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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M4 셔먼(Medium Tank Sherman) 전차
Medium Tank, M4 (M4 Sherman). 미국의 유명한 장군 윌리엄 테쿰세 셔먼의 이름을 딴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의 미국 육군의 중형전차.
미군 최초의 제대로 된 중(中)형전차 등장
제2차 세계 대전이 격화되면서, 37mm 정도의 주포나 단포신 유탄포를 탑재한 전차가 고작이던 전간기와는 비교도 할수 없을 정도로 전차의 성능이 높아졌으며, 이러한 전장 상황의 변화에 미 군부는 타국의 이러한 신형 전차들을 기존의 구식 전차로는 대응할수 없다고 판단해 75mm 주포를 탑재한 신형 전차를 개발할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이에 75mm 주포를 탑재하고 선회 가능한 포탑을 단 전차를 개발하려 했지만, 미군으로써는 포탑에 75mm급의 주포를 다는 것은 시도해본 일이 없었기에 급한 임시방편으로 차체에 75mm 주포를 단 M3 리를 만든다. 그러나 M3 리는 어디까지나 차체에 주포를 탑재했기에 포탑에 탑재한 주포와 달리 대응력이 떨어진다는 결점이 있었고, 이에 미 군부는 포탑에 75mm 주포를 얹은 제대로 된 후계 전차로 M4 셔먼을 개발하게 된다. 하지만 M2 전차부터 이어져온 차체를 유용하여 디자인했기 때문에 생산시설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어서 생산에서는 유리했지만 구식차체의 다양한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유럽전선에서 티거와 비교되는 바람에 제2차 세계 대전을 다루는 매체에서 야라레메카 취급을 받기도 하지만, 미군으로서는 처음으로 360도 선회포탑에 75mm급 중포를 얹은 차량이며, 등장 당시만 해도 장갑과 화력, 기동성을 비롯한 전차의 요소 모두가 상당히 균형 잡힌 우수한 전차였다. 당시로서는 첨단기술도 들어 있어서 기동중에도 목표를 계속 조준할 수 있도록 주포에 수직안정장치를 장착하기도 했다. 다만 이 장치는 상하안정만 제한적으로 제공해주었기 때문에 실전에서 얼마나 명중율을 높여주었는가는 평가가 갈리는데, 최소한 저속 기동 중에는 어느 정도 명중을 낼 수 있었고 고속 기동 중에도 포수가 표적을 조준경 밖으로 놓치지 않고 계속 쫓는 데 유용했다고 한다 적 차량 258대 격파 기록으로 유명한 셔먼 전차장 라파예트 풀의 경우 수직안정장치를 이용한 기동간 사격으로 적이 예측하지 못하게 사격하는 걸 특히 선호했다고 하니 아주 쓸모가 없지는 않았던 듯.
개발 당시의 주포는 우수한 속사 능력, 고폭탄의 화력과 더불어서 당시 기준으로 뛰어난 대전차 능력을 지녔던 75mm 포가 선택됐다. 해당 75mm 포의 원형은 19세기말 프랑스가 개발, 전세계적 히트 대포가 되고 미군도 제1차 세계 대전 이래로 애용한 M1897 75mm 야포로, 이 포는 짧은 포신에 비해 포구 초속이 빨라 독일군도 프랑스에서의 노획품을 7.5cm PaK 97/38로 명명, 한동안 대전차포로도 쓴 물건이다.
76mm포를 장착한 셔먼.
셔먼이 세상에 최초로 등장했을 당시엔 회전 포탑에 75mm 급의 주포를 장착한 전차는 4호 전차와 T-34를 제외하면 대량생산된 전차들 가운데엔 없다시피해서 화력면에서는 충분했다. 셔먼의 개발이 1940년, 생산이 1941년 부터 시작됐는데 당시 독일 주력 전차인 3호 전차와 4호 전차 들을 상대하기엔 충분한 화력을 발휘해서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종합적으로 평가했을때도 셔먼은 5톤이 더 무거운 만큼 전체적인 성능이 높아 저 4호 전차보다 주행성능이 우수하고 공방능력에서는 장포신형의 F2/G 이후의 4호 전차와 비교했을때 차체전면을 포함하여 방어면에서는 우세했으며 공격력도 딱 4호전차 G형의 전면 장갑을 표준 교전 거리에서 무리 없이 격파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3호 전차와 비교하면 주행성능은 비슷하지만 공방능력이 확실히 우위에 있었다. 버나드 로 몽고메리에게 힘을 실어준 것 중 하나가 바로 300대의 셔먼이었으니... 셔먼의 배치 초기 아프리카에는 나름 중장갑의 셔먼을 잡을만한 전차인 43구경장을 장착한 4호전차 F2형이 부족한 형편이어서 8,8cm FlaK까지 동원될 지경이었다.
