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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M4 셔먼(Medium Tank Sherman) 전차
유럽 전선
이렇듯 셔먼의 성능은 타국의 주력전차와 비교하면 나쁘진 않았고 오히려 일부 면에서는 우세에 있었으나, 상층부 및 기타 운용국들의 거한 삽질로 동급의 적 전차만이 아니라 더 강한 상대와도 싸워야 했던 탓에 막심한 피해를 입어야 했다.
그러나 렌드리스로 건너간 소련에선...
속도는 빠른 편이어서 적을 추격하는 작전에 유리하며 전술적 능력이 매우 높다. 75mm 주포는 고폭탄의 파괴력은 물론 철갑탄 관통력 역시 만족할만한 수준이다. 주포는 물론이고, 탑재된 브라우닝 기관총 역시 고장 없이 아주 잘 작동하며, 방어력 역시 중전차로서 손색이 없는 60mm 장갑덕분에 80m 지근거리에서 14.5mm 대전차소총을 여유있게 막아낸다. T-34보다 조종이 훨씬 편하고 쉬우며 오랫동안 주행해도 고장이 잘나지 않고 엔진 역시 튼튼하며 고장이 없다. 정말 잘 만들어지고 쓸모 있는 전차지만 넓은 평지에서는 높은 차체 때문에 표적이 되기 쉽다는 단점이 있다.
이 정도면 잠재적인 적성국의 무기 체계에 줄 수 있는 가장 큰 칭찬일 것이다.
초창기 셔먼의 약점은 트랙이 고무로 덮여서 고온에서 금방 벗겨지고 지면과의 마찰력이 떨어져 험지 주파 능력이 다소 떨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점은 미군측 기술자의 도움으로 새 트랙을 공수해와서 금방 해결되었다. 그리고 일반 도로를 밟기만 해도 굉음을 내던 T-34와는 달리 고무 트랙을 썼던 셔먼은 도로에서 자동차처럼 조용했으니 일장일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고가 높아서 무게중심이 높은 것도 문제점이었는데, 험지에서 급하게 선회를 할 경우 옆으로 넘어질 위험성이 다소 있었다. (하지만 내가 탄 전차가 옆으로 넘어져서 세우는 동안 중대의 전차들이 돌격했다가 기습을 당해 전멸당하고 나는 살아남았으니 이런 약점에도 감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초기 형식은 해치가 수직으로 열렸던 탓에 주포에 부딫히면서 조종수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일이 간간이 있었다. 하지만 미군측 기술자들이 도와준 덕에 수평으로 열리도록 개선되었다. (마틸다 전차에 딸려온 영국 기술자들은 협조나 개선은 커녕 부품을 갈아끼우는 것 조차도 사사건건 방해하기만 했는데 말이다.)
내부는 T-34와 비교하면 마치 서유럽의 고풍스러운 그림 작품과도 같았다. 내부 공간도 넉넉했고 수리가 쉬웠을 뿐 아니라, 좌석에 깔린 인조 가죽이 워낙 질이 좋았기에 격파되거나 유기된 셔먼이 보이자마자 가죽을 벗겨서 구두를 만들고는 했다. 배터리를 충전할 때도 T-34는 엔진을 무식하게 돌려야 했던 반면에 셔먼에는 작은 오토바이 엔진이 배터리에 연결되었기에 오토바이 엔진을 돌리면 손쉽게 배터리를 충전할 수 있었다.
T-34에 화재가 발생하면 군령을 어겨서라도 꽁지가 빠져라 도망가야 했다. 탄약이 워낙 빨리 유폭되었고 불길이 사방으로 치솟았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내가 탄 셔먼이 피탄되어 화재가 발생한 적이 있었다. 적의 기관총과 박격포 세례를 피할 수 없었기에 불타는 차량 아래에 숨어야 했다. 그런데 철갑탄이 유폭되었음에도 고폭탄이 터지지 않았고, 덕분에 나는 살았다. 소련군의 위험한 화약과는 무언가 다르면서도 안전한 화약을 쓴 것이었다.
포탑 상부에 거치된 캘리버 50은 본디 대공 용도였지만, 영악한 독일 놈들은 사격 각도를 주지 않고 수직 사거리 바깥인 800미터 위에서 급강하 폭격을 했기에 비행기를 격추시키는 전과를 거둔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일본 놈들의 자살 돌격을 막는데는 아주 쓸모가 많았다. 기관총에 대한 평가는 매우 좋았다.
결론적으로, 다른 전차와 마찬가지로 장단점이 있기는 했지만 좋은 전차였다. 누군가가 이 전차를 나쁘다고 욕할 때마다 나는 "뭔 소리야?"라고 대꾸한다. 대체 어느 전차와 비교해서 나쁘다고 하는 것일까?
