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에스겔 47장 1-2절 하나님이 임재하신 곳에서 나온 생수
여러분들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를 얼머나 하고 계십니까? 혹시 기도하다가 지쳐서 멈추지는 않으셨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는 열정적으로 하던 기도도 중단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그 이유중 하나가 기도의 응답이 더딘 것같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왜 광야같이 황폐하고 메마르며, 비정하고 악을 행하며, 온갖 중독에 빠져 있으며, 우상을 숭배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를 함에도 불구하고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지 의아해 합니다. 다른 사람의 변화는 물론 이고 자신이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동일한 의문을 갖습니다. 왜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걸까요? 그 원인은 사막에 물이 흐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막과 광야와 메마른 땅과 같은 사람들의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흘러나오는 생수가 흐르면 완전히 달라져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지난 주에 여러분들은 그리스도의 복음과 함께 주의 나라가 임할 때 메마른 땅과 광야와 사막에 샘이 솟고 물이 흐르면서 꽃들이 피고 향내가 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과 시편 67편의 말씀을 통해 들으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 같이 피어 즐거워하며 무성하게 피어 기쁜 노래로 즐거워하며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사론의 아름다움을 얻을 것이라“고 예언을 했고, 시편 67편을 통해 씨를 뿌리는 것마다 땅이 그 소산을 내는 복을 하나님이 주신다는 말씀을 들으셨습니다. 오늘은 그 물들이 솟아나고 흐름으로 인해 광야와 메마른 땅과 사막에 일어난 놀라운 역사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통해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아름답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는 하나님의 역사의 근원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놀라운 변화를 일으키신다는 것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여러분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과 하신 일로 안내를 하는 것이 좋을 것같습니다. 요한복음 7장을 보면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할 때 갈릴리로 잠시 피하여서 그곳에서 사역을 하시던 예수님께서는 유대인의 명절 중의 하나인 초막절에 맞춰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가셨습니다. 거기서 예수님은 많은 유대인들에게 자신을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보내셨음에도 불구하고 믿지 않는 다는 사실을 지적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셨는데 그 구절이 바로 요한복음 7장 28-29절의 성전 앞에서 크게 외치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너희가 나를 알고 내가 어디서 온 것도 알거니와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니라 나를 보내신 이는 참되시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 나는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라“
그리고 명절 끝날이 이르렀을 때 예수님은 다시 성전 앞에 서셔서 외치셨습니다. 요한복음 7장 37-39절입니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이 말씀을 보면 마치 옛날 펌프질을 하던 수도가 생각이 납니다. 펌프질을 하던 수도는 항상 마중물이 있어야 합니다. 마중물에 대하여 나이 드신 어른 들은 아시겠지만 젊은 사람들은 생소한 말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펌프질을 할 때 그 속에 물이 없으면 아무리 힘을 들이고 공을 들여도 지하에 있는 지하수가 끌어 올려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공기가 옆으로 다 빠져나가서 지하에 있는 물을 끌려 올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중물을 수도에 넣고 펌프질을 하면 공기가 새지 않으면서 앞축이 되어 지하에 있는 물이 끌어 올려져 올라와 입구를 통해 콸콸 쏟아지게 됩니다. 그러면 신나서 물을 마시기도 하고, 그 물로 씻기도 하고, 또 양동이에 받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중물이 없으면 펌프는 무용지물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의 역사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마중물과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이 주시는 그 생명의 물을 마시면 그 사람은 그때부터 자신의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기 시작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진리의 역사가 자신 안에 일어나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 사도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에 주석을 달아서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킨다”고 설명을 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믿고 자신이 주시는 생수를 마시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고 말씀하신 근거는 바로 오늘 여러분들이 읽으신 에스겔 47장의 말씀을 염두해두고 계신 것입니다. 에스겔 47장은 멸망한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회복시키시는데 성전을 새롭게 하심으로써 그 일을 시작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에게 보이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성전에 임하시자 성전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찼습니다. 에스겔 43장 4-5절 말씀을 보면 “여호와의 영광이 동문을 통하여 성전으로 들어가고 영이 나를 들어 데리고 안뜰에 들어가시기로 내가 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하더라”하고 있습니다.
