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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박명(美人薄命)
미인은 명이 짧다는 뜻으로, 너무나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오히려 운명이 각박하다는 의미의 말이다.
美 : 아름다울 미(羊/3)
人 : 사람 인(人/0)
薄 : 얇을 박(艹/13)
命 : 목숨 명(口/5)
이 성어는 아름다운 사람은 운명이 기구하다. 아름다운 미인이나 재주가 뛰어난 사람이 기구한 운명에 처하거나 삶이 평탄하지 못한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 아름다운 여자는 운명이 기박하거나 수명이 짧은 경우가 많다는 뜻으로 이르는 말이다.
소식(蘇軾)의 시(詩) 박명가인시(薄命佳人詩)의 한 구절인 자고가인다박명(自古佳人多薄命)에서 유래한다. 소식(蘇軾)이 양주지방(楊洲地方) 장관(長官)으로 있을 때 30세가 넘은 예쁜 여승(女僧)의 파란만장한 삶을 유추하여 시(詩)를 지었다. 동양 최고의 미인으로 알려진 양귀비(楊貴妃)가 안녹산의 난(安祿山의 亂)중에 군인들에게 무참하게 살해당한 것을 두고 사람들은 가인박명(佳人薄命)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고 있다.
중국은 워낙 땅덩이가 넓다보니 역사적으로 숱한 미인의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다. 특히 이 미녀로 인하여 국가가 멸망하는 참변을 겪기도 하였다. 기원전 1000년경 중국의 고대국가인 은(殷)나라 마지막 왕 주왕(紂王)은 초기에는 매우 정치를 잘하는 성군(聖君)이었다고 하나 말기에는 하(夏)나라의 걸왕(桀王)과 같이 중국역사상 가장 최악의 왕으로 기록될 정도로 오명을 남긴 왕이다. 그는 달기(妲己)라는 여자에 혹해 정치를 소홀히 하고 그 여인의 치마폭에 쌓여 결국은 망하게 된다.
달기(妲己)는 일설에 의하면 금모구미(金毛九尾)의 여우가 화신하여 인간이 되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굉장한 미인이었으며 사람의 마음을 빼앗는 신통한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주왕(紂王)이 얼마나 달기(妲己)에 빠졌으면 그녀를 기쁘게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주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술로 가득채운 연못 주변의 나무를 비단으로 휘감은 뒤 고기를 매달아 놓고 달기(妲己)와 함께 배를 타고 노닐면서 손이 가는대로 고기를 따 먹었다고 한다. 주지육림(酒池肉林)이란 고사는 여기서 유래되었다.
이렇게 주지육림(酒池肉林)으로 밤을 새우고 음풍(淫風)을 조장하고 이를 간(諫)하는 신하들을 기름을 발라 숯불위에 걸쳐놓은 구리 기둥위를 걷게 하는 포낙지형(炮烙之刑)을 내려 구리 기둥에서 미끄러져 타 죽는 모습을 보는 달기(妲己)의 미소를 짓는 모습을 즐겼다고 하니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폭군이었다.
달기(妲己)의 염려미소(艶麗微笑)를 보기위해 이러한 행위를 계속했다고 한다. 그로 인하여 천지가 문란해지고 민심이 흉포하며 도적이 횡행하고 인명경시(人命輕視) 현상이 만연했으니 이는 역사적으로 나타나는 전형적인 말기 현상이다.한 여인으로 인하여 한 국가가 무너지는 모습을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볼 수 있다. 결국 주(周)나라 무왕(武王)에게 패하고 은(殷)나라는 문을 닫게 된다.
요녀 달기(妲己)에 얽힌 이야기가 또 전해지는 것이 있으니 강태공(姜太公)과의 관계이다. 달기(妲己)는 요녀(妖女)답게 술수에 능했다고 하는데, 강태공이 장차 은(殷)나라를 멸망시킬 권능을 가지고 있음을 간파하고 도력(道力)으로 물가에 있는 강태공을 죽이려 했다. 강태공의 도력은 달기(妲己)보다 몇 배나 고수였다고 하니 그러한 음모를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수중에서 죽은체하고 60리를 떠 내려가 빠져 나왔다고 한다. 그는 물속에서 호흡하는 법을 터득하고 있었다.
또 달기(妲己)는 소위 성인으로 그 당시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던 문왕(文王)의 도덕성이 어떤지를 알기 위해 그를 잡아다 유리옥에 10년형으로 가두었다. 달기(妲己)는 문왕(文王)의 큰 아들 백읍고(白邑皐)를 죽여 그 인육(人肉)으로 국을 끓여 문왕(文王)에게 주었다. 아무 내색없이 받아 먹으니 자기 자식의 고기를 먹는 사람이 무슨 성인이냐 하며 6년만에 석방시켰다. 옥 문을 나오면서 토해내니 고기가 나와 토끼가 되어 달아났다고 한다.
달기(妲己)는 속은 것을 알고 추격했으나 그 당시 걸음이 매우 빠른 뇌전자라는 사내가 문왕(文王)을 업고 도망갔다는 것이다. 6년간의 유리옥에서 문왕(文王)은 주역(註譯)을 완성시켰다고 하니 달기(妲己)에게 고마워해야 할 일일지도 모르겠다.