76mm를 장비한 셔먼은 1944년말에나 도착하는데, 이때는 이미 소련 기갑부대의 주력이 T-34-85였고, IS전차나 ISU-152등의 무식한 화력의 기갑 병력이 붕어빵처럼 찍혀나오던 시기였다. 관통력이 높은 100mm 대공포 대신 화력이 더 강한 122mm 야포를 선택하여 중전차에 넣고 관통력이 높은 57mm 장포신 포 대신 화력이 강한 76mm를 선택하던 화력덕후 소련답게 셔먼의 신뢰성에는 매우 만족했지만 화력에는 만족하지 못했다고. 다만 소련군은 미군과 다르게 독일군의 티거나 티거 2에 대응할 수 있는 중전차와 중장갑 자주포가 있었으므로 셔먼의 화력에 그다지 연연하지 않았다. 종합하면 가혹한 소련의 환경에서도 잘 작동하고 고장이 잘 안나는 주행장치와 엔진의 신뢰성, 오리 궁둥이라고 불릴 정도로 조향능력이 형편없기 그지없던 소련제 전차와 비교를 불허하는 고성능의 조향장치와 내부 승무원을 배려한 편의성, 맞으면 높은 확률로 화재가 나거나 유폭되어 승무원 모두가 요단강으로 가는 소련제와 비교해 불이 나도 소련제보다 안전한, 습식 탄약고로 대표되는 높은 생존성, 전차를 관통시키는 것보다 아예 폭탄으로 날려버리는 것을 선호했던 소련군도 맘에 들어한 고폭탄의 화력, 이외 자잘한 편의성 최종적으로 상대적으로 저구경으로 인해 대구경 전차들보다 덜 위험한 전장에 쓰인다는등... 소련군이 가장 좋아했던 서방제 전차라는 말이 결코 지어낸 말이 아니라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소련군의 M4 셔먼은 전쟁 후반기까지 최전선에서 활약했다. 사진은 1945년 베를린 전투 당시 촬영된 소련군의 M4A2 (76) W.
그리고 공여받은 M4 셔먼에 있는 주포안정장치와 무전기는 복제돼 이후로도 오랫동안 소련 전차에 쓰였다.
셔먼이 밥값을 못한 건 아니었지만, 대전 후반기인 1944년 10월, 미5군은 수백대의 75셔먼이 있는데도 그딴 거 줘도 안받으니까 76을 내놔, 지금 당장!해서 모든 전차를 76셔먼으로 교체해버린다. 사실 셔먼이 첫 등장한 북아프리카의 경우 셔먼을 상대할수 있는 장포신 4호(=H형)같은 기갑차량이 드물어서 셔먼은 당시 추축군에게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그러나 유럽에 돌아온 연합군을 맞이한 독일군은 (화력만큼은) 셔먼과 대등해진 4호에 3호 돌격포를 비롯한 각종 구축전차, 돌격포에 표범과 벵골 호랑이같은 맹수들을 있는 대로 다 끌고 나왔고, 여기에 영국군의 우직한 전차 운용까지 겹쳐진 결과 셔먼의 손실률은 상상 이상으로 늘어나게 된다.
하지만 전쟁 후기로 갈수록 76셔먼의 수도 늘어나고, 이런저런 전술과의 시너지로 인해 아라쿠르 등지에서는 판터를 상대로도 사실상 압승을 거두기도 했을 정도이다. 판터의 경우 구동계통의 신뢰성이 나쁘기로 악명이 높았으며 쿠르스크 이후 어느정도는 해결되었다고 하지만, 별다른 엄폐물이 없는 평지인 아라쿠르 같은 지역에서는 짤없이 털렸고, 그 결과 아라쿠르 전투에서 판터와 셔먼의 교환비는 8대 3.1이었다.
유럽 전선에서 셔먼의 교전 기록중 특이한 사례로는 셔먼 1개 중대와 반궤도 장갑차에 탑승한 보병 1개 중대, 3대의 M36 잭슨 대전차 자주포로 구성된 웰본 기동부대가 미 제3기갑사단장을 전사하게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제507 중전차 대대 3중대의 티거 2 10대와 지근거리에서 조우해 괴멸적인 피해(셔먼 17대, 하프트랙 17대, 3대의 트럭, 1대의 M36 GMC 그리고 트럭 두대)를 입은 사례로, 여기까지만 보면 이게 뭐가 특이한가 싶지만 특이한점은 이 전투에서 3대의 티거 2 완전 손실이 보고 되어 있는 점이다. 그것도 그중 2대는 76mm셔먼도, 보병의 바주카도 아닌 초기형 포인 M2 75mm 셔먼의 전과. 어째서 이런일이 가능했는고 하니...