문제는 저 75mm 포를 19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개시되고 유럽 전선에서도 계속 썼다는 것. 이는 후속 주포의 개발이 늦어졌기 때문이었다. 당시 미군은 티거가 등장하기 전인 1942년 초부터 M10 울버린에 장착된 3인치 M5/M7 주포에 주목하여 이에 준하는 주포를 셔먼에 장착하려는 노력을 계속하였다. 하지만 기존의 3인치 M7은 포미가 너무 커서 포탑에 그야말로 쑤셔넣는 수준이라 도저히 쓸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고, 3인치 포의 경량화 버전이자 M18 헬캣에 탑재된 76mm M1 대전차포조차도 너무 커서 제대로 집어넣을 수가 없었다. 이미 76mm M1 주포를 장착했던 M4A1 셔먼(제식명 M4A1(76)W)은 사용 부적합 판정을 받고는 도로 75mm를 장착해야 했다. 결국 사용 가능한 76mm포 버전 셔먼이 개발된 것은 T23 중형전차 프로젝트가 취소되고 해당 전차의 포탑이 셔먼에 장착된 1944년의 일이었다. 거기다 생산해된 M4A1(76)W의 재고도 대서양을 건너느라 D-Day를 맞추지 못하고 1944년 7월 코브라 작전이 되어서야 첫번째 전투를 치렀다. 더해서 셔먼을 대체할 후속작인 M26 퍼싱이 심각한 심장 질환(...)을 달고 있어서, T23의 포탑을 셔먼에 장착하는 형식으로 때우고 기다렸으나 전쟁이 끝나갈 때 쯤에도 해결 못하고 선행배치 형식으로 전투에 참가하였다.
그 와중에 북아프리카와 이탈리아에서 독일군의 6호 전차 티거와 같은 강력한 중전차와의 조우시 기존의 75mm 포로는 제대로 대응이 불가능함을 확인했으면서도 이 문제에 대한 제대로된 대책 없이 "이런 예외적인 성능의 중전차는 독일군 내에서도 극히 일부분에 불과해 전황 자체에 큰 영향을 줄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라는 안일한 대응으로 연합군 전차병들의 희생을 늘렸다. 더구나 이 시기면 독일은 판터를 양산하고 있을 무렵이었는데, 이 독일군의 신형 전차 역시 티거와 마찬가지로 75mm 포로는 500m 안까지 접근해서, 그것도 측면을 노려야 상대 가능한 수준이여서 정면에서 격파하려면 76mm 포로, 그것도 HVAP같은 특수탄을 사용하거나 취약 부위를 노려 사격해야했다.
물론 셔먼의 '타이거 쇼크'는 주로 1944년 이후 유럽 전선에서 생겼고, 티거는 생산량 자체가 원체 적은데다 1943년만 해도 생산된 수량 대부분이 격전지인 동부전선에 배치되었으므로 셔먼과 티거는 거의 만나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셔먼이 겪은 것은 '타이거 쇼크'가 아닌 '판터 쇼크'라고 부르는게 좀 더 정확하다는 견해도 있지만, 티거와 셔먼은 판터가 등장하기 훨씬 전인 1942년 12월 4일 북아프리카 튀니지에서 최초로 조우해 포화를 주고 받았으며, 그 와중에 현재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기동가능한 티거 131호가 영국군에 노획되었다. 그중 육군 501 중전차 대대는 북아프리카에서 철수후 동부전선에 배치되었지만 504 중전차 대대는 북아프리카에서 철수한 이후에도 이탈리아 전선에 남아 방어전을 치르며 영/미군의 셔먼과 교전하고 있었다는 점이나 미군 전차병들이 독일군 전차를 싸잡아 "타이거"라고 불렀던 점 등을 감안하면, 판터 보다 먼저 등장해 그 위력을 과시한 티거로 인해서 연합국 전차병들이 '타이거'라는 단어를 '독일 전차' 내지는 '중전차'에 해당하는 일반 명사로 인식해 버렸고, 판터의 등장과 그로 인한 쇼크 조차 '판터 쇼크'가 아닌 '타이거 쇼크'가 되어 버렸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자유 프랑스군 제2기갑사단 소속 셔먼들.
동맹국에게까지 이 정도의 셔먼을 증여할 수 있었던 생산량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독일군 중전차의 상징과도 같은 티거는 절대적으로 수량이 적었다. 비교적 많은 양이 생산된 판터 조차 미국의 압도적인 공업력을 바탕으로 한 물량 앞에선 한줌에 불과했고, 그마저도 구동계의 고질적인 문제로 가동률마저 높지 않았다. 실질적인 독일 기갑부대의 주력을 차지하고 있던 가벼운 4호 전차에 비해 75 셔먼은 조금 더 나은 수준이고, 76 셔먼은 고폭탄을 제외한 성능과 신뢰성, 생산성 모든 면에서 우위를 차지했다.
판터나 티거등의 예외적인 성능의 전차와의 교전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제외하면 셔먼의 기본 성능 자체는 준수한 편으로 미국/영연방/소련/자유 프랑스/중국 국민당 정부 등의 거의 모든 연합국에서 사용했고, 영국의 경우는 전차 대량생산국이면서도 전쟁 후기에 들어서면 자국산 전차보다 M4A2 셔먼이 더 많을 정도였다. 최대 생산대수가 소련의 T-34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마구 찍어냈다. 거기에다 미국에서 생산되는 셔먼을 유럽전선까지 수송하는 것을 방해할 독일 해군의 거의 유일한 전력인 유보트가 서서히 관으로 전락하면서 수송함이 격침될 일이 사실상 없어졌던 것도 있으며 파괴되어도 다시 수거해 고쳐서 투입할 수 있었으므로, 파괴된만큼 그때그때 새로 채워넣는 괴랄한 보급이 가능했다. 물론 현장에서 파괴된 셔먼을 회수해서 수리하는 사람.들의 고통은 별개의 이야기.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했다고 한다.
