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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의 연가, 거꾸로 보기, 안전체감 사회의 중요성 외
한남대학교 전 총장 김형태 장로님이 한교선 단톡방에 공유한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낙엽(落葉) /헤르만 헤세]
꽃마다 열매가 되려고 하네.
아침은 저녁이 되려고 하네.
변화하고 없어지는 것 외에는.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는데.
저토록 아름다운 여름까지도
가을이 되어 조락(凋落)을 느끼려 하네.
나뭇잎이여, 바람이 그대를 유혹하더라도
가만히 끈기 있게 매달려 있어라.
그대의 유희를 계속하고 거역하지 말라.
가만히 내버려 두라
바람이 그대를 떨어뜨려
집으로 데려가게 하라.
■ 하나님의 하루 /이기경 목사 ■
하나님의 긴 하루 일과 중 하나는 바람(공기, 산소, 숨쉼)으로 모든 생물들이 숨을 쉬게 하시는 일이며 때로는 큰 바람으로 크신 역사를 이루시는 일이다.
아모스는 "하나님은 바람을 창조하시고, 하시고자 하는 것을 사람에게 알리신다(암 4:13)고 말했다.
인간 창조 때도 "그의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창 2:7)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니 사람은 곧 숨을 쉬는 존재다.
때로는 바람을 덩어리로 만들어 사람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큰 역사를 나타내시기도 한다.
노아 때에 비를 그치게 하심도 바람을 통해서였고(창 8:1) 출애급 사건때 홍해의 한 가운데로 길을 만드신 것도 하나님의 동풍 바람이었다(출 14:21).
광야생활에서 식량으로 메추라기를 모아다 주신 것도 하나님의 바람이었고(민 11:31), 초대교회의 성령 강림도 역시 바람이었다.
"갑자기 하늘에서 세찬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났다."(행 2: 2)고 기록돼있다.
바람이 성령이셨나?
바람이 하는 일들이 성령의 역사와 너무 흡사하므로 하나님은 성령이 역사할 때 바람을 이용하시었나 ?
그 바람이 이 우주 공간에 편만하고, 우리들의 속에까지 스며들어와 우리는 신비한 하나님과 함께 살고 있는 것이다.(God with us.)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어디서 어떤 바람을 만들고 계실까 ?
(*福音新聞/2022, 10, 30일자)
■낙엽의 노래/곽충환■
하늘에서 뿌린 물감
수채화로 받아내어
저마다의 빛깔로
햇빛을 토해내니
다함께 아우러진
가슴 저민 황홀한 자태여라.
스치는 한 점 바람에
찬연했던 일생 접고
미련 없이 터전을 떠나는
자유롭고 숭고한 날갯짓
바람 타고 살포시 날아오나니
끝내 가고픈 본향이런가.
겹겹이 다투어 내려앉으니
온 땅을 덮는 열정이라
이내 닥칠 추위를 막고
온몸으로 서리도 녹여내리
아니, 끝내는 죽어서라도
그대 살릴 자양분 되리라.
낙엽은 안다
새싹에, 푸른 잎에, 단풍까지
자신의 존재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자기를 지켜준 게 무엇인지를
하여, 아낌없이 내놓으리.
누구라 함부로 '낙엽' 이라 무시햐랴.
■ 落葉 길에서/ 고 훈■
지난
여름 잎들은
태풍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생존으로 붙들었다.
지금
가을 잎들은
작은 바람에도
힘 없는 낙엽으로
휘날리며 떨어진다
우리도
너희들처럼 따라가는 것을
어찌 슬프다 하겠느냐
너희들은
안식처인 땅으로 돌아가고
우리들은
본향인 하늘로 돌아간다.
어느날
나의 그날이 오면
땅에 있는
그 친구의 구원받은 이름을 손에 쥐고
내 하늘로 간다면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
(2022. 11.13. 주일에)
[낙엽의 연가/ 김덕성]
풍성했던 시절이
사라지는 날 창밖에는 가을비가
구슬프게 보슬보슬 내렸다.
강풍이 부는 날
사랑을 놓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다
사랑의 끈을 놓은 낙엽 한 잎.
끝내 외로운 길을 떠났다.
여름내 푸른 꿈을 이루고
예쁜 옷으로 갈아입고도 변치 않고
오래오래 사랑하고 싶었던 낙엽.