언덕위와 숲 방향에서 갑툭튀한 티거 2들에게 일방적으로 두드려 맞는 와중에 75mm형 셔먼 한대가 숲 방향에서 나타난 티거 2 3대를 향해 돌진을 감행. 지근거리에서 백린탄으로 사격을 가해 발생한 연기와 화염으로 티거2의 전차병들이 자신의 전차에 포탄 피격에 의한 화재가 발생했다고 착각하게 만들어 전차를 버리고 탈출하게 만들었다. 그것도 연달아 두대를. 이 용감한 셔먼은 결국 다른 한대의 티거2에게 격파 당했지만 76mm도 아닌 75mm로 도저히 상대가 불가능한것으로 여겨지는 강력한 중전차를 상대하며 승무원의 기지 만으로 상대를 전투불능으로 만들어버린 뜻 깊은 사례. 해당 티거2들이 소속된 제507 중전차 대대 3중대의 기록에선 해당 전투에서 티거2 3대의 완전 손실(이중 한대는 다른 셔먼들이 티거2에게 두들겨 맞는 동안 농가에 숨어들어 측면을 노리고 매복 공격을 가한 76mm의 셔먼의 전과로 확인)이 보고 되어 있어 백린탄에 의한 티거2 격파는 사실로 인정됐다.
태평양 전쟁
(전략)
어둠속에서 서서히 다가오는 굉음은, 살펴보니 거의 이, 삼십대의 대형전차 같았다. M4형 전차의 위력은 헤아릴 수 없는 것이었다. 우리가 이대로 여기 있다간 벌레와 개미처럼 쉽게 뭉게질 것이 당연했다. 그 섬뜩한 캐터필러 소리는 우리를 "도망쳐", "도망쳐" 라고 위협하는 것 같았다.
"어쩔 수 없다, ...전진!" 이시하라 중대장은 즉시 전진 명령을 내렸다. 전진은 퇴각하라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중략)
그야말로 무아지경으로 거대한 전차무리에 따라잡히지 않도록 도망에만 열심이었다. 중대는, 사나운 호랑이에 쫓기는 양처럼, 등뒤의 늪 속으로 흩어지며 뛰어들었다.
하지만, 뛰어든 것은 좋았지만 힘든 장소였다. 그 늪에는 악어도 있고 독충도 서식하고 있었다. 늪을 건너다 어디에서 덮쳐올지 알수 없었다. 그러나, 거대한 "육지의 전함"에게 짓밟히는 것만은 못한 것이었다.
-후나사카 히로시 저. 『영령의 절규, 옥쇄의 섬 앙가우르전기』(英霊の絶叫―玉砕島アンガウル戦記) p. 24~25
유럽에서의 그저 그런 전적과는 달리, 일본군은 미 해병대가 대전차 전투보단 밀림 속을 밀고 들어가기 위해 투입한 M4 셔먼을 맞닥뜨리자 '악마를 만났다'면서 패닉에 빠졌다. 그들이 보유한 그 어떤 대전차포도 셔먼은 가볍게 튕겨냈으며, 철썩같이 믿고 있던 47mm포 탑재 97식 改 치하가 쏘는 포탄도 가볍게 튕겨냈다. 거기에다가 '뭐라도 움직이는 것만 보이면 일단 쏴대고 보는' 미군 특유의 호전적인 전투 방식 때문에 사방에서 피해가 속출, 1944년의 필리핀 탈환전에선 셔먼에게 그야말로 녹아내리는 피해를 입었다. 가까이 숨어있다가 지근거리 기습으로 셔먼을 잡은 몇몇 97식 改도 있었지만, 그 직후엔 역습을 받아서 괴멸당했다. 화염병도 썼으나, 태평양의 셔먼은 디젤 엔진을 쓰는 A2형이었다.
