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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기드온 찬양대 귀한 찬양 감사합니다. 더우니까 가운을 벗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찬양을 받으셨을 줄로 믿습니다.
이 시간에는 오륜교회를 세우시고 사역을 하시고 지금은 오륜교회 설립 목사님으로 그리고 다니엘 기도회를 시작하셔서 지금까지 귀하게 쓰임 받으시는 우리 김은호 목사님께서 나오셔서 위기인가 기회인가 오늘 본문 말씀을 가지고 말씀을 선포하시겠습니다. 말씀 선포하실 때 저와 여러분에게 성령께서 직접 말씀하시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목사님 나오실 때 우리 박수로 환영하겠습니다.
할렐루야 지난 3일 동안 이 자리에서 2026년 파리 디아스포라 다니엘 기도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장소를 허락하시고 섬겨주신 우리 성도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3일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한 얼굴들이 보여요. 그분들은 회개하시기를 바라고요. 우리 옆 사람과 한번 인사를 하겠습니다.
당신을 뵈니 꼭 주님을 뵙는 것 같습니다.
옆 사람이 여러분에게 그렇게 인사를 하지 않는다면 여러분 심각한 문제가 있는 거죠. 여러분 우리의 모습은 주님을 드러내는 모습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다시 한 번 옆 사람과 인사하겠습니다.
당신을 뵈니 꼭 주님을 뵙는 것 같습니다.
근데 주님을 뵙는 것 같지 않은 사람이 있어요.
우리가 인생을 살다 보게 되면 이기를 만날 때가 종종 있어요. 저도 이제 35년에 목회를 조기 은퇴하고 DNA 미스들이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데 지난 35년의 목회를 돌이켜 보니까 예기치 않은 얘기들이 있었더라고요.
그런데 그 얘기가 나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시간을 갖게 만들었고, 또 내게 주어진 인생 위기가 더 많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아 누릴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는 것을 많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쓰는 말 가운데 위기는 기회라고 말하죠.
역사학자 토마스 칼라일도 말하기를 이기는 기회에서 온다고 말을 했어요. 이기는 기회에서 온다. 그러니까 우리 인생 가운데 찾아왔던 고난과 이기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하는 거죠. 우리에게 찾아온 그 인생의 위기를 내가 잘 대처하고 해석하게 되면 오히려 그 위기로 인해서 우리가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갈 수 있고 하나님을 새롭게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는 거죠.
성경을 봐도 위기가 인생에 찾아온 그 위기들이 기회가 되는 경우들이 참 많아요. 또 다른 말로 말하면 역전의 은혜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하만이라는 사람의 모략에 의해서 유대 민족이 말살될 위기 가운데 처했잖아요.
그죠?
성경의 내용을 제가 설명하지 못하지만 여러분들이 반응을 보이면 제가 설교를 더 잘할 수 있어요. 하만이라는 사람의 모략에 의해서 유대 민족이 말살될 위기 가운데 처했는데 그때 하나님이 적극적으로 개입을 하셔서 하만의 그런 모든 모략이 수포로 돌아가게 하시고 오히려 유대 민족은 보호를 받고 그리고 유대 민족을 말살시키려고 하던 하만과 그를 추종하던 사람들이 도리어 죽임을 당하는 그런 얘기가 기회가 되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또 뿐만 아니라 다니엘과 새 친구들이 금신상에게 절을 하지 않아서 풀무불 속에 던짐을 받아서 죽을 수밖에 없는 위기 가운데 있었지만 하나님이 함께하심으로 말미암아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고 살아나왔잖아요.
그 일로 인해서 바벨론의 왕 느브갓네살은 너희들이 믿는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시구나. 그래서 그 죽음의 이기 속에서 그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도리어 드러내는 그런 기회가 되었던 거죠.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앞에는 넘실대는 홍해가 있고 뒤에는 애굽의 여왕 바로가 군대를 이끌고 먼지를 막 일으키면서 추격을 해 왔습니다.
여러분 우리 말로 이런 걸 뭐라고 말하냐면 진퇴양난이라고 말하죠. 진퇴양난 사면초가라고 말합니다. 앞에는 홍이가 가로막고 있고 뒤에는 애굽의 군대가 추격해 오고 어찌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이었지만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사 육지까지 건너게 하시고 뒤따라오는 애굽의 군대가 그 물속에 수장케 되는 역전의 은혜를 경험하게 하셨어요. 홍해 바다의 죽음이 도리어 온수가 죽임을 당하는 새로운 기회가 된 것이죠.
여러분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였던 다윗의 인생. 그 다윗의 인생은요. 파란만장한 인생이었습니다. 어쩌면 그의 인생은 위기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다윗이 여러 가지 위기를 만났지만 가장 대표적인 다윗이 만났던 위기는 골리앗이라고 하는 블레셋의 장수와 싸우게 되는 장면이죠.
