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이야기 29 신라 유리 이사금(儒理尼師今)
유리 이사금(儒理尼師今)이 왕위에 올랐다. 그는
남해의 태자이다. 어머니는 운제부인(雲帝夫人)이며, 왕비는 일지 갈문왕(日知葛文王)의 딸이다.[혹은 왕비의 성은 박씨이며, 허루왕(許婁王)의 딸이라고도
한다.] 애초에 남해(南解)가
돌아가셨을 때, 유리가 당연히 왕위에 올라야 하는데, 유리는
대보(大輔) 탈해(脫解)가 본래 덕망이 있다고 생각하였으므로 그에게 왕위를 사양하였다.
탈해가 말하였다.
“임금이라는 자리는 보통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훌륭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나이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시험 삼아 떡을 깨물어 보시지요.”
그 결과 유리의 이 자국이 많았으므로 즉시 가까운 신하들과 함께 그를 받들어 왕위에 오르게 하고, 왕호를
이사금(尼師今)이라 하였다..
김대문(金大問)이 이르기를 “이사금은 방언이다. ‘이사금’은 곧 ‘이의 자국’이란
말이다. 이전에 남해가 죽음을 앞두고, 아들 유리와 사위
탈해에게 “내가 죽은 뒤에는 너희들 ‘박’과 ‘석’ 두 성을 가진 사람 중에 나이 많은 자가 왕위를 이으라.”고
말했었다. 그러나 후에 김씨 성이 또한 흥기하였으므로, 세
성씨들 중에 나이가 많은 사람이 왕위를 이 初南解薨 儒理當立 以大輔脫解 素有德望 推讓其位 脫解曰 神器大寶 非庸人所堪 吾聞聖智人 多齒 試以餅噬之 儒理齒理多
乃與左右奉立之 號尼師今 古傳如此 金大問則云 尼師今 方言也 謂齒理 昔南解將死 謂男儒理壻脫解曰 吾死後 汝朴昔二姓 以年長而嗣位焉 其後 金姓亦興 三姓以齒長相嗣
故稱尼師今
<삼국사기 제1권 신라본기 제1(三國史記
卷第一 新羅本紀 第一)>
었다. 이러한 이유로 임금을 이사금이라고 불렀다.”
儒理尼師今立 南解太子也 母 雲帝夫人 妃日知葛文王之女也[或云妃姓朴 許婁王之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