결국 일본군은 가장 강력했던 전차인 '노획한' M3 스튜어트 전차를 끌고 나왔지만 M3로 셔먼을 막을 수 있을리가 있나. 그러다보니 대전차총검술 같은 어이없는 전법까지 나온 것도 무리는 아니다. 사실 셔먼을 가장 애먹인 것은 사방에서 "같이 죽자"고 달려드는 일본군 보병. 그래서 뾰족하게 만든 철판과 쇠못을 차체에 용접해서 전차를 고슴도치처럼 만들고 다녔다고 한다. 일본군도 부랴부랴 셔먼에 대항할 전차를 개발했지만 너무 시기가 늦어서 포탑이 달린 것들 중에선 치헤, 치누, 치토, 오이 등을 양산했지만, 치헤는 화력이 치하와 그리 차이 나지 않고, 치누는 그 치헤 차체에 그나마 근거리에서 셔먼을 뚫을 포를 얹는 바람에 느려터졌고, 치토는 2대만 굴릴 수 있어서 너무 적었던데다 시기도 늦고, 오이는 물론 충분히 격파 가능하지만 시험차량을 한 번만 굴리고 폐기해버려서 오이를 제외하고는 모두 본토결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대전차자주포로는 치하 차체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호니는 치누에 달린 그것과 비슷한 것으로 셔먼을 전면 격파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필리핀에 가서 결전을 준비했지만 대부분의 차량이 바다의 어초가 되어버리고, 무사히 상륙한 소수의 차량들로 맞서 싸웠지만 노획당했다. 설령 최고의 포탑 장착 전차인 치리와 오이가 나왔다고 해도 그 뒤에 버티고 있는 것은 미군이 작정하고 6호 전차 티거 대항마로 개발한 1,000여 대의 M26 퍼싱 중(重)전차였다.
그 밖에 동굴 속에서 농성하는 일본군 수비대에 대항하기 위한 화염방사 전차와 불도저 전차같은 현지 개수형 차량도 등장했다. 화염방사 전차는 동굴이나 참호에 불을 뿜었고 불도저 전차는 아예 생매장시켜 버리는데 쓰였다.
물론 세상의 모든 전차가 그렇듯 태평양에서 비교 대상이 없던 무적의 위용을 뻗쳤던 셔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 손실도 없이 항상 일본군을 밀어버리며 다닌 건 아니었다. 일본군은 자신들이 보유한 구세대 대전차포로 대항할 방법들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이윽고 미군의 선제포격에도 버틸 수 있는 반사면 진지나 견고한 대전차호를 구축해 잘 위장시켜 매복시켰다. 일본군은 이런 매복된 대전차포로 기습적인 화망을 구성, 셔먼의 약한 측 후면을 타격하는 전술을 사용했고 실제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특히 최전선에서 실전 경험을 통해 단련된 부대들은 셔먼의 약점부위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기습시 유효한 공격을 퍼부을 수 있었다. 그래서 아무리 강력한 셔먼전차라 해도 전차의 사각(死角)을 지켜주고 정찰을 통해 적의 매복이나 위험요소를 미리 알려주는 보병과 함께 작전하는 것이 선호되었으며 이럴 경우는 더욱 강력한 시너지를 냈다. 보병은 전차처럼 강력한 장갑과 화력이 없는 대신, 넓은 시야와 탐색력을 가지면서 전차가 접근할 수 없는 거친 지형도 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상호보완적인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군 보병의 화력은 전차의 사각에서 대전차총검술 등을 시전하는 일본군 보병의 접근을 차단하는 용도로도 충분했다.
오키나와 전역에서 미 제139 전차 대대 소속 A중대의 30대의 셔먼 전차들이 보병수반 없이 단독으로 가카즈 고지를 돌파하다 이런 대전차포 화망에 걸렸는데 단 한차례 전투에서 22대의 셔먼을 잃고 8대의 셔먼만 살아 도망쳤다. 셔먼 전차들은 매복된 대전차포가 어디에서 사격하는지 알수 없었으며 돈좌된 셔먼 전차 사이로 일본군 보병이 대전차 총검술을 벌이며 달려들자 공황상태에 빠져들었다. 한 셔먼 승무원은 어찌나 다급했는지 후방의 27사단에 'HELP'라는 전신을 평문으로 계속해서 보냈다고 한다. 이는 미군의 태평양 전쟁 중 한 전투에서 가장 많은 전차를 상실한 전투로 기록되었다. 97식 전차 또한 이런 방법으로 몇 대의 셔먼을 잡기도 했으며 오키나와에서 작정하고 달려드는 일본군에 의해 800대의 셔먼중 153대의 셔먼을 완전 손실했다. 이는 미군으로 하여금 M26 퍼싱을 오키나와로 불러들이는 이유가 되었고 오키나와 방면의 일본군이 항복에 조인할 때 미군은 이 신형 전차를 항복 회담장에 도열시켰다. 그러나 가카즈 고지에서의 미군의 완패에도 불구하고 셔먼의 견고한 방어력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는데, 한 전차는 파괴되었으나 일본군의 4.7cm 1식 기동속사포 17발을 맞고서야 정지했다. 수반 보병이 없는 전차는 태평양의 셔먼이라 할지라도 위험해지는건 마찬가지였지만 적에게 있어 정상적인 대응 방법이 아닌 이런식의 반 자살적 대응을 강요한다는거 자체가 태평양의 셔먼이 일본군에 대해 가졌던 위상이 보통이 아니었음을 증명한다. 또한 셔먼을 많이 손실했다는 오키나와에서도 미군은 전차에 생채기만 나도 바로 바로 후방 정비대대에 수리를 보냈으며 그 와중에도 보충전차들로 항상 전차부대의 정수를 유지시켰다. 일본군으로선 어제 분명 저 중대의 전차 한대를 잡았는데 오늘도 똑같은 숫자의 전차들이 밀고 들어오는, 무한 셔먼의 지옥 속으로 빠져들었다.