누구를 탓하며 원망하랴
지울 수 없는 숱한 추억들
뒤안길로 밀어두고 떠나는 나그네
사랑의 아픔을 안고 길 떠나는
낙엽의 사랑의 여로
나도 떠나는 인생의 여로.
■약속 시간/ 이남일■
우리는 저마다 속도가 있어
다같이 시계에 시간을 맡긴다.
바쁜 시간
남는 시간을.
우리는 시간을 나누기 위해
약속시간을 정하고
그 시간을 위해
즐거이 시간의 그물에 갇힌다.
기다리면 미래였다가
돌아보면 과거였다가
마주할 때 비로소
현재가 되는 시간속에서
어김없이 헤아리는
시계를 보며
우리는 찻잔에 담긴 시간을
똑같이 나누어 마신다.
(2022. 11. 14. 아침)
■거꾸로 보기/백영옥■
오랫동안 나의 새해 결심 1호는 '일찍 일어나기' 였다. 저녁형 인간이었던 탓에 직장인이었을 때도 겨우 지각을 면할 정도로 일어났다. 20년 이상 시도해봐도 역시 인간은 안 바뀌는구나 싶어 내 의지력 부족으로 탓하고 말았다.
그런데 몇년 전 거액의 벌금을 걸고서 새벽 4시 30분 기상에 성공하면서 극적인 변화가 생겼다.
하지만 뜻밖의 부작용이 생겼다. '미러클 모닝'은 커녕 온종일 정신이 몽롱해서 오히려 일의 성과는 나빠지고 말았다.
그제서야 나는 아침에 일찍 깨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걸 깨달았다.
바로 저녁에 일찍 잠드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에겐 일찍 잠드는 게 일찍 일어나는 것보다 몇 배는 더 힘든 일이었다.
'워런 버핏'이 일러주는 두가지 투자 원칙이 있다.
1. 돈을 절대 잃지 말라.
2. 제1원칙을 기억하라.
투자를 말하면서 그가 '버는 법' 이 아니라 '잃지 않는 법'을 강조한 이유가 무엇일까 ?
사실 핵심은 '돈을 잃지 말라'가 아니라 '돈을 크게 잃지 말라'는 것이다.
그래야 복리 효과가 극대화돼 경제적 자유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뛰어난 투자자는 크게 잃지 않기 위해 작게 잃는 법을 뼈아프게 배운다.
제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 해도 치명적인 부상을 당하면 은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토론(討論)을 할 때 대개의 사람들은 상대방의 가장 약한 고리를 공략해 우위를 점하는 전략을 쓴다.
하지만 수년간 세계적 토론대회를 휩쓸고 있는 한 우승자에 의하면 먼저 상대방의 가장 강한 점을 인정해준 후, 염려되는 부분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게 협상과 설득을 이끌어내는 데 휠씬 효과적이라고 한다.
틀렸다는 건 실패(失敗)가 아니라 실수(失手)의 가능성 하나가 줄어든 것이다.
대화(對話)에서 그가 하고자 하는 말보다 중요한 건, 그가 끝내 하고 싶어 하지 않는 말을 알아내는 것이다..
침묵은 예상외로 가장 중요한 대화의 형태다.
이처럼 거꾸로 보는 사고는 매우 유용한 삶의 기술이 된다. (소설가)
* 웅변은 銀이요, 침묵은 金이다.
*사람들이 말을 배우는 데는 2~3년 정도 걸리지만, 침묵을 배우는 데는 평생이 걸린다.
* 달변(達辯)은 다변(多辯)과 다른 것이다.
* "부드러운 대답은 분노를 가라앉히지만, 거친 말은 화를 돋운다.
지혜로운 사람의 혀는 좋은 지식을 베풀지만, 미련한 사람의 입은 어리석은 말만 쏟아낸다."
(잠언 15:1~2)
"경우에 알맞은 말은 은쟁반에 담긴 금사과이다"(잠 25: 11/ The right word at the right time is like a custom--made piece of jewelry.)
■ 어느 까투리의 숭고한 죽음 ■
나는 30년 가까이 밤나무를 가꾸고 있다.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면 매년 두서너 번 베어주는 일이 연중행사다.
어느 해 5월 말인가 6월 초인가 ? 제초작업이 한창일 때 풀 깎는 기계의 날카로운 칼끝에 둔탁한 파열음이 들렸다.