따라서 셔먼에 관련된 진정한 문제는 셔먼 자체의 성능이 아니라, 이거 말고는 딱히 투입할 전차가 없었던 미/영의 전차 체계였다고 할 수 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인 44년 중반 이후를 기준으로, 소련은 주력인 T-34 이외에도 티거를 어느 정도 상대할 수 있는 자주포 및 중전차를 운용했다. SU-152와 ISU-152 같은 대구경 곡사포를 장착한 다목적 중자주포는 고폭탄 한발로도 티거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었다. 또한 SU-85/100 처럼 대공포 기반의 직사포를 가졌고 연사속도도 괜찮고 즉응탄도 충분한 대전차전 특화 자주포도 등장하여 티거를 상대 할 수 있었다. 역시나 122mm 포를 사용하여 어느정도 티거를 상대할 수 있는 다른 자주포들도 많았다. 중전차로 보면 IS-2 같이 여러가지 단점에도 불구하고 공방 성능에서 티거를 뛰어넘는 중전차를 투입할 수 있었다. 거기에 이 시기에 T-34는 이미 제한적으로 티거를 상대할 수 있는 85mm 포를 장착한 상태라서 앞서 설명한 여러 자주포들의 지원을 받거나 숫자로 밀어붙이면 충분히 티거를 상대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소련군은 미국과 달리 다양한 체급의 다양한 차량들이 배치되어 있는 상황에서 공여받은 셔먼은 딱 75mm 포 전차에 걸맞는 추격 및 보병지원 용도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무리없이 써먹을 수 있었다.
반대로 미군 입장에선 아무리 성능이 좋아 봤자 체급상 상대가 힘겨운 셔먼만 가지고 티거 같은 중전차까지 상대해야 했다는 게 문제. 미국도 M6 전차 같은 걸 만들어보긴 했으나 결국은 더 가벼운 중형전차를 선호했는데, 이에는 적 전차 성능을 오판한 문제도 있지만 바다 건너 배로 전차를 수송해 투입해야 하다 보니 무거운 전차는 꺼리게 되었던 이유도 크다. 셔먼들의 사진을 잘 보면 알겠지만 거의 대부분의 바리에이션이 차체전면과 후방에 고리가 있는 걸 알 수 있는데 이는 크레인으로 줄을 묶은 뒤 전차를 들어올려 배에 싣기 위한 용도였다. 당시 화물선 구조상 이런 불편한 방식을 써야 하는데 당시 미국에서 크레인으로 하역할 수 있는 중량 한계는 대개 40톤이었다. 따라서 독일처럼 40톤을 한참 초과하는 전차(티거, 판터)를 중형전차처럼 굴릴 수 있었던 입장이 아니었던 것이다.
물론 미군도 강한 적 전차가 나타나면 쓰라는 전담마크맨이 있긴 했다. 문제는 그 대전차 자주포였고 화력도 한참 부족했다는 것. 대전 중기부터는 영국의 주력전차 역시 셔먼 계열이 차지하게 된다. 그나마 이쪽은 셔먼 파이어플라이를 준비해놓기는 했지만 전차보다는 대전차 자주포로써의 의미가 강했다.
장/단점
높은 전고와 표적획득능력
M3 리, M6 전차 등 2차 대전 초창기 미국 전차가 대부분 그랬지만, 전차용 엔진을 개발해본 경험이 부족해 항공기용 성형엔진을 채택했다. 성형엔진은 그 구조상 단면적이 원형이므로 차체를 높일 수밖에 없고, 그래서 동시대의 中전차들 중에서는 폭에 비해 차체가 상당히 높은 편이라 눈에 잘 띄고 피격되기 쉽다는 단점이 있다. 또한 상대적으로 무게중심도 높아져서 넘어지기 쉬우며 방어력의 증가에 대한 무게증가가 심하다.
이런 이유로 2차 세계 대전 유럽 전선에서는 이 높은 전고가 단점으로 인식되었으나, 정글투성인 태평양 전선과 후일 중동전쟁에서의 이스라엘군에게선 높은 전고를 통한 시계확보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또 내부 공간도 넒어서 승무원이 쉽게 피로해지지 않아 활동하기도 편하고, 피격시 승무원의 생존에 유리하기도 해서 전투 효율은 T-34보다 유리했다. 무엇보다 넓은 공간과 널널한 설계 덕에 개량도 쉬웠다. 그 큰 17파운더를 집어넣어 파이어플라이를 만들거나, 슈퍼셔먼, 아이셔먼 등 업건이 가능했다.
시야 확보의 경우 단순 전고 문제뿐 아니라 장비 면에서 동시대 전차들에 비해 확실히 우수한 면이 있었는데, 후기형의 경우 포수의 보조 조준경으로 1.x ~ 6배 가변배율 잠망경이 장착되었으며 물량의 미국답게 승무원별로 회전식 잠망경이 각기 있어서 해치 밀폐시에도 사방을 감시하기에 더 좋았다. 대표적으로 영화 퓨리를 보면 티거와의 전투 장면에서 조종수가 티거의 측면으로 돌아가면서 잠망경을 돌려 티거를 계속 바라보는 장면이 나온다. 독일의 경우 조준장치의 품질 면에서 미국산보다 약간 더 좋아서 장거리에서 포착하기 좋았을지는 몰라도 승무원별로는 부족해서 근접상황에서 적을 찾는데 더 불리했다. 티거의 조종수는 잠망경 없이 전면에 고정된 관측창이 있었을 뿐이었고 판터의 경우는 포수용으로 고배율에 넓은 시야의 조준경이 있었지만 셔먼과 달리 무배율 보조 조준경은 없어서 근거리에서는 표적을 찾는데 더 불리했고 이는 전차장이 포수에게 표적을 전달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게 만들기도 했으며, 다른 승무원들에게는 고정식 관측창만이 있어서 시야가 제한되었다.
