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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M4 셔먼(Medium Tank Sherman) 전차
밀워키 저널 1945년 3월 27일자 기사 '전문가 패튼 장군이 미국 전차들을 강력히 변호하다'
나치 전차들을 상대로 2대 1 전적을 거두어
패튼 장군, M4가 타이거보다 기동성이 우수해 더욱 유리하다고 밝혀
최근 또다시 놀라운 돌파작전을 성공시킨 3군의 사령관인 조지 S. 패튼 중장이 지난 화요일 미국의 M4 전차들을 강력히 변호하고 나섰다. M4는 너무 가볍다는 이유로 많은 비난을 받아왔던 전차이다. 패튼 장군은 3군 전차들이 독일 전차들을 상대로 약 2대 1의 전적을 거두었으며, 이들 독일 전차들의 상당수가 중전차인 타이거와 팬서 전차였다고 말했다. 패튼 장군의 입장은 그가 3월 19일 합동참모차장 토머스 T. 핸디 중장에게 보낸 편지에 드러나 있다. 패튼 장군은 편지에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있거나 고의적으로 허위사실을 퍼뜨리는 자들이 전선에서 귀국하여 미군 병사들이 가지고 싸우는 장비에 대해 흠을 잡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나는 1942년 11월 7일부터 일선 전투부대의 지휘를 맡아 온 몸이므로 여러 가지 군 장비에 대에 어느 정도 지식이 있다고 할 수 있는 입장일 것입니다."고 적었다.
M4 전차의 기동성이 더욱 뛰어나
"M5(경전차, 스튜어트)나 M4(중형전차, 셔먼)들이 본국에서는 독일의 6호 전차, 즉 팬서형 전차와 타이거형 전차에게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완전히 잘못된 것입니다. 3군이 운용되기 시작한 1944년 8월 1일 이래로 손실한 전차의 수는 총 1,136대이며, 같은 기간 동안 3군이 격파한 독일군 전차는 총 2,287대입니다. 격파된 적 전차 중 808대는 타이거 혹은 팬서 전차였으며, 아군 전차 중 851대가 M4였습니다. 이 숫자들만 가지고도 우리 전차가 성능적으로 열세라는 주장을 반박할 수 있겠지만 여기에 또 하나 덧붙이고자 합니다. 이 기간 동안 3군은 계속 공세를 진행하고 있었으며, 따라서 전차 손실의 70% 이상이 적 전차가 아니라 엄폐한 대전차포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그 반면 적 전차는 대부분이 아군 전차에 의해 격파되었습니다. 두터운 장갑을 갖춘 타이거 전차를 거리 한 쪽 끝에 놓고 반대쪽의 M4 전차와 사격전을 벌이게 한다면 M4가 버텨내지 못할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M4는 기동성이 우수한 덕에 대부분 느리고 굼뜬 타이거 전차를 손쉽게 우회할 수 있고, 정면에서 사격을 주고받는 대신 취약한 후방을 노릴 수가 있습니다."
타이거의 주행가능 거리는 짧아
"내가 보기에 독일군은 무겁고 둔한 타이거의 등장과 함께 기갑전 능력을 상실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전차들은 지나치게 무거운 데다가 주행가능 거리까지 얼마 되지 않아 독일군은 이들을 전차가 아니라 숫제 포대로 운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독일군은 이 전차들을 아군 전차들을 막는 데 쓰게 되는 데 비해, 아군 전차들은 전차의 올바른 운용방법대로 항상 공세에서 적 보병들을 제압하는 데 투입되며 대부분 성공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3군을 따라 프랑스를 가로질러 진격한 기갑사단들이 타이거 전차로 무장하고 있었다면, 3군이 모젤 강에 다다랐을 때쯤에는 행군간 손실률이 100%에 달했을 것입니다. 그에 비해 수명이 긴 아군 전차들의 행군간 손실은 무시해도 좋을 수준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아군의 모든 전차들이 증기선에 실려 수송되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며, 여기에서 40톤과 70톤의 차이는 아주 분명한 것입니다. 70톤짜리 전차가 투입되었다면 우리가 중형전차들을 상륙정에 실어 해안에 내려놓은 것처럼 옮길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군의 거의 모든 전차들이 그랬던 것처럼 코탕탱 반도부터 라인강까지 주행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기계적 내구성과 정비 용이성에 있어 아군 전차들은 전역의 어느 전차보다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탁월합니다. 또한 독일 전차들이 가지지 못한 기계식 포탑구동장치와 포구안정장치라는 장점이 아군 전차들이 적 전차들을 격파하는 데 막대한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 '독일군 전차 한 대와 미군 전차 다섯 대의 교전비'는 누가 지어낸 건지는 몰라도 전혀 근거가 없는 말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미군이 아니라 영국군이 운용한 셔먼 때문에 생긴 말 같고, 그나마도 오해라고 생각합니다. 영국군은 1944년 캉 지구에서 독일군과 교전하면서 다수의 셔먼을 손실한 적이 있지요. 60년대와 70년대의 초기 전차 관련 서적들, 특히 미군 전차에 다룬 서적들의 거의 대부분이 영국인 저자들이 저술한 것이었습니다. 그때는 미국에서 쓰인 전차 관련 서적이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다수의 셔먼 관련 자료가 영국측 자료였고요. 그리고 영국군은 노르망디에서 실제로 많은 셔먼을 잃었고요. 