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詩 한 수] 만나야 울린다
거문고에 본디 거문고 소리가 있다면,
상자 속에 넣어 둘 때는 어찌 울지 않는가.
소리가 손가락 끝에 있다면,
어찌 그대의 손가락에서 그 소리를 듣지 않는가.
若言琴上有琴聲(약언금상유금성),
放在匣中何不鳴(방재갑중하불명).
若言聲在指頭上(약언성재지두상),
何不於君指上聽(하불어군지상청).
―‘거문고에 관한 시(금시·琴詩)’ 소식(蘇軾·1037∼1101)
*갑(匣) : 물건을 담는 작은 상자
*지두(指頭) : 손가락의 끝부분
제목만 보면 이 시에서는 달빛 아래 거문고 소리가 흐르고 선비의 마음이 맑아지는 장면을 기대하게 된다. 그러나 시인은 소리를 묘사하는 대신 뜻밖의 질문을 던진다. 소리가 거문고에 있다면 왜 상자 속의 거문고는 울지 않는가. 소리가 손가락에 있다면 왜 손끝에서는 음악이 들리지 않는가. 거문고만으로도 안 되고, 손가락만으로도 안 된다. 좋은 악기와 좋은 손길, 거기에 마음이 함께 움직일 때 비로소 음악이 태어난다. 좋은 조건만으로 일이 되는 것도 아니고 의욕만 앞선다고 성과가 나는 것도 아니다. 결국 재능은 기회를 만나야 하고 기회는 준비된 사람을 만나야 한다.
흔히 당시는 서정을, 송시는 이치를 즐겨 말한다고 한다. 그래서 송시는 때로 짧은 논설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시도 그런 예다. 시적 향기는 짙지 않지만 한 번 들으면 잊히지 않는 깨달음이 있다. 불가의 게송(偈頌)과도 닮았다. 살다 보면 우리는 자주 탓할 대상을 찾는다. 악기가 나쁘다거나 손가락이 둔하다거나 세상이 도와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음악이든 삶이든 어느 한쪽의 공로만으로 이루어지는 일은 드물다. 어려운 철학을 책상 위에 두지 않고 거문고 상자와 손가락 끝으로 끌어내린 성찰이 흥미롭다. 삶도 결국, 제 소리를 찾아가는 조율의 예술이다.
‘숭정금실(崇情琴室:숭정의 거문고를 모신 집)’, 완당 김정희(阮堂 金正喜, 1786-1856), 숭정 11년(1683년), 36.2x138.2cm, 관송미술관 소장.
✵소식(蘇軾, 1037~1101) : 북송北宋의 문학가이자 서화가, 시인, 문장가, 학자, 정치가로 자는 자첨子瞻, 화중和仲을 썼고 호는 동파거사東坡居士, 소동파蘇東坡이다. 미주眉州 미산眉山(지금의 쓰촨성四川省) 사람이다. 인종仁宗 가우嘉祐 2년(1057)에 아우 소철蘇轍과 함께 진사가 된 뒤 벼슬을 살다가 중앙에서 쫓겨나 오랫동안 변방에서 고초를 겪었다. 시詩·사詞·문文·서書·화畵에 두루 능하여 중국 역사상 귀한 다방면에 걸쳐 예술적 성취를 이룬 인물이다. 구양수歐陽脩의 뒤를 이어 북송의 문단을 이끌었고, 부친 소순蘇洵 및 아우 소철과 함께 삼부자가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자리를 차지하며 가문의 문풍을 날렸다. 사에서는 신기질辛棄疾과 함께 소신蘇辛으로, 시에서는 황정견黃庭堅과 함께 소황蘇黃으로 병칭되었으며, 그림에서도 황정견黃庭堅, 미불米芾, 채양蔡襄 등과 함께 송사가宋四家로 불렸다. 작품집으로 《동파칠집東坡七集》과 《동파악부東坡樂府》 등을 남겼고, 《동파전집東坡全集》 150권이 전한다.
[참고문헌 및 자료출처 :〈이준식의 漢詩 한 首(이준식, 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동아일보 2026년 10월 16일(금)〉, Daum∙Naver 지식백과/ 이영일 ∙ 고앵자 yil2078@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