또한 원시적인 헌터 킬러기능이 존재하여 전차장이 포탑을 움직일 수 있었다. 때문에 높은전고 + 1인 1잠망경 + 최상급 큐폴라 + 수직안정기 + 헌터킬러 기능을 이용하여 2차대전 최고의 표적획득능력을 가질 수 있었다. 거기다 포수용 잠망경은 주포와 연동되기 때문에 잠망경으로 조준이 가능하여 터렛 다운 상태로 적을 조준하고 수직안정기를 작동 후 헐 다운 상태가 되자마자 발사 후 다시 터렛 다운 상태로 돌아가는, 2세대 주력전차와 비슷한(수평안정이 부족하긴 하지만) 기동이 가능했다. 이는 1세대 주력전차에서도 센추리온 전차만이 셔먼을 넘어서는 수준으로 2세대 주력전차(소련 제외)에는 미치지 못하나 시대를 감안하면 엄청난 것이다.
덕분에 2차대전 셔먼전차 승무원의 기록을 보면 적을 선재발견하여 먼저 사격했다는 기록이 수도없이 발견되며, 심지어 영거리에서 마주친 티거는 셔먼이 수십발을 맞출때까지 반격이 늦는 모습도 보였다. 결국 이러한 장점을 바탕으로 중동전쟁에서 현대 주포로 업건을한 셔먼이 T-54/55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게 된다.
장갑
한방에 터지는 야라레메카라는 인식과 달리, 초창기의 아프리카 전선에서의 셔먼은 보다 가벼운 전차인 3호 전차와 4호 전차의 주포로는 잘 뚫리지 않는 장갑이었다. 셔먼의 장갑은 수치상으로 주적인 4호나 독일군에게 충격을 안겨주고 냉전 초기 주적으로 맞선 T-34 초기형에 비해 절대 얇은 편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셔먼이 잘 박살난 이유는 티거나 판터의 주포 관통력이 원체 뛰어났던 것도 있지만, 셔먼 자체가 전쟁에 대량으로 쓰인 시기가 너무 늦었던데다가, 구조적인 문제도 기인했다. 항공기 엔진을 사용하는 구조적 한계로 전면투영면적 또한 크기에 비하면 제법 넓은 편이었던데다, 앞뒤로 길쭉했던 탓에 측면의 피탄면적까지 넓었으며, 하필 그 자리에 포탄을 싣고 다니다보니 유폭이 일어나기도 쉬웠기 때문이다. 더구나 측면장갑은 경사장갑이 아닌 수직장갑인데다 두께도 상당히 얇았기에 문제가 되었다. 널찍해서 맞추기도 쉬운데 그 부분이 약점이라고 보면 딱이다. 그 당시 예비 탄약을 차체 내에 쌓아두는 건 모든 전차의 공통점이었고, 유폭으로 이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실전에서 독일군의 중전차들을 상대로 부각된 장갑 문제를 해결하고자 전차병들은 이 문제에 대해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내 보곤 했다. 보통 전면과 측면에 남는 장갑판을 용접해서 붙이곤 했으며, 심지어는 장갑판도 아닌 그냥 철판을 가져다 붙이거나 콘크리트를 두껍게 바르기도 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모든 역량을 쥐어짜내는 다른 나라 차량과는 달리 셔먼의 확장성이 원체 좋았기에 이러한 무게 증가에도 기동성 저하는 크지 않았다고 하며, 방어력이 약간이나마 증대되는 좋은 효과를 봤다고 한다. 이러한 플랫폼의 신뢰성을 방어력으로 몰빵한 예가 바로 후술할 점보 셔먼인데, 이러한 예를 보면 차체 자체는 작정하면 티거 이상의 방어력을 내는 것도 가능했던 셈이다.
론슨 라이터 논란
'론슨 라이터' 운운하는 소리는 엉터리입니다. 아시다시피 독일군 전차들도 똑같은 가솔린 엔진을 사용했어요. 그리고 휘발유가 화재의 원인이 된다는 것부터가 유언비어입니다. 독일이든 미국이든 상관없이 전차 화재 분석 자료를 읽어보면 주된 원인은 항상 탄약입니다. 2차대전의 전차 화재의 가장 큰 원인이 탄약이었던 이유는 탄약 화재는 끌 수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반면에 엔진의 휘발유 때문에 불이 난 전차는 그 불을 끌 수가 있었습니다. 2차대전 전차들 대부분은 소화기를 탑재하고 있었고 따라서 엔진 구획에 화재가 발생한 경우 너무 심각한 수준만 아니라면 별 문제 없이 끌 수가 있었어요. 그러나 탄약 화재는 일단 났다 하면 끝이었습니다. 전차 포탄 추진제는 산화제도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초기 셔먼은 차체 측면에 탄약을 적재했는데, 좁은 공간에 탄약이 가득 들어 있어 문제를 가중시켰지요. 하지만 1944년 늦여름부터 습식 탄약고를 장비한 셔먼이 배치되기 시작하면서 그 문제는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론슨 소리가 잘못되었다는 가장 큰 이유는 사람들이 독일의 사례에는 눈길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독일군 역시 4호 전차와 판터같은 전차들에서 같은 문제를 겪고 있었고 특히 판터는 연료도관 누출과 변속기 특성 때문에 불쏘시개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그렇지만 자료 자체가 많지 않아서인지 사람들이 독일측 자료는 볼 생각을 안 했습니다. 영어로 된 기록이나 회고록은 쉽게 접근할 수 있지만 독일어 자료는 그렇지 못하지요. 그리고 독일어 자료 자체도 적어요. 셔먼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는 미군이나 영국군 전차병의 회고록은 수십, 수백 건이 있지만 서부전선에서 4호 전차나 판터를 몬 독일군 전차병의 회고록은 거의 없습니다. 동부전선에만 약간 있을 뿐이지요. 만일 있었다면 셔먼 전차병들이 한 것과 똑같은 불평을 읽을 수 있었을 겁니다. 실제로 사진자료들을 보면 독일군 전차들이 셔먼과 같은 탄약 유폭을 일으킨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4호 전차의 탄약 방호 수준은 셔먼보다 나을 것이 없었고 말입니다.