여러분 골리앗은 어떤 사람이냐 하면 적어도 키가 한 3M가 되는 거인입니다. 그런데 아버지 심부름으로 싸움터에 갔다가 하나님의 백성들을 능욕하는 골리앗을 보게 됐어요. 그래서 다윗은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물맷돌을 들고 골리앗을 향하여 나아갔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심으로 골리앗을 무너뜨릴 수 있었고,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승리했기 때문에 그는 사울 왕 앞에 서게 되고, 영장으로서의 영장으로서의 위엄을 갖추게 되고, 백성들로부터도 사랑을 받는 그래서 나중에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만일에 다윗의 인생 가운데 골리앗과의 싸움이 없었다고 한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여러분 다윗의 인생 가운데 골리앗과의 만남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니 사도 바울의 인생 가운데 인기가 많았지만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나게 되잖아요. 그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났기 때문에 그는 배에 타고 있는 276명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가 있었습니다.
요셉의 인생 가운데 감옥이라고 하는 위기가 없었다고 한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전혀 성경을 모르는 사람들처럼 앉아 계시네요. 반응이 필요해요. 리액션 연주도 잘하시지만 말씀 앞에 반응하는 게 필요해 요셉의 인생 가운데 감옥이라고 하는 얘기가 없었다고 한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여러분 우리 인생에도 보게 되면 위기의 연속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위기를 싫어합니다. 스스로 위기를 자초하고 싶어서 이 기를 만난 사람은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인생 가운데는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많은 위기를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동일한 상황과 환경도 어떤 사람에게는 위기가 될 수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동일한 상황과 환경, 똑같은 상황이고 똑같은 환경인데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위기가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놀라운 기회의 자리가 될 수도 있다는 거죠. 자신이 처한 그 상황을 내가 어떻게 해석하고 대처하느냐에 따라서 어떤 사람에게는 그 찾아온 위기가 기회가 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도리어 인생의 추락이 될 수도 있다는 거예요.
술 주정꾼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두 아들이 있었어요. 술 주정꾼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두 아들이 있었는데 한 아들은요 성직자가 되고 또 한 아들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술주정꾼이 되었어요. 그래서 술 주정꾼이 된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왜 술 주정꾼이 되었습니까?
그랬더니 술 주정꾼이 된 아들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내가 평생 아버지가 술을 잡수시고 추적하는 것만 보고 자라는데 당연히 나도 술 주게 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평생 내가 보고 배운 것이 그것밖에 없는데 그렇게 대답을 했어요.
성직자가 된 아들에게 물었어요.
당신의 아버지가 술 주정꾼인데 왜 당신은 술 주정꾼이 되지 않고 성직자가 되었습니까?
물었더니 그 아들이 이렇게 말을 했어요.
그럴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대답은 똑같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내가 우리 아버지가 평생 술을 잡수시고 그렇게 막 폭력을 일삼고 그런 모습을 내가 보고 자라는데 내가 어떻게 술을 먹을 수가 있겠습니까? 저는 평생을 살면서 한 번도 술을 입에 대본 적이 없습니다. 아버지의 그런 모습을 보고 자라는데 내가 어떻게 술을 먹어요?
그래서 성직자가 되었다는 얘기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똑같은 상황과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은요 성직자가 되고 또 한 아들은 술주정꾼이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찾아오는 위기가 모두가 다 기회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우리에게 찾아오는 그 위기가 기회가 되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기회가 아니라 추락이 될 수도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했어요. 위기는 위험한 기회다. 위기는 위험한 기회일 수도 있다는 거예요.
본문은요. 예수님과 그 제자들에게 찾아온 위기에 대하여 다루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예수님에게 찾아온 위기 그리고 제자들에게 찾아온 위기가 어떤 것인가를 다루고 있어요. 오늘 본문에 앞서서 예수님은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보리떡 5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5천 명을 먹이고도 남는 기적을 행하셨죠. 예수님께서 이런 놀라운 기적을 행하자 이 표적을 보고 사람들은 자신들이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선지자라고 확신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6장 14절에 보게 되면 이렇게 말하죠. 다 같이 시작.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그들은 그 기적을 보고 난 다음에 이분이야말로 우리가 그동안 기다려왔던 메시아다. 선지자라고 확신을 하게 돼서 그 자리에서 어떻게 했어요?
그 자리에서 그 예수님을 기적의 현장에서 억지로 자기들의 임금으로 삼으려고 했어요.
16절 15절 말씀 다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
그런데 여러분 놀라운 사실은 예수님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 상황을 예수님은 즐기는 것이 아니라 기회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 자체를 유혹이라고 생각하고 위기라고 생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뭡니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정치적인 메시아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잖아요. 세상의 왕이 되기 위해서 예수님이 2천 년 전에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건 아니잖아요.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지 유대 민족의 왕이 돼서 로마의 앞자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함으로 오신 게 아니란 말이죠.
그런데 사람들은 지금 그 기적의 현장에서 예수님을 어떻게 하려고 했어요?
억지로 자신들의 임금으로 세우려고 했어요. 그러므로 예수님 자신에게는 지금의 이 상황이 뭐예요?
위깁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지금 왕으로 세우려고 하잖아요. 예수님은 이 순간이 기회가 아니라 예수님에게 있어서는 위기란 말이죠.
그러면 예수님은 어떻게 자신에게 찾아온 이 위기를 극복을 하시는가?
예수님 먼저 세 가지 방식으로 이 위기를 극복하셨어요.
첫 번째는 뭐냐 그러면 그 현장에서 자신을 임금으로 추대하려고 하는 삼으려고 하는 그런 군중들을 해산시키셨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군중 심리를 이용해서 사람들은요. 예수님으로 하여금 그 자리에서 자신들의 왕으로 추대를 했을 겁니다.
