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님 화엄경 강설 18】 10
13, 법을 설하여 해탈을 얻게 하다
佛子야 菩薩이 如是淸淨諸波羅蜜時와 圓滿諸波羅蜜時와 不捨諸波羅蜜時에 住大莊嚴菩薩乘中하고 隨其所念一切衆生하야 皆爲說法하야 令增淨業하야 而得度脫하니라
“불자여 보살이 이와 같이 모든 바라밀다를 청정히 할 때와 모든 바라밀다를 원만히 할 때와 모든 바라밀다를 버리지 아니할 때에 크게 장엄한 보살승(菩薩乘) 가운데 머물러서 그 생각하는바 일체 중생을 따라서 다 법을 설하여 깨끗한 업을 증장하여 해탈을 얻게 하느니라.”
▶강설 ; 불교의 가장 뛰어난 실천덕목은 10바라밀이다. 이 10바라밀을 청정히 하고 원만히 하여 항상 지닌다면 곧 진정한 보살의 수레를 타고 중생을 위하여 진리의 설법으로 만 중생을 제도하여 해탈케 할 것이다.
墮惡道者를 敎使發心하며 在難中者를 令勤精進하며
“악도에 떨어진 이는 가르쳐 발심케 하고, 어려움에 있는 이는 부지런히 정진케 하느니라.”
▶강설 ; 진정한 보살의 수레를 타고 중생을 위하여 진리의 설법으로 만 중생을 제도하여 해탈케 할 때에 악도에 떨어진 사람은 잘 가르쳐서 보리심을 발하게 하고, 부처님을 보지 못하고 불법을 들을 수 없는 여덟 가지 곤란한 상황과 같은 지옥(地獄), 축생(畜生), 아귀(餓鬼), 장수천(長壽天), 맹롱음아(盲聾瘖瘂), 울단월(鬱單越), 세지변총(世智辯聰), 불전불후(佛前佛後)에 있더라도 부지런히 정진하게 한다.
多貪衆生에 示無貪法하며 多瞋衆生에 令行平等하며 着見衆生에 爲說緣起하며
“탐욕이 많은 중생은 탐욕이 없는 법을 보여주고 성을 잘 내는 중생은 평등함을 행하게 하고 삿된 소견에 빠진 중생은 연기법을 말하여 주느니라.”
▶강설 ; 탐욕이 많은 사람에게는 사람 몸의 부정함을 설하여 싫증을 나게 만들며, 성을 잘 내는 사람에게는 뭇 생명을 존귀함을 설하여 자비관을 닦도록 하며, 삿된 견해에 빠진 사람에게는 일체법의 연기성(緣起性)을 가르쳐서 연기관(緣起觀)을 성취하게 한다. 삿된 견해란 곧 존재의 연기성을 모르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연기의 이치만 알면 인생을 삿되거나 어리석게 살지는 않을 것이다.
마승(馬勝)비구가 사리불과 목건련을 교화한 것도 바로 이 연기의 법문이었다. 사리불과 목건련은 어느 날 마승비구를 만나 “모든 법은 인연으로부터 생기고 모든 법은 인연으로부터 소멸한다. 우리 부처님 큰 사문께서는 항상 이와 같은 말씀을 하신다.”라는 설법을 듣고 발심하여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
欲界衆生에 敎離欲恚惡不善法하며 色界衆生에 爲其宣說毘鉢舍那하며 無色界衆生에 爲其宣說微妙智慧하며 二乘之人에 敎寂靜行하며 樂大乘者에 爲說十力廣大莊嚴이니라
“욕계의 중생에게는 탐욕과 성냄과 나쁘고 선하지 아니한 법을 여의도록 가르치고, 색계의 중생에게는 비발사나(毘鉢舍那)를 말하여 주고, 무색계의 중생에게는 미묘한 지혜를 말하여 주고, 이승(二乘)들에게는 고요한 행을 가르치고, 대승을 좋아하는 이에게는 열 가지 힘과 광대한 장엄을 연설하느니라.”
▶강설 ; 욕계 중생들이란 모두가 욕심으로 가득 채워진 중생들이 살기 때문에 욕계라 한다. 또 욕심은 성냄과 어리석음까지 동반하여 온갖 고통을 야기한다. 색계 중생들은 그나마 조금 낫다. 그래서 단순한 수행법을 가르친다. 비발사나(毘鉢舍那)는 위빠사나(Vipassana)의 한역어다. 현상을 있는 그대로 통찰하는 부처님의 수행법으로 사념처(四念處)수행이라고도 하며, ‘대념처경’에 잘 설명되어 있다. 흔히 숨 쉬는 것을 예의주시하며 마음을 집중하여 안정시키는 수행법이다. 무색계 중생은 정신적인 차원이 매우 높은 천신들이라서 미묘한 지혜라야 깨달음에 이른다. 성문이나 연각들은 적정법을 좋아하므로 열반적정을 가르친다. 대승보살이나 부처의 경지를 바라는 이들에게는 부처님의 열 가지 힘[十力]과 광대한 세계의 장엄을 설법해 준다.
