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는 삼국사기 DB를 원문 그대로 볼 수 있고, 논문 몇 개 정도는 검색해서 편하게 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다만 그렇다보니 학부 수준 기초 교양서도 몇 개 안 읽어보고 뇌피셜 쓰는 분들이 많아 큰일입니다.
https://blog.naver.com/hopeater/222841347167
그런 분들이 자주 저지르는 오류 중 하나가 무엇이냐면, 삼국사기 기록을 무슨 대한민국 공문서마냥 다루면서 일점일획 오류를 지적할 수 없는 자료로 다루는 것인데, ---> 당연히, 이러면 안 되지요.
https://blog.naver.com/hopeater/222859913150
그러다보니 삼국사기에서 삼국 중 가장 신뢰도가 낮은 백제 왕계를 무턱대고 신뢰하는 아주 잘못된 버릇도 나오는 형편입니다.
그렇다면 삼국사기 백제 왕계가 대체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그냥 한마디로 '신뢰도가 높지 못하다'로 정리됩니다.
이 점은 기년은 엉터리지만 세대별 계보도는 어김없이 딱딱 맞아들어가는 신라 본기에 비추어 보면 꽤 놀라운 점이며, 적어도 신대왕 이후 계보도는 여간해선 의문의 여지 없는 고구려 본기와도 상당한 차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어느 부분이 문제고, 어째서 그런 문제가 벌어졌는가?
자 봅시다. 우선, 백제 임금들은 모두 31명인데 그 중 원자로 승계한 자가 7인, 장자라고 적힌 자는 9인입니다. 31명 중 무려 16명이 맏아들로서 왕위 승계했습니다.
온조왕이야 건국왕이니 그렇다치면, 30명 중 16인인데. 53%나 되네요.
조선의 경우 아예 적자 승계 원칙을 되도록 지키려고 노력했는데,
문종 단종 연산군 인종 현종 숙종 경종 순조 순종 이렇게 치면 겨우 34%입니다.
고려는 혜종 경종 목종 덕종 순종 예종 인종 의종 강종 고종 원종 렬왕 선왕 숙왕 혜왕 우왕 창왕 이렇게 쳐서 50%.
그나마 고려나 조선은 국가 체제와 계승 원칙이 꽤 안정되어 있었던 반면,
백제 같은 고대 국가는 부체제의 유산도 그렇고 중화적인 장자 승계 원칙이 결코
그렇게 강했을 리가 없습니다. 뭔가 냄새가 나죠
게다가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기록 일자일획이나 잘 따질 줄 안다는 분들이 어찌 이런건 놓치는지 모르겠는데, 그냥 단순히 '子'라고만 적힌 자가 7인인데 그 중에서도 앞뒤 정황으로 봐서는 장자일 개연성이 매우 높은 임금들이 있다는 겁니다.
우선 초고왕과 근구수왕이 그중에 들어가 있는데, 초고왕의 경우는 계보로만 봐선 고이왕보다 앞서 있고, 차남이라고 적힌 고이왕보다는 서열이 위므로 맏아들입니다. 게다가 근구수왕도 이미 근초고왕 때부터 태자였으므로 맏아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나머지 5인도 비슷한 형편이므로 이렇게 보면 안 그래도 비정상적인 장자 계승 비율이 80%까지 치솟습니다.
상당히 이상하죠? 답은, 백제본기 계보 자체가 적장자 계승을 당연시하는 후대의 가부장적 개념으로 수식되었음을 뜻합니다.
그럼 실제로는 어떠했을 개연성이 높을까?
답은 고이왕와 비류왕에게서 나옵니다. 고이왕과 비류왕 모두
1. 차남이며,
2. 온 나라 사람들 추대를 받았고
3. 4촌 이상 어린 친척을 대신해 왕위를 '이어받았다.'
4. 둘 다 나이 및 기년이 엉터리고.
5. 그 형들에 대한 언급이 따로 붙어서 나오는 게 전혀 없다!
6. '우'씨 성을 가진 동생들이 있다. 고이왕은 우수, 비류왕은 우복.
게다가 또 백제 본기에서 차남으로 나오는 사람들은 고이왕과 비류왕 같이 공통점이 6개나 검출되진 않을지언정 다들 처지가 비슷한 사람들입니다.
근초고왕, 무령왕.