이 문왕(文王)이 물가에서 곧은 낚시를 하며 때를 기다리고 있는 강태공(姜太公)을 찾아가 의기투합(意氣投合)하여 결국 문왕(文王)의 둘째 아들 무왕(武王)을 도와 은(殷)나라를 멸망(滅亡)시키게 된다. 강태공(姜太公)은 술법(術法)으로 5,6월의 폭서(暴暑)속에서 자기 군사들에게는 두터운 솜옷을 입히고, 눈(雪)을 6.5자나 내리게 하여 은(殷)나라 군대를 동사(凍死)시켰다고 한다. 문왕(文王)은 실제 왕이 아니고 그의 아들 무왕(武王)이 주(周)나라를 건국(建國)하자 추대(推戴)된 왕이다.
중국인들이 최고의 반열에 올리는 미인이 3명이 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월(越)나라의 서시(西施)이다. 그녀는 피부가 아주 흰색인 중국 고대 미녀로 생년, 사망년 모두 불명이다.
춘추시대 말기 오왕(吳王) 부차(夫差)에게 패한 월왕(越王) 구천(勾踐)이 복수를 위해 부차(夫差)가 호색임을 알고 미녀헌상(美女獻上)을 계획했다. 충신 범려(范蠡)가 나무 장수의 딸 서시(西施)를 찾아내어 데리고 와서 예절,기술 등을 가르쳐 오(吳)나라로 보냈다.
부차(夫差)는 충신 오자서(伍子胥)가 말리는 것도 듣지 않고 그녀의 미색에 빠져 정치를 허술하게 하여 마침내 오(吳)나라를 멸망시키게 된다. 오(吳)나라가 망하자 그녀는 강물에 몸을 던져 자살했다고 전해진다.
그 후 수많은 시인(詩人) 묵객(墨客)들이 그녀의 미(美)를 예찬한 글을 남겼는데, 그 중 침어락안지용(沈漁落雁之容)이란 글이 아직도 생생하게 전해지고 있다. 즉‘서시(西施)의 물에 비친 자태가 너무 아름다워서 물고기가 정신을 잃고 물 밑에 가라앉으며, 날아가던 기러기가 넋을 잃고 아래로 떨어진다.’란 뜻이니 가히 미(美)의 극치임을 알 수 있겠다.
또 한 사람은 왕소군(王昭君)으로 기원전 전한(前漢) 원제(元帝)의 후궁(後宮)이었다. 그 당시 몽고(蒙古)의 침입이 잦았는데, 몽고가 중국을 침입한 주 원인중의 하나가 중국의 미인들을 탐을 내어 그들을 데려가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한(漢)나라의 음양학자(陰陽學者)들이 궁합이란 것을 만들어 아주 데려가기 까다롭게 했다는 것인데,이때도 몽고가 침입하여 한(漢)의 여자와 통혼(通婚)하기를 요구하니 한제(漢帝)는 화공(畵工)에게 명하여 궁내의 모든 여인의 초상을 그리게 하여 아깝지 않은 여자를 뽑아 보냈다.
왕소군(王昭君)은 화공(畵工)에게 뇌물을 바치지 않아 추녀로 그려 올리니 황(皇)은 아깝지 않게 생각하고 보내게 했다. 보낼 때 인사를 받으며 보니 절세미인이므로 몹시 애석(哀惜)해 했다고 한다. 몽고의 호한사단간(呼韓邪單干)에게 출가하여 아들 넷을 낳고, 항상 고향을 그리워하다 자결했다고 전해진다. 반홍반백(半紅半白)의 미인으로 중국뿐만 아니라 일본의 학자들도 최고의 미인으로 인정하고 있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양귀비(楊貴妃)도 중국의 최고미인 3인 속에 포함되는데 그녀는 당(唐)나라 6대 현종(玄宗)의 비(妃)로 재기넘치고 가무(歌舞)에 뛰어난 여인이었다. 735년 현종(玄宗)의 18왕자 수왕(壽王) 이창(李琩)의 비(妃)가 되었으나 현종(玄宗)이 그의 부인인 무혜비(武惠妃)와 사별한 후, 어린 며느리를 사랑하여 아들과 이혼시키고 그녀가 27세 때 정식으로 왕비(王妃)에 책립했다. 현종(玄宗)이 62세이고 양귀비가 27세 때이다.
그런데 양귀비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뚱뚱한 여인이었다고 한다. 어른이 허리를 안아도 안기지 않을 정도로 풍만한 여인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미인의 관점이 오늘날과는 달랐을 것이지만 오늘날의 개념으로는 상당히 다이어트를 해야 할 정도로 체중이 많이 나갔다고 한다.
현종(玄宗)이 신임하던 터키인인 안록산(安祿山)은 몽고를 정토할 때 3~4개 사단의 군단장급으로 공을 세웠다. 그러나 그는 양귀비의 오라버니인 양국충과의 대립으로 반란을 일으키자 현종은 촉(蜀)나라로 피란을 떠나는 도중 경호 병사들이 그녀와 양국충을 살해하고 만다. 전란 후 환도한 현종은 양귀비를 그리워하며 여생을 마쳤다. 홍색이 많은 미녀로 복숭아꽃으로 화장품을 만들어 썼다고 한다. 이렇게 역사적으로 미인 반열에 올릴 수 있는 미녀들이 자기 수명을 다한 사람은 손꼽을 정도이니 미인박명이란 말이 나왔으리라 생각된다.