이는 전차 자체 문제가 아니라 전술적인 오판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설명하기에는 너무 긴 내용이라 자세히 말하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영국군의 셔먼들은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독일군에게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리고 미군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미군 전차전력이 노르망디에서 독일군 전차들을 만난 일 자체가 거의 없었다는 것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상륙 후 첫 달의 전투는 대부분 7군단이 셰르부르로 진격하면서 코탕탱 반도에서 벌인 것들이었는데, 코탕탱 반도의 독일군 기갑전력은 노획한 프랑스제 전차들로 편성된 2개 대대 뿐이라 별 볼 일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전차전 자체도 별로 없었고요. 7월이 되면 미군이 보카주 지역으로 진입하면서 2기갑사단과 3기갑사단이 월말에 대규모 돌파작전인 코브라 작전을 개시하게 되는데, 보카주 지역도 전차전에는 그리 적절하지 못했습니다. 이번에는 독일군도 전차전력이 있기는 했습니다. 기갑교도사단과 SS 2기갑사단 '다스 라이히'였지요. '다스 라이히'는 지형 때문에 전차전 자체를 제대로 벌여보지 못했습니다. 한편 기갑교도사단은 7월 중순 큰 공세작전을 하나 시도하기는 했는데 미군에게 박살이 나고 맙니다. 어쨌든 두 사단 모두 미군 전차들하고는 거의 붙어볼 수가 없었습니다. 대신 미군 보병들과 구축전차들을 상대해야 했고 심각한 피해를 입었지요. 그리고 8월에는 돌파작전이 진행되어 미군 전차들은 브르타뉴를 지나 프랑스를 가로질러 파리까지 나는 듯이 달려갔습니다. 간헐적으로 전차간 교전이 벌어지기는 했지만 규모는 매우 적었고요. 미군이 처음으로 독일군 전차전력과 대규모 전차전을 벌인 곳은 1944년 9월 로렌의 아라쿠르에서였습니다. 미군 4기갑사단이 독일군 기갑여단 몇 개와 맞붙었는데, 그야말로 미군이 압도적으로 깔아뭉개 버렸습니다. 패튼의 3군이 로렌에 있던 독일군 기갑여단들을 상대로 완승을 거두었지요. 4기갑사단은 이 시기쯤 되면 훈련이 잘 되고 풍부한 경험도 축적한 상태였던 반면에, 독일군 기갑여단들은 신품 판터 전차를 대량으로 보유하고는 있었기는 해도 부대 자체가 새로 편성된 상태였기 때문에 경험 수준이 들쭉날쭉했으며 실제로 전투성과도 형편없었습니다. 그리고 이 전투가 2차대전 중 미 육군이 비교적 좁은 지역에 상당한 수의 전차를 투입해 벌인 전차전들 중 가장 치열했던 전투의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 Steven J. Zaloga
2차 대전 당시 미군의 전차는 성능이 형편없었고 압도적인 독일 전차들에게 상대적으로 많은 피해를 입었다- 영화 퓨리에서 나오는 서문으로 일반적으로 잘못 알려진 상식이다.
패튼의 이 자신감은 아라쿠르 전투에서 비롯된다. 독일군의 전차가 86대 격파 및 114대 중파/유기된데에 비해 4기갑사단의 셔먼은 25대 격파에 7대의 헬켓이 격파된것 뿐이다. 약 6대 1의 교환비. 그리고 육군항공대의 지원은 막바지에나 있었으며 전쟁기간동안 육군항공대의 대전차임무 실적은 미미하다. 셔먼의 장갑과 화력이 판터에 비해 부족하다는건 사실이나 그 열세에서도 패튼 휘하의 4 기갑사단이 안개낀 환경과 셔먼의 기동력을 이용해 판터를 우회해서 격파한 것이다. 이러니 패튼이 셔먼의 기동력을 강조한 것.
그러나 패튼의 위 연설 또한 100% 진실이라고 보기엔 어렵다. 당시 미군들은 노르망디이후 서부전선 전역에서 실제 6호 전차와 교전한 횟수는 3번에 불가했다. 당시 미군들은 독일 전차들을 전부타이거라고 불러서 교차검증이 어려운데다 실제로 미군이 주장하는 많은 수의 티거들은 사실 4호 전차나 여타 돌격포나 판터였다. 그리고 아라쿠르 전투같이 극소수의 제한된 전투나 교전을 제외하고 독일 전차들이 우세한 경우가 더 많았다. 그건 독일이 방어자의 입장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셔먼은 티거나 판터를 상대로는 확실히 불리했으며 4호 전차 상대로는 우세했지만 완전한 우세를 점하진 못했다. 연합군과 독일의 전차 교환비는 종전당시 3~3.3:1이었다. 패튼의 말에는 과장이 들어갔다는 말. 물론 지휘관들은 아군의 사기를 위해 전과를 부풀리는 경우는 어느 국가나 흔했기 때문에 패튼을 무조건 비판하기는 어렵다. 단지, 현실은 패튼의 말과는 조금 다를 뿐. 게다가 패튼은 일선 장병의 시선으로 전차를 보는게 아니라 지휘관의 입장에서 보고있기도 하고 말이다.
흔히 '셔먼 5대가 모여야 티거 1대를 상대할 수 있다'거나 하는 말이 유명하지만, 이는 현실과 거리가 멀다. 이 말은 미 제 3기갑사단 야전 정비대대 출신이었던 벨튼 쿠퍼가 자신이 전투에서 손상된 셔먼들을 수리하며 개인적으로 분석한 것과 전차병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판터의 공방 성능을 평가하면서 셔먼의 5배 정도 된다고 했던 것이 와전된 것이다. 벨튼 쿠퍼는 슈퍼 퍼싱의 화력 시험과 장갑 강화 작업에도 참여했으며, 전장 최일선에서 박살난 전차들을 직접 피격 부위와 손상 정도를 파악하고 수리 및 재정비해 전장으로 돌려보내던 일을 하던 인물이다. 물론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보다 낫겠지만 그가 소속된 부대는 600%에 육박하는 손상률과 200%에 달하는 완전 손실을 기록한 부대라 편향된 시각을 가질 수밖에 없었으며, 위에 나온 것처럼 실제로 싸우던 전차병조차도 적 전차를 싸잡아 티거로 부르던 시절인데 정비부대에 있으면서 주워들은 정보를 바탕으로 평가하는 데는 명확한 한계가 있다.
