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는 설날 뒤 결혼이주여성을 안내하여 고흥을 돌겠다고 한다.
일찍 광주로 가서 일을 마치고 무등에 눈이나 보러가고 싶은 생각으로 나선다.
상무지구 수협전남본부에 가서 금융거래확인서 등을 떼어 아파트 재계약사무실에 가서 일을 마친다.
12시가 다 되었다.
증심사로 가 점심을 먹고 무등을 가면 좋겠는데 옷 갈아입을 일이 귀찮다.
광주극장을 보니 1시 반에 '이토록 사소한 것들'이라는 영화를 해 그걸 보기로 한다.
우산을 들고 시내버스를 타 소태역에 내려 지하철을 타고 금남로4가역에 내린다.
영안반점에 들어가 자장면을 주문하니 양이 작다.
계산을 하니 6,000원이다.
영화는 남자 주인공의 표정처럼 어둡고 침울하며 검다.
미혼모의 아들로 귀부인의 보호에서 자라난 주인공은 마을의 조개구이탄? 배달원이다.
수녀원에서 창고에 갇힌 한 여성을 도와주며 수녀원장이 집나온 여성들을 강제노역시키고 있는 걸 안다.
영화는 설명하지 않고 수녀원이나 동네 사람들 주인공의 딸많은 가정 등을 담담히 보여준다.
결국 그는 임신한 갇힌 여성을 끌고 나온다.
자막으로 1928?몇년부터 1997년까지인가 젊은 가출 여성들을 강제노동착취한 수녀원이 폐쇄되었다고 보여준다.
폭력에 굴하지 않고 맞선다는 말을 쉽게 할 수도 있을 것이지만, 영화는 주인공의 음울한 표정 속에서
그게 참 용기라는 걸 보여주는 듯하다.
저녁을 누구랑 먹을까?
집에 가서 혼자 라면을 먹어도 되겠지만 내일 한라산을 오르려면 더 든든하게 먹어야겠다.
박경희나 송기훈과 김동선을 생각하다가 술 마시지 말자고 한강에게 연락한다.
6시 반쯤 쌍촌역에서 만나기로 한다.
아직 3시도 되지 않았다.
금남로 4가역엔 노인들이 장기판이나 바둑판 주위에 몰려 있다.
다른 쪽 부스엔 BTS 사진들이 걸려있다.
그가 K-문화의 주역중 하나라기에 공부해 볼라고 사진만 찍어본다.
사람없이 주인만 서성이거나 옆가게 주인끼리 이야기하고 있는 금남지하상가를 지나
아시아문화전당으로 나온다. 책을 읽다 눈이 아프면 사진집이나 보기로 한다.
옛도청 건물들은 포장을 덮었고 내려가는 아문당은 문이 닫혔다.
한바퀴 돌다 내려가는 길을 못 찾고 헤매다 나온다.
충장로 알라딘중고서점으로 내려간다.
가족부터 젊은이, 노인까지 사람이 많다.
새로 들어 온 책 서가를 보다가 시와 소설 쪽으로 가 본다.
배 타고 가는 제주도에 술마시는 것보다 짧은 소설이나 한편 보면 좋겠다.
무게가 가볍고 글씨가 조금 크고 맘에 드는 작가의 책을 고르려 하지만 안 보인다.
김훈 장편소설 공터에서가 그 중 가볍다. 판형도 작고 종이도 가볍지만 두께는 350쪽이 넘는다.
8,400원이어서 한 권 더 고르다가 나비가 된 불꽃 전태일의 시를 든다.
전태일에 대해 판화와 여러 시인이 쓴 작품이 들어 있다.
사회 인문 쪽으로 가 가난한 동양고전 서가를 구경하다가 나온다.
아직 4시가 되지 않았다. 비는 어느 사이 그쳤다.
2시간 반의 시간 여유가 있다.
쌍촌역까지 걸어가보려면 어느 길을 택해야 하나?
광주천변을 걸어가다 어디쯤에서 탈출하면 되겠지.
문화전당역에서 광주천을 향해 걷는다.
횡단보도 건너에 히잡을 두른 외국 여성 셋이 모두 아이를 안고 있다.
우리의 젊은이들은 더러들 보이나 아이가 안 보인다.
듣기로 언제간 시청이 있었다는 골목은 폐허가 되고 있다.
프로 야구선수단이 묵는다는 프랑이 걸려있는 호텔 부근도 담배꽁초가 수북하다.
80년 5월 부상자를 치료했다는 적십자병원은 서남대학의과대학병원 명패를 달고 초록 철망 속에 갇혀 부식되어 가고 있다.
옛 태평극장 앞에서 광주천으로 내려간다.
내가 살았던 그 때 석조상이 얹힌 중앙대교는 이제 눈길을 끌지 않는다.
근처에서 큰 건물이었던 우리가 자주 드나들었던 다방이 있던 그 건물도 찾기 어렵다.
건너 희경루 누각이 겨울 나무 사이로 물에 비친다.
검은 판에 흰 글씨로 씐 희경루 글씨는 낙관이 없는 걸 보니 컴퓨터 글꼴인 모양이다.
시민들이 자주 드나들며 즐거움과 기쁨을 누릴 수 있을까?
경사진 돌길 위의 물이 소리를 낸다.
가끔 운동하거나 심각한 표정으로 걸어가는 이들이 있다.
책 두권에 우산을 들고 가는 나도 그럴 것 같아 소설책을 읽는다.
김훈의 문장도 그러려니와 이야기의 시작이 1979년 12월 군복무 상병으로부터이니
내 또래여서 관심을 금방 끈다.
죽어가다가 죽는 그의 아버지 세대의 이야기와 그의 이야기가 얽힌다.
아버지의 해방일지와는 결이 다르지만 부모와 자식간의 이야기는 영원한 소설거리겠다.
임동 부근일까, 양동시장 옆의 큰 건물이 보이는데 벽에 옛광주 사진들이 붙어 있다.
확대된 사진들은 흐릿하지만 설명도 같이 붙어 있어 나의 관심을 끈다.
사진을 몇 장 찍어보는데 여전히 기울어진다.
안내판도 나타나고 운동기구들도 나타나고 징검다리들도 가끔 나탄나다.
돌물길 사이에 하얀 해오라기?인가와 청둥오리들이 물을 들여다보고 있다.
징검다리를 건너며 장난을 치는 할머니와 손녀를 본다. 그 가족은 뒤에서 웃고 있다.
양동시장 지하주차장 사이로 물과 길이 들어간다.
빠져나와 기아 챔피언스야구장 부근의 합수머리 안내를 본다.
화장실을 찾는데 길 건너편이다. 5시 반을 지난다.
광주천을 벗어나 쌍촌역까지 도로와 건물 사이를 걸어야 할 것 같다.
차량과 건물 사이를 걷기 싫어 돌아와 양동시장역에서 지하철을 타기로 한다.
다시 돌아오는 길이 멀다.
양동시장 주차장 어둔 속을 헤매며 위로 올라가는 계단을 찾는데 안 보인다.
한참을 돌다가 지상으로 올라온다. 양동시장은 절반 이상 닫혀 있고
문을 연 가게도 셔터를 내리고 있다.
지하철 역으로 가 쌍촌역은 금방이다. 비가 내린다. 아들에게 전화하니 금방 오겠다고 한다.
우산을 펴고 한국병원 쪽으로 걷는다.