미인박명(美人薄命)이라는 말이 있지만, 박명(薄命)하였기에 사람들의 머릿속에 미인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동서고금에 걸쳐 사람들이 한 여성을 미인으로 판단하는 기준은 정신보다 외모에 있었고, 그 외모는 또한 연령에 크게 좌우되었다. 아무리 평균수명이 짧았던 시절에도 여성의 미모를 좌우하는 기준연령은 그 기대수명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60년을 살면 장수를 축하했던 시절에 미인의 기준연령은 이팔청춘으로 대변되는 16세였고, 여성의 기대수명이 80세를 넘어 90세를 바라보는 지금도 여자는 30 넘으면 똥값 운운하는 인간들이 있다. 즉, 제 아무리 미인이라 칭송받는 여성이라도 기대수명의 3분의 1을 겨우 살았을 때 가차없이 미인의 반열에서 쫓겨나고 나머지 시간을 이른바 노추(老醜)라는 이름표를 달고 살아가야 하는 셈이다. 그 시간이 길면 길수록, 즉 그녀가 오래 살면 오래 살수록 젊은 시절 그녀를 치장했던 미인이라는 타이틀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희미해지고, 그녀가 죽을 즈음에는 노추한 모습밖에는 사람들에게 남지 않게 된다.
반면에, 미인이라 칭송받던 여성이 그 미모를 가름하는 기준연령을 넘기기 전에 죽거나 살았어도 세상에서 사라짐으로써 그 이후의 노추를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았다면, 그녀 개인으로서는 기대수명을 반도 살지 못한 박명이지만 사람들에게는 길이 미인으로 기억에 남을 수 있게 된다.
중국 4대 미인이 서시(西施), 왕소군(王昭君), 초선(貂蟬), 양귀비(楊貴妃)인데 초선(貂蟬)은 가상인물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나머지 셋 중 사회적으로 기대수명을 다한 인물은 하나도 없다. 영화가 등장한 후 은막을 빛낸 무수한 여배우들도 그렇다. 마릴린 몬로처럼 젊어서 죽음으로써 만인의 연인으로 남거나, 그레타 가르보처럼 일찍 은퇴하고 신비주의의 저편으로 숨거나이다. 여성의 가치 판단 기준에 외모와 연령 이외의 것도 추가하려는 시대의 변화에 힘입어 오드리 헵번처럼 나이가 들어도 곱게 듦으로써 이미지를 유지할 수도 있는데, 이 경우의 반면교사로 교훈을 남긴 사람이 브리짓 바르도이다.
결국 미인이라 박명(薄命)한 것이 아니라 박명했기에 미인으로 남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천재라서 요절하는 것이 아니라 요절했기에 천재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어렸을 때는 누구나 영재이고 천재이지만 성장하면서 빛이 바래기 십상이듯, 젊었을 때는 누구나 미인이지만 사회가 들이대는 연령이라는 가혹한 잣대에서 다들 탈락하고 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미인의 기억을 남기기 위해 일부러 여성을 박명(薄命)으로 몰아붙이기도 한다.
미국 성인잡지 플레이보이 모델을 했던 여자들 가운데 50세를 넘긴 경우가 드물다는 외신 보도가 있었다. 마릴린 먼로는 1962년 36세에 죽었고, 제인 맨스필드는 34세에 교통사고로 죽었고, 페이지 영은 약물 과다 복용으로 30세에 갔다. 이브 마이어는 77년 비행기 추락사고로 46세에 죽었고, 앨런 루이스 말리고는 40세에 살해됐다. 얼마 전에는 안나 니콜 스미스가 39세에 갔다.
동양뿐만 아니라 서양에서도 미인은 박명(薄命)하다는 사실이 입증된 것이다. 왜 미인은 이처럼 박명한 것인가? 아주 예쁜 여자들은 남자들의 관심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옛날 사람들은 이 현상을 도화살(桃花煞)에 비유하였다. 도화(桃花)는 봄에 피는 꽃 중에서 아주 화려한 꽃이다. 장미나 튤립 같은 외국 꽃들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도화(桃花), 즉 복사꽃이 눈에 띄는 화려한 꽃이었다, 도화(桃花)는 특히 벌이 많이 날아든다, 꽃 속에는 벌이 다닥다닥 붙어 있기 마련이다, 한두 마리의 벌만 날아든다면 얼마든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수십마리가 한꺼번에 꽃에 붙어 버리면 난리다. 이때 수십마리의 벌은 나를 죽이는 살기(殺氣)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예쁜 꽃인 도화(桃花)에 ‘죽인다’는 뜻의 ‘살(煞)’자가 붙어 도화살(桃花煞)이라고 표현이 나온 것이다. 도하살 중에서 특히 강력한 도화살을 월장도화(越牆桃花)라고 부른다, 월장(越牆)은 담장을 넘는다는 뜻이다. 이 도화살이 있으면 그 여자를 만나보기 위해 남자들이 담을 넘어서까지 여자 집으로 몰려간다. 월장도화(越牆桃花)가 있으면 물 묻은 바가지에 깨 달라붙듯이 이성이 붙는다. 강력한 흡인력을 지니고 있다. 조선시대에 왕비로 간택이 되려면 도화살이 몇 개는 있어야 했다는 말이 전해진다, 요즘은 도화살이 있으면 대중 스타가 된다. 플레보이 모델들은 아마도 월장도화(越牆桃花)가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도화살(桃花煞)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인기가 나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운영하기에 따라 좋은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그 관건은 지성이다, 도화살이 있는 미인은 학문과 지성을 반드시 보강해야 한다. 학문과 지성이 있으면 명을 연장할 수 있다.
미인박명(美人薄命)
정말 미인은 박명(薄命)인가? 미인박명(美人薄命)이란 고사성어가 있다. 용모가 아름다운 사람은 운명이 기박하거나 가혹(苛酷)하다는 말이다. 가인박명(佳人薄命)이란 말도 같은 뜻이다. 한 마디로 '미인은 팔자가 사납다'라고 보는 것이다.