如其往昔初發心時에 見無量衆生이 墮諸惡道하고 大獅子吼로 作如是言호대 我當以種種法門으로 隨其所應하야 而度脫之라하니 菩薩이 具足如是智慧하야 廣能度脫一切衆生이니라
“저 지난 옛적 처음 발심할 적에 한량없는 중생이 나쁜 갈래에 떨어진 것을 보고 큰 사자후로 말하기를 '내 마땅히 갖가지 법문으로 저들이 응할 바를 따라서 제도하리라.'하였던 바와 같이 보살이 이와 같은 지혜를 구족하고 일체 중생을 널리 제도하느니라.”
▶강설 ; 보살이 중생을 위해 법을 설하여 해탈을 얻게 하는 내용의 결론이다. 보살이 처음 보리심을 발했을 때 한량없는 중생들이 악도에 떨져서 고통을 받는 것을 보고 서원을 세웠던 그 서원으로 지혜를 구족하고 일체 중생을 널리 제도하는 것이다.
14, 삼보의 종성(種性)이 끊어지지 않게 하다
佛子야 菩薩이 具足如是智慧하야 令三寶種으로 永不斷絶하나니 所以者何오 菩薩摩訶薩이 敎諸衆生하야 發菩提心일새 是故로 能令佛種不斷이며 常爲衆生하야 開闡法藏일새 是故로 能令法種不斷이며 善持敎法하야 無所乖違일새 是故로 能令僧種不斷이니라
“불자여, 보살이 이와 같은 지혜를 구족하면 삼보(三寶)의 종성이 영원히 끊어지지 않게 하나니, 무슨 까닭인가. 보살마하살이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보리심을 내게 하므로 부처님의 종성이 끊어지지 않게 하며, 항상 중생을 위하여 법장(法藏)을 열어보이므로 법보(法寶)의 종성이 끊어지지 않게 하며, 교법(敎法)을 잘 받들어 어기지 아니하므로 승보(僧寶)의 종성이 끊어지지 않게 하느니라.”
▶강설 ; 삼보란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과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대중들이다. 이와 같은 삼보가 영원토록 세상과 함께 하려면 보살의 보리심을 발하여 수행하고 전법하는데 달려있다. 그것이 곧 지혜다. 이와 같은 지혜를 구족하면 다시 또 중생들을 가르쳐서 보리심을 발하게 한다. 보리심을 발한 보살이 있다는 것이 곧 부처님의 종성이 계속되는 일이다. 또 보리심을 발한 보살은 항상 중생을 위하여 법장(法藏)을 열어 보이며 일체 대승경전과 내지 화엄경을 널리 전파하므로 법보(法寶)의 종성이 끊어지지 않게 된다. 또 보리심을 발한 보살은 교법을 잘 가져서 어기는 바가 없다. 그래서 승보(僧寶)의 종성이 끊어지지 않게 되는 것이다.
復次悉能稱讚一切大願일새 是故로 能令佛種不斷이며 分別演說因緣之門일새 是故로 能令法種不斷이며 常勤修習六和敬法일새 是故로 能令僧種不斷이니라
“다시 또 일체 큰 소원을 모두 칭찬하므로 부처님의 종성이 끊어지지 않게 하며, 인연의 문을 분별하여 연설하므로 법보의 종성이 끊어지지 않게 하며, 여섯 가지 화합하는 법[六和敬法]을 부지런히 닦으므로 승보의 종성이 끊어지지 않게 하느니라.”
▶강설 ; 다시 또 부처님의 종성이 끊어지지 않게 하는 길은 일체의 광대한 원력이다. 보리심을 발한 보살이 불법을 널리 전하겠다는 큰 원력이 있다면 그것이 곧 부처님의 종성이 계속해서 이어가는 모습이다. 또 보리심을 발한 보살이 인연의 이치를 잘 분별하여 연설한다면 그것이 곧 법보의 종성이 끊어지지 않게 하는 길이다. 또 보리심을 발한 보살이 승단생활의 화합을 위한 기본이며, 이상적인 사회생활의 기본이 되는 여섯 가지 화합하는 육화경법(六和敬法)을 부지런히 닦으므로 그것이 곧 승보의 종성이 계속되는 길이다. 여섯 가지 화합하는 법이란 여러 곳에서 약간씩 다르게 표현되었으나 청량스님의 화엄소를 근거로 하여 열거한다.
신화동집(身和同集) - 몸으로는 서로 화합하고 공경하여 같은 장소에 모여 살아라.
구화무쟁(口和無諍) - 입으로는 서로 화합하고 공경하여 다투지 말라.
의화무위(意和無違) - 뜻으로는 서로 화합하고 공경하여 어기지 말라.
견화동해(見和同解) - 견해로는 서로 화합하고 공경하여 같이 이해하라.
계화동봉(戒和同奉) - 계율은 서로 화합하고 공경하여 함께 받들라.
이화동균(利和同均) - 이익은 서로 화합하고 공경하여 균등하게 하라.
이와 같은 원칙을 잘 지키면 승보의 종성이 영원히 이어질 것이다.
復次於衆生田中에 下佛種子일새 是故로 能令佛種不斷이며 護持正法호대 不惜身命일새 是故로 能令法種不斷이며 統理大衆호대 無有疲倦일새 是故로 能令僧種不斷이니라
“다시 또 중생이란 밭에 부처님 종자를 심으므로 부처님의 종성이 끊어지지 않게 하며, 바른 법을 호지하여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므로 법보의 종성이 끊어지지 않게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