사실 오키나와 전역의 가카스 전투 이전 이오지마 전역에서부터 셔먼들이 본격적으로 대량 파괴당하기 시작했는데, 애초에 일본군이 처음으로 정신을 차리게 되면서 '알아서 죽으러 와주던' 기존의 태평양 전선에서의 양상이 여기서부터 바뀌기 시작했기 때문. 처음 상륙하고 나서 기존과 다르게 저항이 없다가 갑자기 지뢰에 터지고, 심지어는 30여 톤 짜리 셔먼이 장난감처럼 휙휙 날라다니질 않나, 내륙으로 들어가니 야포와 4.7cm 1식 기동속사포를 위시로 한 매복된 대전차포 부대에 의해 한 전투에서 대략 30여대를 한꺼번에 잃는 등, 셔먼의 본격적인 고난(?)은 이오지마 전투부터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이오지마 전투부터 일본군이 정신 차린 결과, 미군 셔먼부대만이 아니라 전체적인 미군의 희생이 늘어난 만큼, 기존 구 일본군의 전투 방식이 병맛 넘치는 것을 증명하는 사례일 뿐이라는 의견도 있다.
셔먼하면 주로 약한 방어력을 연상하기 쉽지만,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시가전에서 중장갑으로 포탄을 튕겨내며 돌파구를 뚫기 위해 전측면에 1.5인치씩 6~8톤 남짓의 추가 장갑을 덕지덕지 발라 티거를 능가하는 떡장갑을 가진 M4A3E2 "점보" 셔먼도 있었다. 구체적으로는 전면상부 101.6mm(4인치) 47도 경사장갑, 전면하부 트랜스 미션 커버 114~144mm,(4.75~5.75인치) 포탑 전/측/후 모두 152.4mm(6인치), 측면 76.2mm(3인치), 포방패 177.8mm(7인치)라는 당대의 표준적인 중(重)전차급의 무식한 방어력을 지니게 된다. 대신 무거워진 게 단점이지만 전면 뿐 아니라 측면장갑도 상당히 강화되어 생존율이 높아진 점이 장점이다. 측면은 티거와 비슷한 수준인 76.2mm 장갑이지만 주 상대는 측면을 잡힐 일이 별로 없는 티거, 판터와 PaK 40 대전차포였으니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약점으로 지적되던 전면 장갑의 승무원 해치 구간도 평탄해져서 이후 M4A3 차체를 바탕으로 한 이지에잇도 비슷하게 매끈한 전면장갑을 지니게 됐다.
이는 셔먼의 설계가 좋았던 덕에 가능한 일이였다. 점보 셔먼이 나오기 전 M4A3 전측면에 무게추를 달아 총 중량 37톤 상태로 500마일을 주행하는 테스트를 했는데 차량에 큰 문제가 없었다. 게다가 무게중심이 잘 잡혀 있다는 것도 중요했는데 동시대의 T-34나 4호 전차는 무게중심이 전방에 쏠린 구조 덕분에 전면 장갑 강화가 힘들었으나 셔먼은 포탑이 차체 중앙에 있어서 무게 중심이 잘 맞은 덕분에 장갑을 증설하고서도 큰 문제가 없었다.
물론 거의 차체의 한계까지 장갑을 장착한 터라 기동성도 훨씬 나빠지고 서스펜션도 고장이 잘 나는 등 아쉬운 부분은 있었으나 강력한 장갑 덕분에 PaK 40의 사격을 모든 교전 거리에서 아무런 문제 없이 튕겨내고 8,8cm FlaK에도 쉽게 파괴되지 않았다고 한다. 수백 야드 거리에서 88mm 포탄을 도탄내고 바로 반격해서 날려버린 사례도 있다. 초기에는 보병 지원 용도로 75mm 포를 탑재했으나, 포탑이 기본적으로 76mm 포를 장착 가능한 T23포탑의 장갑강화형이라 별 개조 없이 76mm 장착이 가능해서, 전쟁 말기에는 격파된 76mm 셔먼에서 포를 떼어내 장착하기도 했다고 한다.
M4A3E2 돌격 전차는 전투에서 큰 활약을 하였고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음. 기존 전차의 전선 투입에 차질을 빚지 않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많은 양을 양산하여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해당 전선(유럽 전선)에 투입할 것을 요청함.
