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모리스는 전쟁에 찬성했고, 그것이 불가피하며 심지어 두 나라의 존속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교양과 학식이 있는 젊은이들을 열광시킨 진화론적 사상에 몰두한 이래, 그는 이러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삶이란 매 순간 전쟁이 아닐까? 자연의 조건 그 자체가 지속적인 전투, 가장 강한 자의 승리, 행동으로 유지되고 쇄신되는 힘, 죽음에서 늘 새롭고 신선하게 부활하는 생명이 아닐까? 그는 잘못을 만회하기 위해 입대해 전선에서 싸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그때 자신을 사로잡았던 뜨거운 조국애가 떠올랐다. 아마도 국민투표를 했더라면 프랑스는 황제에게 충성해도 전쟁을 선택하지는 않았으리라. 그 자신도 일주일 전에는 이 전쟁이 유해하고 어리석은 것이라고 공언했었다. 독일왕자에게 스페인 왕위를 계승할 권리가 있는지 없는지 하는 현안에 대한 논쟁이 한창이었다. 문제가 복잡해지고 혼란이 증폭되자 누구 할 것 없이 오류에 빠진 듯 보였다. 도대체 어느 쪽에서 도발을 시작했는지조차 불분명했고, 분명한 것은 정해진 시간에 한 민족으로 하여금 다른 한 민족을 공격하게 하는 불가피하고 숙명적인 법칙뿐이었다. 한순간 거대한 전율이 파리를 관통하였다. 모리스는 불타오르는 밤의 광경이, 모든 대로에서 횃불을 흔들며 “베를린으로! 베를린으로!”하고 외치던 군중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26)
낡은 제정(帝政)은 국민투표로 신임을 얻긴 했지만 뿌리까지 썩어 있었다. 자유를 말살함으로써 애국주의적 이념을 약화시킨 제정은 다시 자유주의적 기치를 내걸었지만 이미 늦었다. 자기 스스로 풀어놓은 끝없는 환락의 욕망을 채워주지 못한다면, 제정은 금세 무너질 게 틀림없었다. 크림전쟁, 이탈리아전쟁의 무훈으로 빛나는 군대는 확실히 용맹하기 이를 데 없는 전통을 가졌으나 돈으로 사람을 사는 대리복무제로 망가졌고, 군사훈련도 타성에 젖어 있었으며, 승리를 지나치게 확신한 나머지 현대 과학의 새로운 기술 도입도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대부분 평범하기 그지없는 장군들은 쓸데없는 경쟁심에 사로잡혀 있었고, 몇몇은 전쟁에 대해 가공할 정도로 무지했다. 그들의 우두머리인 황제는 괴로움과 망설임 속에서 이제 막 시작되는 전쟁을 맞아 잘못된 보고를 받기도 했고 잘못된 판단을 내리기도 했다. 이를테면 모두가 까막눈 상태에서 아무런 준비도 없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가축떼처럼 두려움 속에서 지리멸렬하게 전쟁터로 나아갔다.
(82)
문득 높다란 황색 담장에 쓰인 “나폴레옹 만세!”라는 글귀가 꿈을 꾸는 듯 멍한 모리스의 눈에 들어왔다. 그는 참을 수 없는 좌절감과 가슴이 찢기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전설적인 승리를 구가하며 전 유럽을 제패했던 프랑스가 안중에도 없었던 약소국의 일격에 쓰러졌다는 게 사실일까? 반세기 만에 세상천지가 변했다. 뼈저린 패배감이 영원한 승자의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모리스는 매형 바이스가 일전에 뮐루즈 앞에서 고통스럽게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렇다, 오직 그만이 사태를 통찰하고 있었다. 그는 프랑스를 서서히 약화시킨 진짜 원인이 무엇인지 간파하고 있었고, 젊음과 활력이 담긴 새로운 바람이 독일에서 불어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이것은 하나의 패권 시대가 끝나고 또다른 패권 시대가 시작되는 것을 뜻할까? 하기야 더 이상 노력하지 않는 나라에서 불행이 닥치고, 미래를 향해 가는 나라, 가장 합리적이고 건강하고 강고한 나라가 승리하는 게 당연하잖아!
