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남원 지리산 백장암(智異山 百丈庵)을 찾아서
- 백장암의 전각과 삼층석탑, 그리고 이모저모 -
지난 7월 10일 오전 11시 20분 경남 산청의 정취암을 물러난 후, 11시 32분 백장암으로 향했습니다. 둔철산로를 내려와 산청대로를 타고 산청ㆍ함양 방면으로 달리다가, 생초 IC 나들목에서 대전통영간고속도를을 타고 한참을 달렸습니다. 함양분기점에서 다시 광주대구간고속토로로 바꾸어 남원광주방면으로 신나게 달리면서 비니초님이 백장암에서 정진 중인 허정 스님께 전화를 드리는데 묵묵부답이셔서 공연히 번거롭게 하지 말고 그냥 가자며 달렸습니다.
인월 방면으로 고속도로를 진출한 다음 지리산 IC 나들목에서 인월 방면으로 달리다가, 다시 천왕봉로 실상사 지리산 방면으로 달리는데 처음 가는 길이라 길이 새로웠습니다. 실상사란 이름에 "아, 그 유명한 실상사도 안 봤구나!"하고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달리다가 보니 문득 마을 사이에 백장암으로 올라가는 안내판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백장암으로 올라갔는데 편도 1차로여서 중간에 차를 만나지 않기를 바라며 올랐습니다. 이는 마치 지난 번 김천 수도암에 오르듯 이곳 또한 비슷하구나 생각하며 오르니 문득 백장암에 도착했습니다. 오르면서도 생각했지만 이렇듯 심심산골에 수행처를 터 닦은 옛 고승의 안목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시계를 보니 12시 39분이었습니다. 정취암에서 1시간 7분 걸린 셈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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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대웅전이 보입니다.
백장암은 전북 남원시 산내면 백장길 66(대정리 산28번지)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 금산사(金山寺) 말사인 실상사(實相寺)의 산내 암자입니다.
백장암은 본사 실상사와는 약5km 거리에 있습니다. 실상사에서 남원 인월 방향 국도로 3.5km 가다가 백장휴게소가 있는 매동마을에서 90도 우측으로 올라 역시 1.1km 올라가면 백장암에 도착하게 됩니다.
실상사가 금산사의 말사라 하니 의아하지만 일제 강점기에는 해인사의 말사였다는 사실입니다.
백장암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기 때문에 실상사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본사인 실상사에 의지해서 알아볼 수밖에 없습니다. 백장암에 한 역사는 실상사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아 백장암의 역사는 실상사의 역사는 곧 백장암의 역사이기도 할 것입니다. 저는 실상사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실제로 가 보지는 못해서 아쉬움이 많지만 간략한 개요는 살펴보려고 합니다.
실상사는 우리나라 불교역사에서 선(禪)의 역사와 궤를 같이 있을 만큼 중요한 사찰입니다. 우리나라 선사상은 실라 말 '구산선문(九山禪門)으로 대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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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마당 옆길 모습입니다.
구산선문(九山禪門)은 신라 말에서 고려 초기에 성립된 선종의 9개 산문을 말합니다. 입당국법(入唐求法)한 선승들이 귀국하여 개산(開山) 아홉 산문입니다.
첫째는 실상산문(實相山門)으로 신라 42대 흥덕왕 때 당나라 서당 지장(西堂智藏) 선사의 법을 받아온 홍척국사(洪陟國師)가 지리산(智異山) 남원 실상사(實相寺)에서 크게 선풍(禪風)을 일으켜 개산하였습니다.
둘째는 가지산문(迦智山門)으로 6조 혜능(慧能)의 법통인 서당 지장(西堂智藏) 선사의 법을 전수해 온 도의(道義) 선사는 아직 대중의 근기가 성숙하지 않음을 보고 설악산에 들어가 40여년을 나오지 않았는데, 그 손제자인 보조 체징(普照體澄) 선사가 장흥의 가지산(迦智山) 보림사(寶林寺)에서 스승을 종조(宗祖)로 하여 개산(開山)하였습니다.