이 군중 심리라고 하는 게 무섭습니다. 여러분들은 어젯밤에 군중 심리를 봤을 겁니다. 아스날을 이기자 생제르망의 팬들이 어젯밤에 밤새도록 폭죽을 터뜨리고 막 난리가 났어요. 어제 집회 끝나고 가는데 15분이면 가는 길을 저도 1시간이 걸렸습니다. 사람들은 군중 심리라고 하는 게 있어요. 그래서 혼자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저도 호텔에서 이렇게 보니까 사람들이 에펠탑 쪽으로 계속해서 몰려가더라고요. 군중 심리를 이용하는 거죠. 군중 심리에 의해서 막 차량을 부수고 날뛰고 이게 온전한 것 같지 않습니다.
저는 이번에 파리에 와서 너무나 이상한 것들을 많이 봤습니다.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여러 가지 추억들이 있습니다. 저는 제 가방을 도난한 것도 그렇고 이 무더위 34도가 되는 이 무더위 속에서 3일 동안 한증막 같은 이곳에서 34도가 되는 이 한증막 같은 더위 속에서 에어컨도 없는데 2시간 동안 집회를 한다는 건 우리 목사님을 대단하게 다시 봤습니다. 얼마나 힘드실까 근데 힘드신 모습이 전혀 안 보이더라고요.
예수님은 두 번째로 어떻게 했는가 하면 그 시간을 즐기고 있는 제자들을 어때요?
배를 태워서 앞서 건너가게 했습니다. 바다 건너편으로 가게 했어요.
세 번째는 예수님 자신은 어떻게 했느냐 홀로 기도하러 산으로 들어가셨습니다. 23절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다 같이 시작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며 거기 혼자 계시더니
사람들이 막 자기를 잡아가지고 억지로 임금으로 세우려고 할 때에 예수님은 그 순간을 즐기고 계신 것이 아니라 군중들을 어떻게 해산시키고 그 순간을 즐기려고 하는 제자들을 앞서 배를 태워서 건너가게 하시고 자기 자신을 어떻게 해요?
산으로 들어가서 홀로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그런 위기의 순간이 찾아올 때에 유혹의 자리를 피하고 산으로 가셔서 늦은 시간까지 홀로 기도하심으로 자신에게 찾아온 유혹의 기회를 극복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요. 누구나 인정받기를 원하고 높아지기를 원하고 사람들로부터 환호와 박수 갈채를 받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연예인들은요. 이것에 능숙해 있어요. 그래서 사람들로부터 환호를 받지 못하면 우울한 감정에 사로잡힙니다.
저희 교회도 연예인들이 좀 있긴 있는데 공항에 와 보게 되면요. 이번에도 그런 분 봤어요. 예 나는 어떤 연예인지 잘 모르겠더라고 머리를 하얗게 염색을 했는데 그냥 막 그 예국에서 온 수많은 남자들은 안 보이는데 다 자매들인 것 같아요. 그 자매들이 막 카메라를 들고 막 계속 따라다니는 거예요. 그 연인은 눈빛 하나 주지 않고 걸어가는데도 막 계속 따라다니면서 찍고 있더라고요.
여러분 평생 그렇게 사람들로부터 막 환호와 박수 갈채를 받으며 산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 순간이 피조물인 우리 인간에게는 가장 위험한 순간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요. 환호와 박수 갈채를 받을 때에 내가 누구인지를 잊어버릴 때가 많아요. 마음이 흔들리고 자신의 본분을 잊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멀어질 때가 많거든요.
어젯밤에 여러분 말씀을 전하신 이용원 선교사님 어제 식사를 하면서 한 2시간 동안 교제를 했거든요. 저는 그분을 만날 때마다 정말 이분은 예수님처럼 살아가는구나 너무 멋지게 인생을 살아가는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돼요. 제가 목사지만 이분을 닮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너무나 많아요.
정말 여러 가지 부분에서 많은 간증이 있어요. 그분에게는 근데 어제 제가 물어봤거든요. 어느 교회를 나가시냐 미국에서 그랬더니 아주 조그마한 개척 교회를 나가신대요. 그래서 하시는 말씀이 큰 교회 작은 교회가 중요한 게 아니고 내가 그렇게 작은 교회를 나가는 이유가 있대요.
그 이유는 뭐냐 그러면 하나님께 집중하기 위해서라 하나님께만 집중하기 위해서 자기가 다니는 교회는 너무 작은 교회인데 그 성도들도 전부 다가 일용직 노동자들 청소부 하는 분들 다 그런 분들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누군지도 잘 모른대요.
여러분 세계적인 테너잖아요. 도밍고와 함께 같이 공연을 할 정도잖아요. 우리나라의 최고의 남자 테너란 말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막 자기 큰 교회 가게 되면 사람들이 와서 사인해 달라고 그러고 그러니까 자기는 오직 하나님께만 집중하여 예배를 드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오늘 아침에 새벽에 떠나는데 도착하자마자 또 예배의 자리로 나가겠다는 거예요.