제대로 된 자료를 보자면 영국군이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동해 8월 12일까지 미군과 독일군간의 전차간 교전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미군측 전차병력이 독일측의 2.2배 이상인 경우는 항상 승리하는 결과가 나왔다. 독일군의 경우는 미군에 대해 1.5배의 병력을 동원한 경우 승리했다.
셔먼이 6호 전차 티거를 만났을 때 후퇴해도 죄를 묻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원래 2차대전 당시의 미국의 전차는 티거든 판터, 심지어 마우스 초중전차를 만났을 때만이 아니라 3호 전차나 4호 전차 같은 셔먼보다 가벼운 전차를 상대로도 원칙적으로 전차는 싸우면 안 되는데, 왜냐하면 미군의 군사교리에 의하면 그들의 상대는 M10 울버린같은 대전차 자주포지 전차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전차 자주포나 대전차포 부대가 준비를 끝내면 전차는 후퇴해도 좋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 역시 사실이 아니다. 미군은 전차 자체의 대전차 전투도 충분히 고려하고 있었고, 이는 전쟁 초창기 M3 리의 차체에 장착하는 방식으로 억지로라도 75mm 포를 달아 적 전차와 싸울 능력을 부여하는데 집착한 데서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그 증거로, 미군은 티거도 판터도 본 적 없던 1941년 9월에 이미 M4에 76mm 포를 시험 장착할 정도였다. 최초로 장착한 버전인 M4A1(76)W가 전장에 배치되지 않은 것은 대전차전을 무시했기 때문이 아니라 시험 결과 포탑이 지나치게 비좁아서 전투 불합격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이는 M26 퍼싱이 더 일찍 배치되지 않았던 이유와 동일하다. 당시 미군 교범들을 봐도 일반 전차 역시 최우선적으로 적의 전차를 먼저 제압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보병 지원이 중요하다고 해서 대전차 전투를 등한시한 게 아니라, 전차를 잡는 것 자체가 보병 지원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전차를 뚫어서 파괴시키는 것이 유일한 전차를 제압하고 상대하는 방법이 아니였다. 탱크의 궤도를 박살내거나 주포를 날려버리거나 전차병을 기절시키거나 탱크의 광학을 망가뜨린다던가하는 방법 아니면 복합적인 방법으로 탱크를 제압하는 방법이었다.
해당 교범엔 대전차 자주포(Tank Destroyers)의 보조 역시 명시되어있는데, 대규모 기갑전투가 벌어지면 아군 전차가 전방에서 몸빵을 하는 사이 대전차 자주포가 적 전차들을 보다 우수한 화력과 낮은 차체, 오픈탑의 넓은 시야를 살려서 두들겨 패며 전차와 함께 싸운다는 것이지 아군 전차가 대전차 자주포 뒤로 도망가진 않았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전, 즉 1943년까지는 이런 교리가 아주 잘 먹혀서 횃불 작전과 시칠리아 전투에서 미군측 셔먼은 3호 전차, 4호 전차나 엘레판트 등을 때려잡으며 대활약을 했다. 그 뒤 독일이 수세로 틀어박히고 5호 전차 판터나 티거 2를 본격적으로 투입하면서 피해가 발생했을 뿐...
다만 이 대전차 자주포 운용은 2차대전 이후 실패로 평가 받는데 이유는 전차가 몸빵하는 동안 대전차 자주포가 적 전차를 잡느니 그냥 전차에 강력한 포를 장착 하는 것이 낫다는 점과 대전차 자주포의 쓰임이 너무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결국 2차 대전 당시 실제 전장에서는 전차가 나타났다는 이유만으로 멋대로 후퇴하면 전시 적전(敵前)도주죄로 간주되어서 군법재판에 회부될 수 있었다.
6.25 전쟁에서도 북한군의 T-34-85에 맞서기 위해 투입되었으며, 우수한 차량 성능과 대전 기간을 거친 압도적인 승무원 숙련도에 힘입어 T-34-85를 몰아내는데 기여했다. 전쟁 중후반이 되어 적 전차가 싸그리 다 녹아내리고 나자 낮은 주행성능의 M26 퍼싱이나 기계적 신뢰도에 문제가 있는 M46 패튼보다 더 선호받았다. 낙동강 전선에서 T-34-85들이 멸종 위기에 처했을 무렵에 북한군이 하도 떼거지로 달라붙어서 부수려고 해서 4개의 탱크가 한개의 조를 이루고 뒷쪽 탱크가 포탑을 뒤로 향하면서 주로 이동했다고 한다. 달라붙었을 땐 서로 기관총 사수들이 샤워를 해주면서 가야했다.