세째는 동리산문(桐裡山門)으로 혜철국사(惠哲國師)가 도의국사(道義國師)와 같은 해에 중국에 가서 역시 서당 지장(西堂智藏) 선사로부터 법을 받고 돌아와 곡성군 죽곡동의 동리산(桐裡山) 태안사(泰安寺)에서 개산조(開山祖)가 되었습니다.
넷째는 사굴산문(闍崛山門)으로 구산선문 중 가장 왕성하였던 강릉군 구정면의 사굴산(闍崛山) 굴산사(崛山寺)에서 범일국사(梵日國師)가 개산하였습니다.
다섯째는 성주산문(聖住山門)으로 무염국사(無染國師)가 중국에 가서 마곡보철(麻谷寶徹) 화상의 회상(會上)에서 동방보살이라는 칭호를 받고 귀국하여 보령군 미산면의 성주산(聖住山) 성주사(聖住寺)에서 개산하였습니다.
여섯째는 사자산문(獅子山門)으로 도윤국사(道允國師)가 중국 당나라의 선승인 남전보원(南泉普願) 선사에게서 법을 잇고 돌아와 영월군 수주면의 사자산(獅子山) 흥녕사(興寧寺)에서 개산하였습니다.
일곱째는 희양산문(曦陽山門)으로 문경군 가은면의 희양산(曦陽山) 봉암사(鳳巖寺)에서 도헌국사(道憲國師)가 개산하였습니다.
여덟째는 봉림산문(鳳林山門)으로 현욱국사(玄昱國師)는 중국에서 돌아와 역대왕의 스승이 되었고, 효공왕(孝恭王) 때에 창원군 상남면의 봉림산(鳳林山)에 봉림사(鳳林寺)를 창건하고 산문을 열었습니다.
아홉째는 수미산문(首彌山門)으로 이엄존자(利嚴尊者)가 당나라에서 돌아와 고려 태조의 조칙을 받아 해주군 금산면의 수미산(首彌山) 광조사(廣照寺)를 창건하고 구산선문(九山禪門) 중의 마지막이라 할 수 있는 수미산문(首彌山門)을 개산(開山)하였습니다.
구산선문 중 제일 먼저 산문을 연 곳이 실상산문인 만큼 그 비중은 대단히 큰 것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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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장암 모습입니다.
「실상산문의 개창자인 홍척국사(洪陟國師)에 대한 자세한 전기(傳記)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실상사의 정확한 창건 연기를 전하는 자료는 찾아볼 수 없으나, 귀국이후 2년 만인 828에 이곳에 창건하였다는 내용이 정설로 되어 있다. 아울러 처음 도량을 형성한 곳은 지금의 백장암(百丈庵이고 대중들이 늘어나자 홍척의 제자인 수철화상(秀澈和尙, 817~893)이 지금의 실상사 자리로 옮겼다는 설이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보다 많은 연구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전통사찰총서 9> 실상사편에서-
이것으로 보아 실상사의 창건은 신라 흥덕왕(興德王) 3년인 828년에 실상사를 창건하였다고 하는데 실은 그것이 백장암터이고 보면 실제 지금의 실상사는 그보다 늦게 창건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실상사가 고려 초기까지는 사세가 유지 되었는데, 그후 사세가 위축되어 조선 중기까지는 공백기였다고 합니다. 화재로 소실되기도 하고 정유재란 때 소실되기도 했는데, 조선 숙종 5년인 1679년 벽암대사가 백장사 2차 소실 후 실상사의 옛터에 백장암을 건립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실상사 산내 암자로서의 역할은 이때부터인 것으로 보입니다.
조선 고종 5년인 1868년, 실상사 백장암이 3차 화재로 소실되었고, 고종 6년 1869년 운월대사가 실상사 백장암을 다시 현재의 위치로 이건했다고 합니다.