(아이젠하워 당시 총사령관, 1944년 1월 3일에 보낸 요청에서.)
어찌보면 화력에만 몰빵했던 셔먼 파이어플라이와 완벽한 대척점에 서있는 물건. 실전에서는 대열의 선두에서 탱커로서 아군 전차대대가 맞을 분량의 PaK 40을 1~2대가 전부 다 맞아주고도 멀쩡히 굴러갈 수 있었고, 이는 점보와는 반대의 테마로 만들어졌던 파이어플라이가 티거에게 먼저 발견될 경우 쪽도 못쓰고 부서지던 것과 대비된다. 물론 다른 전차 대신 대전차포의 집중 포화를 받아주는 역할을 맡다보니 격파된 차량도 많았고 하단 장갑은 그대로라서 대전차 지뢰에 격파된 사례도 종종 있었으나, 일반적인 셔먼이라면 진작에 터지고도 남았을 상황을 견뎌낸 덕분에 일선에서의 평가는 그야말로 대호평이었다.
심지어 전차하면 기동성이 최우선이라 생각한 조지 S. 패튼 장군조차도 점보 셔먼이 마음에 들어서 보급 요청을 했다. 하지만 생산 수량이 250대 정도에 불과한 귀한 몸이라 얻지 못하게 되자 비슷한 용도로 쓸 수 있도록 슈퍼 퍼싱처럼 현지에서 장갑을 용접해 붙이라는 지시를 했을 정도.
전면 증가장갑에는 주로 격파된 다른 용접 차체형 셔먼, 혹은 격파된 판터 전차에서 잘라낸 전면 장갑이 활용되었다. 특히 다른 셔먼의 전면 장갑은 차체 기관총이 들어갈 구멍이 이미 마련되어있어서 작업하기가 상대적으로 편했다고 한다. 이렇게 증가장갑을 장착한 차량은 총 100량 내외로 알려져있다. 이렇게 개조된 차량 중 하나는 PaK 40와 동급인 KwK 40 대전차포를 장착한 4호 전차 후기형에게 선제 공격을 당하여 전면 장갑이 분리되기는 했으나 격파당하지 않았고, 역으로 반격을 가하여 상대방 4호 전차를 격파하는 데 성공한 바 있다.
2차대전 말에 등장한 기존의 현가 장치를 HVSS로 개선하고 주포를 76mm로 바꾼 M4A3E8, 통칭 'Easy 8'은 더욱 우수한 험지 주행능력과 주행 안정성, 주포 발사시 떨림방지를 보유하게 되었으며, 1944년 겨울부터 유럽전선에서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사실상 기본형 셔먼계열의 완성형. 이후에는 한국전쟁에서도 사용되는데, M4A3E8은 훗날 대한민국 육군 기갑부대가 처음으로 보유한 진짜 전차가 된다. 한국군 창군 시기의 보유차량은 M8 그레이하운드 정찰 장갑차와 M3 하프트랙 병력수송용 장갑차, 그리고 군마(軍馬)여서 전차가 한 대도 없었다. 한국전쟁 중 북한군에게서 노획한 소련제 SU-76 경자주포를 노획하고, 1950년 11월에 미군이 준 M36 잭슨 대전차 자주포를 경전차로 간주해서 교육용으로 수령해서 한국군 최초의 전차로 쓰기도 했지만 대전차 자주포를 전차같이 쓸 수 있을 리가 없었기 때문에 국군이 보유한 제대로 된 주력 전차는 셔먼이 최초라고 봐야 한다. 성능이나 전차병의 숙련도가 우수했기에 북한군의 T-34-85를 상대로도 선전을 펼쳤으며, 퍼싱이 도착한 뒤에도 꾸준히 전투에 참가했다.
M4A3E8 버전은 나중에 이스라엘이 전세계를 싹싹 긁어가며 사들였다. 그래서 한국군이 1960년대에 M47, M48 전차들을 도입하며 퇴역시킨 M4A3E8 셔먼들도 죄다 이스라엘로 실려갔다. 다만 전쟁기념관이나 일부 전시되어 있는 차량들을 보면 남아있는 전차를 모두 팔아버린 건 아닌 듯 하다. 60~70년대 군생활을 한 사람들의 목격담에 따르면 사격지에서 표적으로 활용된 것들도 있다고. 아무튼 이렇게 이스라엘이 모은 셔먼은 슈퍼 셔먼(장포신 75mm)과 아이 셔먼(105mm포)으로 개조하기도 했다. 특히 프랑스는 슈퍼 셔먼의 개조에 매우 적극적으로 협조하여 크피르까지 이스라엘 마개조 역사의 파트너가 되었다.