풀숲을 헤치고 보니 까투리 한 마리가 무심한 칼날에 맞아 몸이 찢긴 채 죽어가고 있었다.
여러분은 까투리가 사람의 접근을 알면서도 도망하지 아니하는 것을 본 적이 있으신가 ? 아니 상상이나 해볼 수 있겠는가 ?
그 까투리는 귀머거리도 아니고 장님도 아닌 멀쩡한 생명이었으나 그 결과는 사실이었다.
그 까투리가 죽어간 풀숲에는 그가 그토록 소중하게 품고 부화시키던 십여 개의 꿩알이 숨겨져 있었다.
굉음 속에 시시각각 접근해오는 죽음의 칼날 앞에서도 그의 알들을 보호하고자 끝까지 엎드려 있었던 그 까투리의 장렬한 죽음 앞에서 나는 진정 분별없는 도살자가 되고 만 것이다.
부모의 사랑 ! 사람이건 동물이건 간에 이 숭고한 사랑 앞에서 우리가 어떤 형용사를 더 쓰며, 어떤 수식어를 더 늘어 놓아도 그 의미를 더할 수 있을 것인가 ?
(송종의/대검 차장. 법제처장 역임)
(** 어머니, 엄마. 엄니 등 어떻게 불러도 좋다.
어머니는 항상 명사이면서 동사요, 동사이면서 감탄사다.
가장 기쁠 때. 가장 슬플 때, 가장 놀랄 때. 가장 두려울 때 외치는 한 마디는 '아이구(어)머니나 !'
이 세상에 배우자가 없거나 자식이 없거나 형제 자매가 없는 사람은 많이 있다.
그러나 부모님이 없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그래서 孝道는 의무이자 권리이다.
부모님이 살아 계실때, 대답하실 수 있을 때.
한번 더 불러보자.
그 이름 " 어머니 ! 아버지 !"
저 까투리도 자식을 지켜내려다 예초기 칼날에 죽어가는데
우리는 과연 어떠한가 ?
[안전체감 사회의 중요성]
최근 근로자 사망사고가 계속되고 있다.
오피스텔 신축현장에서 승강기 통로 바닥 청소하다 승강기에 깔려 죽은 일, 물류창고 공사현장에선 거푸집이 무너져 6m 아래로 추락해 3명이 사망, 전신 케이블을 까다가 전선이 감긴 드럼통에 맞아 사망, 화물열차를 연결하는 작업을 하다 다른 열차에 치어서 숨졌다. 최근 한 달 새 일어난 사고들이다.
모두 기본수칙을 지키지 않아 발생한 사고다.
납품 단가를 지키거나 납품 기일을 맞추기 위해 혼자서라도 일하거나 휴일까지 일하거나 급하게 일할때 발생한 일들이다
주로 안전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는 시간에 사고가 난 것이다.
미국에선 팀단위로 안전 경보를 울리고 있다.
"어떤 것도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 (Nothing matters than your life.)란 말을 반복해 암송한다.
회의할때도 항상 비상문의 위치부터 주입시킨다
우리나라의 '빨리빨리'문화는 고속성장을 이룬 한국인 특유의 성실성을 보여줬지만 이를 뒤집어보면 응당 해야 할 무언가를 생략했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더 싸게, 더 빨리'를 강요하는 관행 뒷면엔 생명이 담보될 때도 있다.
너무 싸고 너무 빨리 되면서 너무 좋은 건 세상에 없다. 적정 속도와 적정 가격이 보장되어야 안전도 보장된다.
성숙한 사회로 가려면 '조금 느리고, 조금 비싸도 괜찮다' 는 인식이 확산되어야 한다.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가족일 근로자의 생명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사고 날 때만 반짝 문책하기 보다는 일상에서 근로자도, 기업도, 소비자도 좀더 유난을 떨어야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줄일수 있을것이다.
(김유영/안전불감사회)
[ 기우멱우(騎牛覓牛) ]
'소 등에 앉아서 소를 찾는다' 라는 뜻입니다.
미국 뉴저지의 어느 작은 학교에 26명의
아이들이 가장 허름한 교실 안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 아이들은 저마다 그 나이 또래에서 찾아
보기 힘든 화려한 전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떤 아이는 마약을 상습 복용했고,어떤 아이는 소년원을 제집처럼 드나들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어린 나이에 세 번이나 낙태를 경험한 소녀도 있었습니다.
