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비정상: 생물 의학 보안 국가의 부상"의 저자
아론 케리아티
전 캘리포니아 대학교 어바인(University of California Irvine) 정신과 교수이자
전 UCI Health 의료 윤리 프로그램 책임자
사람들은 전체주의 라는 말을 들으면 보통 비밀 경찰, 장화신은 남자,강제 수용소,엄청난 감시 같은 것을 떠올린다.
이런 형태들이 위험하지만 진정한 시작의 시점, 전체주의의 핵심은 이념으로 조작된다.합리성으로 판단되어지는 지식을 과점하게 되는 이념.
막스,나치,파시즘에 갇힌다는 것은 앉아서 " 토론해 보자,니 증거를 보여줘 내 증거를 보여줄게 우리 서로 다른 것들을 알아가 보려고 노력해자"라고 하지 않는다.
아냐 넌 OOO으로 물들여 졌어.나치라면 넌 유대인에 물들여 져서 너희 민족에 이익을 위해 말하고 있어 니 이익에 부합하는 목적을 갖고 얘기하고 있어 등과 같이
그러니 너랑 대화하는 것은 가치가 없어.
너랑은 토론하지 않아 공공 대화에서 그냥 제외시킬께..
그 결과가 강제수용소 감시 같은 것이다.
우리가 전체주의라고 일반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서구 국가들이 하는 행보가 우려스럽다.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일반 대중에게 하고 있는 이념,검열 등이 전체주의와 닮아 가고 있다.
국민은 질문하는게 허용되지 않는다.
국민은 일반 정책에 반하는 증거를 제시하는게 허용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하면 "위험하다"고 낙인을 찍는다.
소셜미디어에서 알고리즘으로 일반 대화에서 제외시키고 그들의 의견을 다른 사람이 듣는 것을 제한한다.
이게 항상 전체주의가 시작되고 도달하는 방법이다.
한번 이 이념이 인구의 충분한 숫자의 일반 대중에게 수용이 되고 한번 사람들이 이 생각들에 익숙해 져서
질문을 하는게 허용되지 않는게 안에 내재되면 이 과정의 끝은 더이상 강제수용소,비밀경찰, 감시카메라도 필요없다.모든 시민이 불편한 질문들을 하는 사람을 조용히 시킨다.
이것이 전체주의를 연구한 Hannah Arendt(20세기 역사학자 & 정치 철학자)에 따르면 이는 최악의 감옥이 된다.
외부의 힘을 통해 통치하는 독재와 대중에게 공포를 심어주는 독재를 구별.
정부에 반하면 내 가족이나 나한테 해를 줄 수 있다는 공포는 시민을 “정권에 의해 처벌받고 싶지 않기 때문에 다른 말을 하지는 않을 것이고 독재 통치자와 그의 생각에 도전하지 않는다 .”로 이어진다.
전체주의 정권은 처음에는 사람들을 이념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외력을 사용하지만, 결국 전체주의 체제는 사람들이 이념을 내면화했기 때문에 더 이상 외력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 독재정권에서는 비록 외적인 자유가 제한되더라도 적어도 내적인 자유는 여전히 있다.
여전히 스스로 생각을 하고, 자신의 의견을 갖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내적 자유가 있다. 매우 주의 깊게만 말할 수도 있고 전혀 말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여전히 스스로 생각할 수는 있다.
그러나 완벽하게 제정된 전체주의 체제에서는 그런 것조차 갖지 못한다. 이데올로기가 너무 내면화되어 더 이상 질문이 떠오르지 않게 된다. 반대하는 생각은 더 이상 당신에게 일어나지 않는다. 감옥에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 채 보이지 않는 창살이 있는 감옥에 있다.
생각이 보이지 않는 감옥에 갇히게 된다.
좌파 우파 정치성향이랑 무관하게 일반 대중의 성향
대량 형성 경향이 있는 반복적인 현상. 당국이 말하는 것이나 일반30%의 사람들이 최면에 걸릴 가능성이 높고 합의가 무엇이든 따라가는 사람들은 그 합의에 의문을 제기하는 능력이 줄어들거나 관심이 줄어든다.
인구의 더 작은 비율, 아마도 15%는 "나는 그룹에 속해야 한다. 나는 합의에 따라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덜한 사람들.
그들은 그 조류와 사회적 압력에 맞서고 정말로 독립적인 생각을 가질 수 있다. 그렇다고 그들의 생각이 모두 좋다는 뜻은 아니다. 그들의 생각도 틀릴 수도 있다. 그러나 기질과 경험의 조합에 의해 그들은 그 방향으로 움직이려는 경향이 없다.
중간에 있는 나머지 사람들은 나머지가 무엇이든 그들의 상황과 관심에 따라 한 방향으로 또는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