전후에는 더 이상 생산되지 않았으나 워낙 만들어둔 숫자가 많아(5만대 이상) 세계 각국에 마구 뿌려져 전차를 처음 운용하게 된 신생국들이나 재정이 넉넉치 않은 서방 국가들에게는 보약같은 존재였다. 특히 네 차례에 걸친 중동전쟁을 통해 현대 전차 운용의 훈련 조교로까지 떠오른 이스라엘군에게 있어 셔먼은 둘도 없는 소중한 전력으로서 제1차 중동전쟁 시절 부터 사용했다. 당시 이스라엘군은 군대라 부르기 부끄러울 정도의 무장 수준이었는데 어떤 병참 장교가 수소문해서 이탈리아에서 고철로 스크랩 처리 하려던걸 30여대 얻어왔다. 이것들도 무장이 제거된 상태라서 독일제 곡사포를 갖다 박았고 셔먼 특유의 수많은 바리에이션 탓에 각 차량들 끼리도 호환되는 부품이 별로 없을 정도였다. 그래도 없는것 보단 나아서 이스라엘군의 유일한 기갑전력으로 활약했고 이때 얼마나 혹독하게 굴렸는지 종전 후엔 14대만 살아남았다. 2차대전 당시와는 전혀 다른 전차로 대폭 개수되었으나 아랍 연합군의 T-55까지 발라버리는 활약을 펼치기도 했다.
한국에도 M4A3E8 셔먼 이지에잇을 운용했는데 6.25 전쟁 중 해병대에서 1개중대급으로 운용했고 전쟁이 끝나고 1년뒤 1954년에 미군이 철수하면서 6.25 전쟁 간 투입한 679대 중 388대를 한국에 넘겨주었다. 이후 4.19 혁명에서도 진압군의 차량으로 쓰이며 후대처럼 5.18의 M47 패튼이나 M48 패튼 꼴이 될 뻔 했으나 계엄군이 시민의 손을 들면서 없던 일이 되었다.
이스라엘이 셔먼의 노인 학대와 마개조로 특히 유명한데, 이스라엘의 험난한 여건상 어떤 병기든 쓸 수 없어질 때까지 골수까지 빨아먹으며 아껴 써야 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불과 몇십년 전까지 이스라엘은 보유한 M4를 엔진이나 주포, 장갑을 지속적으로 개량하면서 현역 장비로 운용했었다. 이러한 개량형인 '슈퍼 셔먼'이나 '아이 셔먼'은 마개조의 결과와 노련한 전차병들의 활약에 힘입어 중동전쟁 등지에서 소련제 최신형 전차, 심지어는 M48에 꿇리지 않는 대활약을 보여주어 전후 셔먼의 대명사처럼 되었다. 노인 학대 방법도 참 다양하다
워낙에 우월한 이미지 덕에 보통 이들을 마지막 셔먼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칠레의 M60 HVMS가 셔먼의 끝이다. 칠레는 페루가 소련제 무기를 야금야금 들여오고, 아르헨티나와 국경분쟁이 생기자 국방력 강화의 필요성을 느낀다. 그러나 칠레는 돈이 없었고, 구세대 전차를 개량할 계획을 세우는데, 딱 마침 이스라엘의 셔먼 재고가 풀린 것이다. 이스라엘에게 들여온 아이셔먼에 NIMDA 사의 60MM HVMS(Hyper Velocity Medium Support) 포를 장착하고, 사격통제장치와 엔진의 개량도 이루어졌다. 메르카바 MK1의 M111 APFSDS탄을 개량한 60mm APFSDS탄도 만들어졌으며, 관통능력은 페루의 T-62나 T-55/54와 견주어도 전혀 꿀리지 않았다고 한다. 칠레가 레오파르트1V과 AMX-30B2를 도입하면서 2선으로 물러났고 2000년대 들어서 드디어 퇴역했다고 한다.
이 생명력의 라이벌이라 할만한 T-34는 북한과 아프리카 몇몇 국가에서 아직 2선급 전투용으로 현역이며 심심하면 한번씩 등판해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그리고 파라과이에서 2018년을 마지막으로 셔먼 전차가 퇴역하면서 T-34의 승리로 끝났다.
대량 생산된 만큼 엄청난 바리에이션이 있으며, 위의 사진은 그 바리에이션이 혼합된 절정을 보여주는 차량이다. 상세하게 설명하자면 사진의 차는 차체가 전형적인 후기 용접형이면서 조종수 관측창은 돌출된 전기 용접형의 특징을 가진, 일반적인 자료에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희한한 물건.이 녀석의 정체는 엔진실이 차체의 뒷부분이 더 긴 M4A4의 형태에 HVSS를 단 희귀한 녀석이다. 차체는 전기용접형과 차이점이 있는 후기용접형중 초기형태. 전면장갑은 초기형의 조종수 관측창이 돌출되면서, 후방장갑은 90도의 직각에서 경사를 어느정도 준 형태이며, 그외 일부 차이점도 있고, M4, M4A1, M4A2 그리고 M4A4의 후기형이자 가장 늦게 배치된 M4A3 셔먼의 초기형과 차체 길이와 HVSS를 빼면 형상이 거의 같다. 그중에 또 M4A4의 후기형으로 불리는 것들 중 HVSS를 탑재한 차량은 극소수이며, 실전엔 투입되지 않고 본토에서 훈련용으로만 쓰였다.
A1부터 A4(이후)까지
아래의 파생형들의 성능은 전부 비슷하다. 엔진과 차체에 따라 분류되었을 뿐이다. 게다가 앞서 설명했듯이 서로간에 부품이 호환되므로 짬뽕으로 만들어지는 녀석도 상당히 많았고, 아예 차체를 공유하는 M4, M4A2, M4A3는 차체 뒷면 장갑판의 형상이나 연료 주입구 캡의 위치와 엔진데크 형상을 확인하기 전까진 구분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흔히 생산시기별 특징에 따라 극초기/초기/중기/후기/최후기형으로 구분하곤 하는 독일 전차들과 달리 셔먼의 경우 이런 구분조차 무의미하다. 독일과는 달리 미국은 각 기업에서 무기를 생산했는데 이는 셔먼도 예외가 아니었다.