이 교실에 모인 아이들은 하나같이 부모와 선생님들이 교육을 포기한 아이들로, 말 그대로 문제아 들이었습니다.
잠시 후, 문을 열고 한 여자가 들어왔습니다.
그녀는 앞으로 이 반을 맡게 될 베라 선생님
이었습니다.
수업 첫날, 그녀는 다른 선생님들처럼
학교 규칙을 지키라고 강요하거나 잔소리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웃으며 다음과 같은 문제를 냈습니다.
“다음 세명 중에서 인류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사람이 누구인지 한 번 판단해 보세요”
그녀는 칠판에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A : 부패한 정치인과 결탁하고 점성술을 믿으며 두 명의 부인이 있고 줄담배와 폭음을 즐긴다.
B : 두 번이나 회사에서 해고된 적이 있고 정오까지 잠을 자며 아편을 복용한 적이 있다.
C : 전쟁영웅으로 채식주의자이며 담배도 안 피우고 가끔 맥주만 즐긴다.
법을 위반하거나 불륜관계를 가진 적이 없다.
선생님의 질문에 학생들은 의심의 여지없이 만장일치로 C를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의 답변은 뜻밖
이었습니다
“절대적 잣대는 기준이 없어요.
여러분이 옳다고 믿는 것이 때로는 잘못된 선택이 될 수 있으니까요.
이 세 사람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인물
이에요.
A는 대통령이었던 프랭클린 루스벨트
B는 영국 제일의 수상인 윈스턴 처칠
C는 수천만 명의 소중한 목숨을 앗아간 아돌프 히틀러에요.“
순간 교실에는 알 수 없는 침묵이 흘렀습니다.
베라 선생님이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은 이제부터가 시작
이라는 걸 기억하세요.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그 사람을 판단하게 해 주는 건 그 사람의 과거가 아니라 미래니까요.
이제 어둠 속에서 나와 자신이 가장 하고 싶은 일을 찾아보세요.
여러분은 모두 소중한 존재이고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답니다.”
선생님의 말씀은 아이들의 마음속에 남아 그들의 운명을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훗날 사회 각 분야에서
전문가로 활동하며 미래를 창조해 나갔습니다.
어떤 아이는 심리학 의사가 되었고,
어떤 아이는 법관, 비행사가 되었습니다.
그 중 반에서 가장 키 작고 말썽쟁이였던
로버트 해리슨 (Robert Harrison) 이란 소년은 현재 미국 월 스트리트에서 촉망받는 경영인이 되었습니다.
과거의 실수와 잘못이 그 사람의 미래까지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한 번의 실수는 그저 실수일 뿐, 평생을 따라다니는 오점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이제 어제의 짐을 내려놓고 새로운 내일을 계획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이런 대사가 있습니다.
“과거는 과거로 남겨 두지 않으면 앞으로 나갈 수 없다.”
아무리 가난하고 나약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라도, 적어도 하나쯤은 누군가의 부러움을 받을 만한 장점이 있게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자신의 후천적인 재능을 발견할 수 있는 안목이다.
ᆢ좋은 글 중에서ᆢ
https://m.blog.naver.com/kgb815/220089351503
쉬(休)면 늙 (老)어요
(If I rest, I rust)
"마음이 靑春 이면 몸도 靑春이 된다."
인간은 움직이지 않으면 쉽게 老化 된다.
'人間의 壽命이 얼마나 되는가?'
하는 논리는 예로부터 있어왔다.
성경에는 수명이 120歲로 나온다 (創世紀 6章 3節).
현대 의학자들도 비슷하게 125歲 까지로 보고 있는 것 같다.
통계청에서도 현재 65歲를 넘은 사람의 평균 수명이 91歲라고 발표한 것을 보면, 人生 칠십은 옛말이고, 人生 百歲 시대가 온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요즘은 또 '人生 百年 四季節說' 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25歲까지가 '봄(春)', 50歲까지가 '여름(夏)', 75歲까지가 '가을(秋)', 100歲까지가 '겨울(冬)'
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른다면
70歲 老人은 丹楓이 가장 아름다운 晩秋 쯤 되는 것이오,
80歲 老人은 初겨울에 접어든 셈이 되는 것이다.