원래 가인박명이라는 말은 송나라 때의 유명한 문장가이자 관리였던 소동파(蘇東坡)의 칠언율시인 '박명가인(薄命佳人)'에서 나온 말이라 한다. '옛부터 아름다운 여인의 운명은 짧다더니 문 닫고 봄 다하자 버들꽃 떨어진다'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소동파가 항주(杭州)와 양주(楊州)의 지방 장관으로 있을 때 우연히 들린 절간에서 나이 팔십을 넘긴 여승을 우연히 봤는데 그렇게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용모가 꽤나 출중했었기에 젊었을 때는 얼마나 더 아름다웠을까를 생각하며 그녀의 아리따웠을 소녀시절을 회상하며 미인의 박명함을 지은 것이라 한다.
어떤 사연이 있었기에 그렇게 아름다운 미모를 지니고서도 출가를 하게 되었을까를 짐작해보니 필경 피치 못할 사연이 있었으리라 본 것이다. 보통 박명(薄命)하다 함은 명이 짧다고 해석하는 일이 많으나 사실은 운명이 기박하다는 말이므로 팔자가 사나운 것을 나타낸다.
소동파는 북송(北宋)때 사람이니 이미 중국의 4대 미녀라 불리는 서시· 왕소군· 초선· 양귀비의 경우를 보아 미인박명을 시로써 읊은 것이다. 다들 경국지색(傾國之色)의 대표적 예로서 불리는 인물들이며 지극한 총애를 받았으나 말로는 모두가 비참했다.
물고기가 호수에 비친 아름다운 여인을 보고 넋을 잃어 헤엄치는 것조차 잊었다는 서시(西施), 기러기가 구슬프게 비파를 연주하는 아름다운 여인을 보고 날갯짓하는 것조차 잊어버려 그만 땅으로 떨어져버렸다는 왕소군, 밝은 달도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에 구름 뒤로 숨어버리게 했다는 초선, 꽃조차 양귀비의 미모 앞에서는 부끄러워했다는 묘사는 서로 다른 시대를 산 절세미녀들였지만 한결같이 삶은 비극적이었다. 그러하였기에 소동파는 가인박명을 얘기한 것이다.
그러나 현대적 관점에서는 아름다운 용모는 남자나 여자나 훌륭한 자산이다. 남자에 종속되는 삶이 운명지어진 전근대적인 시대 상황에서는 여자는 주체적인 삶을 살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러나 지금은 시대가 바뀌고 생각도 바뀌었다. 미인박명이라 할지라도 우선은 예쁘고 싶고 아름다워지고 싶은 것이 본능일 것이다.
지난 날의 역사나 지금의 외모주의가 이를 대변한다. 팔자 구조가 탄탄하다면 실력으로 인하여 삶의 질은 수준 이상을 향한다. 그리하여 본인만 지혜롭고 자기 관리를 잘 한다면 미인박명보다야 낫지 않을까 싶다.
미인박명(美人薄命)
중국 송대의 문인 동파(東坡) 소식(蘇軾)이 30대 미모의 여승(女僧)을 보고 파란만장했을 법한 삶을 상상해 지었다는 가인박명(佳人薄命)이란 시(詩)다. ‘두 뺨은 우윳빛과 같고 머리는 옻칠을 한 듯 검고/ 눈빛이 발에 들어오니 주옥과 같이 빛나네/ (중략) / 예로부터 아름다운 여인의 운명에는 기박함이 많으니/ 문을 닫고 봄이 다하면 버들꽃도 지겠구나.’
미인은 팔자가 세다는 미인박명(美人薄命)이란 속설이 여기에서 유래된 것이다. 박명(薄命)은 단명(短命)과 다른 말이지만, 젊은 나이에 숨을 거둔 미인들 이야기는 예나 지금이나 보통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른다.
미인박명(美人薄命)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는 양귀비는 당나라 현종의 총애를 한몸에 받다가 안록산의 난(亂)때 38세의 나이로 처참한 죽음을 맞았고, 조선 최고의 미인이라는 황진이는 숱한 남자를 울리다 마흔살 전후해 병사(病死)했다.
세상 여성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던 영국의 다이애나비는 36세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요염한 자태로 뭇 남성의 눈길을 사로잡던 미국의 여배우 마릴린 먼로는 36세에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1996년 미스 러시아로 뽑힌 알렉산드라 페트로바라는 여성은 겨우 20살때 총탄에 맞았고, 사의 찬미를 노래하던 미모의 가수 윤심덕은 29살에 현해탄에 빠져 비운의 삶을 마감했다.
미인의 불행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미국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성인잡지인 플레이보이 모델출신 미인 중에서 50세를 넘긴 사람이 드물다는 분석기사가 AP통신에 실렸다. 이 통신은 1953년 잡지 창간 이래 플레이보이 모델로 데뷔한 미인 600여명 중 상당수가 요절(夭折)했다면서 “미인은 저주를 받고 태어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한 사진작가의 황당한 코멘트를 덧붙이기도 했다.
아름다운 외모를 타고 난 게 무슨 죄인가. 미모는 복(福)일지언정 결코 흉(凶)이 될 수 없다. 미인박명(美人薄命)이란 말도 따지고 보면 근거 없는 속설일 뿐이다. 세간의 관심을 끌지 않아서 그렇지 장수(長壽)하는 미인도 많다. 그런데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속설이 끊이지 않는 것은 보통 사람들이 미인을 시샘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미인을 그냥 놓아두지 않으려는 남성의 욕망 때문일까.