대한제국 광무 4년(고종 35년)인 1900년, 백장암이 화재로 소실되었는데, 광무 5년(고종 36년)인 1901년 남호대사가 백장암을 중수했다고 합니다.
백장암이 불에 타는 비운을 많이 겪었네요. 각별히 불조심을 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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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모습
대웅전은 불기 2555년(2011) 4월 9일 낙성한 건물로 정면 3칸 옆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입니다. 안에는 석가모니불을 주존으로 좌우에 관음보살과 지장보살님을 모신 삼존불을 모시고 있습니다.
대웅전의 주련은 다음과 같습니다.
摩訶大法王 마하대법왕 거룩하고 위대하신 부처님께선
無短亦無長 무단역무장 짧음도 또한 김도 없음이로다.
本來非皁白 본래비조백 본래로 검도 희도 않으시면서
隨處現靑黃 수처현청황 인연따라 청황으로 나투신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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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편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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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단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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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삼존불(釋迦三尊佛)과 후불탱화(後佛幀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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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처 지장보살 본존 석가모니불 좌보처 관세음보살
예전에는 석가삼존불로 좌보처 문수보살과 우보처 보현보살이 협시하여 지혜와 행원을 강조하였는데, 요즘에 현실적 요청으로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님을 협시로 모시는 것이 일반적인 양상으로 보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천도재 등을 봉행할 때 지장헌공이나 관음시식 등 의식을 봉행함에 반드시 두 분 보살님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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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삼존도(阿彌陀三尊圖)
아미타삼존도를 줄여서 미타삼존도라 하기도 하는데 원래는 아미타불을 협시하는 관세음보살님과 대세지보살을 일컬었습니다. 요즘은 대세지보살 위치에 지장보살님을 배치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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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탱화(神衆幀畵)
이 신중탱화는 대한제국 광무 5년(辛丑年, 고종 38년, 1901년)에 조성했다고 합니다. 이 신중탱화는 관음전에 모셔졌는데, 조성 2갑자를 맞은 불기 2565년(辛丑年 2021) 2월 3일 입춘을 맞아 일부 훼손된 부분을 수리 보수하여 대웅전에 봉안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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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장암의 성보 삼층석탑과 석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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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실상사 백장암 삼층석탑 -국보 제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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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실상사 백장암 삼층석탑 안내문
마음이 바빠 안내판을 닦지 못하고 찍었네요. 죄송합니다. ^^
내용이 간결하여 <실상사 홈피>에서 설명한 글을 보충해 봅니다.
「이 탑은 백장암 경내에 있는 통일신라 시대의 석탑으로 국보 제10호이다. 현재의 백장암 남쪽 아래 경작지에 남아 있어 석탑 바로 뒤에 서 있는 석등과 함께 원위치로 생각된다. 그 북쪽에 법당터로 추정되는 건물지가 뚜렷한 점으로 보아 본래는 백장암이 이 곳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층 탑신 각 면에는 사천왕상과 신장상 2구씩을, 2층 탑신 각 면에는 주악천인상 2구씩을, 3층의 각 면에는 1구씩의 천인좌상을 새기고 있다.
이 석탑은 기단부의 구조와 각 부의 장식적인 조각에서 특이한 수법을 보여주는 것으로, 신라하대에 유행한 불국사의 다보탑과 같은 이형석탑의 하나이다. 각부의 구조가 특이할 뿐만 아니라 탑신부의 탑신과 옥개석 밑에 조각이 가득히 있어 더욱 더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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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실상사 백장암 석등(南原 實相寺 百丈庵 石燈) -보물 제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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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40호 남원 실상사 백장암 석등 안내문
역시 <실상사 홈피>에 있는 글을 옮겨 봅니다.
