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 타면 주로 바다 위에서 생활하게 된다. 선박은 화물이나 여객의 운송이 목적이므로 육지에 정박하는 일수에 비해 항해하는 비율이 훨씬 높다. 대형 유조선 같은 특수선은 드라프트 때문에 바다 가운데서 원유를 싣고 또 바다 가운데에 있는 SBM에서 하역을 하므로 선원들이 상륙할 틈도 없이 일년을 보내다가 연가로 내리기도 한다. 요즘은 화물선이 컨테이너화 되었지만 우리가 배를 탈 때만 하여도 벌크선들이 많아 하역시간이 오래 걸려서 배 타는 재미도 쏠쏠 하였다. 왜냐하면 하역하는 동안 일과를 마치면 상륙할 수 있었기 대문이다.
배를 타면 선장이 사법권까지 있으므로 왕이다. 개중에는 실제로 제왕처럼 구는 못된 인간도 있고 선원들 부식비를 떼어 먹는 더러운 놈도 있다. 화물선은 화물운송을 목적으로 하므로 화물을 실을 수 있는 공간을 최대한으로 하고 선원들 거주구역은 될 수 있는 대로 최소화 한다. 그래서 선원들 침실은 아주 좁다. 사관들 거실은 침대와 책상이 있고 살롱사관들 침실에는 화장실과 샤워실도 있다. 일본이나 한국에서 건조한 선박보다 유럽에서 건조한 선박들의 거주구역이 훨씬 화려하고 넓다. 그런데 선장실은 브릿지 바로 아래층에 한층 모두를 쓴다. 위급한 경우 선장이 바로 브릿지에 올라가 조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집무실과 침실 거실 화장실 샤워실 목욕탕이 준비돼 있다.
어제(1/22)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를 선언한 나경원 전 국민의 힘 의원은 공약을 발표하면서, "서울시청 6층 시장실을 쓰지 않겠다. 시민과 더 가까운 곳 더 투명한곳에서 일하겠다"면서 "6층 시장실은 서울시 성폭력 대책 담당 부서 사무실로 쓰겠다"고 했다. 그녀는 또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집무실이 위치했던 6층에 대해 "한 여성 인간의 인권이 유린되고 착취당했으며 범죄소굴로 전락됐다"고도 했다. 그리고 "무려 세명의 민주당 소속 광역단체장이 파렴치한 성범죄를 저질렀다. 틈만 나면 인권, 평등을 외치며 자신을 공정과 정의로 포장한 운동권 기득원의 이중성과 민낯이 훤히 드러난 것"이라며 "서울시청 모든 고위 공무원의 사무실 벽을 유리로 바꾸겠다. 그 누구도 견제와 감시로부터 완전히 숨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시장 사건 전모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으므로 알 수가 없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6층에는 사무실 외에 샤워실도 있고 낮잠을 잘 수 있는 침대도 놓여 있었던 모양이다. 시청건물에 침대가 무슨 쓸모가 있단 말인가? 시정을 보는 곳이 아닌 모텔이나 호텔로 알았던 모양이다. 그는 처음부터 호박씨 까는 이중인격자였다. 서울시장 출마할 때부터 안철수를 찍어 넘기기 위해서 술수를 부렸다. 안철수를 만나 담판을 짓기 위한 날 생전에 신지도 않았던 뒷축이 닳은 낡은 구두를 신고 나가서 안철수의 눈에 띄도록 쑈를 벌였던 것이다. 안철수는 그의 진면목은 보지 못하고 가식된 그 모습에 그만 나가 떨어지고 말았다.