東洋에서와 같은 回甲개념이 없는 西洋에서는 대체로 老人의 기준을 75歲로 보는 것 같다.
그들은 65歲~ 75歲까지를 'young old' 또는 'active retirement(活動的 隱退期)' 라고 부른다.
사회생활을 하기에 충분한 연령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육체적 연령 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정신적인 젊음일 것이다.
유대系 美國 詩人인 사무엘 울만은 일찍이 그의 유명한 詩, '靑春(Youth)'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靑春이란 인생의 어떤 基幹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때로는 20歲 청년보다도 70歲로 노년에게 靑春이 있다.
나이를 더해 가는 것만으로 사람은 늙지 않는다.
理想과 열정을 잃어버릴 때 비로소 늙는다.
96歲로 타계한 세계적인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他界 직전까지 강연과 집필을 계속했다.
페루의 민속사를 읽고 있으면서, 아직도 공부 하시냐고 묻는 젊은이들에게 '人間은 호기심을 잃는 순간 늙는다'는 유명한 말을 했다.
1973年, 96歲로 他界한 금세기 최고의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는 93歲 때 UN에서 조국 카탈루냐의 민요인 '새의 노래'를 연주하고 평화에 대한 연설을 하여 세계인들을 감격하게 했다.
이들보다 나이는 적지만 금년에 만 79歲인 세계 제일의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는 최근 "이제 쉴 때가 되지 않았느냐?"
라는 질문에
'쉬면 늙는다(If I rest, I rust)' 라며 바쁜 마음(busy mind) 이야말로 건강한 마음 (healthy mind )이라며 젊음을 과시했다.
이들은 한결같이 젊은이보다 더 젊은 꿈과 열정을 가지고 살았다.
정신과 의사들은 말한다.
'마음이 靑春이면 몸도 靑春이 된다'.
'이 나이에 무슨… 이라는 소극적인 생각은 절대 금물이다. 노령에도 뇌세포는 증식한다.'
'죽을 때까지 공부하라'.
확실히 '늙음'은 나이보다도 마음의 문제인 것 같다.
물론 生死는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일할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때까지 살 수 있다면 감사한 인생이 되지 않겠는가?
항상 젊은 마음을 가지고 끊임없이 새로운 일에 도전 하면서 바쁘게 사는 것이 젊음과 長壽의 비결인 것 같다.
♪💕(펌)
화요 和 메세지
- 피그밀리온 효과
날마다 복권만 사 모으는 남편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집안 형편은 엉망이었다. 참다 못한 부인이 결단을 내렸다. 그녀는 남편과 헤어졌다.
바로 그날 저녁, 전 남편은 복권에 당첨되어 벼락 부자가 되었다.
일이 꼬여도 이렇게 꼬일 수 있을까.
어느 직장인은 벼르고 벼르다 처음으로 자리를 비웠는데 생각도 하지 않던 일이 터지고 말았다.
마침 핸드폰마저 꺼져 연락도 되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업무에 충실하지 않은 어떤 직장인은 늦은 약속 때문에 사무실에 앉아 시간을 보내다가,
사장의 전화를 받고 야근하느라 수고한다고 격려까지 받는다.
살아가다 보면 그런 일이 얼마나 많은가 .
세차를 하고 나서면 비가 오고,
우산을 놓고 오면 비가 오고,
급해서 택시를 타면 길이 막히고,
비싼 옷을 사고 나면 며칠 후 바겐세일이 시작 된다.
전철에서 앞의 승객 내리기를 기다리다 종점까지 가고,
버스에서 겨우 잡은 자리를 애 안은 아기 엄마한테 양보하게 된다.
집을 팔자마자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바뀌어 집 값이 폭등을 하고….
그런가 하면 잠깐 남의 노트에서 본 내용이 시험에 나오고,
한 과목 빼놓고는 성적이 엉망인 아이가 입시제도가 바뀌어 꿈도 못 꾸던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
비행기 예약이 안돼 발을 동동구르다 남는 1등 석에 앉아 오게 된다.
어느 연예인의 장모는 딸 내외와 라스베이거스에 관광을 갔다가
슬롯 머신에서 105억 원을 따고…
일이 원하는 대로 잘 안되고 꼬이는 수가 있다.