참고로 공식 명칭은 M4A3(76)W HVSS지만 약칭인 M4A3E8이 더 널리 알려졌다. 이지 에잇이 워낙 어감이 좋은지라... 공식 형번을 풀어보면 'M4전차A3형 76mm포 탑재 습식 탄약고(W)장비 HVSS현가장치 장착차량'이 된다. 105mm곡사포를 장착하면 'M4A3(105)W HVSS', M4A3E9가 된다. 영국에 공여된 A2판 '이지에잇'도 있는데, 이쪽은 M4A2(76)W HVSS다.
셔먼 이야기가 나오면 티거의 싸움을 흔히 언급하며 폄하하는 경우가 많은데, 셔먼의 중량은 60톤에 가까운 티거의 절반 정도에 불과해 이는 사실 미들급과 헤비급의 싸움이나 마찬가지라서 1:1로는 상대하기 힘든 게 당연한 것이다. 셔먼과 자주 비교되는 독일군 전차는 비록 셔먼에 비해 5톤 정도 가볍긴 하지만 4호 전차가 있었으며 4호와 비교시 충분히 우수한 전차로 평가받았다. 사실 점보셔먼을 만들 만큼 확장성이 좋았던 셔먼과 달리 4호는 구동계상의 문제로 중량 증가가 어려워서 어쩔 수 없었고, 이 기준으로 따지면 독소전 초기에 KV-1과 KV-2 앞에 손 쓸 방법 없이 터져나갔던 3호, 4호 전차 역시 형편없는 전차 취급을 받아야 한다. 인터넷상에는 독빠 성향의 서술이 강하다보니 독소전 초기 독일군도 소련군의 소수 중전차에 고전하면서도 전반적으로는 무자비하게 격파해나가고 있었고 노르망디 이후 미군도 독일군의 소수 중전차에 고전하면서도 역시 전반적으로는 무자비하게 격파해나가고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한데 같은 일을 해낸 3, 4호 전차에 대해서는 훌륭한 전차라는 극찬만 있고 셔먼에 대해서는 론슨 라이터라는 서술만 쏟아져나오고 있다.
따라서 굳이 미군 전차를 티거와 비교를 하려면 셔먼같은 중(中)전차가 아니라 티거과 같은 체급인 중(重)전차 시리즈의 T29나 M26 퍼싱을 대상으로 해야 할 것이다. 셔먼이 티거를 상대하려면 셔먼 플랫폼을 헤비급으로 올려버리는 방법이 있다. HVSS 사양의 점보셔먼에 90mm포가 달린 퍼싱포탑을 장착한다는 초강수가 존재한다.
노르망디 상륙 이후 나타난 셔먼의 극심한 소모율(최대 580%)을 근거로 셔먼을 야라레메카 취급하는 경우가 많은데, 오히려 티거나 판터 같은 한 체급 위의 중전차들을 상대로도 어느 정도 상대가 가능했음을 감안하면 셔먼의 소모율이 높았던 것은 성능이 뒤쳐져서가 아니라 준수한 정면 방어력과 무난한 공격력을 갖추었기 때문에 여기저기서 많이 쓰였기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알맞을 것이다. 하지만 북아프리카,이탈리아,태평양 전선등 선박을 이용한 대규모 장거리 수송 및 보급을 위해 중량이 제한되었고 셔먼보다 상위 체급의 차량을 전선에 투입하기엔 많은 행정적 비용이 들었다. 그런데다가 랜드리스도 신경 써야 했다. 반면 나치는 대부분 유럽의 철도망을 이용해 운송하기에 히틀러의 지원에 중량 제한을 신경 쓰지 않고 개발한 중전차 투입이 쉬웠다. 이 때문에 미영 연합국과 나치독일의 전차운용교리가 극명하게 다른것이다.
또한 랜드리스로 셔먼을 받아 썼던 소련군이 높이 평가한 얼마 안되는 서방제 무기라는 걸 보면 같은 중(中)전차인 T-34만큼 충분히 좋은 전차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냉전기 소련의 문헌에서 M4의 능력에 대해 평가한 부분은 사실상 찾아볼 수 없었고 겨우 사이가 좋았던 편인 영국의 발렌타인을 공여 전차 중 최고로 언급하는 정도였다. 이후 소련이 붕괴되며 해금된 자료를 통해서 얻은 자료료는 T-34-85로 생산라인 변경이 이뤄지며 후방에 구형 T-34/76의 재고 떠안은 상황에서 운송문제가 발생하여 최전선에 전차가 부족해 졌을 때 당장 대량으로 공여받아 남아나던 M4를 근위전차사단에 우선 배치한 적도 있다. 물론 이 셔먼들은 순식간에 전멸하고 바로 T-34로 교체되었고 다시는 셔먼으로 교체되는 일 없이 계속 T-34를 사용했지만 어쨌거나 꾸준히 공여받은 M4는 이후에도 일부 부대에서 계속 사용되어 베를린 함락에도 투입되었고 발렌타인 전차등과 함께 만주 진공에도 참가했을 정도로 꾸준히 사용되었다. 물론 만주 진공에는 한심한 성능을 가진 일본 전차를 상대할 수 있는 전차면 뭐든 ok였으며 부족한 성능으로 일선에서 완전히 퇴출되고 최후방으로 돌려졌던 구형 BT 경전차마저 가져갈 정도였으니 이것만 가지고 고평가했다고 보기는 조금 어렵지만 1945년에도 정예부대에까지 배치할 정도면 그럭저럭 괜찮게 평가했다고 볼 수 있을듯 하다. 더군다나 M3 리같은 경우 '일곱 동무의 관' 이라고 혹평할 정도였음을 생각하면.