과연 미인은 박명인가?
과거 우리 조상들은 '우리의 몸은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니 다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身體髮膚受之父母 不敢毁傷孝之始也)'라는 말을 철떡 같이 믿고 실천을 하였다. 구한말 일본이 단발령을 내렸을 때 이러한 정신으로 자결한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으니 이 가르침도 '우리의 몸은 비록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나 잘 가꾸고 잘 다듬어 잘 사는 것이 효의 시작'이라고 바꾸어야 할 것 같다.
근래 몇몇 외국 언론에서 한국을 성형수술 천국으로 부르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일본에서는 값싸고 실력이 좋은 한국의 성형기술로 인해 성형관광을 온다고 할 정도다. 이러한 세태는 급기야 몇 년 전부터 너나 할 것 없이 광풍으로 몰아치고 있는 소위 얼짱, 몸짱 열풍으로 이어졌다.
미디어가 중심이 된 현대사회에서 일반 대중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연예인들이 자신의 고정된 컨셉을 바뀌기 위해, 배역에 접합한 이미지 창출을 위해 공개적으로 성형을 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즉 인기를 끌기 위해서는 성형도 불사하겠다는 한 단면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과거 이러한 사실을 숨기던 시절과는 확연히 달라진 당당한 세태를 반영하고 있다.
요즘은 한술 더 떠 동안(童顔) 열풍이 불고 있다. 모 CF에서는 한 평의 영화로 스타덤에 오른 영화배우가 '미녀는 석류를 좋아 한다'는 유치찬란한 광고를 찍었는데 그 제품은 엄청난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이러한 잘생긴 몇몇 남자 연예인들의 영향으로 이제는 이러한 성형바람이 남녀를 가리지 않고 있다.
입사철 또는 입시철이 되면 예비 직장인 및 대학생들이 면접에서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성형외과를 찾는 일이 일반화되었다고 하는데, 남자들도 이런 대열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열풍의 끝이 어디인가 궁금하다.
그런데 우리말에 '미인은 박명(美人薄命)'이라는 말이 있다. 과연 그럴까?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절세미인들의 삶을 통해 이 말의 진실을 한번 찾아보자.
서양미인의 대명사로 코가 한 치만 높았어도 역사를 바꿀 수 있었던 고대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왕조의 마지막 왕 클레오파트라는 로마의 실력자들의 권력싸움 소용돌이 와중에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다. 자신의 최초 정치적인 후견인이었던 폼페이우스가 죽자 케사르에 접근하여 그의 아이를 낳았으나 케사르가 브루투스에 의해 암살을 당한 후에는 안토니우스와 밀월관계를 유지한다. 그러나 그도 아우구스투스와의 악티움해전에서 패해 자살하자 클레오파트라도 안토니우스를 따라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그 때 그녀의 나이 39세였다.
중국 역사에는 4명의 절세미인이 등장한다. 그녀의 미색을 보고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을 잊어 먹었다'라는 고사로 유명한 서시(西施)는 춘추전국시대 월나라 사람이다. 당시 월나라는 오나라의 위세에 눌려 월나라 왕 구천이 오나라 왕 부차 밑에서 굴욕적인 볼모생활을 할 정도였다. 이때 서시는 월나라의 책사인 범려와 연인사이였으나 나라를 위해 오나라 왕 부차에게 진상으로 바쳐진다. 오나라 왕 부차는 서시의 미색과 지략에 눈이 멀어 판단이 흐려지고 서시가 의도한 잘못된 전략에 따라 전쟁을 일으킴으로써 결국 월나라에 망하고 만다. 이후 서시의 행방이 알려지지 않아 언제 사망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음은 '기러기가 날개 움직이는 것을 잃고 땅에 떨어졌다'라는 고사로 낙안(落雁)의 명칭을 얻은 왕소군(王昭君)이다. 그녀는 전한(前漢) 시대의 궁녀였다. 당시 한나라는 북방의 흉노족의 지속적인 침략을 받고 있었다. 흉노족은 진나라의 시황제가 만리장성을 쌓아 경계할 정도로 대대로 중국 정권을 괴롭힌 민족이다. 당시 한나라도 흉노족의 노략질로 골머리를 않고 있었는데 흉노족과의 화친을 위해 용모와 재주를 겸비한 왕소군을 흉노족 우두머리인 선우에게 시집을 보내게 된다. 정확한 생몰연대를 알 수는 없으나 왕소군은 흉노족 생활에 적응을 잘 하여 천수를 누리며 살았다고 한다.
초선은 삼국시대 초기 혼란기의 명문가 출신의 여인이다. '달이 부끄러워 얼굴을 가린다'라고 할 정도의 미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당시 한나라는 왕권의 상실로 군사력을 갖춘 동탁의 손에 놀아나고 있었는데, 동탁이 권력을 유지하는 데는 여포라는 출중한 장군이 있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여포에게는 뛰어난 전투력에 걸 맞는 지략이 없었다. 한나라의 충신이었던 왕윤은 이러한 점을 이용하여 미인계로써 한나라를 구하기로 결심을 하게 된다. 왕윤은 자신의 딸인 초선을 시켜 동탁과 여포사이에서 삼각관계를 형성하여 서로를 반목하게 하는데 성공한다. 즉 초선은 여포를 유혹하고 동탁과 사이를 갈라놓는데 성공하였고, 결국 여포가 동탁을 죽임으로써 자신의 소명을 다 했으나 그녀는 자살로 의로운 삶을 마감한다. 이때 그녀의 나이는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결혼을 하지 않은 처지를 감안하면 아마 20대가 되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미인의 대표주자로 우리 귀에 가장 익숙한 양귀비다. 당 현종의 눈에 띄어 며느리에서 비로 승격되었다. 그러나 양귀비는 현종의 총애를 받으면서도 자신보다 20살이나 많은 변방의 장군 안록산과 눈이 맞아 방탕한 생활을 하였고, 결국 안록산의 난 와중에서 나라를 망친 책임을 지고 피난길에서 현종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 당시 그녀의 나이 38세였다.