「이 석등은 백장암 경내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보물 제40호이다. 연화대석 위에 간주를 세우고 그 위에 다시 연화대석을 놓았으며, 상륜부는 도난을 당해 현재 그 원형을 찾을 길이 없다. 이 석등에서 특이한 것은 앙련의 윗부분에 난간을 표현한 점이다. 이처럼 앙련대석에 난간을 둘러 장식한 것은 석등으로는 유일한 예이다.
화사석은 8각으로 4면에만 직사각형의 불을 켜는 구멍(화창)이 있으며 다른 4면은 아무런 조각이 없다. 화창구에는 창문을 고정시키기 위한 못구멍이 있는데, 이것은 실상사 경내에 있는 석등과 같은 형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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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탑 앞의 부도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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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대웅전 앞에 각종 부도가 있는 것은 특이한 경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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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부도의 모습
부처님의 사리나 경전을 모신 곳을 탑(塔)이라 합니다. 그런 반면에 스님들의 사리를 모신 곳은 부도(浮屠)라 합니다. 부도란 부처님을 뜻하는 범어 붓다(Buddha)에서 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고승의 경우 부도를 승탑(僧塔)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부도의 종류는 다양한데 양식에 따라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 복발형(覆鉢形. 石鐘形), 방형(方形), 석탑형(石塔形), 특수형(特殊形)으로 나눕니다.
왼쪽 첫 번째 부도는 부도 파편을 모은 것으로 보이고, 두 번째는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 부도이고, 그 다음으로는 석종형(石鐘形) 부도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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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무소 모습입니다.
우리는 백장암에 순례차 오긴 했어도 허정 스님을 찾아뵙고 인사드리려는 생각이 컷기 때문에 절의 주변을 얼른 담아야 한다는 생각에 사진을 자세히 담지도 못했고, 주변의 전각도 다 살피지 못한 채 대웅전을 찾아 예배한 후 종무소로 향했는데, 종무소 옆 운치 있는 나무 아래 평상에는 어떤 스님과방문객들이 다담을 나누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즐거워 보였습니다.
종무소에 도착하니 종무소에는 주지 스님과 허정 스님이 어떤 거사 내외와 담소하시기에 반가운 마음에 곧바로 방에 들어 얼른 1배를 올리고 자리에 합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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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 행선 스님과 허정 스님과 우선 기념사진부터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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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꽃이 화기애애하게 피어났습니다.
처음에 이 방에 들어오니 주지 스님과 허정 스님과 두 분 내외분과 이야기 꽃을 피우고 계셨습니다. 두 분에 사이에 있는 각종 동물을 두고 두 분의 인생을 논하고 계시는 듯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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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에서 오셨다는 백장암의 단월이십니다.
얼핏 들으니 두 분은 부부로 남원에 사시면서 백장암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여러 가지 자원봉사를 하시면서 살아오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도착하기 전, 태고종 비구니이신 묘음 스님이 인도에 가시기 전 백장암에 들러 인사차 방문하시며 동물보따리를 풀어 놓으시며 그 동물로 사람의 심리를 상담하면 좋다고 하시면서 두고 가셨는데 그 제1호 대상자가 남원거사 내외분이였던 것입니다.
어떤 동물을 선호하느냐에 따라 사람의 심리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사님은 호랑이를 보살님은 앵무새를 선택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두 분 스님이 번갈아 거사님의 호랑이 같은 성격을 논하면서 웃음이 흘러나왔고, 앵무새 같은 보살님은 호랑이 같은 남편을 위해 헌신하며 사랑을 받으려고 무더히도 노력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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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이신 행선(行禪) 스님은 연신 보이차를 내어 주셨습니다.