저는 이 모든 것이 관점 때문에 일어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미군과 영국군의 화재 관련 기록은 다수 보유하고 있지만 이와 비교할 만한 독일군 자료 자체가 없다는 것입니다. 티거에 쏠리는 관심이 지나치게 많은 것도 문제입니다. 티거 승무원들의 회고록은 산더미처럼 많지만 티거는 심지어 동부전선에서도 드문 존재였지요. 그 반면에 수가 훨씬 많았던 4호 전차와 판터 승무원들이 회고록의 비율은 적고요.
셔먼의 가장 유명한 별명은 역시 '론슨 라이터'라고 할 수 있다. 이 라이터의 광고문구가 '한번에 바로 불이 붙습니다!'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론슨 라이터의 이 광고문구는 전쟁 후에 시작된 광고라는 게 함정이다. 사실 전쟁 당시 미군에게 보급된 라이터는 주로 지포(Zippo)였으므로 만약 불이 환상적으로 잘 붙는다고 별명을 지어주고 싶었으면 그냥 지포라고 불렀으면 되었을 일이다. 실제로 태평양 전선에서는 불 잘 붙는 일본군 폭격기 G4M을 지포라고 불렀지만, 셔먼 계열 차량 중에서 지포라는 별명이 붙은 것은 화염방사기 장착형 전차 뿐이었다.
정확하게 따지고보면 셔먼은 맞으면 즉시 잘 불타는 전차는 아니었다. 노르망디에서 셔먼이 피탄당했을 때 불이 날 확률은 82%로 평균 1.89번 관통당할 경우였는데, 그러나 같은 전선의 독일의 4호 전차도 평균 1.5번 관통당하면 불이 붙을 확률이 80%였다. 결국 셔먼과 4호의 화재율은 비슷했다는 것.
불이 잘 안붙는 경유를 쓰는 디젤 엔진을 사용한 전차가 아니고서야 휘발유를 쓰는 가솔린 엔진을 탑재한 전차들의 화재확률은 거의 고만고만했다. 티거나 판터같은 독일 전차들은 상대적으로 장갑이 두꺼웠기에 엔진에 포탄이 직접 피격되는 경우가 적었을 뿐, 관통된 경우의 화재확률에선 그렇게 큰 차이가 나지는 않았다. 셔먼이 론슨 라이터라는 별명을 갖게 된 이유는 셔먼의 장갑이 워낙에 잘 뚫렸기 때문이지 엔진의 화재확률이 타 전차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높았기 때문은 아니다. 당장 4호 전차만 하더라도 화재확률은 비슷했으며, T-34는 디젤엔진을 탑재한 전차니 당연히 화재확률이 낮을 수밖에 없다. 셔먼의 구조상 측면을 피격당하면 포탄이 유폭하기 쉬운 구조였던 건 맞으나, 포탄이 유폭당하면 골로 가는건 어느 전차나 마찬가지였다. 다만 워낙에 많은 수가 쏟아져나온 셔먼의 물량과, 상대적으로(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티거나 판터에 비해 얇았던 장갑 탓에 그리고 이들과 교전했을 때 전술숙련도 등을 따지지 않고 평균적으로 이들이 1대 터질 사이 셔먼이 5대 가량 터지는 등 교전교환 손실이 높았다는 결과로만 따지면서 잘 불탄다는 잘못된 고정관념이 생긴 셈이다.
게다가 디젤 엔진 대신 가솔린 엔진을 채용한 것엔 이유가 있는데, T-34같은 소련 전차들의 디젤 엔진 사용이 2차대전 당시에는 특이한 케이스였다. 물론 디젤 엔진을 채용한 전차 자체는 잘 찾아보면 꽤 많다. 문제는 M11/39계열이나 89식 중전차, 97식 전차 등 하나같이 처참하며, 해당 전차가 안 좋은 이유 중 하나가 디젤 엔진의 저출력 및 작동시의 엄청난 소음과 진동이었다. 그래서 태평양 전쟁에서는 미군에 야간 기습을 하려던 일본군의 작전이 전차 소음 때문에 홀랑 들통난 적도 있다. 이런 이유로 인해 디젤 엔진을 쓰고 제대로 성공한 전차는 T-34 하나로만 봐도 무방할 지경. 한마디로 독일도, 프랑스도, 영국도, 이탈리아도 쓴 가솔린을 쓰는 게 잘 타는 데도 그냥 쓴 건 아니다.