한국은 신라시대의 미실을 꼽을 수 있다. 미실은 김대문의 화랑세기에 의하면 진흥왕 시절 이사부와 함께 가야정벌의 큰 공을 세운 사다함의 첫사랑이었고, 결국 사다함을 자살까지 이르게 한 이야기로 유명한 인물이다. 미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뇌쇄(惱殺)적인 성적 매력이 풍부했던 미실은 진흥왕 등 3대의 왕과 관계하면서 신라 왕실을 좌지우지한 팜므파탈 여인으로 더 알려져 있다. 미실은 몇 번의 출궁(出宮) 조치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매력과 정치력으로 다시 입궁(入宮)하는 과정에서 숱한 섹스 스캔들을 양산하며 파란만장한 생을 살았다. 그녀는 58세에 죽었는데 당시의 평균수명을 감안하면 가히 천수를 누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류학자들에 의하면 생산경제의 발전과 기술의 진보로 “인류의 위대한 생산혁명을 이룩한 신석기시대(지역에 따라 시기의 차이는 있겠으나 지금으로부터 대략 1만 년 전의 시기임)의 인류의 평균수명은 10세 전후가 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이는 태어나자마자 죽는 아이들이 많아 그렇게 낮아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약 2천년 전 예수가 태어난 시기의 인류 평균수명은 20세 전후라고 한다. 1900년 선진국의 평균수명은 40세 전후가 되었고, 2005년 장수국의 평균수명이 80세가 되었다. 신석기시대부터 인류의 평균수명이 2배씩 늘어나는데 8,000년과 1,900년 그리고 100년이 걸린 꼴이다.
일부 생몰연대에 대한 기록이 없어 정확하게 판단하기는 어렵겠지만 기록이 남아 있는 미인들의 경우를 보면 그들의 삶은 결코 짧지 않다. 즉 최소한 이들 세기적인 미인들에게는 미인박명이라는 말이 맞지 않는 것 같다. 다만 시대적인 배경으로 인하여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인위적으로 생명을 단축시켰을 뿐이다.
위에 언급된 과거의 평균수명을 기준으로 해서 보아도 미인박명(美人薄命)이라는 말은 과학적인 근거에 의해서 나온 것이 아니고 미인을 시샘하여 지어낸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해본다. 또는 그러한 미인을 사회적으로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과 그로 인하여 역사의 희생양이 되어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을 것이라는 가정에서 나온 속설들이 굳어져 지금까지 사용되어 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예쁘고 젊게 사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본능일 것이다. 또 자신의 신체를 예쁘게 잘 가꾸고자 하는데 이의를 달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남들이 장에 가니 따라가는 식'의 묻지마 성형은 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과 외면의 미뿐만 아니라 내면의 미도 같이 가꾸었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을 가져본다.
▶️ 美(아름다울 미)는 ❶회의문자로 羙(미)는 동자(同字)이다. 크고(大) 살찐 양(羊)이라는 뜻이 합(合)하여 보기 좋다는 데서 아름답다를 뜻한다. 羊(양)은 신에게 바치는 희생의 짐승이다. 신에게 바치는 살찐 양에서 맛있다, 아름답다, 훌륭함하다는 뜻이 있다. ❷회의문자로 美자는 ‘아름답다’나 ‘맛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美자는 大(큰 대)자와 羊(양 양)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갑골문에 나온 美자를 보면 머리에 장식을 한 사람이 그려져 있었다. 양은 상서로움을 상징하기에 美자는 양의 머리를 장식으로 한 사람을 그린 것으로 보기도 한다. 고대에는 제를 지내거나 의식을 치르기 위해 제사장이 머리에 특별한 장식을 했었다. 그래서 美자는 머리에 양의 뿔이나 깃털 장식을 한 사람을 그려 ‘아름답다’라는 뜻을 갖게 된 것으로 풀이한다. 그래서 美(미)는 ①눈으로 보았을 때의 아름다움 ②감성적 대상에 대하여 느껴지는 것으로서 개인적 이해 관계가 없는 곳에 이루어져 심적 쾌감을 일으키는 요소 ③성적이나 등급 따위를 평정하는 기준의 한 가지 ④어떤 명사 앞 뒤에 붙이어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말 ⑤미국 등의 뜻으로 아름답다, 맛나다, 맛이 좋다, 맛있다, 경사스럽다, 즐기다, 좋다, 기리다, 좋은 일, 미국의 약칭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아름다울 가(佳), 아름다울 가(嘉), 착하고 아름다울 미(媺),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추할 추(醜)이다. 용례로는 공간 및 시각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예술을 미술(美術), 아름답게 생긴 여자를 미인(美人), 아름다운 덕성을 미덕(美德), 아름다운 얼굴 모습을 미모(美貌), 아름다움과 추함을 미추(美醜), 아름답게 꾸밈을 미화(美化), 성격 상으로 아름다운 점을 미점(美點), 아름답게 생긴 남자를 미남(美男), 아름다운 풍경을 미경(美景), 아름다워서 볼 만한 경치를 미관(美觀), 아름답고 고움을 미려(美麗), 아름다운 풍속을 미풍(美風), 미인은 흔히 불행하거나 병약하여 요절하는 일이 많다는 미인박명(美人薄命), 아름답고 좋은 풍속을 미풍양속(美風良俗), 아름다운 말과 글귀라는 미사여구(美辭麗句), 좋은 술과 좋은 과일을 미주가과(美酒佳果), 용모의 아름다움이 관에 달린 옥과 같다는 미여관옥(美如冠玉) 등에 쓰인다.