용접으로 조립된 차체를 지닌 최초의 양산형 셔먼. 사진의 차량은 후기형 포방패, 중기형의 일체형 트랜스 미션커버와 스틸바 타입의 궤도를 달고 추가 장갑이 용접되었다. 돌출된 조종수석과 부조종석 앞의 돌출부는 해치로 탈출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목적이었으나 경사각이 크게 줄어드는 약점 부위로 작용했기 때문에, 1943년 이후 1인치(25.4mm) 두께의 추가 장갑판을 용접해서 붙이는 개량이 이루어졌다. 측면 장갑의 별이 칠해진 부분도 탄약고 바깥에 1인치 두께의 장갑판을 추가로 용접한 것이다.
주조로 만들어진 차체를 지닌 셔먼. 둥글둥글한 차체 형상 때문에 터틀백(Turtleback)이라는 애칭으로도 불렸다. 실제 양산과 배치는 M4보다 먼저 이루어 졌다. 이 형식의 캐나다군 버전이 그리즐리 1. 사진의 차량은 차체 전면 조종수석과 부조종수석에 직시형 관측창이 달린 초기형 차체에 아무런 패턴 없이 밋밋한 고무제(물론 전체가 통고무로 만들어 진건 아니고 타이어 처럼 철사로 짜여진 구조위에 고무를 덧씌워 성형한 타입) 궤도를 갈고 있는데, 차체 전면의 직시형 관측창은 주물 제작된 M4A1 외에도 초기형 셔먼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징이다.
용접 차체를 갖고 있으며, 특징이라면 디젤엔진 2개를 연결해서 만든 엔진을 달았다는 것이다. 가솔린 엔진을 얹은 셔먼을 쓰던 유럽전선에서는 사용되지 않고 영국군과 소련군에 무기대여법으로 제공되거나 디젤유를 많이 쓰던 태평양전선의 미 해병대에게 보내졌는데, 이 결정은 일본군을 패닉에 빠뜨렸다. 화염병을 셔먼의 엔진에 던졌는데 무용지물인 것. 가솔린 엔진을 단 셔먼이라면 화염병 공격에 불탔을 것이다.
첫번째 사진의 차량은 위에서도 언급 된 자유 프랑스군 소속 전차. 차체는 아직 조종수석과 부조종수석 전면에 돌출부가 있는 초기형으로, 해당 차량에는 포탑 전면과 측면 장갑의 탄약고 부분에 추가 장갑을 용접했다.
엔진과 차체가 가장 궁합이 맞아서 셔먼중에서는 가장 양호한 주행성능을 자랑했고, 덕분에 셔먼중 최대의 생산량을 자랑하며 생산량의 거의 전량을 미군이 사용한 형식이다. 생산량이 워낙 많은데다 그만큼 미군이 많이 썼기 때문인지 이런저런 테스트용으로 사용되거나 이 형식의 셔먼을 기본으로 GMC나 HMC같은 파생차량 개발에 써먹은 경우가 많다. 대전 말 등장한 미군의 신형전차인 M26 퍼싱과 같은 계열의 500마력 GAA V8 엔진을 사용한 덕분에 대전 후에도 미군이 직접 운용한 유일한 형식이다.
첫번째 사진의 차량은 취약점으로 지적되어 왔던 조종수석과 부조종수석이 돌출된 구조의 초/중기형 셔먼들의 차체전면과 달리 장갑 각도가 수정되어 좀던 단순화된 실루엣을 가지고 있으며 트랜스미션 커버 또한 방어효율을 고려한 형상의 '샤프노즈'형이다. 위에 소개된 다른 형식의 셔먼과 비교해보면 미묘한 차이를 알 수 있다. 포탑은 초기형 포탑에 전면 장갑을 추가로 용접한 개량형이다.
트럭 엔진 5개를 연결해서 만든 크고 아름다운 크라이슬러 A57 멀티뱅크 엔진을 장착한 셔먼. 하나만 있어도 골치아픈 엔진이 5개나 되고 그걸 한 틀에 구겨넣은 덕분에 정비가 번거로워지고 신뢰성이 안드로메다로 날아갔다는 문제점이 있다. 미군은 이런 복잡한 엔진을 정비하기 싫었는지, 대부분의 물량이 영국군에게 넘겨졌다. 그리고 상당수가 셔먼 파이어플라이로 개조됐다. M4A4 셔먼을 재생하는 모습으로 크라이슬러 A57 멀티뱅크 엔진도 파트 2부터 리빌드된다. 주물 제작인 M4A1을 제외한 각진 셔먼중에선 유일하게 엔진데크를 확인 하지 않아도 구분이 가능한 유일한 형식인데, 바로 이 엔진이 너무 컸던 탓에 차체를 약간 연장 시켜야했고, 이 때문에 서스펜션 사이의 보기륜 간격이 다른 셔먼들 보다 크다. 사진의 차량은 M3 리/그랜트 전차와 같은 형식의 리벳 접합된 3분할 구형 트랜스미션 커버를 달고 있다.
이스라엘이 M50을 굴려보고 성능에 크게 만족한 결과, 기존 M50으로 개조되어 있던 차량은 물론 구식화되어 전시 예비전력으로 보관 중이던 세계각국의 셔먼 재고까지 있는 대로 긁어 모아 마개조 끝에 만들어낸 물건으로, M50에서 좀 아쉬웠던 부분인 공격력은 대형화된 포탑에 프랑스제 MBT AMX-30과 동형의 CN-105-F1 105mm 전차포를 장착함으로서 해결했다. 단, 완전히 같은 포를 올린 것은 아니고 56구경장의 105mm를 올리기에는 너무 포신 길이가 길었으므로 44구경장으로 줄인 주포를 탑재했다.
