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아이를 찾아서 (누가복음 2:41-50)
중국에 사는 어떤 사람(궈강탕)이 아들을 잃어버렸다. 자기 목숨보다 더 사랑하는 아들을 잃어버린 아버지가 아들을 찾아나섰다. 궈씨의 아들은 1997년 후와 탕이라는 인신매매범들이 잡아갔다. 집 앞에서 놀고 있던 두살배기 아들을 여성 후씨가 유인해 데려갔고, 이후 버스 정류장에서 탕씨와 합류했다. 이들은 허난성으로 넘어가 아이를 팔아 넘겼다.
그 후 아버지는 아들을 찾아서 이곳 저곳을 다녔는데 24년을 찾아다녔다. 궈씨는 오토바이 뒤에 아들의 사연을 적은 깃발을 매달고 온 중국을 돌며 전단지를 뿌렸다. 24년 간 궈씨는 교통사고로 뼈가 부러지거나 노상 강도를 만나기도 했다.
일생 모은 돈을 아들 찾는 데 썼기 때문에 구걸을 하거나 다리 밑에서 잠을 청하는 날도 있었다고 한다.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도 했지만, 아들 찾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궈씨가 아들을 찾아 다닌 거리는 총 50만㎞, 파손된 오토바이만 10대에 이르렀다고 한다.
중국 대륙을 50만㎞ 누빈 끝에 2021년 07월 11일 결국 아들을 찾았다. 그렇게도 애타게 찾던 아들을 만나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다. 궈씨는 “아이를 찾았으니 이제부터는 행복할 수 있다”말했다.
이 사건은 2015년 영화로 만들어졌다. 배우 유덕화가 주연한 ‘잃어버린 아이들’이다. 궈씨가 아들을 찾았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류덕화도 “행복하고 설렌다. 궈의 끈기를 존경한다”며 기쁜 마음을 드러냈다고 전했다.
오늘 성경 말씀은 예수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이다. 예수님의 어린이 이야기는 이 말씀 밖에 없다. 유월절이 되어 예루살렘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아들이 보이지 않았다. 벌써 하루길을 걸어왔는데 아들이 보이지를 않았던 것이다. 동행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본 적 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면서 아들을 찾았지만 없었다. 사흘을 찾아 해맨 끝에 성전에서 아들을 찾았다. 어머니 마리아가 얘야 네 아버지와 내가 얼마나 애가 탔는데 여기 있었구나. 우리가 걱정했다. 결국 아들을 성전에서 찾았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어린이 주일에 들려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시기를 바란다.
첫째, 마리아와 요셉이 아들을 잃어버렸다.
예루살렘에 하나님께 예배하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보니 아들이 없어졌다. 당연이 아들이 부모를 따라왔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아들이 없었다. 하루길을 걸어가다가 비로소 아들 생각이 났다. 그런데 아들이 없었다.
시골 나사렛에 살다가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 가면 볼 것도 많고 살 것도 많다. 목수였던 요셉은 목수 일에 필요한 좋은 연장들, 톱이나 도끼나 이런 것에 관심이 많았을 것이다.
어머니 마리아는 액세서리나 옷이나 향품이나 그런 것들에 마음을 빼앗겼을 수도 있겠다. 아이들은 잠시 눈을 떼면 사라진다. 사라지고 나면 울고불고 정신없이 찾지만 쉽게 찾을 수도 없다.
아이를 잃어버리고 나면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소중하고,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아이들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내 목숨보다도 더 소중한 것이 아들이고 딸이다. 아들을 잃어버린 아버지 요셉이 근심하며 찾았다고 했다. 누가 잡아가서 노예로 팔아버리지는 않았을까? 밥은 먹고 있을까? 삼일간 부모는 지옥을 헤맸을 것이다.
둘째, 잃어버린 아들을 찾아야 한다.
갔던 길을 거슬러가야 한다. 잃어버렸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원점으로 가야 한다. 헤어졌다고 생각하는 그 지점으로 가야 한다. 거기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아이를 잃어버렸을 때는 정신이 나가고 생각이 혼란스러워진다. 그때 정신을 차리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들은 과거 언젠가 아이를 잃어버려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도 아이를 잃어버리고 정신없이 이곳저곳을 뛰어다닌 경험이 있다. 그 때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이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단지 육신의 문제만은 아니다. 영적인 차원이 있다.
아이의 영혼에 대한 것이다.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는 말이 있다. 이는 자기 생각이 없다는 말이다. 생각이 없는 사람은 영혼이 없다.
선지자 엘리사와 시종 게하시가 길을 가고 있었다. 어떤 마을, 수넴이라는 동네를 지나가는데 한 여인이 그들에게 인사를 하고 자기 집에 들러 잠깐 휴식을 취하고 가라고 했다.
그들이 집에 들어왔을 때 이 여인은 정성스럽게 식사를 대접했다. 그날 이후로 그 두 사람은 이 마을, 수넴이라는 마을을 지날 때마다 그 집에 들러서 식사도 하고 휴식도 하고..
열왕기하 4:13-17에 보면 엘리사가 자신을 위하여 세심한 배려를 하는 여인을 불러 무슨 소원이 있는가 하고 물으니 나는 족합니다. 했다. 사환에게 정말 이 여인에게 필요한 것이 없는가? 하고 물으니 ‘이 여인에게는 아들이 없습니다. 남편은 나이가 많습니다.’