여러분의 인생에 이런 유혹이 찾아올 때는요. 사람들의 박수와 환호 소리를 멀리 하셔야 됩니다. 그것에 익숙해지면 나 자신도 모르게 자오해질 수도 있어요. 스스로 교만해질 수가 있어요. 그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되죠?
그렇게 박수 갈채를 받는 자리에서 떠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반면에 우리는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가까이 나아가야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많아져야 되는 겁니다. 그래야만이 이런 인생의 위기를 극복할 수가 있는 거예요.
제자들에게 찾아온 얘기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제자들에게 찾아온 얘기가 두 가지인데요. 첫 번째 얘기는 기적의 현장에 찾아온 얘기입니다. 제가 방금 말씀드렸잖아요. 그 기적의 현장에서 사람들이 야 이분이다. 우리가 기도했던 메시아다. 선지자다. 이제 이분을 우리의 왕으로 모시다. 그래서 여러분 거기 모인 사람들이 장난이 아니잖아요. 약 2만 명의 사람들이에요. 2만 명의 사람들 그럼 2만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막 그 자리에서 막 한호를 지르면서 예수님을 왕으로 세우려고 했단 말이에요.
이분이야말로 우리를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키실 사람이다.
그런데 이것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토록 바라던 마음의 소원이었어요.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다니면서 늘 마음에 언제 예수님께서 메시아로 등극하실까? 언제 예수님이 어느 날 어느 날 디데이로 잡아가지고 내가 메시아다 내가 너희들을 로마의 합자에서 구원할 왕이다라고 말씀하실까 기다렸는데 그들이 원하던 시간이 온 거잖아요. 제자들이 그토록 바라던 순간이 온 거예요. 그래서 제자들은 그 순간이 이때다라고 싶어서 그 순간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여 그 현장을 떠나게 하셨습니다. 22절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시작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예수님은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배를 태워서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예수님의 눈에는 지금의 그 상황이 제자들에게는 기회가 아니라 위기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제자들은 지금 지금의 이 상황이 예수님께서 메시아로 등극할 수 있는 기회이고 자신들에게도 기회라고 생각을 했어요. 지금 이 상황이 예수님께서 메시아로 등극할 수 있는 기회이고 자신들에게도 기다려왔던 기회의 순간이 이제 왔다고 생각을 했어요.
왜요? 예수님이 메시아로 등극하시면 자기들도 뭐예요?
한 자리를 맡게 되잖아요. 자신들도 한 자리 하게 되는 거 아니에요?
국방부 장관을 하든지 비서실장을 하든지 한 자리에 하게 된단 말이에요. 그래서 제자들은 지금 이 상황을 기회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보게 되면 예수님의 생각과 제자들의 생각이 하늘과 땅처럼 다르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이렇게 남들로부터 칭찬을 받고 환호를 받고 인정을 받는 것을 이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그렇죠 환호를 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하고 박수 받지 못해서 안달이지 오늘 보니까 우리 콰이어 찬양 장난이 아니에요. 다 전문가들이에요. 전공이세요. 너무 잘하세요.
근데 이런 쪽에 있는 분들은 박수 같은 거 안 나오면 좀 이상하잖아요. 조심하셔야 돼요. 물론 연주에서 박수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또 다른 삶의 현장에서 사람들은 나를 인정해 주지 않을 때 사람들이 나에게 환호와 박수를 보내지 않을 때 실망하지 않기를 바래요.
사실 우리는 이렇게 남들로부터 칭찬받고 헌혈을 받고 인정을 받는 것을 이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는 내 생활이 안정되고 문제가 없는 상황을 이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축복이라고 생각해요. 내 삶이 안정됐어요. 꼬박꼬박 부모님이 용돈 보내주지 건강도 문제가 없지 속 썩이는 사람도 없지 그러니까 파리에 와서 어때요?
점점 하나님과 멀어지죠 이것을 위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 분들이 많아요. 지금 내 삶에 문제가 없다고 고난이 없다고 오히려 이걸 축복이라고만 생각해요. 이것을 위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단 말이에요. 우리가 위기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뭐예요?
여러분들이 이건 위기야라고 생각하는 게 뭐냐 그러면 갑자기 실직을 당한다든지 갑자기 내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든지 내 몸에 문제가 생겼다든지 아니면 우리 집에 불이 났다든지 아니면은 내가 믿었고 사랑했던 자녀가 가출을 한다든지 우리 아버지의 사업에 부도가 났다든지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혼을 했다든지 우리는 이것을 이기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여러분 이것만이 위기가 아니라는 거예요. 내 삶에 문제가 없어서 안주하다가 서서히 내 영혼이 하나님과 멀어진다면 그것이 여러분의 인생의 최고의 위기라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 인생에는 이런 일들이 정말 많습니다. 나는 지금의 상황이 내가 성공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죠. 지금의 상황이 내가 승진할 수 있고 돈을 벌 수 있는 대박을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죠.
그런데 하나님은 반대로 여러분이 처해 있는 지금의 상황을 기회가 아닌 위기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과 내 생각이 달라요. 우리는 지금 내가 처해 있는 상황이 위기라고 생각하는데 하나님 왜 이러세요? 왜 인생 가운데 이렇게 어려움이 많아요 고난의 연속이네요. 왜 이렇게 위기가 많아요.
근데 우리는 그것을 고난이 사도 하면 그걸 위기라고 말하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이 위기가 아니라 도리어 기회라고 말하죠.
