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게 상자 안에 들어 있었어." 쓰지 않는 전자제품을 버리러 갔던 남편이 작은 오동나무 상자를 내밀었다. 뜻밖에도 그 속에서 회색 토기가 나왔다. "예쁘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처음 보는 물건 같아 책상 위에 갖다 놓고 요모조모 뜯어보았다. 예전에 도자기를 굽는다고 퇴촌 가마에 들락거리긴 했지만 토기 근처에는 가지도 않았으니 내가 만든 게 아니다. 맨 아래 굽다리는 단순 하게 투창만 했고. 가운데 칸은 투공한 후 토주를 넣었다. 위에 달린 손잡이에는 고리를 주렁주렁 달아 화려하다. 달랑거리는 토주 때문에 '방울잔' 혹은 영부배鈴付杯라고 하는데 삼국시대 이후 맥락이 끊겼다.
흔들거리는 고리 옆에 일부러 찍은 듯한 지문이 있었다. 도자기를 오래 만든 사람들은 지문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잔은 누가 만들었을까? 투공 단면이 안쪽으로 거칠게 밀려 들어간 걸 보면 흙이 무를 때 무리하게 구멍을 뚫은 듯하다. 장식 고리에도 부분 지문이 더러 있는데 궁상문弓牀紋으로 보 인다. 경주 황남대총이나 안압지 발굴 토기에서도 지문이 발견된 적이 있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는데 도공은 손가락 자국을 남긴 것이다. 이런 현상은 도자기에서도 볼 수 있다.
오래전 지인에게서 작은 잔을 선물 받은 적이 있다. 겉모양은 매끈한데 엄지를 안쪽에 넣고 천천히 돌리다 보면 어느 순간 손가락이 쑥 들어가는 곳이 있었다. 자두만 한 잔을 만든 사람은 나보다 엄지가 컸던 모양이다. 그 후 작은 잔을 쓸일이 있으면 일부러 그 흔적을 찾아보곤 했다. 누가 만들었을까 하는 궁금증은 잠시이고 생각은 늘 폭죽처럼 사방으로 날아가 버리지만 손자국이 포개지는 순간은 도공이 친밀하게 느껴졌다.
움품 파인 자국을 고칠 수 있었는데도 그대로 유약을 발라 구웠으니 일부러 그런 거라고 볼 수밖에 없다. 사물은 저마다 고유한 생체 시계를 가지고 있다. 젖은 흙도 그렇다. 축축한 형겊을 씩우고. 비닐을 덮어도 막무가내로 말라버린다. 작업 시기를 내가 아닌 흙에 맞추는 수밖에 없다. 그게 언제 인지는 경험으로 알아내는 수밖에. 도자기 빚는 일은 남자들이 주로 했으니 토기와 작은 잔을 만든 사람도 아마 그럴 거다. 그래도 이름이 알려진 건 몇 명이 안 되는데 예외로 임진왜란 때 일본에 끌려간 도공 백파선 白婆仙이 여자라는 기록이 있다.
왜 이게 우리 집에 있는지 알 수 없어서 생긴 일이지만 물건 유래를 모르는 게 이뿐만은 아닐 터. 묵은 살림이라 그 가짓수가 가히 천문학적(?)인데 이곳저곳을 헤집다 보면 기억이 날까 했지만 결국 지쳐버려서 집 나간 생각이 돌아올 때까지 아둔하게 기다리기로 했다. 토기는 부장품으로 발견되는데 제사나 주술용으로 쓰였다. 요즘은 그런 용도로도 쓰질 않으니 장식용인 듯한데 공을 많이 들였다. 눈으로만 볼 때 보다 손으로 만졌을 때의 기억이 더 오래가는 것은 사실이다. 처음 보는 곳을 본 듯하다고 느끼든가 가끔 만나는 사람이나 장소를 한 번도 본 적 없다고 시치미 떼는 건 뇌가 착각하는 건데 여기 대비할 방법은 없다. 기억을 만질 수 없으니 헛갈리고 망각하는 게 당연하다.
원래의 용도대로 토주가 든 잔을 흔들어 소리를 들어본다. 낮은 온도로 구운 탓인지 맑지 못하다. 도자기 손잡이나 장식을 붙일 때는 흙에 물을 타 만든 이장泥奬을 쓰는데 장식 오른쪽은 디독거리고 왼쪽은 얇게 이겨놓았다 그는 왼손잡이 같다. 서너 개의 쪽 지문으로 친근감이 느껴지긴 하지만 그에 데해 알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사람마다 지문이 다르다는 걸 안지 오래되었지만 20세기 초가 되어서야 : 영국이 실제 수사에 사용했다. 우리나라는 17세기 인조 떼 문맹인 백성이 지장指章을 서명 대신 썼다는 기록이 있고 18세기 영조 때는 범인의 손자국을 증거로 썼다고 되어 있다. 그렇게 앞서 간 조선은 기록의 나라가 맞다.
기록은 남길 수 있지만 기억은 타인에게 넘기거나 사이좋게 공유할 수 없다. 거울에 비친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며 미래의 나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나이다. 얼굴도 거울에 비친 걸 보았고 등짝과 궁둥이는 본 적도 없으며 직접 본 건 손, 발, 배 정도이다. 만진 건 확실하게 믿는다니 몸을 쓰다듬어 보고 그 존재를 인정하기로 한다.
토기 잔을 상자에 도로 넣고 끈으로 묶는다. 상자를 여는 일은 없을 테니 기억은 내리막길을 더욱 빠르게 내려갈 터. 그러나 이게 내 기억의 마지막이 아니기 때문에 '망각의 추억'이라는 미명을 씩워 구석에 놓는다. 잊혀진 기억은 슬프다. 조선 왕조의 마지막 왕인 순종의 말*을 패러디해서 중얼거려 본다. '기억과 망각은 서로 사이좋게 안락을 누리며 살아 (..) 내가 잊는 것이 아님을 마음으로 깊이 이해하고 살아 있는 동안 나의 뜻을 저버리지 않기를 바라.'
*"짐의 오늘의 이 조치는 그대들 민중을 잊음이 아니라 참으로 그대들 민중을 구원하려고 하는 지극한 뜻에서 나온 것이니 그대들 신민들은 짐의 이 뜻을 능히 헤아리라."ㅡ <순종황제실록> AI 퍼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