그 성전을 자신의 영광으로 가득 채우시던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에게 그것을 보이신 후에 그를 이끄셔서 거룩한 성전 앞 동쪽에 있는 문지방이 있는 곳으로 이끌어가셨습니다. 에스겔 선지자에게 보이실 것이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이끌려 성전 동쪽 문으로 간 에스겔 선지자는 거기 오른 쪽 문지방에서 물이 스며서 나오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물은 동쪽으로 흐르다가 제단을 돌아서 남쪽으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에스겔선지자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그 물을 따라 내려가 보았습니다. 가다보니 그 물은 점점 깊어져서 발목까지 올라왔다가, 더 멀리가자 무릎까지 다았고, 더 멀리내려 가서는 허리까지 올라왔고, 그 후에 더 멀리 가자 이제는 사람의 키를 넘겨서 수영을 해야만 하는 깊이를 더하는 큰 강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그 강물을 따라가면서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영광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강물로 인해 강과 바다에 엄청난 물고기들이 살아서 어부들이 그물을 던지면서 잡고 있었고 강 주변에는 수많은 나무들이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고 있었고, 새들과 동물들도 거기서 노닐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 강물을 따라 가보니 썩어 있던 바다가 정화가 되어 깨끗하게 변해 가고 있었습니다. 그 모든 변화의 원인이 바로 성전 문지방에서 시작된 물로 인하여 일어난 놀라운 일입니다. 그 시작은 매우 미약해 보였지만 그 나중은 심히 창대한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시작된 하나님 나라가 베들레헴의 마굿간에서 시작되어 지금 온 세계에 충만해지고있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그 성전을 눈에 보이는 건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성전을 다시 정의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장을 보면 유대인의 유월절이 되었을 때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고 돈바꾸는 자들의 상을 둘러 엎으시고 비둘기를 날려 보내시며, 가축들을 성전에서 몰아내셨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의 행동을 보고 의아해하던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네가 이런 일읗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하고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들에게 대답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장 19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그러자 그들이 어이가 없어서 예수님께 다시 질문을 합니다.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그리고 그 질문 뒤에 사도 요한은 매우 중요한 사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21-22절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예수님을 따라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던 제자들은 예수님이 행하시는 행동의 의미를 그 당시에는 몰랐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 다시 말해 부활하신 후에야 “46년된 성전을 헐라”는 말씀의 의미와 “내가 사흘만에 다시 세우리라”는 말씀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인 성령은 예수님을 죽은 가운데서 사흘만에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로인해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성전을 자신의 변화된 육체로 세우셨습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분의 충만함이 있습니다. 에베소서 1장 23절을 보면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하고 말씀하십니다.
새롭게 세워진 성전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충만함이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 혼자만의 충만함이 아니라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충만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파괴된 세상과 만물들을 다시 회복시키실 능력이 있고 그 만물을 충만케 하실 권능도 가지고 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28장 18절입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자신에게 온전히 순종하며 복종한 아들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셨고 아들은 그것을 받으시기 위해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에베소서 4장 10절입니다.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신 예수님은 그 권세로 만물을 충만하게 하셨습니다.
물론 지금 세상은 완전히 충만해 있지는 못하지만 세상 모든 곳에서 그리스도는 만물을 하나님의 영광과 아름다움으로 충만하게 하시기 위해 하늘의 천사들을 부리시고, 또한 이 땅에서 자신의 일꾼으로 세우신 의의 일꾼들을 통하여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 그 일꾼들이 어디를 통하여 세워집니까? 맞습니다. 바로 교회를 통하여 세워집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몸인 교회에는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함이 있으며, 그 충만함이 바로 성령으로 말미암아 주어지고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통해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충만함으로 나타내시는데 그것이 사막과 메마른 땅과 광야와 같았던 마음들 가운데 성령의 생수가 흐르고 그 생수로 인해 백화합같이 피고 기뻐하는 마음으로 변화가 되는 것입니다. 그로인해 일어나는 마음의 변화를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61장 3절입니다.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이 놀라운 변화의 역사를 예수님은 교회 안에서, 그리고 교회를 통해서 온 세상에 일으키시길 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며 하나님 나라의 역사입니다. 비록 하나님 나라가 이 세상에 완전하게 드러나기까지는 예수님이 재림하셔야 가능하지만 그 이전에 성령이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나와서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로 들어가실 때에 예수님이 가지신 그 충만함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넘치도록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역사에 참여하고 쓰임받는 교회가 얼마나 복되겠습니까?