저는 그런 분들을 너무나 많이 만나고 있어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많은 분들을 통해서 이런 분들을 만납니다.
그러면 위기와 기회의 차이는 뭘까요?
이게 중요합니다. 위기와 기회의 기준 차이 뭘까요? 하나님은 무엇을 근거로 위기라고 말씀하시고 무엇을 기준으로 기회라고 말씀하실까요?
답은 한 가지입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함입니다. 따라서 하겠습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함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거예요. 내가 이곳에 와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또 좋은 스승을 만나서 레슨을 받고 있고 내가 잘 나가는 것을 우리는 어때요?
기회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근데 그것 때문에 내가 하나님과 멀어진다면 그것 때문에 예배의 자리에서 점점점점 하나님과 멀어져 간다면 성경은 그것을 뭐라고 말하냐면 축복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저주라고 말하는 거예요.
시편 73편 27절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다 같이 시작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다.
여러분 복과 저주의 차이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고난을 만났기 때문에 저주받은 게 아니에요. 여러분이 좋은 대학에 들어갔다고 축복이 아닙니다. 좋은 직장에 들어가서 고액의 연봉을 받으면 그게 축복입니까?
아니에요. 그것 때문에 여러분이 하나님과 멀어진다면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사라졌다면 그것은 절대로 여러분의 인생의 축복이 아닙니다. 그것은 저주입니다.
근데 여러분의 인생의 고난이 찾아왔어요. 너무 힘들고 어려워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내가 그때 그래서 하나님을 붙들고 십자가를 붙들고 하나님 앞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많고, 십자가를 붙들고 몸부림 몸부림치는 시간이 많아졌다면 여러분이 당하는 인생의 고난은 고난이 아닙니다. 축복입니다.
시편 73편 28절 보세요. 27절과 28절은 복과 저주를 우리에게 구별이 되어 있는데 28절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다 같이요. 하나님께 가까이함이 내게 복이라 무엇이 복이라고 말합니까?
하나님께로 가까이 감이 복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우리가 함부로 어떤 사람을 평가하면 안 된다고 이번에 이 사람이 좋은 콩쿠르에 가서 우승했다. 이 사람이 좋은 대학에 들어갔다. 한국어로 말하면 서울에 있는 대학을 들어갔다. 서울에 있는 대학, 서울 상대 말고 서울 상대는 서울에서 상당히 떨어진 대학을 말하니까 관악산에 있는 S대를 들어갔다. 그러면 그 사람은 축복받은 사람입니까? 복 받은 사람입니까?
아니면 전라북도에 있는 원불교회 재단에 있는 원광대학교 원광대학교 철학과에 들어갔다. 그럼 원광대학교 철학과에 들어가면 저주받은 겁니까? 실패한 겁니까? 누가 그렇게 말을 해요?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신 적이 없어요. 서울대학교 들어가는데 하나님과 멀어졌어요. 저주입니다. 원광대학교 철학과에 들어가는데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그 안에서 기독교 서클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일을 하고 있다면 여러분 그게 복이죠.
여러분 그러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여러분 이기와 기회의 차이는 뭐냐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거예요.
제자들에게 찾아온 두 번째 위기가 있습니다. 아까는 기적의 현장이고 두 번째는 풍랑을 만난 위기라는 거예요.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배를 타고 갔어요. 사실 제자들은 그 자리를 떠나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 자리에서 즐기고 싶었어요. 근데 주님이 막 재촉을 했단 말이야. 주님이 야 빨리 와 빨리 빨리 가 여기 있지 말고 빨리 가 뒤돌아보지 말고 가 빨리 가 그렇게 해가지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초청해가지고 배를 태워 보냈단 말이에요.
24절 말씀 한번 읽어볼까요? 다 같이요.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술이나 떠나서 바람이 거스름으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더라.
아니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한 것밖에는 없어요. 지금 제자들이 무슨 잘못했나요? 떠나라고 그러니까 떠난 거잖아요. 예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해서 배를 타고 가는데 웬 풍랑입니까?
여러분 우리가 주님의 말씀 앞에 순종하여 나아가는 인생 길에도 고난이 있고 풍랑이 있다는 걸 아셔야 됩니다. 우리는 흔히 말씀 앞에 불순종하고 제약된 길을 걸을 때만 어려움이 오고 위기가 찾아온다고 생각을 합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요나의 경우를 보게 되면 그렇습니다.
요나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 불순종하여 어때요?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려고 하다가 여러분 인생의 풍랑을 만나지 않았습니까?
이 길을 만났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잘못된 불순종의 길로 가다가 이게 인생의 풍랑을 만날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것만이 아니에요. 주님의 말씀 앞에 순종하여 가는 길에도 여전히 풍랑을 만날 수 있다는 거죠.
그런데 여러분 더 중요한 게 있어요. 내가 풍랑을 만나느냐 안 만나느냐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게 뭔지 아세요?
주님이 내가 만난 풍랑의 현장을 보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내 인생의 풍랑이 왔느냐 안 왔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내가 만난 그 풍랑의 인생의 고난의 현장을 주님이 보고 계신다는 거예요.