유신때인가 배 탈 때 잠시 휴가로 배를 내려 집에서 쉬고 있을 때 관리자들의 새마을 운동 교육을 사흘인가 받으라고 회사에서 통보가 왔었다. 10개월을 외국 바다에 나가 있다가 모처럼 가족과 함께 황금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 사흘을 꼬박 교육을 받으라고 하니 모두들 불만으로 입이 한 자나 튀어 나왔었다. 그렇다고 휴가기간을 대체해 주는 것도 아니고 돈으로 수당을 쳐주는 것도 아닌 순전히 보국대였다. 배에서 관리자라고 하면 선기장과 일항기사 그리고 통신국장을 말한다. 관리자들은 나름대로 그 분야에선 전문가들인데 새마을 교육이라해서 시골에서 농사짓던 억척 아줌마가 강사로 나와서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 하는 그런 내용이었는데 그 교육을 받지않으면 배를 탈 수가 없었으니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시간을 때울 수밖에 없었다. 그 때 교육장소가 영도 고신대옆에 있는 선원학교였는데 교육을 마칠 때쯤 선원학교 교장실에 들어가 보니 넓은 공간에 호화로운 집기들이 놓여 있는 것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학교 교장실이라면 책상과 의자 손님접대용 소파 정도만 있으면 그만일 텐데 무슨 돈을 이렇게까지 낭비하는가 싶었다. 오래전 일이지만 소련이 망하기 전 태국에서 옥수수를 싣고 블라디스토크 옆 나호드카라는 항구에 들어가 하역을 하면서 일본 본사에 전화를 하기 위해 그곳 대리점에 나갔는데 대리점 사무실도 공간이 좁은데다 조그만 책상 하나와 그 위에 낡은 타자기 한 대 낡은 국민학교 나무 걸상 같은 것 그리고 낡은 전화기 한 대가 전부였다.
몇년전 학교 있을 때 방학동안에 문학기행으로 중국 서안에 간 일이 있다. 유명한 병마용갱을 비롯하여 화청지, 진시황릉 그리고 관광객을 위해 새로 지었다는 아방궁을 둘러 보았다. 아방궁은 무슨 셋트장처럼 약간 조잡스럽게 보이긴 했는데 그후 철거했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확인해 보진 못했다. 그때 찍은 벽화 사진중에 '위록지마'가 있어 앞에서 올려 놓기도 하였다.
본래 아방궁(阿房宮)은 진시황이 기원전 212년에 건립하기 시작한 아주 크고 화려한 대규모의 황궁으로 산시성陝西省] 시안[西安] 서쪽 아방촌(阿房村)이라는 한촌(寒村)에 있다. 시황제는 함양궁(咸陽宮)을 비롯하여, 그의 손으로 멸망시킨 육국(六國)의 궁전을 본뜬 육국궁 등 많은 궁전을 지어 미인과 즐겼으나 이에 만족하지 않고 셴양[咸陽]의 대안(對岸)에 더 큰 궁전을 지으려고 하였다. 그 전전(前殿)이 아방궁으로, 규모에는 여러 설이 있으나 동서 약 693m, 남북 약 116.5m에 이르는 2층 건물에 판축기법으로 쌓은 기초의 동서 길이가 1,320m, 남북 420m, 높이 8m에 이른 것으로 추정한다.
건설에는 죄수 70만이 동원되었으나 시황제의 생전에는 완성되지 않아 2세 황제에 의해 나머지 공사가 진행되었다. 셴양 부근에 세워진 수백에 달하는 궁전군(宮殿群)은 2층으로 지은 복도와 담장 때문에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길로 종횡으로 이어져 아방궁에서 웨이수이강[渭水]을 건너 직접 셴양이나 난산[南山]의 정상에도 갈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황제들은 그 사이를 오가며 자기의 소재를 비밀로 하였다 한다. 아방궁을 포함한 이 궁전군은 BC 207년 항우(項羽)가 진나라를 멸망시켰을 때 불에 탔는데 불길이 3개월동안 꺼지지 않고 계속되었다고 한다. 병마용갱만 보아도 당시의 규모가 얼마만 했는지 가히 짐작할 만 하다. 진시황릉도 아직 개발되지 않고 있는데 내부의 비밀을 간직하기 위해 건설에 동원된 사람들을 모두 죽였다는 소문도 있고 외부인들의 도굴을 방지하기 위해 침입하면 자동으로 독 화살이 발사되도록 장치가 돼 있다고 가이드한테서 들었던 기억이 있다.
국민들이 피.땀을 흘려가면서 내는 세금을 서을시청 6층 아방궁을 꾸미는 곳에 쓰여서는 안된다. 가림막을 쳣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법이다. 추악한 민낯은 언젠가는 밝혀지기 마련이다.
몇년전 딸아이가 베를린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기숙사를 방문한 적이 있다. 베를린은 오래된 고도로 볼거리도 많다.
시간이 많지 않아 시내투어버스를 타고 몇군데만 둘러 보았다. 2차대전 때 폭격맞은 교회 건물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다.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함이다. 신축 국회의사당 건물 지붕에도 올라가 보았다. 국회의사당 건물은 유리로 돼 있어 내부에서 국회의원들의 일하는 모습이 훤히 들여다 보였다. 우리나라도 서울시청, 부산시청, 국회의사당 모두 복마전이 되지않게 새로 지어 투명하게 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