(152-153)
모두가 울화통을 터뜨렸다. 병사들을 재미삼아 이리저리 돌리는 놈들이 세상천지에 어디에 있나! 헐벗은 들판에 펼쳐진 주름진 대지를 통해 병사들은 길 양쪽 가장자리로 열을 지어 걸었고, 장교들이 두 대열 사이로 지나갔다. 랭스에서 야영한 다음날 샹파뉴에서 병사들이 했던 즐거운 행군, 농담과 노래로 떠들썩했던 행군, 프로이센군을 따라잡아 격퇴하리라는 희망 속에서 배낭을 가볍게 들어올렸던 행군과는 전혀 달랐다. 이제 분노와 침묵 속에서 그들은 어깨를 짓누르는 소총과 배낭을 저주했고, 지휘부를 더 이상 믿지 않았으며, 절망에 사로잡힌 채 채찍질을 두려워하는 가축떼처럼 천근만근 발을 그저 앞으로 옮길 뿐이었다. 이 가련한 군대는 자기들의 십자가를 들어올리기 시작했다.
(227)
그러나 많이 배운 모리스는 전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전쟁이 삶 자체요, 세계를 움직이는 법칙이라고 생각했다. 정의와 평화의 개념을 도립한 자는 불쌍하고 유약한 존재가 아닐까? 어차피 냉혹한 자연이란 끝없는 살육의 장일 뿐이니까.
(367-368)
그러나 불굴의 투지는 결코 꺾이지 않았다. 세번째 돌격이 이루어졌을 때, 프로스페르는 경기병과 프랑스 기병대 틈에 있었다. 여러 연대라 끊임없이 부서졌다. 다시 생성되는 거대한 파도일 뿐이었다. 그는 더 이상 아무런 의식이 없었고,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제피르, 귀를 다쳐 더 빨리 달리는 제피르에게 몸을 맡기고 있었다. 이제 그는 중앙에 있었다. 주변의 말들이 뒷발로 섰고, 거꾸러졌다. 병사들은 바람에 휩쓸린 것처럼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말 위에서 죽은 몇몇 병사가 안장에 앉은 자세 그대로 동공이 풀린 채 계속 돌격했다. 새로이 진격한 200미터 후방으로 시체들과 빈사자들로 뒤덮인 그루터기 밭이 보였다. 그중에는 머리가 땅에 처박힌 병사들도 있었다. 밭에 쓰러져 누운 또다른 병사들은 공포에 질려 툭 튀어나온 눈으로 태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장교의 말로 보이는 거대한 검정말은 배가 터진 채 다시 일어나려 발버둥쳤고, 그 때문에 두 앞발이 쏟아져나온 창자에 뒤엉켰다. 적의 포화가 더욱 거세지며 양쪽 날개가 다시 한번 소용돌이에 휘말리자, 기병들은 뒤로 물러나 전열을 재정비했다.
(456)
스당에서는, 황제의 거추장스러운 짐이 주민들의 저주와 비난이 이는 가운데 군청 정원의 라일락 뒤에 놓여 있었다. 비참한 고초를 겪는 불쌍한 주민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그것을 어디로 치우고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 짐에 어린 불쾌하기 짝이 없는 기운, 그 짐이 자극하는 뼈아픈 패배의 기억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것이었다. 어둠이 깊은 어느 밤이었다. 수많은 은냄비, 꼬치 회전기, 고급 포도주 바구니와 함께 말들, 마차들, 화물 마차들이 극비리에 스당에서 빠져나갔고, 도둑질할 때처럼 살금살금 불안한 걸음으로 캄캄한 도로를 통해 벨기에로 넘어갔다.