여러분 말씀을 읽겠습니다. 마가복음 6장 48절입니다. 다 같이 시작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젓는 것을 보시고 거기 보면 보시고
라고 돼 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제자들의 풍랑을 만나서 겨로히 노를 젓고 있는 모습을 보셨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말씀에 순종하여 나아가다가 풍랑을 만나서 괴로운 마음으로 괴롭게 노를 젓고 있는 모습을 보셨어요. 흥을 대면서 노를 젓고 있는 것이 아니라 너무너무 괴로우면서 괴로운 마음을 가지고 노를 젓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셨다는 거예요.
그런데 어디서 보셨느냐? 어디서 보셨어요?
기도의 현장에서 보셨습니다. 여러분 지금 수리를 떠났습니다. 제자들은요. 곧바로 풍랑을 만난 게 아닙니다. 갈릴리 바다의 한복판에 이르렀을 때입니다. 주님은 지금 어디 계십니까?
산 위에 계십니다. 홀로 계십니다. 아무리 씨야가 져도 캄캄한 밤에 제자들이 풍랑을 만나 노젓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없어요. 그런데 주님은 기도하시는 주님은 영적인 눈으로 제자들이 풍랑을 만나서 힘겹게 노를 젓고 있는 모습을 보고 계셨습니다.
여러분 인생의 풍랑을 만날 때 여러분이 잊지 말고 기억해야 될 사실이 있어요. 아무도 모른 것 같지만 어쩌면 여러분이 만난 인생의 풍랑을 여러분의 부모도 모르고 자녀도 모를 수 있어요. 그렇지만 우리 주님은 보고 계신다는 사실이죠.
오늘 여러분이 당하고 있는 고난의 현장을 인생의 풍랑을 만나서 괴롭게 노를 젓고 있는 여러분의 모습을 주님이 보고 계신다는 거예요. 하루하루 지쳐 있는 여러분의 모습을 주님이 보고 계신다.
사방으로 의외 쌓임을 당해서 앞으로도 나갈 수 없고 뒤로 나갈 수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어쩌면 좋아 내가 어떻게 하면 좋아 내가 한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여기 머무를 수도 없고 어떻게 하면 좋지 하면서 발을 동동 구르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여러분의 모습을 주님이 보고 계신다는 거예요,
너무나 기가 막힌 일을 당해서 억울하고 분한 마음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여러분의 모습을 주님이 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폭력에 의해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여러분의 그 안절부절 못한 모습을 보고 계십니다.
남편의 외도와 자녀의 탈선으로 인해서 마음이 새카맣게 타들어가는 여러분의 모습을, 당장 내일이 올 때를 걱정해야 하는 여러분의 모습을 주님이 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을 했습니다. 시편 139편 2절과 4절의 말씀 우리 한번 읽겠습니다. 다 같이 시작
주께서 내가 안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게 하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혀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헤어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다.
다윗의 고백인데 뭐라고 말합니까?
하나님이 내 인생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고 말합니다. 내가 앉고 일어서는 것만이 아니고 내 모든 생각과 내 혀의 말까지 알고 계신데 내 모든 생각도 알고 계신데요.
저는요. 목회하면서 진짜 하나님이 내 생각까지도 다 알고 계시구나 이런 걸 경험할 때가 많아요.
대표적으로 뭐냐 하면 제가 장기금식을 끝내고 이제 보식을 하고 있었어요. 근데 여러분 금식보다도 힘든 게 보식이거든요. 얼마나 먹고 싶어요 근데 옛날에는 신문이 이렇게 집에 이제 배달이 될 텐데 신문이 배달되어 올 때 보게 되면 옛날에는 전단지라고 말하고 일명 찌라시라고도 말하잖아요. 광고 찌라시 그게 많이 들어왔거든요.
근데 그때 그 찌라시 전단지 가운데 뭐가 들어왔냐 그러면 영광 굴비 여러분 영광 굴비 모르시죠? 아셔요? 젊으신 분은 잘 모를 거예요. 아마 굴비도 모르는 분도 있는데 갈비가 아니라 굴비입니다.
영광 굴비라고 하는 게 있어요. 근데 그 영광 굴비가 다 놓여 있고 그리고 그거를 분홍색 보자기로 딱 쌌어요. 그러니까 이제 사진이 하나 나와 있고 그것을 이렇게 분홍색 보자기로 딱 싸가지고 선물로 포장돼 있는데 제가 전화번호까지 봤어요. 먹고 싶다. 근데 기도를 안 했습니다. 기도는 안 하고 속으로만 아 먹고 싶다 그랬어요. 그리고 한 2시간인가 3시간인가 지나는데 누가 배를 눌러서 나가봤어요.
여러분 우리 교회에 어떤 집사님이 진짜 내가 보았던 똑같은 보자기의 칼라에 전화번호까지 똑같은 영광 굴비를 보낸 거예요. 제가 무수한 선물들을 많이 받아왔지만 지금도 그걸 잊지 못하고 기억하고 있어요. 그때 내가 놀란 게 있어요. 닭살이 돋았어요. 하나님은 내 생각까지도 기억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는 것만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에도 더 넘치도록 이해하신다고 그랬잖아요.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 우리 혀의 말까지도 알고 계십니다. 주님은 여러분의 모든 것을 보고 계시고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고난을 당할 때 이기를 당할 때에 사람은 몰라도 하나님은 보고 계시고 하나님은 알고 계신다고 하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사람들이 마지막에 죽음을 택하는 거예요. 죽음을 택하는 이유가 뭔지 알아요. 아무도 모른다는 거예요. 내 마음을 누구도 몰라준다는 거예요. 그래서 스스로 마지막에 죽음을 택하는 거잖아요.