하지만 오늘날의 교회는 아직도 세상에 대하여 닫혀 있습니디. 세상은 하나님을 떠나 살면서 온갖 죄악으로 인해 신음하며 고통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을 해방시켜주고 그리스도께서 가지신 충만함을 보여주고 누리게 해야할 사명이 교회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자신들이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조차 알지 못한 채로 오직 자기 사랑에 빠져서 자기가 받을 축복만 계수하느라고 정작 하나님이 주실 은혜와 진리로 역사하시는 성령충만과 그로인해 일어날 세상의 놀라운 변화를 전혀 기대하지 못한 채 병들어 누워있는 사람처럼 겨우겨우 생명만 연장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많은 교회들이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소망도 잃고 비전도 잃었습니다. 온 세상에 충만하게 하실 그리스도의 아름다움과 그 영광을 드러나게 해야할 교회가 기복신앙과 자기 사랑에 빠져 병들어 있는 것입니다. 이는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머리이신 예수님께 붙어있는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예수 그리스도의 일을 하지만 머리이신 예수님께 붙어 있지 못한 교회는 그리스도와 상관없는 삷을 삽니다. 다만 그들은 복만을 구할 뿐입니다. 그리스도께 붙어 있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과 동행할 수가 없습니다. 이미 자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멀리 떠났기 때문입니다. 유다서 1장 6절을 보면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하면서 자기 지위를 떠난 사탄과 추종자들의 타락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이 주신 자신의 지위와 자기가 마땅히 있어야할 하나님이 주신 처소를 떠나는 것은 이미 그가 마음으로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떠났다는 것은 죄를 범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치 아버지를 떠났던 탕자가 회개하고 돌아올 때 한 말이 그가 하나님과 아버지께 죄를 범한 것을 고백한 것과 같습니다. 누가복음 15장 18-19절입니다.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탕자라고 일컫는 이 작은 아들이 자기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범한 것을 깨달았던 곳이 어디였습니까? 돼지 울간입니다. 돼지 농장의 돼지 울간에서 주린 배를 붙잡고 쥐엄열매를 먹으면서 이 작은 아들은 자기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 죄를 하나님 아버지와 자신의 친 아버지께 나아와 고백을 합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아들을 변함없이 사랑하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도 역시 여러분들을 변함없이 사랑하시지만 여러분들은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임재로 충만한 성전 문지방에서 생명수가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처럼 여러분들의 인생에도 역시 생명수가 흘러나오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 생명수는 은혜와 진리로 흐르는 성령충만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새롭게 세워진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는 결코 마르지 않는 풍성한 생명수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은혜와 진리의 생수인 성령을 흘려보내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물을 뜨러 한 낮에 우물을 찾아온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4장 14절입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여러분들이 이 사실을 믿고 생수를 마신다면 여러분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입니다. 영생하도록 예수님에게서 은혜와 진리로 역사하시는 성령으로 충만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에베소서 3장 19절에서는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하고 말씀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마치 안에서 마중물을 만나 펌프를 통해 지하수처럼 세상 밖으로 나온 지하수처럼 생명수가 강같이 흐르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로인해 여러분 안에서 성령이 주시는 은혜와 진리의 생명수가 영원히 끊어지지 않고 나오게 될 것입니다.
또한 그 성령 충만의 역사가 문지방에서 나온 물이 제단을 돌아 남쪽으로 흘러 강을 이룬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우리 제석교회에서 시작하여 여러분의 가정과 주변에, 동네에, 이 보령시 전역에, 그리고 이 나라와 온 셰계에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하며 노래했던 그 일이 우리 교회를 통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지난 주에 들으셨던 말씀인데 제가 읽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사야 35장 5-10절입니다.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될 것이며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될 것이며 승냥이의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이 날 것이며 거기에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 바 되리니 깨끗하지 못한 자는 지나가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될 것이라 우매한 행인은 그 길로 다니지 못할 것이며 거기에는 사자가 없고 사나운 짐승이 그리로 올라가지 아니하므로 그것을 만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받은 자만 그리로 행할 것이며 여호와의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들의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로다”
이 축복이 2024년에 하나님의 임재와 더불어 깨어기도하기를 계속하는 우리 이 작은 제석교회에서 일어나게 될 것을 믿고, 여러분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산 제물로 드림으로 하나님이 선하게 사용하시는 제석교회 성도 여러분들이 다 되시길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