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다니는 동안 부족했던 학점을 만회하느라 결혼을 한 이후에 대학원을 다녀야 했고. 등록금과 생활비를 버느라 하루에도 두세군데 학교와 학원을 전전하며 보따리 장사를 하고. 운이 좋아서 임용고시 강의를 시작한 이후로 벌어들이는 돈을 써볼 시간도 없이 아이둘을 낳는 동안 서울 광주 부산 익산..밤시간 주말 모두 강의를 하며 십년을 살았더랬습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바르게 가르치는 교사를 배출하겠다는 처음의 마음.. 끼니 해결하기 힘든 고시생과 삼겹살과 소주를 나누며 참교육을 이야기해주던 마음이 사라지고. 학원생들의 머릿수와 돈과 피폐해진 몸과 맘
그리고 더이상 회복하기 어려운 가정 문제가 남았습니다. 결단을 내려야 했고..살아야 했고..살고 싶었습니다. 엄마를 기다리지 않고 잠드는 것에 익숙한.. 언제 이를 갈았는지 기억도 안나는.. 동생에게 엄마의 역할을 해주려고 애쓰는 꼬맹이 첫째.
태어난지 한달이 채 되지않아 아이 봐주시는 분과 초등학교 들어갈 때까지 눈 마주쳐야 했던 둘째.
그 아이들을 놓치고 싶지 않았고 저의 삶도 놓고 싶지 않았기에.. 정말 안녕하게 조용히 살고 싶어서 조용히 떠나왔더랬습니다. 그동안 배우고 싶었던 요리와 커피 등을 공부하며.. 안되는 영어로 아이들과만의 숨통 트이는 삶을 꾸리며.. 사춘기딸과의 격렬한 다툼도.. 이 시간이 주어져서 행복하다 여기며.. 그렇게 조금씩 마음과 몸과 관계를 치유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작년 이맘때 당연히 당선을 믿었던 문재인 후보가 거짓말처럼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도 하루이틀 맘아프고 사그러질 정도로 맘도 단단해졌더랬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때보다 덜 슬펐더랬습니다.
그래도 별일이야 있겠어? 하고 생각했더랬습니다. 그런데 일학년때부터 줄창 같이 이십대를 보내고.. 한때는 맘속 모든 고민을 나누고.. 졸업후 항상 미안하기만 했던.. 서로 힘든 가정사로 가끔 연락하며 아쉬워했던 내 친구를 구속했습니다.
어제는 민주노총 사무실을 미친 개떼들처럼 쳐들어가는 것을 인터넷으로 보았습니다. 정말 안녕하고 싶어서 떠나온 우리나라의 모습이 저를 참 부끄럽고 죄스럽게 만듭니다. 어제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해도 되는 겁니까? 이렇게 끝까지 가도 되는 겁니까? 저는 그냥 단지 힘든 시절 건너왔다 생각하며.. 이제 좀 맘 편하게 살면 안되는 겁니까? 밤새 잠 못 이루며 고민했습니다.
그냥 조용히 빠져서 살고 싶은 마음도 아직 많습니다. 그냥 이렇게 카톡이나 밴드로 정부나 잘근잘근 안주거리로 씹어대며..와인이나 마시고 다음날 일어나 아이들 런치박스 챙겨주며..그렇게 지내고 싶은 마음도 듭니다.
그런데 아무리 마음을 단단히 먹으려 해도..이제 그만..충분히 힘들었잖아..햐도 마음이 너무 편치를 않습니다. 아직 독한 마음이 덜 먹어졌나봅니다. 뭘 어찌 해야 할지는 아직 모르지만..뭐든 해보렵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캐나다 교민 유학생들이 릴레이 촛불한다 하는데.. 여기는 잠잠합니다. 여기서 사귄 친구 후배들이라도..아님 혼자서라도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앞에 서고 싶습니다. 부끄럽고 실로 오래간만이라서 서툴지만 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비행기표 값도 없지만.. 박정권 끝낼때까지 한국 방문 거부합니다! 소심한 저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