▶️ 人(사람 인)은 ❶상형문자로 亻(인)은 동자(同字)이다. 사람이 허리를 굽히고 서 있는 것을 옆에서 본 모양을 본뜬 글자. 옛날에는 사람을 나타내는 글자를 여러 가지 모양으로 썼으나 뜻의 구별은 없었다. ❷상형문자로 人자는 ‘사람’이나 ‘인간’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人자는 한자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글자이기도 하다. 상용한자에서 人자가 부수로 쓰인 글자만 해도 88자가 있을 정도로 고대 중국인들은 人자를 응용해 다양한 글자를 만들어냈다. 이전에는 人자가 두 사람이 등을 서로 맞대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라고 해석을 했었지만, 갑골문에 나온 人자를 보면 팔을 지긋이 내리고 있는 사람을 그린 것이었다. 소전에서는 팔이 좀 더 늘어진 모습으로 바뀌게 되어 지금의 人자가 되었다. 이처럼 人자는 사람을 그린 것이기 때문에 부수로 쓰일 때는 주로 사람의 행동이나 신체의 모습, 성품과 관련된 의미를 전달하게 된다. 그래서 人(인)은 (1)사람 (2)어떤 명사(名詞) 아래 쓰이어, 그러한 사람을 나타내는 말 등의 뜻으로 ①사람, 인간(人間) ②다른 사람, 타인(他人), 남 ③딴 사람 ④그 사람 ⑤남자(男子) ⑥어른, 성인(成人) ⑦백성(百姓) ⑧인격(人格) ⑨낯, 체면(體面), 명예(名譽) ⑩사람의 품성(稟性), 사람됨 ⑪몸, 건강(健康), 의식(意識) ⑫아랫사람, 부하(部下), 동류(同類)의 사람 ⑬어떤 특정한 일에 종사(從事)하는 사람 ⑭일손, 인재(人才)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어진 사람 인(儿),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짐승 수(兽), 짐승 수(獣), 짐승 수(獸), 짐승 축(畜)이다. 용례로는 뛰어난 사람이나 인재를 인물(人物), 안부를 묻거나 공경의 뜻을 표하는 일을 인사(人事), 사람으로서의 권리를 인권(人權), 한 나라 또는 일정 지역에 사는 사람의 총수를 인구(人口), 세상 사람의 좋은 평판을 인기(人氣), 사람을 다른 동물과 구별하여 이르는 말을 인류(人類), 사람의 힘이나 사람의 능력을 인력(人力), 이 세상에서의 인간 생활을 인생(人生), 학식과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인재(人材), 사람의 수효를 인원(人員), 사람으로서의 됨됨이나 사람의 품격을 인격(人格), 사람에 관한 것을 인적(人的), 사람을 가리어 뽑음을 인선(人選), 사람의 힘이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일을 인위(人爲), 사람의 몸을 인체(人體), 사람의 얼굴의 생김새를 인상(人相), 한 사람 한 사람이나 각자를 개인(個人), 나이가 많은 사람을 노인(老人), 남의 아내의 높임말을 부인(夫人), 결혼한 여자를 부인(婦人), 죽은 사람을 고인(故人), 한집안 사람을 가인(家人), 장사하는 사람을 상인(商人), 다른 사람을 타인(他人),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뜻으로 사람의 삶이 헛되지 아니하면 그 이름이 길이 남음을 이르는 말을 인사유명(人死留名), 인생이 덧없음을 이르는 말을 인생무상(人生無常), 인생은 아침 이슬과 같이 짧고 덧없다는 말을 인생조로(人生朝露), 얼굴은 사람의 모습을 하였으나 마음은 짐승과 같다는 인면수심(人面獸心), 정신을 잃고 의식을 모름이란 뜻으로 사람으로서의 예절을 차릴 줄 모름을 인사불성(人事不省), 사람의 죽음을 몹시 슬퍼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인금지탄(人琴之歎) 등에 쓰인다.