여기가 프랑스 파리죠. 갑자기 한 자매가 생각나네요. 목사님 조금 길어지는데 괜찮겠어요? 예전에 이게 파리에서 유학을 하고 온 자매가 있었어요. 근데 그 자매가 금요일 말 꼭 금요 기도에 나와 있어요. 그 자매가 여기서 사귀었던 형제가 있었어요. 결혼까지 약속을 했는데 그 형제가 한국에 돌아와서 다른 자매와 결혼을 해버렸어요.
그래서 이 자매는요. 죽는 것이 소원이었어요. 죽는 게 소원이었어요. 그래서 금요일 날인데도 자기 차를 안 가지고 와요. 금요일 날 제가 이제 한 10명씩 30명씩 기도를 해 주는데 기도를 받으러 나왔어요. 자매님 기도 제목이 뭐예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이렇게 말했어요.
목사님 죽게 해주세요. 저 죽는 거예요.
저는 그래서요. 금요일 기도 내내 기도할 때 오늘 돌아가면서 교통사고 나서 죽게 해주세요. 이게 내 기도 제목이에요. 그래서 저는요. 항상 기사 옆에 타는데 안전벨트를 안 맵니다. 왜 안전벨트 매면 내가 못 죽으니까 그래서 여러분 제가 그 자매의 소원을 따라 기도하면 되겠습니까?
하나님 이 마음의 소원대로 이루어 주십시오. 오늘 돌아가다가 교통사고 나서 평안하게 죽게 해주세요. 이런 기도를 할 수 있는 목사가 누가 있어요? 아마 파리도 없을 거예요. 저는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이 자매에게 소망을 주시고 살려달라고 다시 일어서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어요.
그리고 저를 눈을 딱 떴는데 그 자매가 눈을 뜨고 저를 쳐다보고 있었어요. 파리에서 온 자매입니다. 그 자매가 이렇게 말했어요.
다시는 내가 이 교회 나오는가 봐라.
왜 죽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살려달라고 기도했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 자매를 지금 만나지 못한 지 오래됐습니다. 다시 이곳에 왔는지 모르겠어요.
여러분 왜 사람들이 마지막에 자기의 생명을 끊으려 할까요?
아무도 내 마음을 몰라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아무도 모른 것 같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 같아도 하나님은 알고 계시고 하나님은 여전히 보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보고만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보고만 계시는 것이 아니라 오늘 본문에 보게 되면 그 현장에 찾아오셨다는 거죠.
25절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다 같이요.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기도 현장에서 제자들이 풍랑을 만나서 힘겹게 노는 것을 보고만 계시는 것이 아니라 안타까워하는 것이 안타까워하시는 것만이 아니라 주님께서 무리를 걸어서 찾아오셨다는 거예요. 급한 나머지 얼마나 급했으면 예수님께서 무리를 막 걸어서 오셨겠습니까? 그런데 언제 찾아오셨다라고 말하죠? 아까 있지 않았어요? 언제예요?
밤 사경입니다. 언제라고요? 저쪽 동네가 안 하신 분이 몇 분 계시는데 언제라고요?
밤 사경입니다. 밤 사경이 언제냐 그러면 새벽 3시에서 6시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이 초저녁에 배를 타고 갔잖아요. 그러니까 몇 시간 동안 지금 풍랑을 만나가지고 힘겹게 노를 듣고 고통 가운데 있었는지 몰라요. 여러분 밤 사경은 여명이 밝아오길 시간이 가까워졌기 때문에 시간적으로 말하면 가장 어두운 어둠이 짙게 깔린 시간을 말하는 거예요. 그런데 주님은 밤 사경에 찾아오셨습니다. 주님은 이미 기도하시면서 제자들이 바다 한복판에서 풍랑을 만나가지고 힘겹게 노젓는 것을 보고 계셨습니다.
그러면 풍랑을 만나서 힘겹게 노를 젓고 있는 모습을 보자마자 주님이 찾아와 주시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근데 주님은 보고 계셨습니다. 찾아오지 않으셨어요? 주님이 언제까지 기다리셨을까요? 밤 사경이 될 때까지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밤 사경이 되었을 때 주님은 기다렸다는 듯이 무리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구원하셨어요. 성경을 보거나 우리의 경우를 보게 되면 하나님은 언제나 밤 사경에 신 찾아오셔서 일을 행하십니다. 많은 교구입니다. 저의 인생도 그렇고 여러분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꼭 하나님은 밤 사경까지 기다리신다. 아니 일찍 찾아오면 얼마나 좋아요 문제를 만나자마자 찾아와서 일으켜 주시면 얼마나 좋아요.
