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9번째 편지 - 원 팀
지난 10월 31일, 저희 회사 HM company는 전 직원이 모여 가을 운동회를 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2011년 회사를 설립한 이래 처음으로 하는 운동회였습니다. 용산구 원효로에 위치한 한 체육관에 모여 30명의 직원들을 네 팀으로 나눴습니다. 저 역시 한 팀에 소속되었습니다.
3시간 넘게 우리는 여러 가지 운동을 했습니다. 저는 운동회가 이렇게 다채롭게 진행되는 줄 몰랐습니다. 각 경기마다 기상천외한 소품들이 등장했고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으면서도 은근히 경쟁심도 불러일으켰습니다.
처음에는 멀뚱멀뚱 관찰자로 있던 저도 어느새 주요 선수가 되어 있었습니다. 2인 3각 경기를 할 때 같이 걷는 선수가 힘들어 쓰러지자 "안돼. 포기하면 안돼! 달려야 해!"라며 동료 선수 팔짱을 끼고 부축하다시피 결승점까지 달리는 이다원 매니저의 모습은 감동이었습니다.
저는 인간 컬링이 가장 재미있었습니다. 바퀴 달린 판 위에 큰 고무대야를 올려놓고 그 안에 한 사람이 들어가 컬링의 '스톤' 역할을 합니다. 여럿이서 그 고무대야를 밀어 속도와 방향을 조정합니다.
어떤 고무대야 '스톤'은 가다가 넘어지기도 하고 목표점 '하우스'에 도달하기도 전에 멈춰버리기도 했습니다. 한번은 제가 민 '스톤'이 '하우스' 정중앙 '버튼'에 들어가 모두 환호를 올리기도 하였습니다.
남녀 한 명씩 한 조를 이룬 제기차기에서 임덕진 부장이 스물 몇 개를 차서 당연히 1등을 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나 뒤이어 등장한 박재현 상무는 안정된 자세로 제기를 찹니다. 이제 몇 개만 차면 임부장을 넘어섭니다. 모두 같이 숫자를 셉니다. 결국 넘어섭니다. 드라마 같은 역전극입니다.
운동회 초반에는 30명 직원이 뿔뿔이 흩어져 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은 각 팀으로 하나씩 뭉쳐졌습니다. 한 팀이 개별 종목에서 승리할 때마다 체육관을 떠나갈 듯한 고함과 괴성이 울려 퍼졌습니다.
운동회가 끝날 무렵 네 팀 우리 모두는 하나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어느 팀이 우승하는지는 이미 의미가 없었습니다. 6시경 그 근처 호프집에 저녁으로 치맥을 먹었습니다.
저도 직원들과 밤늦도록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직급도 담당 업무도 다 내려놓고 우리 모두는 원 팀이 되어 있었습니다.
저희 회사에서 매주 목요일 개최되는 간부회의 참석자는 저를 포함해 7명입니다. 간부 7명이 11월 14일 목요일 오후 2시부터 그 다음날인 금요일 오후 2시까지 1박 2일간의 워크숍을 했습니다.
2025년을 대비해 고민할 시간이 필요하여 연말 바쁜 시기 전에 간부들만의 시간을 갖자고 제안해 성사된 자리였습니다. 1년간 일하면서 이견, 갈등, 고민도 있을 테니 서로 터놓고 이야기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용훈 부대표가 PPT 자료를 준비하여 우리가 처한 상황과 문제를 하나하나 짚어 나갔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듣다가 시간이 흐르자 모두 속내를 이야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간부들 모두 각자의 어려운 숙제가 있었고 말못한 고민들이 있었습니다.
그 회의는 6시까지 이어졌습니다. 4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갔습니다. 처음에는 숙제와 고민이 각자의 것이었지만 시간이 흐르자 모두의 것이 되었고 함께 고민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우리는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운동회에서 느꼈던 하나 됨이 이 시간에도 느껴졌습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돌아와서는 음악도 듣고 와인도 한잔하며 각자의 삶을 이야기했습니다. 가장으로서의 애로사항도, 팀장으로서의 어려움도 털어놓았습니다. 그 시간은 밤 10시 반까지 이어졌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서로 한 가족 같았고 형 동생, 삼촌 조카 같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 마무리 회의를 하면서 저는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러분은 저와 10년 이상을 지내왔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조근호가 개입된 것입니다. 몇십 년 후 여러분들이 인생을 회고하면서 '그때 조근호를 만나지 않았다면, 그때 HM company가 아닌 다른 회사에 입사했더라면 내 인생은 더 좋았을 텐데, 더 행복했을 텐데' 하는 후회를 하게 될까 걱정이 됩니다.
저와 여러분의 만남이 <최고의 만남>은 되지 못하더라도 <잘못된 만남>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회사를 이끌고 있습니다. 물론 <잘못된 만남>으로 평가되면 그 책임은 온전히 저에게 있습니다. 제가 회사를 만들지 않았다면 그 만남은 없었을 테니까요.
장례식장에 가보면 발인하는 순간 딸이 다시 못 올 길을 떠나는 어머니에게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엄마, 엄마의 딸로 태어나 엄마의 딸로 살면서 참 행복했어요.'
저는 여러분들이 '조근호, 당신을 만나 너무 행복했고 보람 있었다'고 회고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제가 회사를 운영하는 목표입니다."
워크샵이 끝나고 우리는 원 팀이 되어 있었습니다. 모두들 너무 좋았다면 가끔 이런 시간을 가지자고 했습니다.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2014년 추수감사절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국가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미국인이라면 우리는 그 사람의 출신이나 피부색, 종교와 관계없이 그들의 헌신에 감사드립니다. 이는 미국의 신조인 '에 플루리부스 우눔(E Pluribus Unum)' 즉, <우리는 하나>라는 정신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성조기와 함께 미국의 상징인 미국의 국장(the Great Seal of the United States, 국새)에 E Pluribus Unum가 적혀 있습니다. 이 국장은 1782년 미 의회에서 채택되었다고 합니다.
그 뜻은 Out of many, one, 즉 "여럿으로 이루어진 하나"입니다. 다민족 국가 미국은 이 정신으로 하나가 되어 국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저는 우연히 이 단어를 접하고 우리 회사도 이런 정신으로 무장하여야 하는 것이 아닌가 여겨졌습니다.
그래야 오래도록 존속하고, 훗날 저를 회고할 때 '그때 조근호를 만나 행복했다'고 이야기하지 않을까요?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4.11.19. 조근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