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군과 광복군은 왜 부풀려 졌을까?
1. 누군가 글에서 한반도에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방식은 이승만의 대한민국 건국의 정통성을 지우는 것이다고 하더군요. 그 방법이 친일세력으로 프레임 하는 방법, 미국 꼭두각시 정권으로 엮는 방법, 대한민국의 시작을 1919년 상해임정으로 앞당기는 방법이라고 합니다
대한민국 건국의 정통성이 문제가 되는 것은 1948년 이승만의 외교 노력으로 한반도에서 유일 합법 정부로 인정한 것은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북한은 자신이 정통이라고 주장하기에 대한민국 건국의 정통성은 부정되어야 하는 것이 된 것이고 역사전쟁이 있어왔다고 하더군요
2. 거기에 우파 진영에서는 부정과 부패를 저지르고 그 오명은 이승만대통령에게 떠넘긴 자유당 세력의 이승만 지우기도 있었다고 합니다. 한국의 정치는 과거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어 보이네요. 그리고 박정희 역시 이승만 지우기를 하면서 김구와 독립군을 부각시키죠
(유재일, 2023.8.28.) 이승만을 캔슬 하는(지우는) 과정에 대한 냉정한 사고를 할 필요가 있다. 이승만을 캔슬한 사람은 다름 아닌 박정희고 홍범도를 추서한 것도 62년 박정희였다. 박정희는 대한민국 독립운동사를 무장투쟁 중심으로 바라봤고 우리는 청산리 전투와 봉오동 전투등을 어려서부터 배웠다.
이승만을 영웅시하는 역사 서술은 오래전에 캔슬되었고 4.19와 독재자 이승만에 대한 교육은 실시되었지만 자유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이 탄생하고 한미동맹이 성립되는 과정에서의 이승만의 역할. 6.25 를 극복하는 이승만의 업적은 교육 받지 못했다
박정희는 이승만의 장례를 전후로 그의 신원을 복원할 기회가 있었지만 이승만의 무능과 과오가 자신의 쿠데타를 합리화 시켜주는 기제였기에 이승만이 한 때 누린 건국 대통령, 건국의 아버지. 독립운동의 중추. 이런 이미지를 철저히 캔슬했다.
국부, 국모의 자리를 차지한 건 박정희와 육영수였고 대한민국의 독립운동사는 무장투쟁의 영웅담, 안창호의 자강론을 중심으로 교육되었고 이승만의 가치는 제대로 교육하지 않았다. 이승만이 캔슬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외교의 중요성과 한미동맹의 기원과 필요성까지 캔슬시켜 버렸다
국가의 첫 번째 영웅을 이순신으로 만들고 상무정신을 강조하고 독립운동사도 무장투쟁 중심으로 교육을 시켜놓은데다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다함께 부르게 시켰으니 대한민국사는 없고 민족 중심의 역사 서술만 있는 거다.
조선과의 단절도 없이 광화문을 조선의 왕과 장군이 차지하는 사태까지. 현대국가 대한민국이 조선과의 연결선상의 국가로 인식되는 기이한 현상이 일상화 되어 버린거다. 반일과 이승만 캔슬이 대한민국 국민 인식의 디폴트고 그 일반의 인식을 뒤집으려 노력하는 사람들이 극우로 몰리게 되는 정치 지형은 이렇게 탄생했다 https://bit.ly/3ssm6SS
3. 그런데, 문제는 독립군이니 광복군이니 하는 것이 엉터리였다는 겁니다. 이승만을 버리고 대체할 만한 가치가 없었다는 것이죠. 그게 소련 공산주의자 홍범도의 흉상을 육군사관학교에 설치한 것에 대한 논란의 배경인 것이죠
(한정석, 2023.8.28.) 대한민국 국민 중에 얼마나 독립군의 정체성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나? 그렇게 중요한 독립군을 역사에서는 왜 몇 줄 안팎으로 가르치고 끝내냐 말이다. 독립군은 파면 팔 수록 덮고 싶은 것들이 나온다.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복종해야 할 상위의 규범적 질서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독립군 입장에서 같은 독립군이었어도 자기가 주도할 수 없다면 적에게 넘겨 주는 것이 나았던 것이고, 조선인이어도 협조하지 않으면 수탈과 학살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독립군이 간도 조선인들에게 배척되고 정착하지 못해 몰락의 길을 간 것이다.