야전에서는 높은 정비성과 신뢰성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그 시절 디젤 엔진은 이 조건에 부합하지 못했다. 디젤엔진은 동일 출력의 가솔린 엔진보다 구조상 크고 무거운데다가 그만큼 생산단가도 높고, 무엇보다 당시 기술력으론 출력을 크게 올리기가 힘들었다. 이것이 매우 치명적인 단점이기에 과거 미 육군이나 국군도 군용 차량엔 전부 가솔린 엔진을 쓸 정도이다. 그런 면에서, 가솔린 엔진이란 것은 절대 단점이 될 수 없다. 오히려 그 당시 의 소련군의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디젤엔진이 채용되었던 것. 무슨 말이냐면, 디젤 엔진의 성능만 보면 토크가 좋기에 진흙탕인 러시아의 환경을 헤쳐나가기 수월했을 것이다. 그리고 소련은 디젤엔진의 높은 소모성에 대해서 대처할 만한 역량을 가진 국가였고, 신뢰성이 좋지만 높은 가격과 시간을 요구하는 엔진보다 신뢰성이 떨어지더라도 대량생산이 싼 값에 빠르게 가능한 엔진을 선호했다. 하지만 미국은 그런 타협없이, 세계 최고의 엔진을 빠르고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였다. 따라서 간단하게 말하면, 셔먼이 디젤엔진을 채용하지 않은 것은 오히려 미군한테 적절한 선택이었다.
애초에 가솔린 엔진이 화재의 주 원인이었는지도 의문의 여지가 있다. 탄약고 주변을 물로 채워서 유폭을 방지한 Wet Stowage(습식 탄약고) 형식을 채용한 셔먼의 경우, 피탄시 화재 확률이 80%에서 15%까지 감소한다는 미 육군의 연구 결과가 있다. 위에서도 언급되었듯이, 스티븐 잘로가의 연구에 의하면 휘발유가 화재의 원인이라는 것은 유언비어라고 한다.
워게이밍의 직원이자 전차 탐방 동영상으로 유명한 치프틴(Chieftain)은 화재율도 중요하지만 전차병의 생존률/사망률도 함께 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군이 운용한 셔먼의 전차병 사망률은 전쟁 전까지 약 3%로 사망률이 18.5%에 달했던 보병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전한 보직이었고, 미군 셔먼의 차량 격파시 전차병 사망률은 차량당 0.3명 영국군 셔먼의 경우는 0.6명, T-34는 약 1.8명으로 T-34보다는 셔먼이 전차병의 입장에서 더 안전한 전차였다고 한다. 이런 생존률 차이는 화재가 발생했을 때 전차병이 빠져나올 수 있는 해치의 수량과 위치와 관련이 있는데, 셔먼은 전차병이 좌석 바로 위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해치 4개와 차량 아래로 통하는 비상 탈출구가 있어서 화재 발생시에도 비교적 빠르게 탈출할 수 있었던 반면, T-34는 포탑 천장의 해치와 좁디 좁은 전면 운전수 해치만 있었고 차량의 크기가 작아서 빠져나오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기 때문이었다. 영국군 셔먼의 피격시 전차병 사망률은 동시기에 운용했던 크롬웰, 챌린저나 코멧 전차 등과 차이가 없었으므로 셔먼이 유독 불에 잘 붙는 것도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셔먼의 운전석 바로 위에 위치한 해치 또한 승무원들의 생존성을 어느정도 늘려주기도 했다. 2차대전 당시 다른 전차들은 해치의 위치가 승무원의 바로 위가 아니였다. 옆이나 앞, 위쪽 대각선 방향에 달려 있었는데, 탈출속도면 궤도/엔진/주포 등의 전투력 상실시 제 때 탈출하지 못하고 전차와 함께 산화하기 딱 좋다.
기동성
셔먼 vs 티거 논쟁에서 셔먼을 옹호하는 쪽이 주로 주장하는 내용중에 "셔먼의 기동성은 6호 전차 티거보다 우수하니 우회하여 측면을 노려 사격하면 격파할 수 있다!"인데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봐야한다. 실제로 이와 같이 격파했으나 그 과정에서 상당한 피해를 입어야 했다. 셔먼의 기동성은 독일의 대전기 초중반 주력 전차였던 4호 전차와 3호 전차보다는 우월했지만 6호 전차 티거와 5호 전차 판터(이쪽은 스펙상 속도지만)와 같은 독일 전차들과 비교했을때는 열세를 보이는 면 역시 존재하기 때문이다.
카탈로그 스펙상 셔먼의 최고속도는 38~48km/h, 평균 노상속도 33km/h, 평균 야지속도 17~32km/h이다. 40km/h대의 속도를 낼 수 있는 타 국가의 전차들의 평균 노상속도는 조금 열세였지만, 평균 야지속도는 최대 32km/h로 최대 25km/h에 불과한 티거와 T-34-85보단 우월했다. 추중비 역시 12hp/t으로 나쁘지 않은 편. 오히려 제 3제국의 군수장관 알베르트 슈페어는 회고록인 회상(원제 Inside the Third Reich)에서 셔먼의 기동성을 높게 평가했다.
이탈리아 남서부 전선에서 노획한 셔먼은 야지에서 상당히 우수한 기동성을 보였다. 우리 전차들이 주행하지 못하는 산악지형에서도 충분히 주행이 가능했다. 대단한 점 하나는, 셔먼이 무게에 비해 강력한 엔진을 달았다는것이다. 셔먼의 야지 주행 능력은 우리 26 기갑사단 소속 동급의 전차들이 나타낸것보다 훨씬 우수했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셔먼보다 가벼운 3호전차, 4호전차와 비교했을때 이야기일 뿐이다. 카탈로그상 스펙은 우월했지만, 정작 셔먼의 실제 야지 능력은 티거와 같은 독일 중전차들보다 열세였기 때문이다. 여기엔 셔먼의 높은 접지압이 한몫했다. VVSS형 셔먼의 궤도 폭은 421mm에 불과했고, 이는 0.96kg/cm^2이라는 무지막지한 접지압의 원인이 되었다. 0.735kg/cm^2인 티거의 접지압과 비교시 확실한 열세다. 덕분에 티거와 판터가 주행가능한 지형에서 주행하지 못하는 참극도 발생했다.
