴) 여기가 좋다 함께라서 좋다 펼쳐 봐요 내일의 꿈 우리 함께 만들어요 후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내사랑 전라북도 아름다워 2. 너와 내가 어우러져 내 사랑 전라북도 맛과 멋과 흥겨움과 새로움이 넘쳐나네 후렴) 여기가 좋다 새로워서 좋다 걸어가요 우리 함께 아름다운 사람이여 후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내사랑 전라북도 아름다워
[출처] 전북아리랑 - 전북도민의노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