덕분에 셔먼 중 실전에서 대량으로 쓰인 물건 중에선 최강의 화력을 자랑. 6일 전쟁 도중 T-55를 다수 격파한 사례가 있을 정도니 말이다. 다만 구식에 비교적 소형인 셔먼의 플랫폼에 무리하게 105mm 전차포를 때려 넣은 결과, 무게가 크게 늘어난 데다 그 늘어난 하중의 대부분이 포탑 전방에 집중돼 있어 차제 특정 부위에 가해지는 기계적 피로도가 심각했고, 그래서 평시엔 이동이나 장기간의 정차시 가급적 트래블링 록에 포신을 고정해 두도록 지시했다. 주포 사용시에도 주의할 점이 있었는데, 포신을 잘라내고 특이한 형태의 소염기를 장착해 발사 반동을 최대한 억제했음에도 불구하고 차체가 불안정한 상태에서 주포를 발사하면 반동으로 심하면 포탑이 제자리에서 벗어나 전투 불능에 빠지기도 했다고 한다. 때문에 주포를 발사할 경우 가급적 차체와 포탑을 동일선상에 정렬시킨 후 기어를 중립에 놓고 사격하는 것이 권장됐다고. 특이하게도 주물로 제작된 M4A1 차체를 베이스로 개조된 차량이 많이 보이는데, 이는 주물 제작 특성상 이음매가 없고 둥그스름한 형상이 포탄 피격시 방어 효과가 좋다고 평가한 이스라엘 육군이 M4A1 차체에 우선적으로 105mm 포를 탑재했기 때문이다. 제4차 중동전쟁까지 현역으로 활동했고 80년대 초반까지 예비물자로 보관 중이었지만 퇴역 결정이 내려지면서 전량이 칠레 육군으로 수출돼 1989년까지 칠레에서 현역으로 활동했다.
전반적으로 셔먼의 생산성과 신뢰성은 뛰어나다고 평가받아왔다. 태평양과 대서양을 건너서 전차를 수송해야 했던 미군은 셔먼이 본국으로 되돌아가서 수리를 받을 필요가 없도록 신뢰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었고 이를 받아서 운용해본 소련군은 고장이 잘 나지 않고 튼튼한 전차라며 호평하였다. 중량에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현지 수리 및 개수도 용이했고 미군 기술자들도 개수에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셔먼의 높은 생산성이라는 관점에 대해서는 현대에 들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문제는 셔먼이 지니는 구조적 복잡성이다. 일단 셔먼의 현가장치를 보자. 구조도를 찾아보면 현가장치만 해도 자잘한 부품 천지다. 사실상 셔먼의 구조는 T-34보다 복잡하고, 다른 나라의 중전차들에 비해서도 단순하다 하기 어렵다. 덕분에 설계상 기대할 수 있는 생산성은 다른 전차에 비해 그리 높은 편이 아니었다.
즉 셔먼의 방대한 생산과 신뢰성은 해당 국가인 미국이 광대한 영토와 풍부한 물자와 인력을 가지고 생산공정의 표준화, 부품의 표준화 등을 추진하면서 대량 생산이 가능한 구조를 갖춘 것이 이유다. 이 표준화의 강력함을 대량생산의 대명사 T-34와 비교해 본다면 잘 알 수있다. T-34는 "모든 공장"에서 똑같은 부품이 나온다. 때문에 공장의 능력에 따라서 형태와 품질이 조금씩 다르며, 심하면 다른 공장의 부품과 호환이 되지 않는다. 결국 "각각 다른 품질의 같은 부품"을 생산하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셔먼은 "각 공장"에서 자신이 잘 하는 방식으로 호환되는 부품을 만든다. 똑같은 형태가 아니여도 기능만 같으면 되는 것이다. 때문에 각 공장의 생산 속도는 느려도 모든 공장들이 동시에 "최고 품질의 호환되는 부품"을 생산하게 된다.
소련도 광대한 영토와 많은 물자, 인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 많은 기갑차량들과 그것들의 개량형과 개조형들을 대량 생산한 것이다. 이들이라고 기본 설계를 유지하면서 단일 제품을 대량생산 하지는 않았다. 당장 전선의 필요에 따라 각종 무기들을 연구/개발하였다. 그럼에도 독일과 차이가 나는 것은 기본적인 국력차이가 너무 심하게 났기 때문이다. 다만 통념처럼 독일 역시 절대 자원적으로 불리하진 않았다. 전 유럽의 자원과 공장을 이용할 수 있었던 독일이다.
2차 세계 대전에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알고 있는 이야기이지만, 결국 셔먼을 2차 세계 대전에서 활약한 주요 전차로 만든 것은 미국의 막대한 생산력이었다. 셔먼이 대량으로 전선에서 소모되기 시작한 노르망디 전역 이후부터의 상황을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당시 셔먼은 위에서 설명한 기계적 문제 이외에도 시대착오적인 서부 연합군의 전차 전략관과 전술이라는 문제에 직면해 있었다. 당시 두 나라의 전투교리는 간단히 말해 영국은 '(보병과 함께) 밀어붙이기', 미군은 '전차? 그거 원래 장갑 기병대잖아? 적 전차는 대전차 자주포로 잡는 거 아냐?'였다. 이 상황에서 독소전쟁에서 살아남은 노련한 독일 전차부대와 조우할 경우 셔먼은 생존을 보장받기 어려웠다.