사령부는 아군 전차가 우수한 기동성을 가졌다고 주장한다. 최근 우리는 노획한 독일의 마크 5를 우리 전차의 시험조건에서 테스트 해봤다. 야지에서든, 도로에서든 독일전차는 우리 전차보다 빠를 뿐 아니라 깔끔한 선회까지 가능했다. 언덕 주행면에서도 뛰어났다.
- 미군 제2기갑사단, 윌슨 M. 호킨스 중령
내가 보기엔 판터와 티거는 (우리 전차보다)기동성은 물론이고 험지주파능력 또한 뛰어났다. 셔먼이 퍼지는 장소에서 판터와 티거가 활개치는 걸 여러 차례 목격했다. 심지어 적어도 10대의 쾨니히스티거가 셔먼은 거의 기동이 불가능한 지형을 뚫고 역공을 가해오는 걸 본 적도 있었다.
- 미군 제2기갑사단, 전차소대 소대장 찰스 A. 칼든 하사
도로에서의 고속주행성능을 위해 장착한 VVSS가 야지에서의 기동성을 크게 떨어트리는 원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또한, 위에서 언급된 것처럼 셔먼의 선회 반경 역시 18.6m로 영 좋지 않은 편이었다. 결국 전차병들은 덕빌(Duckbills)이라는 어댑터를 궤도 바깥에 추가하는 등 여러가지 방법으로 접지압을 낮추려고 애를 썼고, 이 문제는 광폭궤도를 사용한 HVSS형 셔먼이 나오며 해결되었다. 문제는 HVSS형 셔먼의 생산은 1944년 5월에 시작되었지만, 정작 대대적인 보급은 노르망디에서 죽도록 터져나간 이후에 이루어졌다는 것.
화력
2차 세계 대전 당시 M4 셔먼 중형전차를 대체하기 위해 미 군수부에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하지만 개발하면서 발생한 문제점들을 해결하지 못 하면서 양산이 미뤄지는 와중, 트라이던트 회담(1943년 5월 25일)에서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날짜가 잡히게 된다. 신형전차가 D-Day전에 완성되기 힘들 것으로 판단되자, 신형 주포인 76 mm gun M1만 상륙작전 전인 1943년 6월부터 셔먼에 T23의 포탑을 장착하여 양산 준비에 들어가 1944년 1월 양산을 시작했지만(E6셔먼) 대서양을 건너면서 D-Day를 놓쳐 버려, 독일의 전차들과 셔먼은 75mm를 장착한체 마주하게 되었고, 신형주포를 탑재한 M4A1E6는 7월 코브라 작전부터 참가하게 된다.
하지만 그 76mm마저 생각보다 시원치 않았다. 일단 76mm 포는 1942년 제작을 시작한 당시 충분한 화력이였지만, 정작 탑재는 T23의 포탑이 나오고 셔먼에 탑재 되면서 1944년 1욀이 되면서 였고, 배치되기 시작한 것은 대서양을 건너느라 연합군이 티거와 판터를 비롯한 독일의 신형 전차를 조우한 후인 1944년 중반에 들어서였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미군 수뇌부는 76mm를 사용한다면 판터고 티거고 충분히 자국산 전차로 상대할수 있다고 판단해 버렸다. 판터의 장갑 두께가 얼마나 되는지 정보를 입수하여 동일 두께의 장갑판에 사격을 해본 후에 관통가능이란 결과가 뜬 후 내린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실제로 맞붙어 보자 이야기는 전혀 달랐다. 실전에선 높으신 분들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생각했던 문제, 바로 탄착각이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당장 맨 위의 관통력 시험 보고서 이미지에도 30도정도로 티타임을 준 채로 삐딱하게 서있는 티거에 대해선 측면조차도 표준 교전 거리에서 관통이 불가능하다는 결과가 나와있다. 이걸 무시한채로 주포 관통력과 장갑 두께만을 산술적으로 계산해 "뭐? 티거 정면장갑이 100mm인데 우리 76mm의 관통력이 109mm라고? 그럼 됐네!" 해버린 게 문제의 시작.
독일 육군 병기국 1과가 자체적으로 셔먼을 상대로 한 자국 판터의 관통실험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도출되었다.
거기다 업건의 시기가 애매해서 1944년 1월에서야 업건한 M4A1(76)을 생산하고 대서양을 건너 전선으로 보내는 도중에 D-Day를 넘겨 버렸고, 1944년 7월의 코브라 작전에서 데뷔하게 된다. 결국 고작 한달의 시간 차이로 셔먼(76)과 셔먼 파어플라이의 평가는 극과 극으로 나뉘게 된다. 오죽하면 위에서 76으로 바꿔준다고 해도 "75나 76이나 정면에선 안 먹히거든요? 그리고 어차피 측면 노리고 파고 들어야 되면 차제가 좀 더 가벼워서 달리기 빠르고 연사력 좋은 75가 훨 나음요." 하고 76 셔먼의 수령을 거부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그 대표적인 부대가 바로 아라쿠르 전투의 선봉에 서서 독일군의 판터마저 탈탈 털어버린 미 제 4기갑사단.