주지 스님은 누가 백장암을 방문하면 차를 내어 주시고 자상하게 배웅까지 하시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사찰순례를 해도 차 한 잔 마시기는 커녕 얼굴 뵙기도 어려운데 말입니다.^^
제가 주지 스님을 처음 뵙기로는 지금은 입적하셨지만 원만 스님께서 병을 얻어 울산 자재병원으로 내려가실 때 서울의 여래선원을 정리하여 스님의 물건을 백장암으로 옮길 때 상경하셔서 이삿짐을 쌀 때였습니다. 그것이 또 이렇게 인연이 되어 다시 인연을 도탑게 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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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무슨 연락이 왔나 살피시는 허정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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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성이 고운 아름다운 보살님
호랑이 같고 가부장적인 남편을 받들면서도 힘든 대가족 대소사를 도맡아 꿋꿋하게 원만하게 해오셨는데 남편은 따뜻한 말로 다독여 주는 자상함은 특유의 성격 탓에 내색이 적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보살님은 명랑한 성격으로 이해하며 살아오신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호랑이와 앵무새에 대해서 두 분 스님은 훌륭하게 상담해 주셨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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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 스님이 나무 밑 평상으로 가시고 허정 스님이 자리를 잡으셨습니다.
조계종 교육원 불학연구소장이셨던 허정 스님은 백장선원에서 안거 중이신데 여기서의 소임은 입승(立繩)이십니다. 입승이란 사찰에서 기강을 맡은 소임입니다. 즉 규율과 질서를 바로잡는 소임입니다.
대한불교조계종에서 펴낸 <불교성전>이 2021년에 나왔는데, 이를 보신 허정 스님이 "불교성전을 비평하다1,2"를 <불교닷컴>에 기고하였지만 종단에서는 무반응이었습니다. 이번 하안거에서 백장암 선원 대중이 감수한 결과 150여 곳에서 문제점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하안거 중에 백장선원 대중과 뜻있는 불자들이 매주 금요일 백장암에 모여 이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점이 종단에서 받아들여 검토하고 수정되었으면 합니다. 잘못 되었다면 마땅히 바르게 수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담소가 끝나자 허정 스님께서 백장선원을 구경시켜 주신다고 해서 따라 나섰습니다. 남원보살님도 함께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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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각인데 합장하는 것으로 대신하고 선원으로 향했습니다.
앞면 3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입니다. 주변에는 대나무가 울창합니다.
靈山昔日如來囑 영산석일여래촉 그 옛날 영산에서 부처님의 부촉 받아
威鎭江山度衆生 위진강산도중생 강산을 어루면서 중생을 제도하고
萬里白雲靑嶂裏 만리백운청장리 만리 뻗은 흰 구름 푸른 산 봉우리를
雲車鶴駕任閑情 운거학가임한정 구름수레 학을 타고 한가로이 노니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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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각을 지나 백장선원으로 향합니다.
선원은 아무나 갈 수 없는 곳인데 스님 덕분에 선원을 구경하게 되엇습니다. 백장암에 오래 다녓다는 보살님도 처음인가 봅니다. 예로부터 선방 문고리만 잡아도 삼악도를 면하고 삼세 업장이 녹아 성불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보살님께서 이런 이야기를 익히 들어 알고 계시는 모양입니다. 선방 문고리를 잡으시겠다고 기뻐하십니다.
대나무가 백장선원의 기백을 대변해 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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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드러난 백장선원의 모습입니다.
백장선원을 이해하기 위해 검색해 보니 이런 기사가 있어 옮겨 봅니다.
2021년 8월 25일자 '좌선 위주 벗어난 독특한 백장선원 하안거' 법보신문 윤태훈 기자의 기사입니다.
「백장선원은 철저히 대중들의, 대중에 의한, 대중을 위한 대중공사로 진행된다. 또 안거 내내 좌선 위주의 여느 선원과는 달리 좌선, 울력, 그리고 법에 대한 치열한 토론까지도 병행되는 것이 특징이다.