결국 노르망디 상륙 직후 벌인 굿우드 작전에서 영 연방군은 3일만에 500대 이상의 전차를 잃었다. 공격 선봉인 캐나다군 기갑부대의 전차는 죄 셔먼이긴 했지만 그 뒤를 따르던 보병부대에 배치된 셔먼보다 방어력이 낫다는 처칠 전차도 뻥뻥 터져 나갈 정도로 막대한 손해를 입었다. 이후로도 1944년 서부전선의 연합군은 순식간에 기갑사단의 모든 장비를 싹 새걸로 갈아치우는 참사를 수 차례 겪어야 했는데, 그러고도 차가 남아돌았다. 결국 미국이 워낙 먼치킨 같은 공업생산능력을 갖춘 국가라 그런 희생을 우습게 만들었던 것뿐이다.
보다 구체적인 사례를 보자면 미국 제3기갑사단은 1944년 7월 9일(노르망디전역에 투입된 날)부터 1945년 4월 30일(실질적 종전일)까지 총 전차손실이 580%(!)에 달했다. 물론 전차손실이라고 해서 모두 완파라고 생각하면 안되며, 전투에 투입하기에는 손상이 심해서 후방으로 후송된 차량도 손실로 취급되기 때문에 600%보다는 낮긴 하다. 하지만 완파된 것만 따져도 200%정도였다! 자료출처겸 자세한 내용. 그래서 1944년 6월에는 전 사단의 전차가 75mm였는데 11월에는 전부 76mm로 대체돼 있기도 했다. 물론 장비가 남아서 갈아준 게 아니라, 죽은 만큼 채워준 결과다. 그리고 이렇게 셔먼을 소모하고도 셔먼은 아직 수만 대가 미국과 영국에 신품 상태로 남아 있었다. 영국군만도 전쟁이 끝났을 때 수천 대나 되는 재고 셔먼을 안고 있었는데, 그 양은 미국이 안은 재고의 3분의 1 수준이었다.
문제는 미군은 저 짓을 하면서도 4년 동안 24척의 에식스급 항공모함과 100척이 넘는 호위항공모함을 띄웠으며, 200여 척이 넘는 구축함을 찍어냈고 리버티쉽급 수송선을 하루에 한 척씩 띄웠다는 것이다. 셔먼이 생산된 지역은 디트로이트를 중심으로 한 미시간주와 일리노이 주변으로 한정되어있었고, 나머지 지역에서는 제각기 다른 병과에서 필요한 병기를 생산하고 있었다. 이렇게 미국 전역에서 육해공군 병기가 쏟아져나오는 동안 추축국은 디트로이트는 커녕 미국 동부조차 공격할 방법이 전혀 없었다. 그나마 있다고해도 일본군이 있었지만 공장지대가 아닌 하와이를 한번 때린 후 전선이 뒤로 밀려나가는 바람에 미국의 공장들은 정말 말 그대로 쌩쌩 돌아갔다. 즉 아무리 전쟁이라도 군수공장이 안전하면 쏟아져 나오는 물량은 막을 길이 없다는 것.
높은 신뢰성 역시 미국의 생산력 때문에 고평가되는 측면이 있다. 셔먼은 비록 복잡한 구조라 할지라도 미국 공업력의 힘으로 전체적인 부품의 질이 높고 표준화가 잘 되어 있었다. 셔먼의 다채로운 파생형들의 대다수가 제조 공장의 차이로 생겨난 것이지만, 그럼에도 보급에 무리가 가지 않았다는 것에서 알 수 있다. 독일처럼 생산 도중에 사소한 변경 사항을 적용하기 위해 즉석으로 설계를 변경하는 우를 범하는 대신, 전차병이 요구한 개선안을 파생형을 도입하면서 현대식 블록 형식으로 도입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더불어 끔찍한 소모율와 더 끔찍한 생산력 덕분에 고장날 만큼 굴리기도 전에 격파되서 폐기처분되거나 전면 오버홀 받으러 가는 비율이 높았다. 결국 사소한 고장이 나도 수리하는 것보다 재고를 실어다 배치하는 게 더 빠를 지경이었으니 신뢰성 문제가 나타날 수 없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거기다 상대는 중구난방인 전차 개발 계획으로 노력을 낭비했고 끝없는 패배 속에 공업력 자체가 소멸해가던 독일과 전쟁 전에도, 전쟁 중에도 부품 규격화같은 건 꿈도 꾸지 못한 일본.
하지만 소련군의 T-34도 부품의 내구성을 딱 평균적으로 격파될 수명에 맞춰서 설정하고 설계와 품질 관리를 간략화했기 때문에 격파된 전차를 새 전차로 교체하는 운용 방식은 셔먼과 거의 동일했다. 소련군이 셔먼에게 준 칭송에서 볼 수 있듯 셔먼의 신뢰성이 소련제 전차들보다 대체적으로 우수했다는 점은 확실하다고 볼 수 있다. 변속기같은 경우 셔먼은 힘을 많이 받는 부분은 2중나선톱니바퀴를 사용하여 전장에서의 험한 기동에도 좀 더 잘 버텼다고 한다. 독일의 판터는 2중나 선톱니바퀴를 충분히 생산할 수 없어 일반 톱니바퀴를 써야했는데 그로 인해 조종수들이 엄청나게 신경쓰면서 움직여야 했다고 한다. 소련의 T-34는 가동시간은 14시간으로 설정했지만 셔먼은 무려 40시간으로 세 배 가까이 높게 설정하여 만들어지는 등 부품의 내구성도 우수하고 고장났을 때의 정비성도 타국 전차들에 비해 나았다고 한다.
또 신뢰성이 생산력의 힘으로 고평가된다는 주장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T-34가 가진 Uralzavod에서의 초기생산과정에서의 높은 불량률은 생산량 증대에 따라 급격하게 개선되어가는데, 설계단위당 생산량의 증대는 생산공정의 개선을 통한 생산성 증대 뿐만 아니라 생산과정에서의 불량률 감소를 통해서도 생산성을 증대시킨다. 생산력 때문에 신뢰성이 고평가된게 아니라, 생산량이 증대될수록 신뢰성이 증가한다고 보는게 보다 정확한 평가.
