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15일(토)
* 시작 기도
주님...
죄로 인하여 죽은 내 영을 살리소서.
주님 앞에 아무 것도 내세울 것 없는 이 죄인이오니 그저 주님의 십자가만 바라보나이다.
음란과 부정, 사욕과 정욕 그리고 탐심 등 옛 사람으로 행하는 나의 모든 죄성을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케 하시고 그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아 그곳에 비치는 주의 영광을 보게 하소서.
나의 믿음 없음을 주께 고백하오니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의 긍휼을 구합니다.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으사 지혜와 계시의 영을 허락하소서.
주의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종이 그 안에 거하겠나이다.
진리의 빛이신 말씀이 나를 다스리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본문 / 롬 10:1-13
제목 :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1.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
2.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5.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셨거니와
6.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7. 혹은 누가 무저갱에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8.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11.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 나의 묵상
오늘 본문의 결론은 13절 말씀이다.
곧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이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에게 차별이 없으신 한 분이신 주님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셔서 그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기 때문이다.
본문 9-10절에서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하였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말씀을 너무 쉽게 이야기한다.
전도하면서 이 구절을 인용하여 예수님이 나의 주가 되신다고 시인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고 하면서 값싼 복음을 전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이 말씀은 결코 오늘 우리나라와 같은 자유로운 상황에서 적용될 수 없는 말씀이다.
왜냐하면 이 말씀은 당시 로마의 상황에서 주어진 말씀이기 때문이다.
당시 로마는 전제군주제라는 정치 상황에서 오직 로마를 다스리는 황제만이 온 시민들의 주(主, 큐리오스)였다.
로마의 황제 외에 다른 이에게 큐리오스 곧 주님이라고 하면 그는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로마 군인이 양날 선 검을 들고 그의 목을 겨누고 있는 상황에서 나의 주님은 로마 황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순간 그 칼이 목을 뚫고 들어오는 그런 위협 앞에서 예수를 주 곧 큐리오스라고 시인하고 또한 하나님께서 그 예수를 죽음에서 살리신 부활을 믿을 때 의(義)에 이르고 구원을 받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의와 구원은 같은 의미이다.
오늘날 나는 예수를 주로 시인하는 일로 인하여 목숨의 위협을 당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따라서 나의 믿음이 진짜인지 아니면 가짜인지 시험해 볼 필요가 있다.
이것이 바로 순교적 신앙이다.
북한과 같은 전체주의 상황에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곧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믿는 것이다.
이들은 예수를 믿는 신앙공동체를 이루기 위하여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드러내놓고 모일 수가 없다.
따라서 아무도 모르도록 은밀하게 소수가 모여서 소리를 삼키며 찬양하고 기도하며 말씀을 본다.
우리와 같이 마음껏 목청을 높여 찬양하거나 기도할 수 없으며 성경책 한 권을 소유하기 위하여 얼마나 애를 쓰며 성경 한 권을 손에 쥐면 그것을 자기 목숨처럼 아낀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어떤가?
찬송을 부를 때는 마치 유행가 부르듯이 내가 부르고 싶으면 부르고 부르기 싫으면 안 부르는 자는 아닌가?
집안에 성경이 하도 많아서 여기저기 굴러다니기도 하고 성경책이 하도 흔하여 집안을 걸어다닐 때 발에 걸리기도 하지 않는가?
이것은 다름 아니라 나의 모습이다.
나는 과연 내 목에 칼이 놓여져 있는 상태에서 예수가 나의 주님이심을 시인할 수 있는가?
그런데 이들이 들이대고 있는 칼은 우리의 목숨을 끊을 수는 있지만 우리의 영원한 생명(헬, 조에)를 앗아갈 수는 없다.
왜냐하면 눈에 보이고 손에 들려서 우리를 위협하는 칼보다 더 강력하고 능력이 있는 칼이 있기 때문이다.
그 칼은 바로 성령의 검인 말씀의 칼이다.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음은 항상 현존하심을 의미하며 활력이 있다는 것은 12절 맨 뒤의 판단, 곧 심판을 단행하는 능력을 말하는데 이는 짐승을 죽이기 위하여 예리한 칼을 짐승의 목에 대고 있는 상태를 뜻한다.
이것이 바로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는 말씀의 능력이다.
육신의 목숨이 아니라 복음 곧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은 자는 눈에 보이는 것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나 비록 이 땅에서 넘어질 때는 세상에 대하여 부끄러울지라도 그 부끄러움을 통하여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날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무덤에 장사되셔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기 때문이다.
(11절)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롬 9:33) 기록된 바 보라 내가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를 시온데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사 28:16)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촛돌이라. 그것을 믿는 이는 다급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
나는 오늘도 예수가 나의 주님이시요 그리스도이심과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믿는다.
그리고 이를 믿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요 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 묵상 후 기도
주님...
내 영혼이 주님의 은총을 입어 오늘도 이 땅에서 영원을 살아가나이다.
말로만 아니라 주께서 주신 믿음으로 주를 믿으며 그 주님의 사랑 곧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그 무엇도 끊을 수 없는 것은 한시적인 위협이나 환난이 아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롬 8:36)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료, 환난이아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오늘 이 시간이 주님과 함께 하는 현재적 영생이며 하나님 나라임을 믿나이다.
이 종에게 하늘의 긍휼을 베풀어 주소서.
죄의 바다에서 건지사 큰 물결에 솟구쳤다가 이내 바다 물결속으로 빠지는 흔들리는 조각배와 같은 연약한 자일지라도 그곳이 주님의 품이요 소망의 항구임을 믿어 의심치 않고 그 나라를 향하여 전진하게 하소서.
내 영혼이 주님께 있나이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