▶️ 薄(엷을 박, 동자기둥 벽, 풀 이름 보)은 ❶형성문자로 簿(박)의 속자(俗字)이다. 엷을 박, 동자기둥 벽, 풀 이름 보(薄)는 뜻을 나타내는 초두머리(艹=艸; 풀, 풀의 싹)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가까이 다다른다는 뜻을 나타내는 글자 溥(부, 박)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풀이 서로 가까이 모여 무더기로 더부룩하게 나다, 가까이 모인다는 뜻에서 '얇다'는 뜻으로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薄자는 '엷다'나 '얇다', '야박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薄자는 艹(풀 초)자와 溥(넓을 부)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溥자는 강 옆 넓은 논밭에 모종을 펼쳐 심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넓다'나 '펴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薄자는 이렇게 모종을 심는 모습을 그린 溥자에 艹자를 더한 것으로 '풀이 떼 지어 자라다'라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후에 '얇다'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면서 본래의 의미는 더는 쓰이지 않고 있다. 그래서 薄(박)은 ①엷다, 얇다 ②적다 ③야박(野薄)하다 ④싱겁다 ⑤맛없다 ⑥깔보다, 업신여기다 ⑦척박(瘠薄)하다 ⑧가까워지다 ⑨숲 ⑩대그릇(대로 만든 그릇) 그리고 ⓐ동자기둥(들보 위에 세우는 짧은 기둥)(벽) ⓑ두공(枓栱: 기둥 위에 지붕을 받치며 차례로 짜올린 구조)(벽) 그리고 ㉠풀의 이름(보) ㉡박하(薄荷: 꿀풀과의 여러해살이풀)(보)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얕을 천(淺),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두터울 후(厚)이다. 용례로는 대나 갈대 따위로 만든 그릇을 박기(薄器), 적은 이익을 박리(薄利), 복이 없고 사나운 팔자를 박명(薄命), 많지 않은 봉급을 박봉(薄俸), 메마른 땅을 박토(薄土), 불친절한 대우를 박대(薄待), 얇은 심덕이나 적은 덕행을 박덕(薄德), 상냥하고 아담한 자태를 박미(薄媚), 적디 적음을 박소(薄少), 적은 수확을 박수(薄收), 됨됨이가 변변하지 못하고 아주 나쁨을 박악(薄惡), 굳세지 못하고 여림을 박약(薄弱), 변변하지 못한 재주를 박재(薄才), 인정이 적음을 박정(薄情), 어린 마음과 뜻을 박지(薄志), 아내에게 몹시 인정없이 굶을 박처(薄妻), 보잘 것 없는 학식을 박학(薄學), 볼품없는 예물이란 뜻으로 사례로 주는 약간의 돈이나 물품을 박례(薄禮), 적은 녹봉이라는 뜻으로 불행을 이르는 말을 박록(薄祿), 이익을 적게 보고 많이 팔아 이문을 올림을 이르는 말을 박리다매(薄利多賣), 아주 자질구례하고 변변하지 못한 사물을 이르는 말을 박물세고(薄物細故), 엷은 얼음을 밟듯이 세상의 처세에 조심함을 이르는 말을 박빙여리(薄氷如履), 살얼음을 밟는 것처럼 위태로움을 이르는 말을 박빙여림(薄氷如臨), 더할 수 없이 박함을 이르는 말을 박지우박(薄之又薄), 메마른 밭과 논을 이르는 말을 박전박답(薄田薄畓), 맛이 변변하지 못한 술과 산나물이란 뜻으로 자기가 내는 술과 안주를 겸손하게 이르는 말을 박주산채(薄酒山菜) 등에 쓰인다.
▶️ 命(목숨 명)은 ❶회의문자로 입 구(口; 입, 먹다, 말하다)部와 令(령)의 합자(合字)이다. 입(口)으로 뜻을 전한다는 뜻으로, 곧 임금이 명령을 내려 백성을 부린다는 뜻으로 쓰인다. ❷회의문자로 命자는 ‘목숨’이나 ‘명령’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命자는 亼(삼합 집)자와 口(입 구)자, 卩(병부 절)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亼자는 지붕을 그린 것으로 여기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사람을 그린 卩자가 더해진 命자는 대궐에 앉아 명령을 내리는 사람을 표현한 것이다. 상관이 내리는 명령은 반드시 목숨을 걸고 완수해야 한다. 그래서 命자는 ‘명령’이라는 뜻 외에도 ‘목숨’이나 ‘생명’이라는 뜻이 파생되어 있다. 그래서 命(명)은 (1)목숨 (2)운명(運命) 등의 뜻으로 ①목숨, 생명(生命), 수명(壽命) ②운수(運數), 운(運) ③표적(標的), 목표물(目標物) ④명령(命令), 분부(分付)⑤성질(性質), 천성(天性) ⑥말, 언약(言約) ⑦규정(規定), 규칙(規則) ⑧가르침 ⑨작위(爵位), 작위의 사령서나 그 신표(信標: 증거가 되게 하기 위하여 서로 주고받는 물건) ⑩하늘의 뜻, 천명(天命) ⑪도(道), 자연의 이법(理法) ⑫호적(戶籍) ⑬명령하다 ⑭가르치다, 알리다 ⑮이름짓다, 이름을 붙이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윗사람이 아랫 사람에게 무엇을 하도록 시킴을 명령(命令), 시문의 제목을 정하여 주는 것을 명제(命題), 사람이나 물건에 이름을 지어 붙임을 명명(命名), 살아 있는 목숨을 이어 가는 근본을 명백(命脈), 겨냥한 곳에 바로 맞음을 명중(命中), 생명의 근본을 명근(命根), 목숨의 한도를 명한(命限), 앞으로의 존망이나 생사에 관한 처지를 운명(運命), 관직에 명함 또는 직무를 맡김을 임명(任命), 타고난 수명이나 하늘의 명령을 천명(天命), 날 때부터 타고난 운명을 숙명(宿命), 제 명대로 살지 못하는 목숨을 비명(非命), 맡겨진 임무나 맡은 일을 사명(使命), 생물이 살아 있는 연한을 수명(壽命), 사람의 목숨을 인명(人命),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는 명재경각(命在頃刻), 한 시대를 바로잡아 구할 만한 뛰어난 인재를 명세지웅(命世之雄), 연거푸 생기는 행복을 명야복야(命也福也), 병이나 상처가 중하여 목숨에 관계됨을 명맥소관(命脈所關), 팔자가 사나움을 명도기박(命途奇薄), 목숨을 義에 연연하여 가볍게 여기다는 명연의경(命緣義輕)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