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담 스님은 『「고려화불」 을 종교적 시각으로만 보지 않았으면 한다』며 『500년 가까운 고려시대 내내 왕실은 물론이고 서민들의 의지처가 됐던 고려화불은 고려청자, 고려대장경처럼 우리가 보존해야 할 대표적인 문화유산』이라고 말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은은하고 화려한 고려불화… 세사에 시달려도 그 앞에선 별빛이라
|천 뒷면에 채색해 안정된 색감… 섬세한 금선으로 정교하게 표현
|루브르 살롱전에 매년 출품도
|화불 보며 번뇌 멈출 수 있다면 재현 작업 50년 헛되지는 않아
가사(袈裟)를 휘감은 투명한 사라(紗羅·명주실로 짠 얇고 가벼운 천) 위로 서운(瑞雲)이 흐른다.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얹힌 구름 위를 노니는 봉황(鳳凰)들.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힌 천 아래 손은 깊은 마음속 거룩한 합장(合掌)인가.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자비안(慈悲眼·부처님의 자비로운 눈)에 모두오니, 세사(世事)에 시달려도 그 앞에선 별빛이라.
✵고려화불 수월관음도(高麗畫佛 水月觀音圖) : 고려시대 수월관음도는 전 세계 약 160점 정도 남은 고려불화 중에서 수월관음도가 40점이나 된다. 그 정도로 많이 그렸고 인기 있는 주제였다. 중국에서 당송(唐宋) 시대 이후 형성된 33변화관음 중 수월관음의 모습을 도상화한 불화가 수월관음도이다.
화엄경(華嚴經)에 따르면 선재동자((善財童子))가 여러 스승들을 찾아 순례를 한다. 선재동자가 찾아가는 선지식(스승) 중에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도 있는데, 관세음보살은 보타낙가산(補陀洛迦山)의 연못가 바위 위에 앉아 선재동자를 맞이하였다. 수월관음도는 화엄경에서 선재동자를 맞이하는 관세음보살의 모습을 기본 구성으로 한다. 중국 당말(唐末) 오대(五代) 돈황(敦煌)에서 제작된 수월관음도들이 현존하는 수월관음도 중 가장 이른 시기의 작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 제작된 관세음보살화 대부분이 수월관음도이다.
수월관음이 상징하는 의미를 두고 여러 해석들이 있지만, 관음보살의 자비가 물에 비친 달처럼 멀리 퍼져나가서 중생에게 깨우침을 준다는 것이 주된 해석이다. 수월관음도가 여러 고려불화 중 가장 인기 있는 이유는 도상에서 장식성이 매우 뛰어나기 때문이다. 특히나 관음보살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쓰고 있는 장식적인 사라(紗羅, 투명하고 얇은 비단)가 인상적이다. 실제로 고려시대에는 매미 날개만큼이나 얇고 투명한 비단을 직조해서 원나라 공주가 탐을 냈다는 기록도 있을 정도로 직조술이 발달했었다고 한다.
고려시대 수월관음도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관음보살이 씨스루(see-through)의 투명한 베일에 금으로 정교한 원형 덩굴과 꽃 문양을 그려넣은 것이 특징이며 이러한 묘사는 동시대 중국과 일본의 관음도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는 고려불화의 특징적인 요소다. 천주교의 미술이 서유럽의 사실적인 미학에 따라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적 고통이 묻어나는 비극적 호소를 담아 묘사하고, 반대로 정교회 미술은 동유럽의 영적인 미학에 따라 그리스도를 부활과 영광을 암시하는 평온한 모습으로 그리듯이, 종교 미술은 제작된 지역 고유의 문화가 반영되는 경우가 많다. 고려불화 속 관음보살의 화려한 모습은, 고려의 우수한 의복 제조기술 및 옷에 금을 입히는 화려한 귀족 문화, 귀족들의 보살 숭상을 통한 구복적 염원이 반영된 것이라 볼 수 있다.
대부분의 고려시대 수월관음도는 14세기에 그려졌으며, 일반적으로는 관음보살이 물가 위 암벽 위 앉아서 대각선 방향으로 깨우침을 받으러 온 선재동자를 지긋이 쳐다보며 그 뒤에는 대나무 두 그루가 자라난 것을 묘사한 것이 일반적인 고려 수월관음도의 특징이다.
천수관음도(千手觀音圖)는 관음의 대자대비(大慈大悲)의 힘이 극히 광대함과 최대함을 강조하여 천의 손과 천의 눈을 갖고 있다는 천수관음을 그린 그림인데, 이건희 회장이 사후에 기증한 이 고려 천수관음도는 국내에 현존하는 천수관음도 중 제일 오래되고 현재까지 확인된 유일한 고려 천수관음도이다. 그 가치를 인정받아서 보물로 현재 지정되어 있는 작품이다.