76mm 셔먼은 훗날 만주 작전 때 좁은 궤도폭 때문에 험한 지형에서 꽤나 고생했다는 게 소련군의 평가지만, 그래도 신뢰성은 T-34 못잖거나 더 낫다는 평가를 받았다. 물론 화력부분에서 소련은 절대 셔먼의 화력을 T-34 이상으로 판단한 적이 없다. 애초에 75mm 셔먼은 76mm T-34보다 단순히 봤을 때 구경이 작고 76mm 셔먼 역시 85mm T-34보다 구경이 작아서 고폭탄의 화력이 낮으며 또 실제 실험상으로는 포탄의 관통력에서 소련제 85mm가 미제 76mm에 비해 크게 우세할 것이 없지만 소련의 전차 개발사를 보면 무슨 일이 생겼을 때 관통력이고 뭐고 일단 대구경포를 올리고보는 경향을 볼 수 있고 실제 교리도 그랬기 때문에 대전차전에서 일단 포가 크고 관통력이 높은 APCR이 존재하는 T-34가 우선시되어 투입되었다. 다만 당연히 힘든 일 적게하고 신뢰성 좋고 거주성 좋은 셔먼을 탄 전차병은 T-34보다 셔먼을 더 좋아할 수 밖에 없다. 또 공여된 셔먼의 포 안정장치, 무전기는 복제되어 전후에도 오랫동안 소련군 전차에 탑재됐다.
참고로 M4에 '셔먼'이라는 이름을 붙인 건 미군이 아닌 영국군으로, M3, M5 경전차에 스튜어트, M3 중전차에 리/그랜트의 이름을 붙인 것도 영국군이다. 결국 미제 전차에 미국의 과거 유명한 육군 장군들의 이름을 붙이는 전통은 영국이 만들어준 셈. 셔먼 이후, 미군이 자국산 전차에 붙인 이름은 M26 퍼싱(1차대전 당시 미군 원정군 사령관), M46, 47, 48, 60 패튼, M41 워커 "불독"(2차대전 중 패튼 휘하의 군단장, 한국전쟁 초기 미 8군사령관), M551 셰리든(남북전쟁 북군 기병대장군), M1 에이브람스(2차대전 당시 발지 전투에서 활약), M2/3 브래들리(패튼의 친구 겸 상관, 나중에 미육군 참모총장, M2/3 브래들리는 장갑차긴 하지만...) 등 미 육군사에 이름을 날린 장군들이다.
미국 남부 출신의 전차병들이 이 전차에 탑승하기를 거부했다는 일화가 있다. 남부 사람들에게 셔먼은 증오의 대상이기 때문. 하지만 이 일화는 거짓말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M4라고만 불렀고 그 어디에도 미국남부사람들이 타기를 거부했다는 일화는 없었다. 그리고 셔먼이나 스튜어드라는 명칭은 영국에서 쓰던 것이었다. 이 일화는 벨튼쿠퍼의 책 데스트렙에서 인용된 오류였다.
에이브람스 장군의 경우 당장 대전차용으로는 어림도 없다는 75mm 셔먼만을 이끌고 독일전차 400대 이상을 씹어드시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판터 전차를 상대로 8:3.1의 교환비를 보여주었다고 하니 말 다했다. 괜히 현대 미합중국 주력전차의 이름으로 붙여진게 아니다. 그외에도 가끔씩 판터를 잡아내거나 한국전쟁에 투입된 셔먼들이 T-34-85를 여럿 격파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니까 미들급 권투선수가 헤비급 권투선수를 상대한 것치고곤 선전한 셈이지만, 이미 1942년에 양산 준비가 끝났던 M6 중전차나 퍼싱이 개발되는 동안 적절한 화력증강을 늦춘 미군 수뇌부의 오판으로 전선에 나가있는 전차병들은 끔찍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