4. (한정석, 2023.8.28.) 광복군은 독립군이 아니었다. 국군의 뿌리가 '독립군과 광복군에 있다'고 잘못 주장하는 이들도 광복군과 독립군을 다르게 구별한다. 1940년 창설된 광복군은 장개석이 중일 전쟁에서 중국을 위해 고용한 일종의 용병이었다.
그래서 광복군의 지휘권은 국민당군에게 있었고 최종적으로는 장개석에게 있었다. ... 1940년 광복군 창설 당시 김구는 상해 임정이 거의 와해되고 재정난이 겹쳐서 더 이상 독자 생존이 불가하다고 판단했고 임시정부를 사실상 장개석의 국민당 정부에 종속시키는 조건으로 지원을 얻어낸 것이다.
광복군이라는 이름도 한족이 청나라로부터 독립한다는 신해혁명의 기치인 '광복(光復)'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었다. 당시 장개석과 김구는 중국의 대일 전쟁 승리가 조선의 해방을 가져온다는 합의 속에 장개석은 조선의 중국 종주권을 못박았던 것이다 https://bit.ly/47NsGDx
5.(2023.8.28.)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가 독립군이니 광복군이니 하는 주장은 모두 헛소리다. 대한민국 국군의 기원은 이러하다.
1945년 11월 군정법령을 통해 국방사령부를 설치하였고, 이어 1946년 1월에는 국내치안과 경비를 담당하기 위해 국방경비대를 설립하였다. 국방사령부는 미군정에서 국방부, 국방경비대는 군대와 같은 것이었다.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는 이러한 국방경비대에 있는 것이다.
임시정부의 광복군이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라는 이야기는 대한민국 국군의 기원이 모택동, 장개석에게 빚지고 있다는 이야기와 같다. 광복회와 광복군은 중화민국이 훗날 조선이 해방될 경우 그 종주권을 주장하기 위해 장개석의 지원과 예하에 있었던 똘마니 그룹에 불과하다.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사실상 장악된 임시정부는 해방과 건국에 아무 의미없는 조직이었다. 임정을 대한민국 정부로 인정받으려 했던 것은 해방 후 미소 공위에서 한반도 통합 선거에 대비해 북한에 우위를 점하려는 정치 세력들의 프로파간다 성격이 짙었다 https://bit.ly/3QY0Yhf
6. 한정석은 ‘상해임정이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사실상 장악된 상태였고’, ‘광복군은 중국이 청나라때와 같이 한반도에 대한 종주권을 주장하기 위한 장치로서 만들어 둔 장치’라고 말합니다. 김구는 북한을 방문한 전쟁준비를 보고 애매한 행보로 추종자인 안두희에게 저격당했죠
7. 공교롭게, 중국/북한/공산주의/북한에 김구가 책임자로 등장하네요. 현재 중국 공산주의 동조세력/북한 공산주의 동조세력이 이승만을 김구로 대체하려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게 되죠. 한국의 지도자가 이승만이 아닌 김구였다면 중국도 북한도 뜻을 이룰 수 있었을 거란 아쉬움이 있겠죠
8. 여기에서 해방전 시기에 반일활동을 했다고 하더라도 현 국가체제(대한민국)를 반대하는 활동을 하거나 적을 이롭게 하는 활동과 연관되어 있다면 대한민국이 모두 수용할 수 없는 이유가 발견되는 겁니다.
자국의 역사와 정통성을 부정하고, 왜곡하여 배우게 되고, 그 결과로 미래에 나라를 뺏기고 노예가 될 것이기 때문이죠. 소련과 중국, 북한의 공산주의자를 독립활동가라는 이유로 대한민국 역사에 넣어 정통성을 부여하는 것의 위험성이 여기에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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