(568-569)
전투가 끝난 지 열흘이 넘었지만, 여기저기서 잊히고 버려졌던 부상병들이 계속해서 야전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그중 네 명은 아무런 치료도 받지 못한 채 발랑의 빈집에 누워 있었다. 그들이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 있는지 의아했는데, 아마도 이웃 주민들이 도와준 것 같았다. 그들의 상처에 구더기가 우글거렸다. 결국 그들은 상처가 오염되어 죽고 말았다. 병상에 스며들어 환자를 죽이는 것은 아무런 치료 방법이 없는 바로 그 화농균이었다. 입구에서 괴저 내새가 코를 싸쥐게 했다. 배농관에서 역한 고름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수술 부위를 다시 열어 미처 발견하지 못한 뼛조각을 집어내야 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그러면 뒤이어 농양이 생겼고, 점점 부풀다가 터졌다. 얼굴이 흙빛이 된 지치고 야윈 불쌍한 환자들이 온갖 고통에 시달렸다. 어떤 환자들은 벌써 반쯤 해체된 시체처럼 꼼짝하지 않고 누워 숨소리도 없이 며칠을 보냈다. 또 어떤 환자들은 병세가 광증을 유발한 듯 땀에 흠뻑 젖은 채 불면으로 잠도 못 이루며 연신 헛소리를 했다. 어쨌든 조용한 환자든 시끄러운 환자든 간에, 염증에 생기면 만사가 끝이었다. 세균이 이 환자에서 저 환자로 옮겨다니며 그들 모두를 똑 같은 부패의 물결 속으로 휩쓸어갔다.
(658-659)
모리스가 이 광적인 꿈에 젖은 것은 코뮌 자체에 대한 은근한 불만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그에게 실망감을 안겼다. 위협이 가중될수록 코뮌이 너무나 모순된 요소들로 서로 충돌하고, 쉽게 흥분하고, 일관성을 상실한 채 어리석은 짓만 거듭하는 것 같았다. 코뮌이 약속한 온갖 개혁 가운데 실현된 것은 단 한 가지도 없었고, 훗날까지 지속될 과업도 전혀 없으리라는 것이 확실했다. 특히 코뮌의 가장 큰 잘못은 서로를 찢어발기는 경쟁심과 의심에서 비롯되었다. 벌써 온건한 의원들, 불안을 느끼는 의원들이 더 이상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다른 의원들은 그날그날 터지는 사건의 추이에 따라 움직였고, 독재가 들어서게 될까봐 두려워했다. 그러다가 이제는 급진적인 혁명 분파들이 조국을 구한다는 이유로 서로를 규탄하기에 이르렀다. 클뤼즈레, 돔브로프스키에 이어 로셀이 의심의 대상이 될 참이었다. 전시(戰時) 시민 대표로 임명된 들레클뤼즈조차 대단한 권위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잠시 비쳤던 위대한 사회적 시도는 무능하고 절망에 빠진 이 의원들 주변에 시시각각 확대되는 고립감 속에서 점차 자취를 감췄다.
(705-706)
그때 장은 놀라운 느낌이 들었다. 땅거미가 지는 이 시각. 불타는 도시 위로 서광이 비치는 듯했기 때문이었다. 가차없는 운명과 감당하기 힘든 재앙 속에서 분명 모든 것이 종말을 맞이했다. 프랑스는 그처럼 엄청난 불행을 겪어본 적이 없었다. 잇따른 패전, 지방 영토의 상실, 수십억 프랑의 배상금, 피로 물든 참혹한 내전, 사방에 널린 시체와 파괴의 잔해물, 돈도 명예도 없는 궁핍, 한마디로 다시 건설해야 할 하나의 세계! 그 자신도 찢기는 가슴을 거기에 묻었다. 그가 사랑한 모리스도 알이에트도, 그가 꿈꾸었던 행복한 내일의 삶도 폭풍우에 휩쓸려갔다, 그렇지만 아직도 이글거리는 맹화 너머로, 싱그러운 희망이 더없이 맑고 고요한 하늘 속에서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그것은 영원한 자연, 영원한 인류의 신선한 소생이었다.그것은 희망을 품고 근면하게 일하는 사람에게 약속된 새로운 청춘이었다. 그것은 수액이 오염되어 잎을 노랗게 물들이는 썩은 가지를 잘랐을 때 푸르른 줄기를 힘차게 내뻗는 생나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