결론은 삼국사기의 편찬자들이, 백제 왕계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없어서,
본인 실력으로 순서를 어기고 왕위를 차지한, 정통성이 떨어지는 다른 계보나 방계 왕족은 차남으로 정리하고, 그 나머지는 모두 장남으로 자리매김했다는 게 됩니다.
이와 같은 점은 무령왕릉 발굴로, 삼국사기상 동성왕의 차남으로 되어 있는 무령왕이 실제로는 사촌형 내지는 배다른 형임이 밝혀져서 다시 빼도박도 못하게 되었고요.
따라서 삼국사기를 읽어볼 때, 그리고 백제사를 읽어볼 때는 이와 같은 사실을 염두에 두면 되겠습니다.
한마디로 초고왕은 고이왕과 정말로 형제였을 개연성이 크게 낮으며,
구수왕-비류왕-근초고왕 등이 정말로 부자 관계였을 개연성 또한 더 크게 떨어진다는 겁니다.
고이왕계가 우씨였고 비류왕도 우씨였을 개연성이 있다는 주장 또한 때문에, 어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닙니다.
[근거] 김기섭 한국사연구 83권 7~13쪽
이기백 백제왕계계승사 역사학보 11권
김기섭 백제와 근초고왕 저서 46~57쪽
이도학 충청남도문화연구원 백제사 시리즈 한성백제 40~41쪽
강종훈 미래를 여는 한국사 1권 115~117쪽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제가 고대사는 문외한이다보니 잘 모르는 이야기라 더욱 흥미롭네요.
후계자 실력이 확실하지 않으면 왕이 죽을때마다 정국이 불안했겠네요 ㅎㄷㄷ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냥 삼국사기 백제본기의 계보 장남 차남 의미가 문자 그대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법의활 아하 늘 좋은자료 감사합니다
일단 온조 다음부터 장수하신 다루 기루 개루왕과.
정말 초고왕과 형제가 맞는지 의심스러운 고이왕.
말씀주신 것처럼 백제왕계는 참 거시기합니다
그 마활님이 "우" 동생들 얘기하신 게 우씨라는 게 있다면 백제 방계로 우씨가 있었다? 정도로 추정을 해볼 수 있는걸까요
@마법의활 초기 왕계 수명과 기년을 지워버리면 백제 왕계에서 빠진 왕이 있거나 백제 왕조 존속기간 자체가 달라지겠군요
@초록마르스 그 점은 제가 이미 올린 글들과 본문에서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었습니다. 삼국사기도 일본서기와 기년 부분에선 비슷한 문제가 있습니다.
"우씨"는 "백제 방계"가 아니라 비류계 왕통일 개연성이 높습니다. 부여씨하곤 아예 별개 왕통일 개연성 또한 높습니다.
@마법의활 그 비류가 미추홀 설화로 남아있는 비류죠??
조심스런 질문입니다
혹시 일본서기처럼 왕권을 잡으면 장남도 아닌데 장남으로 기록되고 남인데도 아들로 기록되거나 하진 않았을까요
그랬을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자체의 전승이 확실하지 않아, 김부식이나 김부식 이전의 누군가가 백제본기 왕계는 그냥 순탄한 계승은 장남, 뭔가 좀 문제가 있었던 계승은 차남으로 퉁친 게 본질입니다 .
그러므로 애초에 "비정상적 방법으로 왕권"잡았으면 저렇게 오늘날 삼국사기에 장남으로 나타날 수가, 없습니다.
이 점 본문에서 언급한 사항이오니 한 번 더 본문을 읽어주십사 부탁드립니다.
또한 일본서기가 왕권 잡으면 장남 아닌데 장남으로 기록했다는 얘기도 저는 금시초문이고, 왕권 잡으면 장남으로 기록된다는 얘기도 저는 잘.....견문이 짧아서 모르겠습니다.
물론 고구려왕들이나 고려왕들에 대해 후왕은 무조건 전왕 아들이라고 기록한 중국측 관례는 있으나 백제본기 자체는 중국 기록이 아니기에 이 점에서 완전 예외입니다.
정작 드라마에서는 엉뚱하게 광개토대왕을 차남으로...... ^^;;
작가들이 상상력도 없고 역사에 관심도 없어서 그렇습니다. 그럴거면 사극을 집필하면 안 되는데...한심할 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