뒤늦게 상황을 인지하고 대응에 나섰지만 때는 너무 늦었고, 판터의 전면 장갑을 관통할 수 있는 M93 HVAP탄이 제식으로 채용된 것은 슬슬 티거와 판터의 씨가 말라가던 1945년 2월 경 이었던 데다가, 76mm 급의 HVAP같은 소구경 고속탄은 거리가 멀어질수록 위력이 급감하고 입사각 영향을 심하게 받기에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었다. 시쳇말로 높은 관통력만큼 도탄률 역시 쩔었던것. 1944년 8월 30일 행해진 미군의 76mm 와 17파운더 대전차포의 관통력 비교 시험에선 판터의 전면에 대해 200 야드 거리에서 발사된 76mm HVAP 4발중 3발이, 명중한 17 파운드 APDS 2발중 1발, APCBC탄 두발은 균열만 발생시켰을뿐 관통에 실패한 사례도 보고 되었는데, RHA 강판에 대한 관통력 시험 결과 대로라면 200 야드 거리에선 당연히 모든 탄이 판터의 전면 장갑을 관통 했어야 한다. 이는 실전에서 대량 사용된 6.25 전쟁 당시에도 나타나는데 T-34 전차에 76mm HVAP가 의외로 힘을 쓰지 못햇던 것이다.
하지만 T20이 계획대로 셔먼을 대체했다면 수뇌부 입장에서 76mm(17파운더 포함) 채용보류는 오판은 아니였다. 76mm는 고폭탄 화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76mm셔먼을 배치하면서 옆그레이드가 되어 버렸고, 그것을 보충할 105mm셔먼과 75mm셔먼을 혼합배치 해야 했다, 그렇다고 독일처럼 대전차포인 76mm로만 통일 하기에는 대전차전보다 대보병전이 압도적으로 많았던데다, 76mm는 이미 대전차 자주포들이 사용하고 있었으니, 셔먼에 같은 포를 장착하면 독일의 구축전차처럼 중복투자가 되어 버린다.
또한 75mm M64 백린연막탄도 전체 적재량의 10% 수준으로 수량은 적었지만, 연막탄 본연의 목적과 더불어서 대보병, 대진지, 대차량 목적으로 전부 쓸 수 있는 만능 포탄으로 크나큰 호평을 받았다. 반대로 76mm M88 연막탄의 성능은 그저 그랬기 때문에 76mm포 셔먼으로 교체받은 전차 대대도 백린연막탄 발사 용도로 75mm포 셔먼을 한두대씩 계속 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미국의 오판은 셔먼의 업건 보류와 함께 90mm 포 탑재에 관한 것으로, 기갑국은 셔먼(전차)에 90mm를 달아서 내놓으라고 요구했는데, 병기국은 76mm에 만족하면서 T25(전차)에 90mm를 탑재할지 말지(90mm가 필요한지)로 논쟁 하다가 90mm를 대전차자주포에 장착하여 생산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길어진 논쟁으로 1944년 4월부터 생산이 시작되어 76mm 셔먼과 마찬가지로 D-Day를 놓쳤고, 실전에 투입하니 90mm를 장착하였어도 대전차자주포의 한계로 인해 전선에서는 90mm를 장착한 전차의 요구가 쇄도하게 된다. 결국 90mm를 장착할 역량이 충분했던 셔먼은 90mm 장착 전차의 전선수요가 발생한 다음에 다시 고려되었으나, 퍼싱의 양산준비 시간이나 90mm 셔먼의 양산준비 시간이나 비슷하고, 퍼싱의 양산에 방해될 수 있단 판단이 나와버려 포기해버렸다.
다만 공군 해군 위주의 미군에게 육군은 언제나 후순위 였다. 현실적으로 생각했을때 전쟁은 전차전이 중심이 아니라 언제나 보병이 중심이다. 설령 독일군의 전차들이 성능적으로 우위를 좀 가질 수 있어도, 그 외의 대부분의 요소에서는 미군이 훨씬 유리한 상태로 있기 때문에 독일 전차병 입장에서는 셔먼을 만난다는건 그외의 야포나 항공지원, 다른 대전차 전력들도 걱정해야되는 것이기에 셔먼이 현실적으로 크게 불리한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니였다. 거기에 76mm로 업그레이드 된 셔먼들은 최소한 정확히 사격을 가하거나 고속철갑탄 등의 특수탄종을 사용시 자신들을 뚫을 수 있었을테니, 잠재적 위협요소가 하나 증가한 셈이다. 물론 그 시기가 굉장히 늦긴 했지만, 76mm를 장착한 셔먼이나 그 이외의 차량들에 대응하기가 어려웠을 것임은 자명하다. 그 좋은 예가 바로 크레이튼 에이브럼스 소령이 75mm셔먼을 가지고 아군 항공지원도 없이 판터를 갖춘 독일 장갑부대를 8:3.1이란 교환비를 기록하면서 박살내버린 아라쿠르 전투.
확장성
셔먼은 놀라운 확장성을 가지고 있였는데, 이는 튼튼한 서스펜션과 넓은 용적이 바탕이었다. 초기형의 무게가 15톤이었던 4호 전차가 장갑과 무장 증설로 인해 중량이 10톤 늘어나자 구동계에 매우 심각한 무리가 갔지만, 셔먼은 18톤인 M2 중형전차의 서스펜션을 거의 그대로 가져와 무려 20톤 상당의 무게을 증설한 점보 셔먼을 만들 수 있었다. 거기다 점보는 HVSS로 현가장치를 바꾸고 퍼싱의 포탑을 장착해 90mm로 업건할 계획까지 있었다.
주포또한 처음부터 주포의 변경이 용이하게 설계되어 있었다. 다만 업건이 아닌 상황에 따른 주포 환장(105mm셔먼 등) 정도의 설계였음에도 2차대전에 쓰인 파이어플라이, 그리고 냉전기 이스라엘의 슈퍼 셔먼, 아이셔먼 등의 업건이 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