'몸으로 동료에게 자애롭게 행동한다' '입으로 동료에게 자애롭게 말한다'
'마음으로 동료에게 자애롭게 사유한다' '동료들과 균등하게 나눈다'
'계를 구족하여 머문다' '바른 견해를 구족하여 머문다'는 6가지 청규는 초기불교부터 대승까지 이어오는 승가의 화합원리이자 불법이 쇠퇴하지 않는 부처님의 가르침이기도 하다. 선원은 이 6가지 청규를 바탕으로 2016년부터 3가지 구체적인 항목을 실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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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면 7칸, 옆면 3칸 팔작지붕을 한 백장선원(百丈禪院)
「첫 번째는 '원융살림'으로 스님들의 입방여부, 안거 시 수행 계획 등 백장선원의 모든 대소사를 대중갈마를 통해 결정한다. 법랍의 높고 낮음, 수행이력과 관계없이 평등하고 민주적인 갈마를 통해서 합리적인 결과를 도출한다. 이는 자연스레 불화가 줄어들고 화합승가로 연결된다. 지키기 어려운 소소한 조항은 대중의 뜻에 따라 추가적인 청규로 만들어 엄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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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장선원(百丈禪院) 편액
「두 번째는 '포살'이다. 부처님은 대중의 화합과 안락을 위하고 정법을 보전하기 위해 계율을 제정했다. 결제와 해제는 물론 보름마다 '비구계본'과 '보살계본'을 번갈아 포살한다. 포살 전 스님들은 일대일로 청정의식을 행한다. 포살은 외부의 힘을 빌리지 않고 대중 스스로의 힘으로 청정을 회복하는 시간이며 승가가 대중의 공의로 운영되는 것을 확인하는 자리다. 매달 보름과 그믐 오전 8시에 진행되며 일대일 참회는 포살 시작 20분 전까지 마쳐야 한다. 승가에 귀의한다는 것은 사심을 내려놓고 공심으로 살겠다는 약속이며 불법을 세세생생 전승하겠다는 거룩한 다짐이다. 백장선원 청규는 타성과 관습에 물들지 않고 늘 깨어 있으며 금강석 같은 굳은 서원으로 부처님이 걸어가신 길을 따르고자 하는 수행자들의 비장한 각오가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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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의 불단
「세 번째 '법담탁마(法談琢磨)'는 바른 견해를 세우고 대중들이 허심탄회하게 소통하는 시간이다. 대중이 돌아가면서 논주를 맡고 논주는 활발한 토론이 되도록 진행한다. 옛 선사는 '마음을 반조하지 않으면 경을 보아도 이익이 없고 자성이 공한 줄 알지 못하면 좌선해도 이익이 없다' 말했다 한다. 지난 하안거 동안에도 법담탁마는 매주 목요일 오전 8시부터 2시간 동안 육화당에서 이뤄졌다.
백장암 감원 행선 스님은 "백장선원은 대중들 모두 수처작주의 정신으로 대중갈마ㆍ법담탁마ㆍ포살과 자자 등 실천을 통해 청정화합승가 구현을 지향하는 수행도량"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하안거도 이와 같은 방법으로 조계종에서 2021년에 발행한 <불교성전>을 면밀히 검토하고 감수하는 것을 하안거 의제로 삼아 법담탁마(法談琢磨)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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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상방(龍象榜)을 가리키시는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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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상방(龍象榜)
조실(祖室) : 선으로 일가를 이룬 정신적 지도자.
회주(會主) : 도법(道法) 스님. 법회주관 법사.
선원장(禪院長)
선덕(禪德) : 종묵(宗默) 스님. 연세가 높고 덕이 높은 분.
입승(立繩) : 허정(虛淨) 스님. 선원 규율 질서 기강 담당.
명등(明燈) : 등불 담당. 전기 담당.
병법(秉法) : 범서(梵瑞) 스님. 의식 담당.
정통(淨桶) : 정인(正仁) 스님. 해우소 청결 담당.
지객(知客) : 손님 접대 담당.
지전(持殿) : 우일(又一) 스님. 법당 담당.
욕두(浴頭) : 고경(古鏡) 스님. 목욕 담당.