근데 이상하게도 얄밉도록 하나님은 밤 사경까지 기다리신다. 그러면 왜 주님은 초저녁에 제자들이 풍랑을 만나자마자 찾아와서 풍랑을 잔잔케 하시고 구원해 주셨으면 너무나 좋겠지만은 왜 밤 사경에 오셨느냐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하나님께서 일을 행하실 수 있는 시간이 최고의 밤 사경이 하나님께서 일을 행하실 수 있는 최고의 시간이기 때문에 그렇게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밤 사경은 언제냐 더 이상 버틸 수 있는 힘이 없는 때를 말합니다. 밤 사경은 인간의 한계, 지식의 한계, 경험의 한계를 느끼는 시간 내가 할 수 있는 인간의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발버둥을 쳐보았지만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시간을 말하는 거예요. 그때가 밤사경입니다.
여러분 제자들은 어부들입니다. 풍랑을 만났을 때에 그들은 어떻게 하면 이 풍랑을 극복할 수 있는지를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 힘겹게 노를 저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제자들도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업으로서의 모든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이 문제를 돌파해 보려고 노력을 했단 말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노력에 한계가 온 거예요.
이제는 우리 힘으로 할 수 없구나.
우리가 어부지만 우리 힘으로는 이 풍랑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구나.
이제 모든 한계에 도달했을 때에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에 그때 주님이 무리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러니까 밤 사경이 제자들에게는 가장 큰 절망의 시간이지만 한계의 시간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행하실 수 있는 최고의 시간이 언제예요?
밤사경입니다. 왜 하나님이 날 밉도록 내 기도에 응답하실 때 언제 응답하시느냐 하면 밤 사경에 응답하신대요.
두 번째로 두 번째로 인생의 밤 사경에 하나님이 개입하시고 일하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뭐냐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입니다. 오직 이 일이 하나님에 의해서 되어진 일임을 분명히 하고 싶어서 주님은 밤 사경에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의 기도 응답도 대부분 보게 되면 언제 응답이 되죠?
응답을 받아본 적이 있어야지 말을 하지 주님께서 언제 우리의 기도에 많이 응답을 하시는가 하면 인생의 밤 사경에 응답하실 때가 많습니다. 문제가 생기자마자 기도를 시작하자마자 여러분 하나님이 그 일을 해결해 주셨다고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죠?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은 그렇게 하지 않지만 역시 나는 운이 좋았어. 내가 빨리 오기를 너무 잘한 거야. 내가 너무 잘했어. 내가 이 인간을 만났기 때문에 된 거야. 운이 좋아서라고 말하죠. 그래 내가 열심히 노력을 했으니까 그 노력의 대가지 여러분 이렇게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일이 오직 하나님에 의해서 이루어진 일임을 분명히 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요 많은 경우에 불가능한 상황에 이를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도저히 인간의 힘으로 이룰 수 없는 상계의 상황이 이를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하나님 저 항복합니다. 제 힘으로 안 됩니다. 이 문제는 제 힘으로 할 수가 없어요. 죽었다 깨어나도 내 희망과 능력으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개입하시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렇게 고백할 때까지 하나님은 기다리신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때 가서야 하나님이 일을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왜 그래요?
하나님이 하셨음을 분명히 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끝이 하나님의 시작이라는 말이 있어요. 따라서 합시다.
사람의 끝이 하나님의 시작이다.
사람의 끝이 하나님의 시작이다.
하나님은 도저히 인간의 힘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그때 하나님은 일하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또 이렇게 말하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하나님은 진짜 티를 내시네.
티를 내시는 하나님은 티를 내십니다. 저는 그 말에 100% 동의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일을 하셨다는 것을 분명히 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티를 내십니다.
그런 경우 많아요. 성경에 여러분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들과 영적인 전투를 했잖아요. 그때 보세요. 그때는 불이 내리는 신이 참신이에요. 바알 신이냐 여호와 하나님이냐 어떤 인이 참신이냐? 그때 그 영적 전쟁을 할 때에 어떻게 했어요?
하나님께서 열왕기상 18장 33절을 보게 되면 통 넷에 물을 채워다가 번제물과 나무 위에 부으라고 했어요. 세 번이나 반복해서 그렇게 하라고 했어요. 그래서 35절에 보게 되면 물이 제단으로 두루 흐르고 도랑에도 물이 가득 찼더라.
여러분 그렇게 물을 통에다가 내서 부숴가지고 재물에도 붙고 제단에도 붙고 그래서 물이 흥건히 적셔가지고 도랑과 흙에까지 물이 흘러내릴 때예요.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그렇게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았기 때문에 너무 건조한 나머지 마찰에 의해서 자연적으로 불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불은 내가 내린 불이야. 이 불은 내가 내린 불이야.
하나님 자신이 이 불을 내려서 참 하나님이심을 드러냈다는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그 재단과 재물에 물을 부으라고 하신 거예요.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밤 사경에 무리를 걸어와서 풍랑을 잔잔케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그 배에 오르자 풍랑이 잔잔해졌습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만이 내 인생의 풍랑을 잔잔케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예수님만이 나를 위기 가운데서 나를 건져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위기의 순간에 주님을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여러분이 만난 인생의 위기가 주님을 만나면 주님이 개입하시고 일하시면 여러분의 인생에 최고의 기회가 될 수 있을 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모든 위기가 다 기회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내게 찾아온 위기가 내 인생의 추락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는 주님을 새롭게 만날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행하시는 놀라운 기적을 경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만난 인생의 위기가 추락이 아닌 최고의 기회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