*선재동자(善財童子) : 『불교』 화엄경의 입법 계품(入法界品)에 나오는 젊은 구도자의 이름.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53명의 선지식을 차례로 찾아갔는데, 마지막으로 보현보살(普賢菩薩)을 만나 진리의 세계에 들어갔다고 한다.
*시루스(see-through) ; 비치는 상태를 말하며, 1964년 미국 디자이너 루디 게른라이히가 발표한 얇은 옷감인 시어(sheer)로 만든, 살이 들여다 보이는 블라우스 등이 총칭이다. 1966년 프랑스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이 보디 스타킹에 매치시킨, 반짝거리며 얇고 비치는 옷감의 시폰 드레스 등이 있다. 1968년에 많이 유행하였다.
최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제1미술관에서 열린 특별전 ‘붓끝으로 나투신 천년의 장엄, 고려불화대전’은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지만 일반인은 쉽게 접하기 힘든 ‘고려 불화’가 주제다. 특별전을 연 강원 속초 계태사 회주 혜담 스님(고려불화학술연구소 이사장)은 “고려화불(畫佛)은 부처님을 은은한 배채법(背彩法) 위에 섬세한 금선(金線)으로 표현한 것이 특징”이라며 “때문에 극상의 편안함과 화려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고 했다.
―고려불화 재현에 천착한 지 50년이 넘었다고 들었습니다.
“고려시대엔 불상 대신 화불을 모신 절이 더 많았습니다. 500년 가까이 불교가 국교였으니 수만, 수십만 점이 그려졌겠죠. 하지만 현존하는 건 전 세계에 160여 점뿐이지요. 국내에는 10여 점밖에 없고요. 조선시대에 불교가 탄압받고, 화불을 불상으로 대체하면서 그리는 법도 끊겼습니다. 그게 너무 아쉬워 시작했는데 벌써 반백 년이 지났네요. 하하하.”
―불화가 아니라 화불이라고 하셨습니다.
“불화는 ‘부처님을 그린 그림’이고, 화불은 ‘그림 부처님’이라고 생각해 저는 그렇게 부릅니다. 고려시대에 불상 대신 그 자리에 화불을 모신 절이 많았던 것도 그런 이유지요. 제가 만든 말이 아니에요. 고려사에 충선왕, 충혜왕 때 원나라에 부처님 그림을 바친 상황을 ‘헌화불(獻畫佛·그림 부처님을 바치다)’이라고 적었으니까요.”
―은은함과 화려함이 동시에 느껴진다는 게 놀랍습니다.
“배채법은 채색을 천의 뒷면에 하는 기법입니다. 부드럽게 배어나면서 은은하고 안정된 색감을 주지요. 그 위를 섬세한 선으로 부처님의 얼굴과 눈매, 옷 주름, 장신구의 미세한 무늬까지 정교하게 표현하는데 안료가 금이고, 은은한 바탕 위에 그리다 보니 두 가지 상반된 느낌이 동시에 느껴지는 거죠.”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국립예술 살롱전에도 초청받으셨더군요.
“2014년 프랑스에서 관련 교수들과 화가들이 절에 찾아왔어요. 고려화불이 워낙 희귀하다 보니 보고 좀 놀란 것 같더라고요. 전시를 제안하기에 그때부터 매년 출품했는데, 팬데믹으로 잠시 중단된 뒤에는 출품하지 못하고 있어요. 나이가 있어 이제는 가기 힘들어서….”
루브르박물관은 혜담 스님에게 2015년 국립예술 살롱전 고전부문상과 창작상, 2017년 명예훈장을 수여했다.
―해외에선 고려화불을 일본 문화로 아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일본이 약탈해 간 고려화불이 100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어요. 외국에 나가 보니 이 사람들이 그걸 은근히 자기들 문화유산으로 홍보하더라고요. 어찌나 화가 나던지…. 국내는 당연하고 외국에서도 관련 학회, 세미나 등을 통해 기를 쓰고 고려화불은 한국 문화라고 설명하고 외치고 다녔지요. 일본 문화라고 하고 다니던 사람들이 이제는 저를 보면 피하는 걸 보면 효과는 있었나 봅니다. 하하하.”
―전시장에서 화불을 보고 우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은은한 달빛을 보듯, 종교를 떠나 마음의 편안함을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지치고 힘든 세상에서 화불을 보며 잠시라도 번뇌를 멈출 수 있다면, 50년 세월도 헛된 것은 아니겠지요.”
[기사출처 및 참고문헌 : 동아일보 2026년 10원 13일《Daum, Naver 지식백과》/ 사진: 이영일∙고앵자] yil207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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