원주(院主) : 벽산(碧山) 스님. 살림 사무 담당.
다각(茶角) : 효원(曉原) 스님. 차 담당.
서기(書記) : 월명(月明) 스님. 서무 담당.
감원(監院) : 사찰 살림총괄 담당.
주지(住持) : 행선(行禪) 스님.
불기 2566년 임인년 하안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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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 수행 방석
여기서 수행하시는 스님들 탁마를 통해 수행의 성과가 원만히 이루어지시기를 합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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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장암이란 편액을 건 요사채
대개 주지 스님 등이 주석하시는 곳은 심검당(心劍堂)이나 심우당(尋牛堂) 등의 편액을 걸고 있는데 여기는 사명편액을 달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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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주지스님과 스님의 주석처입니다.
여기에 주련이 있어 소개해 봅니다. 백장청규(百丈淸規)로 유명한 백장(百丈) 스님의 법어(法語)입니다. 이 법어와 연관된 재미 있는 이야기가 있으나 생략합니다. 기회 있을 때 소개해 보겠습니다.
靈光獨耀 영광독요 신령스런 광명이 홀로 빛나니
逈脫根塵 형탈근진 멀리 육근 육진에서 벗어남이라.
體露眞常 체로진상 본체가 진상으로 드러남이니
不拘文字 불구문자 문자에 구애받지 않음이로다.
心性無染 심성무염 마음의 성품은 물들지 않아
本自圓成 본자원성 본래로 스스로 원만하나니
但離妄緣 단리망연 망령된 인연만 떠난다 하면
卽如如佛 즉여여불 곧바로 여여한 부처라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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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장암(百丈庵) 편액
허정 스님은 수행시간이 되어 여기서 헤어져 선방으로 향하셨습니다. 허정 스님을 인연으로 귀한 시간 함께하며 선원까지 구경하게 되어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스님께 감사드립니다. 보살님은 선방 문고리를 잡으신다고 선방으로 가셨다가 돌아오셨는데 문고리를 잡았다고 즐거워하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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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와 소대(燒臺)가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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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장암의 모습입니다.
왼편의 전각은 여건이 되지 않아서 가 보지도 못했습니다. 다음 기회에 찾아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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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나무가 눈에 띄었습니다.
우리는 보살님과 다시 종무소로 돌아와 주지 스님께 아쉬운 작별을 고하였습니다. 그러자 스님은 선물을 주셨습니다. 책을 두 권 주셨는데 금강경 사경책이었습니다. 공부하라고 사경하라고 주신 책이니 꼭 사경해서 가지고 가려고 합니다.
주지 스님은 과연 주차장까지 따라오셔서 배웅해 주셨습니다. 자동차에 시골에서 가져온 물건은 많이 있었으나 절에 필요한 것은 없어 드리지 못했으나, 비니초 여여행님이 절에서 만난 것도 있연이고 보살님 힘내라고 양파 한 자루를 건네 드리고 오후 2시 17분, 각자 백장암을 물러났습니다.
백장암이 백장청규가 오롯이 살아 선기를 드날려 도인이 속출하고, 백장암을 찾는 모든 이들의 쉼터가 되고 귀의처가 되기를 합장합니다.
감사합니다. 백우 _()_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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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_()_
민제님 감사합니다. _()_ _(())_
아름다운 걸음에 마음으로 함께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__()__
금시조님, 아름다운 걸음에 감사드립니다.
말로만 듣던 백장암이 실제로 가보니 너무 늦게 갔음을 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다음은 실상사도 가봐야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_()_ _(())_
즐감 하였습니다
우린 언제나 사찰 순례 할까요!
아! 옛날이여
나무아미타불_()_
보화님 감사합니다. 다른 분들도 즐감할 수 있도록 독려를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삼복더위와 코로나가 다시 유행하니 어렵지만 나중에 공의가 모아지면
추진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_()_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