마지막으로 단순한 기계적 신뢰성만이 신뢰성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대부분의 셔먼은 정비성을 상당히 중시하여 기존 미군 전차들과 마찬가지로 차체 뒤쪽의 문을 열고 엔진의 일부에 접근할 수 있었고, 전면 변속기는 차체 하단 장갑을 볼트로 체결함으로서 2시간 정도면 이를 열고 변속기를 교체할 수 있었는데, 이는 차체 상부에서 크레인을 써서 변속기를 들어내야 했던 판터에 비하면 1/3에 불과한 시간이었다. 잘 규격화되고 표준화되어 대량생산되는 부품들에 정비성도 좋은 것은 작전시 신뢰성을 높일 수밖에 없는 요소다.
총평
일반적으로 셔먼에 대한 평가는 T-34같은 전차들에 비해 상당히 박한데, 전후 소수의 독일군 전차나 승무원의 전적만 보고 셔먼이 일방적으로 격파되었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와는 다르게 셔먼은 2차대전 전차 최고의 소프트웨어 스펙을 가지고 있었다. 소프트웨어 스펙만은 2차대전 독, 소, 영을 뛰어넘어 1세대 전차에 준했는데, 대표적으로 Command's Override, 수직 안정기, 많은 관측장비, 넓은 용적, 전기/유압 포탑회전 등(셔먼이 가진 수 많은 소프트 스펙 중에서도 몇 개만 쓴 것이다!)이 있으며, 셔먼을 제외한 2차대전 전차들은 이들 중 겨우 한두 개만 가질 뿐이었다. 환율, 전시상황을 제외하고 전차만 본다면 티거보다 비싼 전차라는 이야기가 나올정도였다.
당연하지만 셔먼이 당시 독일군의 판터나 티거, 티거 2같은 중전차들에 비해 장갑이나 화력이 약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미군은 태평양과 대서양을 건너 연합군에게 셔먼을 대량 수송해야 하기에 수송 무게한도를 함부로 늘렸다간 행정적 비용이 대거 발생해서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행정적 비용을 아껴보자고 나온 전차전 교리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이유가 크다. 위험한 상륙작전을 성공시켰으나 초기 상륙후 작전에 580%의 소모율은 대중 눈에는 저평가 받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셔먼은 그렇게 일방적인 화력과 장갑 스펙 두가지만으로 평가할 수 없는 전차이다. 체급 값을 충분히 하여 75mm포만으로도 3호/4호 전차를 상대로는 전쟁 내내 우위를 점한데다 전쟁은 순수한 전차전만 치루는게 아니다. 당연하게도 전쟁의 중심은 보병이고 보전합동작전을 하기위해 보병과 함께 작전할 대규모의 전차가 필요했으며 대량 생산과 부품호환이 잘되는 셔먼의 설계 자체는 상당히 우수했고, 대전기와 전후 파생형 셔먼들이 입증하듯 뛰어난 확장성을 기반으로 수많은 개량형이 등장했다. 특히 중량 제한을 한계까지 활용한 점보 셔먼은 소련군의 중전차처럼 활용되어 전선 돌파에서 탁월한 성능을 보여주었다. 셔먼은 딱히 기계적으로 지나치게 복잡하여 유지보수가 어렵다거나, 생산성이 떨어지는 전차가 아니었으며 신뢰성도 뛰어난 전차였다. 태평양과 대서양을 건너야 했던 탓에 본국으로 되돌려보내서 수리나 대규모 오버홀을 시킬 수 없는 여건에서, 셔먼의 신뢰성은 있으면 좋은 장점이 아니라 병기로서 기능하는 데 필요했던 필수적인 기능이었던 것이다.
물론 T-34같은 전차와 비교한다면 셔먼의 생산성은 구조적으로 그렇게 높다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같은 설비와 자원으로 막 찍어내는 데에 있어서는 셔먼은 그렇게 유리한 설계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셔먼은 기계적인 신뢰성 면에서는 우수한 전차였으며, T-34와는 달리 내부용적이 매우 넓었기 때문에 승무원 거주성에서는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우수한 수준이었다. 덤으로 성능 향상을 위해 필요한 여유를 충분히 두고 설계했다는 점이 결정적이다. 이런 측면에서 셔먼은 더 가벼운 3, 4호를 상대로는 물론이고 T-34-85 같은 거의 같은 체급의 중형전차와 비교했을 때도 결코 떨어지는 성능을 지녔다고 볼 수 없으며 오히려 론슨라이터나 깡통이라는 저평가는 매우 부당하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한국전쟁 때 T-34-85와 싸운 이지 에잇은 T-34-85를 문제없이 박살냈으며. 소수 투입된 75mm 셔먼도 T-34-85를 큰 무리 없이 박살내고 다녔다.
서방쪽에서보다 러시아쪽에서 더 높은 취급을 받고 있다. T-34까지는 아니지만 셔먼은 조국을 수호한 전차 중 하나로 러시아에서 대우받고 있으며, T-34와 셔먼을 둘 다 경험했던 전차병들은 카탈로그 스펙에서 드러나지 않는 거주성과 기계적인 신뢰성 등에 매우 좋은 평가를 매겼다.
첫댓글 자료를 보니 M4 전차는 총 5만대가 생산되었습니다. T-34 전차는 총 9만대가 생산되었는데 아직도 굴러다닌다고 합니다. 소련에서 왜 이렇게 전차를 많이 만들었냐고 물었더니 그냥 많이 만들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