그러자 엘리사가 다시 여인을 불러 말했다. '한 해가 지나 내년 이 맘때에 네가 아들을 안으리라' 말씀한대로 여인이 잉태하여, 한 해가 지나 아들을 낳았다
그 가정에 선물로 주신 아이가 무럭무럭 잘 자랐다. 어느날 밭에서 추수를 하고 있는데 아이가 아버지에게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아버지가 사환에게 아이 엄마에게 아이를 데려가라고 했다.
아이가 낮까지 엄마 무릎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아이 몸이 축 늘어졌다. 아이가 숨을 쉬지 않았다. 아이 엄마는 남편에게 사환과 나귀를 달라하여 나귀를 타고 갈멜산으로 달려갔다. 거기에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있었다.
드디어 갈멜산에 도착하여 선지자 엘리사를 만났다. 엘리사가 일어나 여인을 따라갔다. 결국 엘리사가 그 아이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고 죽었던 아이가 다시 살아났다. 이렇게 잃어버렸던 아들을 다시 찾았다.
우리 아이들, 나이가 들었어도 우리 자식들은 여전히 우리 아이들이다. 우리 아이들이 영혼없이 살아간다면 기도 하시기 바란다. 기도 많이 하시기 바란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종에게 부탁하시기 바란다. 주의 종이 위하여 항상 기도하도록 기도를 부탁하시기 바란다.
셋째, 마리아와 요셉은 아이를 성전에서 찾았다.
부모가 걱정하여 찾아 다녔는데 예수님은 성전에서 아무 일 없는 듯 했다. 어머니 마리아가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엄마 아빠가 걱정하며 찾아 다녔다.’
그러자 예수님이 ‘어찌하여 나를 찾았습니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을 줄을 몰랐습니까?’ 내가 당연히 하늘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하는 것을 왜 모르십니까? 하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두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려 준다. 하나는 아이들이 있어야 할 영혼의 자리는 하나님의 집이라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집에서 신앙 훈련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은 성전에서 묻기도 하고 듣기도 하셨고 대답하기도 하셨는데 사람들이 그 지혜에 놀라워했다.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님의 육신을 찾아다니다가 왜 우리가 걱정하게 하느냐고 했는데 예수님은 영적으로 대답하셨다. ‘어찌 나를 찾아다닙니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했습니까?’ 마리아는 육신의 아버지가 근심한다고 했는데 예수님은 하늘 아버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때로는 아이들이 더 영적이다. 영적으로 열려있고 민감하다. 성전에서 자고 있던 어린 사무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나이든 제사장인 엘리가 듣지 못한 하나님의 말씀을 어린 사무엘이 들었던 것이다.
사람에게는 두 개의 집이 있다. 하나는 육신의 집이고 다른 하나는 영혼의 집이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영혼의 집이다.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육신의 집을 주는 것을 귀중하게 여긴다.
칼릴 지브란 이라는 요르단의 시인이 있다. 한 45년 전에 그가 쓴 시를 보았다. 아이들에 대하여 라는 시에 보면 ‘그대의 아이들은 그대의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갈망하는 생명의 아들딸들입니다./
아이들은 그대를 통하여 세상에 왔지만/ 그대로부터 온 것은 아닙니다./....
그대는 아이들에게 육신의 집은 줄 수 있으나/영혼의 집까지는 줄 수 없습니다.
육신의 집은 부모가 줄 수 있지만 영혼의 집은 하나님을 믿을 때 가질 수 있다.
시편 90편에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 집이 되셨나이다.’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모세는 하나님이 우리 영혼의 집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육신의 집에서는 밥이나 음식을 먹지만 영혼의 집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다.
예수님이 40일 금식 후 주렸을 때에 사탄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이 떡이 되게 하라’ 했다. 이때 예수님께서 유명한 말씀을 하셨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내 아버지로 하고 교회를 하나님의 집으로 믿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고 영광스럽게 하신다. 제가 어릴 때 다닌 교회에 강순이라는 아이가 있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 얼굴이 예쁘지도 못했고 몸매도 통통했다.
순이는 교회를 잘 다녔다. 믿음이 좋았다. 그 또래 중에 믿음이 가장 좋았다. 그 순이가 어떻게 되어 있을까 좀 궁금했는데 누구로부터 소식을 들었다. 울산에 산다는 것과 남편이 교회 장로이고, 장로교 노회 여전도회 연합회 회장이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어렵게 자랐는데 지금은 엄청 부자로 잘 산다는 것이었다. 그 딸 둘은 모두 초등학교 선생님 이라 했다.
돈도 없고 가진 것도 없고 배운 것도 없고 얼굴도 몸매도 다 되지 않았지만 하나님이 그를 책임져 주셨다. 하나님만 찾고 살았던 그를 하나님이 빛나게 해 주셨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면 부모가 책임져 주는 것보다 낫다. 그 부모는 순이를 교육도 못시켰고 우월한 유전자도 나누어 주지도 못했다. 그 부모는 순이에게 아무것도 물려주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좋은 남편도 주셨고 좋은 자녀도 주셨고 많은 물질도 주셨던 것이다.
하나님의 성전을 내 아버지의 집이라, 거기서 살고 예배하고 믿음생활을 열심히 했더니 하늘 아버지가 순이를 책임져 주셨다. 하나님이 순이를 높여 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