잘못될 가능성이 있는 일은 반드시 잘못된다는 것이 ‘머피의 법칙’이다.
그런가 하면 모든 일이 자신에게 유리하게만 풀리는 경우가 있다.
그것을 ‘샐리의 법칙’이라고 한다.
머피의 법칙이나 샐리의 법칙이 적용되는 건 그 사람의 성격이 낙관적이냐 비관적이냐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일이 꼬일 때, 비관주의자는 그 일이 자신에게만 늘 일어난다고 믿는다.
“왜 나만 항상 이렇게 일이 꼬이지”
라며 자신을 탓한다.
그러나 낙관주의자는 그 일이 일시적이고 한정적이라고 믿는다.
“이번엔 이 일이 잘 안 되는구먼” 이라며 원인을 외부에서 찾으려 한다.
‘자살’을 거꾸로 읽으면 ‘살자’가 되듯이 세상은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 보인다 .
물이, 나를 삼킬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수영을 할 수 없다.
잘 안 보여서 안경을 쓰는 사람보다는
잘 보려고 쓰는 사람이 더 잘 볼 수 있고, 아파서 약을 먹는 사람보다는
나으려고 먹는 사람에게 약효가 있다.
맛없는 것부터 먹으면 사과 3개를 모두 맛없게 먹지만, 맛있는 것부터 먹으면 모두를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꾸중보다는 칭찬과 격려다.
부정적인 그리스도인은 기도 시간 내내 과거의 ‘죄’만 들먹이지만,
긍정적인 이는 ‘의인’ 된 것을 기뻐하며 감사한다.
부정적인 사람은 “왜 하필이면
나인가” 라고 하지만,
긍정적인 사람은 “왜 내가 아닌가”
라고 되묻는다.
부정적 사고는 아무 일도 이루지 못한다. 역사는 언제나 긍정적인 사람들이 이루어 왔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은 창업을 하지만,부정적인 사람은 샐러리맨도 면하기 어렵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면 긍정적인 결과가 나타난다고 한다.
이것이 ‘피그밀리온 효과’다.
당신의 '結果' 응원합니다.
♥︎ 來日은 來日의 해가 뜬다. - ♡
어느 여기자가
직장 생활한 지 얼마
안 된 26세 때
발목을 다쳐 직장을 그만두게 되자 인생이 무너지는 좌절과
낙심을 겪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내
마음을 다잡고는 펜을
다시 잡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생전 처음으로 쓰는 소설이어서 스토리가 제대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인내하면서
소설 한 권을 쓰는 데
무려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 원고를 가지고
3년 동안 이곳저곳 많은 출판사에 부탁을 했지만,
풋내기가 쓴 소설을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고 읽어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나중에는 원고가
다 헤어져서 너덜너덜
해질 정도였다.
어느 날 유명한 출판사 사장을 만나야 하는데
만날 길이 없어서 마침 출장가는 사장이 기차를
탈 때,
"사장님, 여행하는 동안
이 원고를 딱 한 번만 읽어주세요.”
사장은 너무 간절하여
어쩔 수 없이 원고를
받아 들고 가방에
넣었으나 일정이 바빠 원고를 읽지 못했다.
출장을 마치고 집에 오자 전보가 와 있는데,
"원고를 한 번만 읽어주세요."
그리고 몇 달 후에
또다시
"원고를 한 번만 읽어주세요." 라고
전보가 왔다.
세 번째 전보가 왔을 때
기차 정거장에서
"사장님 딱 한 번만 읽어주세요." 라고
간절하게 부탁하던
그녀의 얼굴이 생각나서 그제사 너덜너덜한
원고를 가방 속에서
꺼내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사장은
소설 속으로 푹 빠져들어 10년간에 걸쳐서 썼던
그 소설을 순식간에
다 읽어 버렸다.
그리고선 바로 출판을 했는데 하루만에
5만부나 팔렸다.
그때가 1936년인데 당시로서는 굉장한 사건이었다.
이 소설이 바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이며, 그 젊은 여성이
바로 "마가렛 미첼" 이였습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에서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 스칼렛의 마지막 대사처럼
이 땅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희망을 붙잡고 살았습니다.
태풍이 세상을 다 집어 삼킬 듯이 위협하고 태양이 영원이 뜨지 않을 것만 같은 오늘도 언젠가는 떠오를 것이라고 기대해 본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